新 歸去來辭
돌아가리라. 都市에서 장차 할 일이 없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무살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이래, 지금까지 학업과 직업을 위해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열심히 살아보았지만, 이제 남은 건 아무 것도 없고, 자식들도 교수, 판사 만들어놓았지만 제 일 바빠 부모 일은 신경쓰지 않는구나. 어찌 초창히 홀로 슬퍼하면서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이제사 깊이 까닫게 되었는가.
그래 어느 날 남부터미널에서 고향 가는 고속버스 타니, 차는 천안 대전 함양 생초 시원히 달려가고, 바람은 펄럭펄럭 초목을 스쳐가는구나. 기사에게 가는 길 물어보니, 생초 지나면 진양호 나오고, 진양호 나오면 곧 진주라고 알려준다. 마침내 차가 시내에 들어가 비봉산 밑을 지나가니 중앙시장 나오고, 차가 장재동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 옆에 멀리 촉석루와 남강이 보인다. 기쁜 마음에 차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배건너로 달려가, 해인고 지나 육거리에 도착하니 문 앞에 반겨줄 어머님도 않계시고 동네에는 아는 친구도 없구나. 살던 집 찾아가니 내가 중학생 때 세비리 강변에서 꺽어다 심은 버드나무도 없고, 집은 3층 건물로 바뀌어 대문께에 웬 노래방 간판이 달려있다. 길 건너 용환이네가 운영하던 약국도 간 곳 없고, 이발소도 구멍가게도 없어졌다. 부산여관도 없고, 추씨 방직공장도 없다. 동네가 온통 낮선 동네가 되어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세월이 60년이나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 육거리 근처를 오랜 시간 거닐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있을 날이 그 얼마일까. 부귀는 내 바라는 바 아니고, 신선은 기약할 수 없는 일. 어찌 마음을 가고 옴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황황히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다만 좋은 날 홀로 거닐고, 가끔 지팡이 세워놓고 밭이나 갈리라.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남강 대밭 거닐며 시를 읊으리라
망경산 한보 아파트 들어가니, 항아리에 담긴 孔府家酒가 반긴다. 술단지 끌어당겨 自酌한 후, 남강과 신안동 들판 바라보며 기쁜 얼굴 지어본다. 북쪽 창가에 척 기대어 거만을 떨어보니, 무릅을 탁 펴고 사는 초야의 편안함을 이제야 알겠구나. 봄이 오니 전원의 날들은 나날이 아취가 무르익어 간다. 주소지를 옮겨 놓았으나 찾아오는 사람 없어 문은 항상 닫혀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망경산 오르다가 발길 멎는대로 쉬고, 때때로 머리 들어 먼 천왕봉 토끼귀 두 봉오리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나오고, 새들은 권태롭게 날아 집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서산에 해지려할 때 외로운 소나무 찾아가 어루만지며 서성이노라.
돌아가리라! 사귐도 그만두고 어울림도 끊으리라. 세상도 나도 서로 어긋나가만 하니, 이제 다시 무엇을 구하러 다니겠는가. 고향 친구들과 잔 비우고, 호국사 새벽예불이나 하면서 시름을 달래보련다. 옆집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장차 텃밭에 할 일이 있겠구나. 간혹 택시 불러 진양호에 가서 외로운 배를 저어보기도 하고, 지리산 깊은 골짜기도 찾아가보리라. 나무들은 즐거운듯 생기있게 자라나고, 샘물은 꼬불꼬불 연연히 흘러내린다. 만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 하면서 나의 인생 끝나감을 느끼노라. 끝이로구나. 이 몸이 세상에 남아있을 날이 그 얼마인데, 어찌 마음을 가고 옴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황황히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부귀는 내 바라는 바 아니고, 신선은 기약할 수 없는 일. 다만 좋은 날 홀로 거닐고, 가끔 지팡이 세워놓고 밭이나 갈리라.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남강 대밭 거닐며 시를 읊으리라. 오로지 조화의 수레를 타고 돌아가는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더 무엇을 의심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