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사이 서걱거리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환절기만 되면 간질대는 봄바람에 마음속 빈의자가 생긴 탓이다.
앉을 이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오랫만에 다시 나선 산은 조금 변해 있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도....
누구는 중학생이나 혹은 군인같은 짧은 머리칼로 시간을 털어버린 듯 보였고, 누구는 지난 겨울보다 훨씬 날씬해진 몸매로 건강해 보였으며,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 밝아져 있었고, 친구는 배가 나온다며 우리에게 걱정을 들었다.
그리고 내게 익숙한 그녀는 며칠전처럼 한결 같았다.
나만 보면 늘 눈가 가득 잡히는 미소까지도...
나도 조금은 변했을까?
아아... 아마 변했을테지... 시간의 강을 건넜으니까... 설레고 아프고, 미안한 그런 시간의 강을...
그리고 길게 드리웠던 2년을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으니까.. 어쩐지 묵직하던 머리다발이 좀 가벼워지니 상념조차도 좀 가벼워진 듯도 하다.
오랫만에 만난 산은 헉헉대는 내게 면박을 준다.
이봐...이봐... 여기는 월출산이 아니라구^^
꽤 한참인 산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두세시간이 흘렀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익숙해 질 수는 없지.
해찰떨었던 만큼 댓가를 지불해야 하지. 오늘의 산처럼....
이미 녹음이 짙어진 남도와는 다르게 아직 오봉산의 다섯봉우리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Baby Green이다. 아쉬운대로 노란제비꽃도 군데군데 피었구나.
어느분의 진혼비가 서 있는 소나무아래로 성큼 바람이 지나간다. 그분의 영혼이 아직도 이곳을 헤매이고 있나... 그래도 좋아하는 장소에서 돌아 가셨으면 나름 다행인가... 아! 가족들은 너무나 비통할 터인데 이 무슨소리...
암릉이 많은 오봉산은 산세는 크지 않아도 만만하지가 않다.
기어 내려가고 타 올라가고, 신장이 열세^^인 나로서는 온몸의 근육이 으악으악 소리를 지른다. 그래 질러라 질러... 이 기회에 키나 커보세...ㅎㅎ
정상을 뒤로 하고 내려서는 길은 재밌기도 하지만 어렵다.
처음부터 장갑을 안끼고 움직였더니 매번 딛고 내려설 때마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벌써 손바닥이 붉어졌네.
또 월출산에서처럼 도움을 받는다.
그랬지.. 이래서 내가 산을 좋아하기 시작했었지... 힘들때 도와주는 마음때문에... 잊지말자.
청평사에 내려서 우선 산에서 절집으로 흐르는 청정수에 먼지묻은 손을 정성껏 닦는다. 참 까맣고 작구나.. 이궁
대웅전이 아닌 극락전에서 두손을 모아 먼저 떠난 이의 편안한 잠을 조심스레 빌어 본다.
'영면하소서'
구성폭포로 내려서니 어제 비로 물길이 시원하다.
'공주님과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적힌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 본다.
뱀이 미물인줄도 모르고 인간인 당나라 공주를 너무 깊이 사랑하였단다.
이곳까지 뱀을 떠나게 할 방도를 찾던 공주가 찾아왔고 청평사 절의 회전문을 지나자 낙뢰가 떨어져 뱀이 숨을 거두었다고....
그러게.. 너무 깊이 사랑하지 말지 그랬니... 다음에는 인간으로 환생하렴.
아니다...아니다... 다시 태어나지 말렴...생은 한번으로 족한거지...
소양호로 내려서니 하늘이 가을처럼 청명하다.
손을 할 수 있는 한 하늘로 뻗어서 지금의 순간에게 안녕을 고한다.
.... Say Goodbye...
문득 안녕을 하는 내 손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뛰쳐 들어왔다.
그의 선글라스위에도 순간 파란 하늘이 묻어나 버렸다.
그는 알았을까? 제 눈에 하늘이 불쑥 들어 선 것을...
배를 타고 복작거리는 이편의 삶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한다.
시원한 분수위로 펄덕거리는 연어조형물이 뛰어 오른다.
그래... 바람이 분다. 모험을 떠나는 소년처럼 용감히 살아야겠다.
삶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순환하는 것... 지금 사라진 마음이라고 영원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냐.
다시 돌아오고 다시 떠나고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에 달린 일일테니..
뼈아픈 후회
時.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더 많은 글과 사진은...
블로그 <물꼬기's on the road> http://blog.naver.com/eonmi_blue
첫댓글 물꼬기 자리님 잘 계시죠?? 저도 잘 다녀왔슴다..사진들은 생기 발랄하고 맘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데 황지우님에 시는 너무 슬퍼요..엄청난 시련과 고통 그리움에 사무친 사람처럼... 물고기 자리님은 즐겁고 행복한 일만 까뜩하시길...^^
주말에 용봉산 안오시렵니까? 같은 충청도인데 이럴때나 좀 뵈야죠. 안부도 궁금하고 잘다녀오신 랑탕얘기도 좀 해주세요. 돌아오셔서 매우 기쁘옵니당^^
ㅠ ㅠ 이번주는 일이 있어서... 뵙고 싶은맘 넘많은데 이번모임엔... 대신 담모임엔 제가 술한잔 따라올리겠습니다..^^
"그러게.. 너무 깊이 사랑하지 말지 그랬니... " 가슴 메여지게 만드는 말이네요.
물고기자리님!!!
정말 좋은 글 많이 보여주셔서 고마버요~~~
물고기자리님 후기 찾아찾아 보게되네요..
감사해요. 이번 홍성에서도 뵈면 참 좋은데.. 아쉬워요.
오늘도 변함없이 물고기자리님의 사진과 글에 빠져...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답니다. 항상 감사해요~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봄과 초여름의 계곡에서 바위에 낀 이끼의 푸르름과 더불어 힘차게 흐르는 하얀
물줄기는 제가 참 좋아하는 풍경이랍니다. *^^*
저도 계곡이 좋아 발담그고 세월 낚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누가알꼬 했더니 ㅎㅎ 제가 가장 싫어하는길이 바윗길입니다 기럭지가 딸려서 무릎팍이 나가고 닿을락말락 힘들어서요 물고기님 저보다 커시던걸요 ^^ 경기 어느곳에 모여서 알록달록텐트치고 수다떨고싶어요 ~
저랑 후우린노오또님과의 키는 도토리키재기라고나 할까^^ 어여 한번 올라오세요.
잔잔한 수필같은 후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화사한 봄날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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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죠. 드물게 뱃놀이도 가능한 전천후 산이랄까요^^
춘천 이곳 떠난지 어언 15년..소양댐 & 청평사.. 좋은 글과 사진속에 옛 생각 떠올리며 잠시 머물다 갑니다. ^^;;
춘천은 언제가도 참 다정하니 좋은 곳이더군요. 청평사는 몇번을 다시 가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