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취미
이 미 나
긴 추석 연휴여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남들은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건만 나는 오늘도 남편의 빈 자리에 공허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평소에는 주말 내내 낚시하고 연휴 때도 엄마, 아빠의 손이 많이 가는 9살 예원이, 6살 규원이를 나한테 맡겨두고 낚시에만 골몰하니 답답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지인들은 남편에게 한번 진지하면서도 다정하게 이런 나의 사정을 소상히 이야기해 보면 해결이 되지 않겠냐고 권유해 보지만 그것은 낚시광인 남편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도 무조건 자기 입장만을 고수하는 남편에게 나의 부탁은 그저 부질없는 소모전일 뿐이었다. 남편을 고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나만 지치고 상처받는 일임을 깨닫는 데 시간이 그리 길게 걸리지 않았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초 저녁까지 낚시를 가고 집에 오면 지쳐서 누워 있곤 하였다. 나와는 물론 아이들과도 그 긴 시간 동안 별다른 소통 없이 지내야 하니 아쉬움이 큰 나날들이다. 백번 양보하여 다른 날들은 그렇다 쳐도 어린 자녀를 가진 엄마의 마음에 일 년에 2~3번이라도 어린이 놀이공원 같은 곳이라도 같이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큰마음을 먹고 같이 방학 때나 주말에 어린이 놀이공원에 같이 가 줄 것을 요청해 보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답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두 아이가 움직임이 각자 달라서 보호자가 두 명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시어머니께 부탁하여 놀이공원이나 유원지에 가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그나마 시어머니께서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하시며 바람 쐬러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편이셔서 다행이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나와 시어머니, 예원이, 규원이 이렇게 넷이 함께 멀리 기차를 타고 놀러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모처럼 놀러 가서 찍은 놀이동산에 아빠 없는 사진을 보게 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노는 것도 한 때인데 이 소중한 시간을 놓쳐 버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했다. 생각 같아선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던 것인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남편을 만나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서른다섯 살의 노처녀였던 나는 같은 문학반 지인분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분명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망설임 없이 만나게 되었고 선 자리에서도 자신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등산이라며 스스럼없이 대답하였다. 나중에 결혼해서도 함께 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꿈은 화가라니 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씔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나와 남편은 결혼을 결정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순진했던 나는 이제 결혼하여 펼쳐질 장밋빛 인생을 그리며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여 보니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주말이면 공모전을 염두에 두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할 줄 알았던 남편은 이른 아침부터 초 저녁까지 낚시하기 일쑤였고 같이 등산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시댁은 농사를 많이 짓는 집이어서 농사일까지 남편이 도맡아 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첫째 아이가 태어나도 이런 상황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혼자서 육아를 하며 어느 곳에도 나가지 못하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더운 여름이면 하루에 1, 2번씩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3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지만, 나의 일상은 여전하였다. 남들처럼 두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가까운 유원지를 누비며 바람 쐬는 호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고 나니 문득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첫째 예원이 나이가 7살, 둘째 규원이가 4살이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아이들이 갈만한 곳을 검색하여 2달에 한 번씩은 같이 기차 타고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할 때는 동네의 키즈카페라도 데리고 다니며 추억 만들어 주기에 힘썼다. 그리고 놀이동산처럼 사람들이 붐비고 아이들 한 명씩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경우는 시어머니에게 부탁하여 놀러 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많이 지친 듯하다. 시니어 강사로서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피아노 반주도 해야 하고 육아에 살림하면서 주말이면 버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임을 불 보듯 뻔한 일 테고, 자꾸만 한숨만 나왔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남편은 낚시터에 앉아있을 것이다. 나는 카톡으로 ‘당신! 당신도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이처럼 가정에 소홀하고 살아가야 하겠어? 많은 것 바라지 않으니 낚시하는 시간 조금이라도 줄이고 아이들 가고 싶어 하는 서울랜드 같이 가줘 나도 정말 힘들고 버겁다.’ 하고 내 심경을 담담히 적어 보냈다. 아직 남편은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다. 언제쯤 내 카톡을 읽고 어떤 답을 할지 마음이 착잡하다.
차선책으로 남편에 대한 나의 바람을 비우는 것이 최선책일지 모르겠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남편이라도 ‘그래도,’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태도가 변하게 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였다. 이렇게 혼자서 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내 상황을 굽어살펴 주실 것을 기도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지금 쯤 남편에게서 답이 왔을까?....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