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보다 무서운 생각의 동맥경화(겔36:24-27)
-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④ -
2024.6.16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동맥경화라는 것이 있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동맥경화증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동맥경화란 동맥이 경화되어서 탄력을 잃어버리고 뻣뻣해 지는 것을 말한다. 동맥경화의 원인은 마치 오래된 수도관이 녹슬면 이물질이 쌓여서 지름이 좁아지는 것처럼, 혈관의 가장 안쪽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면서 경화현상이 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혈관만 딱딱해진 경우도 있다. 동맥경화가 지속되면 팽팽해진 풍선이 갑자기 터지듯이, 어느 순간 혈관이 터져서 대량의 출혈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때는 98%가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동맥경화보다 무서운 것이 또 하나의 경화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경화 즉 생각의 동백경화이다. 생각경화란 생각이 굳어져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들이 종종 “그 사람은 생각이 꽉 막혔어”, “말이 안 통해”라는 등의 표현을 하는데, 이런 말들이 바로 생각의 혈관이 막힌 것을 뜻한다.
생각경화에 걸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줄 아는가? 화를 잘 내는 것과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유연하지 않고, 경직되다 보니까 누가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하면 자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여기고 화부터 낸다. 그래서 절대 양보를 안 한다. 반대로 생각이 유연한 사람에게는 늘 배우려는 태도와 양보하려는 특징이 나타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생각의 동맥경화에 걸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심각한 생각의 동맥경화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자기주장의 동맥경화, 그릇된 종교 신념의 동맥경화, 극좌 극우의 정치경화, 재물의 동맥경화 등……. 그래서 말이 안 통한다. 서로 들으려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경화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지금 터지기 직전의 동맥 상태와도 같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의 동맥경화로 인해서 결국 혈관이 터져서 파멸을 초래했던 사례들이 나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던 사건이다. 멸망하지 직전의 유다는 왕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각의 혈관은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의 혈전으로 꽉 막혀있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눈물로 돌이킬 것을 촉구했어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고 핍박했다. 이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경화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돌처럼 굳어진 이들의 생각을 뚫기 위해서, 예루살렘 멸망과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이라는 극약처방을 하셨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동시에 그들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처방이기도 했다. 70년의 포로생활은 영혼의 혈관을 뚫어내는 최소한의 입원기간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들의 고난기간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처럼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4-27)
그러면 우리(나)의 마음과 생각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영적인 콜레스테롤 같은 불순물들을 어떻게 제거하고, 뚫어낼 수 있을까? 오늘 본문 26절 말씀을 다시 보라. 이 말씀에 보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했다. 27절에서는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라고 했다. 여기서 말씀한 “새 영”, “내 영”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님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들이 성령충만을 받아야할 중요한 이유 한 가지를 또 깨닫게 된다. 그것은 생각의 동맥경화를 뚫어내고 부드럽게 하며, 그로인해 변하여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다.
이 말씀 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때 성령님이 딱딱한 우리 마음의 혈관을 뚫어 부드럽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도구가 바로 찬송과 기도와 복음의 말씀이다.
이 시간에는 이 중에서도 특히 찬송을 강조하고 싶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라도 찬송을 계속적으로 불러야 한다. 찬송을 부르면 찬송으로 인해서 돌 같은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한다. 그 대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터치하신다. 성령님이 터치하는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정감이 온다. 이것은 마치 우리 육신의 혈관이 뚫리고 피가 통하면 온 몸이 편해지는 원리와도 같다. 왜냐하면 찬송이라는 것은 일반 노래와는 달리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이기 때문에, 찬송에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시22:3).
특히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 보혈찬송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찬송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의 생각의 혈관을 막고 있는 각종 염려와 우울감을 비롯한 온갖 영적인 불순물들을 뚫어낸다. 그렇게 되면 답답했던 마음이 편해지고, 두려움으로 막혔던 생각의 혈관이 부드러워진다. 은혜 받은 사람의 눈빛과 말과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행동이 친절해 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생각의 혈관을 한번만 뚫고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찬송과 기도와 복음의 말씀으로 관리해야 한다. 텃밭(땅)에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하루 사이에도 잡초들이 쑥쑥 올라온다. 이것을 정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시골에 전원주택이나 별장을 짓고 사는 것을 로망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얼마가지 않아서 두 손을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유사하다. 사람의 마음에는 죄성(罪性)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관리하는 일을 중단하거나 방심하면 금방 마음과 생각이 경화되고, 불순물들이 쌓인다. 그래서 매일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찬송가540장).
이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생각의 동맥경화를 극복했던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조덕삼 장로님이 있다. 조덕삼 장로님은 20세기 초에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용화마을에 사셨던 분이고, 금산교회의 장로님이셨다. 김제 금산교회는 1904년에 용화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였던 조덕삼 장로님이 테이트선교사(1862-1929)에게 자기 집 사랑채를 교회 건물로 내주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ㄱ’자 모양으로 건축한 교회건물을 지금도 있는데, 현재는 “전북 문화재 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어느 날 믿음의 사람인 조덕삼의 집에 이자익이라는 청년이 마부로 일하게 되었다. 이자익은 경남 남해출신으로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떠돌다가 용화마을까지 흘러왔다. 조덕삼은 자신은 양반이었고, 주인이었지만, 마음을 열고 이자익에게 자기 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그를 전도하고 신앙생활을 하게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금산교회에서는 장로장립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은 나란히 후보로 올랐다. 그런데 결과는 머슴인 이자익이 당선되고, 조덕삼은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도 조덕삼은 이자익을 조금도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겸손히 깍듯하게 섬겼다. 그리고 이자익이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하고 지원해 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침내 조덕삼과 이자익에게 모두에게 큰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셨다. 조덕삼은 그로부터 3년 후에 장로가 되었고, 목사안수를 받은 이자익을 금산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그 후에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 교단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 이뿐 아니라 조덕삼 장로는 자비를 들여 유광학교를 설립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청소년 교육에도 앞장섰다. 조덕삼 장로의 아들인 조영호 장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광학교 교장이 되어 독립운동을 했고, 손자는 정치인이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국회의원 고(故) 조세형 장로이다.
그런데 조덕삼 장로님의 이러한 행동들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 당시에 조덕삼 장로님의 생각의 혈관이 막히지 않고, 유연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 밭을 기경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임종을 코앞에 두고도 평소 자신이 즐겨 부르던 찬송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 찬송이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찬송가221장)이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의 모습이며, 오늘 우리들이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지금 여러분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생각의 동맥경화를 가져다주는 마음의 잡초들(죄, ,못된 습관, 염려근심꺼리들, 우율의 잡초들 등)이 무엇인가? 이 시간 하나도 남김없이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자.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자. 그래서 변하여 새사람 되어서, 주님의 평안을 늘 누리며 살아가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