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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제사 마음가짐과 경(敬) 공부 및 張九成 戒愼恐懼의 致察(求中, 主敬) 공부 평론
2026년 9월 20일
한가위 다가옵니다. 한가위에는 조상님 제사를 올립니다. 성리학에는 제사를 올리는 광경과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성리학자는 제사 지내기에 앞서 적어도 8일 동안 몸과 마음을 제계(齊戒)하는데 내 정신과 조상님의 정신이 서로 교감(交感, 感應, 降神)하기를 기다리는 마음가짐입니다.
요즘에는 과학교(科學敎)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귀신이 없다고 여기고 성리학의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도 음식을 간소하게 차려놓고 향을 사르고 술 몇 잔을 올리고 엎드려 절한 뒤에 젓가락을 울리고 맙니다. 그런데 중요한 마음가짐은 경건한 추모입니다.
과학교를 믿더라도 기념하거나 추모(追慕, 記念, remembrance)하라고 말하면 묵념합니다. 추모와 묵념 모두 같은 뜻인데 내 마음속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지나간 영상과 그림을 잠시 떠올리는 동안에 고마움 또는 고통을 느끼고 내 마음에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편안하길 바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기념하거나 추모하거나 묵념하거나 모두 기억을 갱신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갱신하면 나의 실제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성리학에서는 제사도 귀신이 존재하니까 조상신의 강림을 믿고 잘 모시라는 것도 있으나 중요한 뜻은 추모하려는 것입니다.
목차
1、성리학의 제사 마음가짐과 경(敬) 공부
2、장구성 계신공구의 지각(知覺)과 치찰(求中, 主敬) 공부 평론
3、장구성 『중용설』 제23조목(권2) 번역
4、仁이 覺이다 자료
5、四庫全書,『중용설』 「提要」
6、張九成 「聞桂香」과 柳三變 「露花倒影」
7、『中庸說』 三卷(張九成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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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리학의 제사 마음가짐과 경(敬) 공부
추모하는 마음가짐은 『논어』 「팔일」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공자는 “조상님 제사를 올릴 때는 귀신이 어디엔가 계신다고 상상하고 또 어떤 귀신께 제사를 올릴 때도 귀신이 곁에 계신다고 상상하여야 합니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남에게 맡기면 제사를 안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祭如在,祭神如神在;吾不與祭,如不祭。)”고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제사를 직접 지내라는 말뜻이 성리학에서 문제가 되어 정명도와 사량좌 및 장구성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제사를 직접 지내라는 말뜻은 당나라 말기와 오대 시기에 불교가 쇠퇴하여 종교적 역할이 크게 줄었기에 양송(兩宋) 시기에 성리학 형성과정에서 다시 떠올랐고 정착되었습니다.
아래 제23조목은 장구성을 비롯하여 양송 시기 성리학자들이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계신공구(戒愼恐懼)의 경(敬)을 이해하였는지 또 경(敬) 상태에서 중(中)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또 경(敬)에서 어떻게 『중용(中庸)』의 중용을 설명하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장구성(1092-1159)이 설명한 계신공구의 경(敬) 공부는 정명도(1032-1085)부터 사랑좌(1050-1103)와 증염(曾恬, 1159년 『上蔡語錄』 편집)으로 이어지는 맥락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정(二程)과 주희 성리학에서 말하는 주경(主敬) 공부의 계신공구(戒愼恐懼) 또는 신독(愼獨)은 제사 지내는 경건함(religious piety, 宗敎虔誠)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량좌는 정명도가 제사 올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명도는 제사 지내기 전에 3일 동안 몸을 가지런히 하고 5일 동안 자신의 정신을 모으고 허공을 바라보고 만물을 두리번거리며 조상님 귀신을 찾습니다. 8일 동안 제계(齊戒)하고 귀신을 찾는 까닭은 자신의 정신과 조상님 귀신의 정신이 교감하기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정명도가 제사 지내는 광경은 교감도 교감이지만 사실상 조상신이 내 마음에 강신(降神)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계하는 동안에 마음가짐은 『중용』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는 계신공구(戒愼不睹, 恐懼不聞)”입니다.
사량좌는 문인 증염(曾恬)에게 귀신이 허공에 가득하여 눈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귀신이며 천지 사이에서 신묘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량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신이 자신의 정신이라고(祖考精神便是自家精神)” 선언하였습니다. 사량좌가 계신공구(戒愼恐懼)하는 동안에 조상신과 천지 신지(天地神祗) 및 만물에 귀신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을 보면 범신주의(pantheism) 성격도 있습니다.
사량좌의 선언은 나의 정신이 조상님 정신과 교감한다는 뜻입니다. 내 정신과 조상님 귀신의 정신이 교감하길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계신공구입니다. 다시 말해 계신공구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생각(私意)이 싹트지 않는 효과가 있기에 불교의 선정(禪定)에 견주어 설명하였습니다. 사량좌의 이 선언은 뒷날 성리학자들이 제사를 올릴 때마다 갖는 마음가짐이며 『중용』 “계신공구(戒愼恐懼)” 경(敬) 공부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謝良佐,『上蔡語錄』,第26條:
(曾恬)曰:先生祭享鬼神則甚?只(謝子曰:)是他意思别,三日齋五日戒,求諸陰陽四方上下,蓋是要集自家精神。……謝子曰:不是鶻突。自家要有便有,自家要無便無始得。鬼神在虛空中辟塞滿,觸目皆是,爲他是天地間妙用。祖考精神便是自家精神。
불교의 주정(主靜) 공부는 선바라밀(禪波羅蜜)이고 도교의 주정 공부는 소승의 내관(內觀) 방법이기에 성리학의 주경 공부와는 내원(來源)이 다르고 상상하는 광경도 다릅니다. 그래서 정주학은 불교의 주정 공부의 정좌(靜坐)와 낙공(落空)을 미워하였습니다. 장구성의 어록 제23조목은 경건함의 경(敬)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2、장구성 계신공구의 지각(知覺)과 치찰(求中, 主敬) 공부 평론
장구성(張九成, 1092-1159)은 젊을 때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고 나중에 양시(楊時, 1053-1135)를 스승으로 모시고 이정(二程) 학술을 배웠습니다. 남송 시기에 양시는 정명도를 이어받아 왕안석과 신법당 정책을 극렬하게 비판하고 또 정이천을 이어받아 신법당 인사들에게 심하게 욕하고 미워하였습니다.
당쟁 때문이었는지 아무튼지 장구성은 아주 늦은 나이 40살(1132, 양시 죽기 3년 전)에 진사 시험에서 일등으로 합격하였습니다. 관년(官年) 20살에 합격하여도 고급 관원이 되려면 연자(年資)가 부족한데 40살에 수석 합격한들 관직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양시마저 세상을 떠났기에 돌봐줄 패트론(座主)도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주전론을 주창한 장구성은 당시 실권자 강화론자 진회(秦檜, 1091-1155)와 부딪혀서 14년 동안 지방관에 머물며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장구성은 남송 시기에 불교에 출입한 학자라고 널리 알려졌습니다. 주희가 사량좌와 장구성 둘을 몹시 미워하였습니다. 물론 양시도 불교에 출입하여 종고(宗杲) 스님과 사귀었습니다. 장구성이 불교에 출입하였으나 불교에서 깊은 지식을 배운 것 같지 않고 문장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문장 속에는 불교의 뜻이 많이 담겼습니다. 치찰(坐中致察) 공부는 참선에 가깝습니다.
장구성은 사색이 치밀하지 않고 크고 길게 구성하지도 않습니다. 평평범범하게 쉬운 말로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누구는 글솜씨가 좋고 누구는 말솜씨가 좋다는데 장구성은 말솜씨가 좋고 말발이 세었습니다. 그래서 유가 경전을 강연한 설(說)이 많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학교생활과 과외 가르치기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말솜씨 좋은 사람의 강연을 들어보면 처음 한두 번은 감동 받지만 자주 들어보면 같은 주제가 뻔하여 지루하고 요지도 간단합니다. 장구성이 그렇습니다.
장구성의 학술적 공헌은 양송 교체 시기에 아주 컸다고 평가합니다. 양송 교체 기간에 왕안석과 소동파 두 학술이 전국적으로 성행하였고 불교와 도교에 기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장구성은 이정이 설정한 계신공구(戒愼恐懼)의 경(敬)이 성리학의 핵심이라고 널리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정명도와 정이천 또는 사량좌가 계신공구와 경(敬) 공부에 관하여 생각하고 상상하고 설명하였더라도 장구성이 뜻을 쉽게 자주 설명하고 널리 전파하였기에 양송 교체 시기에도 성리학이 자리를 잃지 않고 학술적 독립을 지켰습니다. 주희가 장구성을 아무리 낮게 평가하고 멀리하였더라도 장구성의 학술 공헌은 컸습니다.
장구성의 『중용설』이 19권이었으나 현재 3권이 남았습니다. 3권을 가만히 읽어보면 같은 취지를 여기저기 물을 타거나 물에 불려서 말하기에 쓸데없는 소리(廢話)도 있고 지루하고 귀찮을(囉嗦) 정도입니다. 장구성의 『횡포집(橫浦集)』 20권도 그렇고 『심전(心傳)』과 『일신(日新)』 모두 조금 지루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좋습니다. 장구성의 설(說)은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걱정하고 당부하는 듯합니다.(黃檗希運禪師 : 老婆心切, 苦口婆心) 아들도 듣다 보면 가끔 졸면서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를 깊이 느끼고 안타까움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양송(兩宋) 시기에는 출판업이 발달하여 많은 서적이 나오면서 강연과 출판이 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송대 문헌을 읽다보면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건이나 어떤 주제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 아주 자세하게 찾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장구성 성리학의 요지는 첫째 인(仁)이 각(覺)이고 소위 허령(虛靈)의 지각(知覺)을 말합니다. 둘째 치찰(致察)입니다. 계신공구(戒愼恐懼)하는 미발지중(未發之中) 상태에서 마음속에서 가만히 나타나는 염두(念頭, image or scene)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치찰(致察 : 관찰을 넣다, 관찰을 시작하다)입니다. 장구성은 설(說)의 곳곳에서 치찰을 말하고 다른 개념들과 연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장구성이 말하길 대체로 계신공구(戒愼恐懼) 상태에서 『중용』의 “중(中)”을 수양하는 것이 치찰이며 신독(愼獨)도 같습니다. 다시 말해 계신공구 상태에서 미망(微茫)한 염두의 싹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군자는 계신공구 상태에서 항상 치찰하여야 합니다.(常致其察) 그런데 치찰하여 미세한 염두를 지각(知覺)하더라도 아직 천명의 본성을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안연(顏淵)처럼 천명의 본성을 깨달을 때까지 치찰을 잘하여야만 치찰 공부가 시작됩니다. 공자 50살 지천명(知天命)도 사실상 천명의 본성을 깨달은 단계라고 말하였습니다. 치찰 공부는 『중용』의 중화(中和)를 실현할 수 있는 수양공부입니다. 다시 말해 본성을 깨달을 때까지 치찰하고 깨달은 뒤에도 치찰하여야 합니다. 치찰은 본성을 깨닫기 이전과 이후를 통관하는 일관된 수양공부입니다.
장구성은 치찰공부를 주장하면서도 초학자의 치찰 공부와 안연처럼 본성을 깨달은 뒤의 치찰 공부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양송(兩宋) 시기에 어떤 성리학자가 자신의 수양 공부가 안연의 단계를 넘었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은 양송 시기 성리학자 모두 천명의 본성을 깨달으려고 수행하는 자량위(資糧位)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계신공구 상태에서 굵고 큰 염두가 떠오르면 지각하는 동찰(動察)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7조목 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其中。
제22조목 其所以如此者,以其平時不知愼獨之學,不留意於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中庸之道,而察忠恕一貫之理耳。
제10조목 顔子戒愼恐懼,超然悟未發已發之機,或於喜處,或於怒處,至於哀處樂處,一得天命之性,所謂善者,則深入其中。
제32조목 戒愼不睹,恐懼不聞,於不睹不聞處,深致其察,所以知天也。
제16조 夫君子之道,所以大莫能載,小莫能破,以其戒愼不睹,恐懼不聞,察於微茫之功也。戒愼恐懼,則於未形之先,未萌之始,已致其察矣。察之之至,至於鳶飛魚躍,而察乃在焉。
제20조목 戒愼恐懼,則常致其察。
제28조목 繼志述事者無他,第於戒愼不睹,恐懼不聞處,致其察,以養中和之理,然後深見文王之所爲,一一皆天理中發見者,随時損益而不忘其中和之大。
장구성의 치찰 공부는 여대림이 주장하였던 구중(求中) 공부이며 성리학자들이 말하는 주경(主敬) 공부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치찰 공부(구중 공부)는 불교에서 정좌하여 각조(覺照)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장구성 문집과 기록에는 치찰 공부에서 파생된 개념과 연결된 견해가 아주 많습니다.
장구성이 계신공구 상태에서 치찰하여 지각하라는 수양공부는 사실상 『대승기신론』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전념이 모르는 사이에 번뇌 기억에서 일어나고 후념이 전념을 알아차리고 후념의 뒤를 잇는 후념이 전념과 같이 연속되지 않도록 눌러서 일어나지 않도록 억압하는 것이 각(覺)입니다. 그런데 범인(凡人)의 지각은 불각(不覺)한 것과 같고 위로 올라가서 상사각(相似覺)과 수분각(隨分覺)을 거쳐서 보살 지위에 올라야만 각(覺)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미세한 분별까지 없애고 본성에 상주(常住)하여 항상 나타나는(現前)하는 것이 부처의 구경각(究竟覺)입니다.
『大乘起信論』,卷上︰
如凡夫人,前念不覺起於煩惱,後念制伏令不更生;此雖名覺,即是不覺。如二乘人及初業菩薩,覺有念、無念體相別異;以捨粗分別故,名相似覺。如法身菩薩,覺念、無念皆無有相;捨中品分別故,名隨分覺。若超過菩薩地,究竟道滿足,一念相應覺心初起,始名為覺;遠離覺相微細分別究竟永盡,心根本性常住現前,是為如來,名究竟覺。
『대승기신론』에서 “근본무명(貪瞋痴)이 청정심(心體)을 흔들거나 가만 놔두기에 심체를 흔드는 단계에서는 깨닫지 못한 불각의 모습(不覺相)이며 여기에서는 심왕(心王)과 심수법(心數法)조차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此顯根本無明動靜心體,即此動心是不覺相,更無王數之別。) 장구성의 지각과 치찰 공부는 사실상 불교에서 말하는 불각상(不覺相)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구성의 지각(知覺)이 아직 심왕과 심수를 구별하지 못하기에 심왕과 심수가 뒤섞이고 굵고 큰 염두(念頭)부터 관찰하고 점점 미망한 염두까지 관찰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이정(二程)과 주희에 머물지 말고 양송(兩宋) 시기 많은 학자와 정치가의 견해를 연구하고 양송 사회를 이해하여야 조선 시기 성리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또 연구자는 성리학을 믿는 종교인도 아니므로 정주(程朱) 성리학 울타리를 지키지 말고 유불도 삼교의 조화론 관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조선 후기 수구파의 위정척사도 아니므로 성리학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개방적인 태도에서 연구하여야 합니다.
3、장구성 『중용설』 제23조목(권2) 번역
아래 장구성 『중용설』 3권을 정리하고 조목마다 번호를 붙여 36개 조목입니다.
귀신이 밝은 낮에는 중용이 되고 중용이 어두운 밤에는 귀신이 되니 귀신과 중용은 똑같은 하나입니다. 밝다는 뜻은 일상생활의 예악이 있다는 것이고 어둡다는 뜻은 모두 잠들고 귀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용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을 조심(戒愼)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는데(恐懼) 조심하고 무서워하는 동안에는 마음속에서 희노애락 감정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일어난 것이 무엇인지는 자신과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것이 귀신의 능력입니다. 귀신의 능력은 사람에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마치 천지 만물이 수없이 많은데 그 안에는 귀신이 빠짐없이 붙어있습니다.
귀신이 이렇게 전지전능하니까 사람은 저절로 천하의 모든 만물에 대하여 또 만물에 숨겨진 귀신에 대하여 경건함(敬)이 생깁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조심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는 마음을 갖고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3일 동안 일을 멈추어(肅) 몸을 반듯하게 하고 5일 동안 마음을 모아 경건하게(敬) 합니다. 제삿날에는 옷을 갖추어 입고 모습을 엄숙하게 하고 아!(洋洋乎!) 귀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곁에 계신다고 상상합니다. 이 동안에 어찌 개인적인 의식활동(私意, 희노애락 포함)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동안에 중용의 기미(中庸之幾, 已發未發之幾, 已發未發之際)를 정말로 수양합니다.(求中) 『중용』에서 『시경』 「억(抑)」 “귀신께서 내려오셨네,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으나 귀신을 싫어하거나 태만할 수 있으리오?”라는 말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습니다. 알려고 드는 것(度)과 싫어하거나 태만한 것(射)은 개인적인 의식활동(私意, 제6식의 思量)입니다. 조심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어떻게 귀신께 제사를 올리겠습니까?
귀신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나 사람들이 섬짓하여 옳지 못한 생각(非心)도 개인적인 의식활동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귀신이 분명하게 곁에 계신다고 상상하면 중용의 도리가 귀신이 있는 어두움(幽者) 속에서 일어나는(發) 것은 어쩔 수 없이 필연입니다. 아! 그래서 『중용』에서 「시(抑)」를 인용하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어두운(幽) 알 수 없는 상황(微)에서 중용의 도리가 겉으로 드러나는데 정말로 없는 일이라고 덮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제사를 올리는 경건함(敬)에서 중용의 도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군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상황(獨)에서도 조심하고 무서워하지 않는 마음가짐(愼, 戒愼恐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23조목︰
(說︰)鬼神在明則爲中庸,中庸在幽則爲鬼神,其實一也。明則有禮樂,幽則有鬼神是也。夫中庸之要處,在戒愼不睹、恐懼不聞,而喜怒哀樂森列於中,不可欺者,此鬼神之德也。是以鬼神之德,雖曰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然天地萬物森然,鬼神列於中,不可遺也。
惟鬼神之德如此,故足以發天下之敬,使皆戒愼不睹、恐懼不聞,而齊戒以肅其身,明潔以敬其心,盛服以嚴其貌,洋洋乎如在其上,在其左右,豈敢有一毫私意哉?此正養中庸之幾也。故引“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爲證。夫有度、有射,皆私意耳,非戒愼、恐懼,其可以享鬼神乎?
夫鬼神弗見聞,而使人聳然不敢起非心邪意;儼然如在者,則以中庸之道發於幽者不得不爾。嗚呼!“微之顯,誠之不可掩”,其狀乃如此。君子之於愼獨,其可忽乎?
4、仁이 覺이다 자료
『橫浦心傳錄』,卷上(又見於『宋元學案』,卷四十,「橫浦學案」)︰
①或問:孔子言仁,未始有定名,如言仁之本、仁之方,以剛毅木訥爲近,以克伐怨欲不行爲難,樊遲之問則異于子貢,司馬牛之問則異于子張,顏淵之問則異于仲弓,文子止得爲淸,子文止得爲忠,管仲止得爲如,往往皆無一定之說。而先生論仁,每斷然名之以覺,不知何所見?先生曰:墨子不覺,遂于愛上執著。便不仁。今醫家以四體不覺痛癢爲不仁,則覺痛癢處爲仁矣。自此推之,則孔子皆于人不覺處提撕之,逮其已覺,又自指名不得。或曰:如此,則義亦可說。先生曰:若能于義上識得仁,尤爲活法。
祖望(全祖望,1705-1755)謹案:以覺爲仁,謝上蔡之說也。其說亦本之佛氏。
②仁即是覺,覺即是心。因心生覺,因覺有仁。脫體是仁,無覺無心。有心生覺,已是區別。於區別中熟,則融化矣。
5、四庫全書,『中庸說』 「提要」
臣等謹案:『横浦集』二十卷,宋、張九成撰。九成字子韶,自號無垢居士。其先開封人,徙居錢塘。紹興二年(1132)進士第一,授鎮東軍簽判,歷宗正少𡖖兼侍講,權刑部侍郎。爲秦檜(1091-1155)所惡,論其謗訕朝政,謫居南安軍十四年。檜死,起知溫州,丐祠。卒,贈太師,封崇國公,謚文忠。事蹟具『宋史』本傳。
九成研精經學,於諸經皆有訓釋。少受業於楊時(1053-1135),以未發之中爲主。史稱其早與學佛者游,故議論多偏,然根祇精邃,實卓然不愧爲大儒。今所作經解,惟『孟子傳』僅存,已别著於錄。是集乃其門人郎曄所編,凡賦詩四卷,雜文十六卷。中如『書傳統論』、『春秋講義』、『孟子拾遺』,亦多其説經之作。
其廷試對策,極陳恢復大計,規切高宗安於和議之非,又直指時弊言,皆痛切。而於閹宦干政,尤諄諄致戒。楊時謂︰“非有剛大之氣不爲,得喪回屈者不能。”洵可稱忠言讜論。
陸游(1125-1210)『老學庵筆記』謂︰九成對策,有“桂子飄香”語,李易安(女,李淸照,1084-1155)作“露花倒影柳三變,桂子飄香張九成”之句以嘲之。今讀其策,其鋪陳繁縟處,乃正爲耽戀湖山、忘親忍辱者痛加提喚,其用意最爲深切,又豈可以是相譏?
至洪邁(1123-1202)『容齋隨筆』載洪皓(1088-1155)没後,道出南安,九成徃祭,其文但稱年月官爵而無辭,情旨倍覺哀愴,以爲前人未有此格。不知此特一時避禍不收措詞,非文字工拙所關。邁所言未免好奇之過也。
九成别有『心傳』、『日新』二録,原本亦附編集後,今以其已有單本别行,故並從删削,不更復出焉。
乾隆四十三年(1778)七月恭校上。
總纂官紀昀、陸錫熊、孫士毅,
總校官陸費墀。
6、張九成 「聞桂香」과 柳三變 「露花倒影」
「聞桂香」(張九成,紹興二年,1132年)︰
淸晨未盥櫛,桂香遞秋風。不知此花意,何爲惱衰翁。
舉頭復何有,燕雁書晴空。景物如此好,誰云吾道窮。
가을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도 하기 전에 밖에 나오니
노란 금목서 향기가 가을바람에 실려와 코에 닿네.
이렇게 진한 꼿 향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왜 늙은 나에게는 걱정이 밀려오는지.
고개를 들고 뭐가 있나 올려보니,
북쪽으로 기러기 떼가 날아가며 맑은 가을 하늘에 소식을 전하네.
가을 하늘의 경치가 이렇게 좋은데
내 길이 막힌다고 누가 말하는가?
감상 :
가을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금목서 진한 향기를 맡고 정신을 차립니다. 그런데 알지 못할 뭔가 걱정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니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광경을 보고
하늘이 저렿게 넓고 맑다는 생각에 조금 전 걱정을 멈춥니다.
여차하면 기러기 떼처럼 저 하늘로 날아가면 되겠지,
저렇게 좋은 가을 하늘도 있으니 다른 길도 있겠지,
내가 좌천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련다.
닥쳐올 큰 걱정거리 좌천을 하루아침 잠깐 사이에 털어버렸습니다.
「露花倒影」(柳三變,984-1053)︰
露花倒影,煙蕪蘸碧,靈沼波暖。
金柳搖風樹樹,系彩舫龍舟遙岸。
千步虹橋,參差雁齒,直趨水殿。
繞金堤、曼衍魚龍戲,簇嬌春羅綺,喧天絲管。
霽色榮光,望中似睹,蓬萊淸淺。
柳三變(984-1053),改名柳永。
李淸照(1084-1155)︰
露花倒影柳三變,桂子飄香張九成。
7、『中庸說』,三卷(南宋、張九成撰,1936年由日本京都東福寺發見)
목차
跋
1、卷一 (제1-14조)
2、卷二 (제15-24조)
3、卷三 (제25-36조)
「跋」︰
余祖文忠公正色立朝,敦尙氣節,爲有宋名臣。
著書垂教,卷帙宏富。其見於『宋、藝文志』者:『尙書詳說』五十卷、『中庸說』一卷、『大學說』一卷、『孝經解』四卷、『論語解』十卷,鄉『黨少儀』、『咸有一德論』、『孟子拾遺』共一卷、『心傳錄』十二卷,『語錄』十四卷。見於『郡齋讀書志』者:『孟子解』三十六卷,『唐鱠』五十卷。見於『直齋書錄解題』者:『論語拾遺』一卷,『言行編遺文』共一卷。見於『玉海』者:『重修神宗實錄』二百卷。見於家傳者:『經筵講義一卷,『橫浦家集』二十卷。』雜見他書者:『書傳統論』六卷,『春秋講義』一卷,『標注國語類編』及『唐詩該』無卷數。
其書名卷數微異者,不復舉。今四庫著錄,惟『孟子傳殘本』二十九卷,『橫浦集』二十卷。其『鄉黨少儀』、『咸有一德論』、『孟子拾遺』、『心傳錄』、『書傳統論』、『春秋講義』,卽附載『橫浦集』中,其他均不傳。
日本澀江全善經籍訪古志,有宋槧『中庸說』六卷,藏普門院。
余求之有年,不知其所在。歲戊辰東渡,故人内藤湖南語余,院在京都東福寺。旣睹其書,已佚後半,請於寺僧,攝影攜歸,才四十葉耳。
曩讀『朱文公集』,謂公“以佛語釋儒書,駁斥是書者殆及萬言”,其徵引原文均合,蓋此卽朱子所見之本。公之爲學,於喜怒哀樂未發之前,求其“内心”,有得勿止,更求其發而中節之用,其途徑與朱子容有不同。孰是孰非,非余所敢議。余獨痛夫儒釋之辨盛於當日,公之學說爲朱子所抨擊,致湮没而不彰。是書亦自宋迄今,無復刊行。余旣得諸海外,因覆印以餉今之學者,且冀其因有異同而得並存焉,則幸甚矣。
民國紀元二十有五年(1936)丙子四月,裔孫元濟謹識。
『中庸說』
喜怒哀樂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和即庸也。變和爲庸,以言天下之定理不可易也。此一篇,子思所聞於曾子,聖道之尤粹者也,學者不可以不思。
1、“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教。”
(說︰)性、道、教三者之難名也久矣。子思傳曾子之道,以其所踐履而自得者,爲天下後世别白而言之,使學者知所適從焉。其有功於名教也大矣。“天命之謂性”,此指性之本體而言也。“率性之謂道”,此指人之求道而言也。“修道之謂教”,此指道之運用而言也。“天命之謂性”,第贊性之可貴耳,未見人收之爲已物也。“率性之謂道”,則人體之爲已物,而入於仁義禮智中矣,然而未見其設施運用也。“修道之謂教”,則仁行於父子,義行於君臣,禮行於賓主,智行於賢者,而道之等降隆殺於是而見焉。中庸之名,立於此三者矣。“天命之謂性”,喜怒哀樂未發以前者也,所以謂之中。“率性之謂道”,此戒愼恐懼於不睹不聞,以養喜怒哀樂未發以前之理,此所以求中也。至於“修道之謂教”,則以天命之性、率性之道而見於用,發而皆中節矣,所以謂之庸也。子思立此三句,非見入深微,學臻聖地,其能爲此言乎?盛矣哉!
2、“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
(說︰)此言道之所以爲道也。夫“率性之謂道”,則舍性而求道,皆非所謂道也。是則君子之求道,豈可須臾舍性而求哉?戒愼不睹,恐懼不聞,可也。使其不睹不聞處微有私意間之,則非性之本位,而墮於人欲矣。人欲豈道也哉?故曰:“可離非道也”。蓋當其離處,即是非道,此率性所以謂之道。
3、“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愼其獨也。”
(說︰)此指以率性之路,不可須臾離之義也。惟性不可須臾離,故於不睹不聞處每致意焉。夫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况於稠人廣衆、合堂同席之間,其有不戒愼恐懼者乎?此正合内外之道,不可須臾離之本也。夫不睹不聞,少致其忽,宜若無害矣,然而怠忽之心已顯見於心目之間,昭昭乎不可掩也。其精神所發,道理所形,亦必有非心邪氣雜於其間,不足以感人動物,而招非意之辱,求莫爲之禍焉。此君子所以愼其獨也。誠諸中,形諸外,不可掩如此。嗚呼!其可忽哉?惟一意戒愼恐懼,以養喜怒哀樂未發以前之理,此善求中之道也。
4、“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喜怒哀乐没有表现出来的时候叫做中,表现出来而都合乎节度叫做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逹道也。'中'是天下的根本;'和'是天下通行的大道。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說︰)中衍天命之義,和衍修道之義。“喜怒哀樂之未發”,此指言性也,故謂之中;發而皆中節,此所謂發也,故謂之和。中指性言,故爲大本;和指教言,故爲逹道。未發以前,戒愼恐懼,無一毫私欲;已發之後,人倫之序,無一毫差失。此天地萬物之宗也,所以言天地位於此,萬物育於此。嗚呼!天地萬物皆在吾中和中,則中和之用亦大矣,學者不可不勉。
5、仲尼曰:“君子中庸,小人反中庸。君子之中庸也,君子而時中;小人之中庸也,小人而無忌憚也。”
(說︰)“天命之謂性”,此所謂中也。“率性之謂道”,此所以養中也。“修道之謂教”,此所謂庸也。當喜怒哀樂未發以前,君子戒愼恐懼,此率性也。及喜怒哀樂已發之後,君子行人倫之序,此修道也。夫方當率性時,戒愼恐懼於不睹不聞處,此學者之事也。及其深入性之本原,直造所謂天命者在我,然後爲君臣、父子、兄弟、夫婦之教,以幸於天下。至於此時,聖人之功用興矣,此所以謂之中庸也。然而君子小人,名雖不同,豈無喜怒哀樂乎?喜怒哀樂未發時,君子則恐懼戒愼以率之,小人則何所不至哉?豈知所謂率也?喜怒哀樂已發時,君子則出爲君臣父子、兄弟之教,小人則入於放辟邪侈矣,豈知所謂修也?謂小人無中庸之本則不可,謂小人能行中庸又不可,此不可不辨也。然而喜怒哀樂已發之後,則謂之和,和何自而來哉?自中而已矣。中旣爲和,則不得謂之中矣。不謂之中而謂之和,似於潜養之功爲弗著也,故謂之“時中”,以言和自中來也。時中即和也。蓋中不可執一也,以時而已矣。如時可以仕,則仕爲中,時可以止,則止爲中,可以速,可以久,皆以時而爲中,中不可執一也。如此。且合天下而論之,則洛爲中。自燕而望洛,則燕自有中也,而洛爲偏矣。自越而望洛,則越自有中也,而洛亦爲偏矣。故處天下時,則當以洛爲中,至於處燕越之地,各中其所謂中可也,豈可以執一哉?此所以謂之“時中”也。小人樂聞時中之說,乃同乎荒俗,合乎污世。時尙縱横,吾爲蘇張;時尙虚無,吾爲衍晏。此𥨸時中之名,而略無忌憚者也。此所以爲小人也。然則君子之學,其可不愼乎?夫“率性之謂道”,旣謂之率,則是已發矣,安得謂之中也?既未離本位,惡得謂之發乎?誠如是說,修道豈已離性而爲之哉?曰:吾嘗言之矣。率性之謂道,此學者之事也。至於聖人,則自率性直造天命之本,於是有乾坤造化,制爲人倫之序,以幸天下,此所謂和也,所謂天下之大本達道,所謂天地位,萬物育,所以成中庸之名也。此不可以離不離名之也。其理微矣,不可不致思焉。
6、子曰:中庸其至矣乎,民鮮能久矣。
(說︰)戒愼恐懼以養其中,人倫之序以宣其和,惟聖人能終始之。至於尋常之人,一息之暫且不能安,而況久乎?夫天地位於此,萬物育於此,『中庸』之爲至德,可不言而喻也。
7、子曰:"道之不行也,我知之矣,知者過之,愚者不及也。道之不明也,我知之矣,賢者過之,不肖者不及也。人莫不飲食也,鮮能知味也。"
(說︰)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其中,則發而中節,必爲人倫之序,以宣其和,此『中庸』之本也。然知者知之太過,而愚者又不及知焉。既已知之太過,與夫不及知,其能行乎?此道之所以不行也。賢者行之太過,而不肖者又不及行焉。既行之太過,與夫不及行,此道之所以卒不明也。夫戒愼不睹,恐懼不聞,此養中之法也。太過於此,則失養中之法;不及乎此,安知養中之法?君子欲求中庸,要當於戒愼不睹,恐懼不聞中得味,則識中之本矣。若夫不能守此法,而用意過當,與夫一出一入而欲求中,是猶終日飲食而不知味也。味乎,味乎!當優遊涵泳於不睹不聞時可也。
8、子曰:"道其不行矣夫。"子曰:"舜其大知也與。舜好問而好察邇言,隱惡而揚善,執其兩端,用其中於民,其斯以爲舜乎!"
(說︰)知者過之,愚者不及,賢者過之,不肖者又不及。審如是,道其不行矣。夫豈有是理哉?自有行之者矣。行之者其誰耶?大舜而已矣。舜所以爲大知者,以知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其中而無過不及也。夫戒謹不睹,恐懼不聞,其所以爲養中者,乃在心術之内也。至於形之於外,則變爲好問、好察邇言,隱惡揚善矣。嘗試溯好問好察邇言、隱惡揚善之心而上之,即戒愼不睹,恐懼不聞之心也。戒愼恐懼以養此中,則無過不及之端。好問而好察邇言,隱惡而揚善此中,則亦無過不及矣。執過不及之端,而用其中於民,則民皆知戒愼不睹、恐懼不聞,其形之於外,則亦盡人之情也。好問好察邇言,隱惡揚善而不敢忽矣。舜之所以爲知者,以能用戒愼恐懼之心,變而爲好問好察邇言、隱惡揚善之實也。夫好問好察邇言,則盡人之情,不敢斷以己意。隱惡揚善,則惡念消亡,善端融洩,其戒愼恐懼可知矣。此所以能盡『中庸』之道也。學者欲識『中庸』,當於舜觀之。
9、子曰:"人皆曰予知,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也。人皆曰予知,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
(說︰)人皆用知於詮品是非,而不知用知於戒愼恐懼;人皆用知於機巧術數,而不知用知於喜怒哀樂未發已發之間。惟不留意於戒愼恐懼,故曰自驅而入於罟獲陷阱嗜欲貪鄙之中而不自知。惟不留意於喜怒哀樂未發已發之間,故雖中庸之理潛見,而不能期月守也。使移诠品是非之心於戒愼恐懼,其知孰大焉?使移機巧術數之心於喜怒哀樂未發已發之間,其知又孰大焉?此篇直指學者用知處,故舉舜所以爲大知之事在前,而又立此說於後,其左右表裡發明中庸之學也切矣,學者當審之。
10、子曰:"回之爲人也,擇乎中庸,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
(說︰)人皆知機巧術數之爲知,而不知擇乎中庸,守以期月之爲知,惟顔子則進乎此矣。此孔子所以稱之於守以期月之後也。夫喜怒哀樂,已發未發之間,所謂中庸也,差之毫釐,缪以千里,其可不精擇之哉!顔子戒愼恐懼,超然悟未發已發之機,或於喜處,或於怒處,至於哀處樂處,一得天命之性,所謂善者,則深入其中。人欲都亡,我心皆喪。人第見其拳拳服膺而弗失耳,而不知顔子與天理爲一,無一毫私欲橫乎其間,而不識不知,我真無有矣,而況人欲乎?此『中庸』之妙也。舜發於好問、好察邇言、隱惡揚善之間,而顔子深居乎服膺拳拳之内,蓋所以表裡之也。非深造自得,誰能識之?
11、子曰:天下國家可均也,爵祿可辭也,白刃可蹈也,中庸不可能也。
(說︰)均天下國家,辭爵祿,蹈白刃,感慨或能爲之,此血氣也,用以求中庸,難矣。中庸不在血氣中,惟戒愼不睹、恐懼不聞者能得之,故曰可均、可辭、可蹈,而不用此以能中庸也。有此則是血氣,非中庸也。嗚呼!余觀於『易』,乃知中庸之難守也。且均天下國家,辭爵祿,壯哉其勇也,而非所謂大壯。『易』曰:"雷在天上,「大壯」。夫"雷在天上",其壯爲如何哉?然而君子體此壯以在心,止於非禮勿履而已。是知均天下國家,辭爵祿,蹈白刃,未爲壯,而守中庸者之爲壯也。且戒愼不睹、恐懼不聞,即"雷在天上,大壯"也,即"非禮勿履"也,即中庸也,即天理也。其可以血氣爲之乎?惟血氣消盡,中庸見矣。君子不可不察也。
12、子路問強。子曰:"南方之強與?北方之強與?抑而強與?寬柔以教,不報無道,南方之強也,君子居之。祍金革,死而不厭,北方之強也,而強者居之。故君子和而不流,強哉矯!中立而不倚,強哉矯。國有道,不變塞焉,強哉矯!國無道,至死不變,強哉矯!
(說︰)子路聞"可均、可辭、可蹈、中庸不可能"之語,以謂"中庸之強",當如何?夫子知子路之所謂強者,不過血氣耳。中庸之中,非血氣所得停留者也,故設爲三問,以斥血氣之強。南方之強、北方之強,與夫子路之強,皆血氣也,非中庸也。然而"衽金革,死而不厭",謂之血氣之強可也。"寬柔以教,不報無道,君子居之",是亦足矣。乃謂之"血氣之強",何哉?蓋強當從戒愼不睹、恐懼不聞中來,則此強爲中庸之強。若乃山川風氣使之如此,而中無所得焉,豈非血氣雲乎?子路天資好勇,其鼓琴也,流入北鄙,其言志也,則曰︰"師旅"。此北方之強也,故曰"而強者居之"。然則何以爲中庸之強也?曰:和而不流,此喜怒哀樂之中節也,故其強矯然不撓。中立而不倚,此喜怒哀樂未發時也,故其強亦矯然不撓。惟戒愼不睹、恐懼不聞,潛養中和,以至如此之強,故其見於用也,遇有道之世,則此中和不變於變厄塞之節,故其強矯然不撓;遇無道之世,則此中和,脅之以死,而亦不變其節,故其強矯然不撓。夫不變者,乃不流不倚之發也。"矯"之爲言,剛毅之貌,非矯揉之矯也。此一字系重輕,學者不可造次。夫中庸一以理爲主,非從戒愼、恐懼中來,安得如此之妙乎?其與血氣之強相遠矣。子路聞之,得不悼其平時之無益,而潛養之不可已乎?學者不欲遇天下之變則已,如欲遇天下之變,其於中庸豈可不留意乎?
13、子曰:素隱行怪,後世有述焉,吾弗爲之矣。君子遵道而行,半塗而廢,吾弗能已矣。君子依乎中庸,遁世不見知而不悔,惟聖者能之。
(說︰)中庸之爲德,不可作也,亦不可止也。戒愼不睹,恐懼不聞,謂之作而非作,謂之止而非止,所以能養中庸也。素隱,謂終身行乎隱晦,中庸,在隱晦,則隱晦而已矣,安可作也?儻微有作意,至行怪以釣名,則非中庸也。此聖人所以不爲焉。遵道而行,謂率性也。中庸在率性,則率性而已矣。安可止焉?儻有止意至半塗而不進,則非中庸也,此聖人所以不已焉。欲識中庸要處,請於弗爲弗已而味之。弗爲、弗己,即戒愼恐懼也。彼其半塗,而廢君子則"依乎中庸",依則弗已之謂。彼其素隱而行怪,君子則"遁世不見知而不悔",不悔則弗爲之謂。夫所以能不悔者,中庸之力也。故曰"惟聖者能之"。余嘗求聖人而不可得,今乃知止在喜怒哀樂未發處耳,豈不近乎?子思明示天下人以入路,且曰:"戒愼不睹,恐懼不聞"。聖人門庭蕩蕩明白如此,吾儕何爲而不舉鞭乎?學者宜愼思之。
14、君子之道費而隱。夫婦之愚,可以與知焉,及其至也,雖聖人亦有所不知焉。夫婦之不肖,可以能行焉,及其至也,雖聖人亦有所不能焉。
(說︰)君子之道,即中庸也。中庸不離喜怒哀樂未發已發之間,此日用所不免者也。豈非費乎?費當爲費用之費。雖夫婦之愚不肖,豈有無喜怒哀樂者乎?此所謂可以與知,可以能行者也。然而由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喜怒哀樂,使爲中爲和,以位天地,育萬物,雖聖人猶皇皇汲汲,自謂有所不知,有所不能焉,豈非隱乎?蓋自以爲知,自以爲能,則止矣,止非中庸也。惟若有所不知,有所不能,則戒愼、恐懼,其敢一日而已乎?此理微矣,力行者能識之,非口舌所能辨也。
『中庸說』卷第一。
『中庸說』,卷第二
15、天地之大也,人猶有所憾。故君子語大,天下莫能載焉;語小,天下莫能破焉。
(說︰)此中庸之所以爲大也。夫天地雖大,而不免有日月薄蝕、彗孛飛流、山川震動、草木倒植、寒暑失中、雨暘差序、水旱相繼、札瘥流行,此人所以不免有憾也。然則財成其道,輔相其宜,彌綸範圍,真有待於中庸耳。豈如中庸之君子,語其大則天地位焉,萬物育焉,人豈有憾乎?此天下所以莫能載也。語其小則跂行喙息、蠉飛蠢動,皆待之以順適,此天下所以莫能破也。夫中庸之道,贊天地之化育如此,而其要止在喜怒哀樂未發已發之間而已。而其所以入之之路,又止在戒愼不睹,恐懼不聞而已。學者胡爲不少緻思乎?
16、『詩』云:"鳶飛戾天,魚躍於淵"。言其上下察也。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察乎天地。
(說︰)夫君子之道,所以大莫能載,小莫能破,以其戒愼不睹,恐懼不聞,察於微茫之功也。戒愼恐懼,則於未形之先,未萌之始,已致其察矣。察之之至,至於鳶飛魚躍,而察乃在焉。夫能亂人之德而居人倫之先者,夫婦是也。欲識不睹不聞之實,當於夫婦而察之。故君子之察,必造端乎夫婦,使夫婦之道正,則天地之道皆正矣。其要如此,安可不察耶?察之如何?非心一形邪?意一作,無不見其所自起,知其所由來,戒愼恐懼而不敢肆焉。察之既熟,豈特夫婦間哉?則凡象生於見,形起於微,上際下蟠,察無不在,所以如鳶之飛於天,如魚之躍於淵,察乃随飛躍而見焉。而況日月星辰之運動,山川草木之流峙乎?顧惟此察,始於戒愼恐懼而已。戒愼恐懼以養中和,而喜怒哀樂已發未發之間,乃起而爲中和。大含元氣而天下莫能載,小入無間而天下莫能破。察之之功如此,君子於愼獨之學,其可忽耶?
17、子曰︰道不遠人。人之爲道而遠人,不可以爲道。『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執柯以伐柯,睨而視之,猶以爲遠。
(說︰)率性之謂道,道豈遠人哉?人具有此性,又安可舍已之性而求道哉?性外無道,道外無性,舍人之性而欲求道,猶適越而北向,趨燕而南奔,雖駕駿馬,乘輕車,卒歲窮年,殆見其無所得耳。夫執柯以伐柯,可謂近矣,然而猶以爲遠者,以性較之也。若人之性,當幾即是,因體即明,非兩物也。伐柯而視柯,猶是兩物也。柯外有柯,豈非遠乎?若乃人即爲道,不待它求,其與伐柯異矣。聖人明辨細微,至於如此,學者率性,其可不致精乎?
18、故君子以人治人,改而止,忠恕違道不遠,施諸已而不願,亦勿施於人。
(說︰)人即性也。君子既率性而得道,天下之人有不由乎道者,以迷其性也。君子則以我之性覺彼之性,其寓之簠簋俎豆、制度文章,以至鐘鼓管磬、竽笙環佩、元酒大羹、爇蕭郁鬯之間者,無非覺其性也。使其由此以見性,則自然由乎中庸之道,而向來無物之言、不常之行,皆掃不見迹矣。夫君子所以區區如此者,止欲其率性由道而已。既已率性由道,復有何事哉?故得其"改則止"矣,此忠恕之道也。夫恕由忠而生,忠所以責己也。知己之難克,然後知天下之未見性者,不可深罪也。故人有平生爲惡,使一見性,本不蹈前轍,則君子止矣。不復更責矣,豈非忠恕乎?忠恕去道如此之近者,以施諸已而不願,亦勿施於人而已。且吾已改過而率性,使人之責己尙不已,吾意豈不以其爲太甚乎?中庸道中,無太甚也,由是可以知聖人之存心。
19、君子之道四,丘未能一焉。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所求乎弟,以事兄,未能也。所求乎朋友,先施之未能也。
(說︰)君子由戒愼不睹、恐懼不聞,深致其察,故其形於外也,如大舜之好問而好察邇言,隱惡而揚善,如顔子之擇乎中庸,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如詩人之察鳶飛魚躍,如君子之察乎天地。故自不睹不聞處察之,以至於世間人情,無所不致其察。先察知一已之難克,而後察見天下皆爲可恕之人,不敢妄責備焉。每事先求乎已之所能行者,然後推之以善天下。凡施諸己而不願者,亦不敢以施諸人,而已之所願者,則推而行之,與天下同其樂。此所以爲中庸之道,而深原其功,乃自於戒愼恐懼以致其察之功也。明乎此說,則君子之道四:如子事父,臣事君,弟事兄,朋友先施之,皆曰求者,蓋所以致其察也。人倫之大而致其察,則天下之理無遺餘矣。察子之事父吾未能,安敢責父之愛子乎?察臣之事君,吾未能,安敢責君之禮臣乎?察弟之事兄,吾未能,安敢責兄之友弟乎?察朋友先施之吾未能。安敢責朋友之必信乎?此忠恕之道也。夫自以爲能則止矣,故終身不能,自以謂未能,則皇皇汲汲,其敢已耶?如前言聖人有不知,有不能,而此言未能,此意深矣,學者不可忽也。夫聖人常處於不知、不能、未能之地,以見其皇皇汲汲,無敢已焉之意,此所以無所不知、無所不能。且"於穆不已",天之所以爲天,"純亦不已",文王之所以爲文王。使聖人於君子之道四,自以爲能則已矣,其責備於天下,豈不深乎?已非天之理也,如韓愈作「羑里操」,曰︰"臣罪當誅兮,天王聖明"。此深見文王之心,臣以事君未能之意。"舜祗載見瞽瞍,負罪引慝",此亦子之事父未能之意。儻文王以爲能則懟君,舜以爲能則怨父,中庸之道於此二事可見矣。非於不睹不聞處深致其察,又烏能推之人倫若是其微哉?是故君子愼其獨也。
20、庸德之行,庸言之謹,有所不足,不敢不勉,有餘不敢盡。言顧行,行顧言,君子胡不慥慥爾!
(說︰)自戒愼恐懼,事致其察,其發見於忠恕。是故其爲行也,則爲庸德之行,其爲言也,則爲庸言之謹。庸者,非不足,亦非有餘,適當其可者是也。夫惟戒愼恐懼,則不足者不敢不勉,以至於此,有餘者不敢盡發,以過於此,所謂中庸也。戒愼恐懼,則常致其察,是故當其言也,則於言察其行;當其行也,則於行察其言。顧者,察也。夫中庸之道如此,君子胡不戒愼恐懼,事致其察,以慥慥於此地乎?慥慥者,不已之謂也。
21、君子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素夷狄,行乎夷狄;素患難,行乎患難。君子無入而不自得焉。
(說︰)忠恕之道,其至矣乎!盡其在我,而不責於人。素其位而行,盡其在我也。不責備於人,不願乎其外也。涵泳乎忠恕之中,郁如三春,薰如醇酎,何所往而不可乎?素,猶雅素之素,舜之若將終身者是也。使終身富貴,則以忠恕之道行乎富貴,若堯是也。終身貧賤,則以忠恕之道行乎貧賤,若顔子是也。素夷狄,則以忠恕之道行乎夷狄,若箕子是也。素患難,則以忠恕之道行乎患難,若孔子是也。富貴、貧賤,夷狄、患難,皆天之所以命我者,吾其如之何哉?姑聽之而已矣。然吾有忠恕之道,無入而不自得,故盡其在我,不責備於人,是以戒愼恐懼,不敢使一毫私意介乎其心,而寬夷平易,優遊怡愉,衎衎如也,融融如也。自得之道,概在乎此。嗚呼!忠恕其至矣乎!
22、在上位不陵下,在下位不援上,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上不怨天,下不尤人。故君子居易以俟命,小人行險以僥幸。子曰:射有似乎君子,失諸正鵠,反求諸其身。
(說︰)此言君子自戒愼不睹、恐懼不聞,醞釀成中庸之道,處上下天人之間,無所不用其忠恕也。其在上也,以忠恕待人,故不陵下;其在下也,以忠恕自處,故不援上。援者,欲己與之齊也。夫爲上所陵,爲下所援,而不以忠恕處其間,則不能無怨憾矣。君子力行忠恕之道,"正己而不求於人",故處陵忽干援之中,其心泰然,無絲毫之怨,以至身行於貧賤憂患、禍難喪失不可堪處之間,一皆以忠恕爲樂,若將終身於此而不動焉,夫何怨天尤人之有?此無他,君子居忠恕以應天命而已。易者,忠恕之謂。若夫小人,則不能安於忠恕,至於喪名失節,以求合於上,卒不免於患難,徒使身名兩失而已。此行險以徼幸者也。其所以如此者,以其平時不知愼獨之學,不留意於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中庸之道,而察忠恕一貫之理耳。射有正鵠,賓射之侯,則謂之正,大射之侯,則謂之鵠。使吾内志正,外體直,持弓矢審固,則賓射必不出正,大射必棲於鵠,此必然之理也。使在我有杪忽之差,則在彼有尋丈之失矣。然則失諸正鵠,豈正鵠之罪哉?吾内志不正,外體不直,以至持弓矢不審固之罪也。猶之爲上所陵,爲下所援,不得處富貴安平,而每遇貧賤憂患、禍難喪失,若天所不佑,人所不歸者,豈上下天人之罪哉?皆吾戒愼恐懼不至,而中和之理不發見,不足以感發天下之幾也。使誠中和,天地且位於此,萬物且育於此,況上下天人之間乎?誠知此理,方且戒愼恐懼,正已之不給,又何暇責備於人乎?此所以爲中庸也。君子之道,譬如行遠必自邇,譬如登高必自卑。『詩』曰:妻子好合,如鼓瑟琴。兄弟既翕,和樂且耽。宜爾室家,樂爾妻孥。子曰:父母其順矣乎!此言君子推忠恕之效也。夫欲知戒愼不睹、恐懼不聞之效,當於忠恕卜之。欲知忠恕之效,當於父母卜之。使父母順適,則忠恕之效著矣。故有登高行遠之譬。夫行遠必自邇,登高必自卑。妻子、兄弟,邇也卑也。欲父母順適,必自妻子合、兄弟和始,豈非父母高遠,而妻子兄弟卑近乎?使"妻子好合,如鼓瑟琴",推之於兄弟,則"兄弟既翕,和樂且耽"矣。夫人爲人,宜於室家,樂於妻拿。想其爲人,曲盡在我之理,深識人情之微,莊肅恭謹,寬夷平易,以此心事父母,父母其有不順乎?使其不知戒愼恐懼之理,待己甚輕,責人甚重,則於妻子必不合,於兄弟必不和。一家之内,妻子兄弟如此,父母豈得順適乎?此不孝之子也。夫在妻子爲合,在兄弟爲和,在父母爲順,此一理也。今於妻子、兄弟、父母如此,原其所以,以不知忠恕之理也。不知忠恕之理,以不知戒愼不睹、恐懼不聞之理也。是以君子於愼獨之學,不可須臾離。
23、子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夫微之顯,誠之不可掩如此夫!
(說︰)鬼神在明則爲中庸,中庸在幽則爲鬼神,其實一也。明則有禮樂,幽則有鬼神是也。夫中庸之要處,在戒愼不睹、恐懼不聞,而喜怒哀樂森列於中,不可欺者,此鬼神之德也。是以鬼神之德,雖曰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然天地萬物森然,鬼神列於中,不可遺也。惟鬼神之德如此,故足以發天下之敬,使皆戒愼不睹、恐懼不聞,而齊戒以肅其身,明潔以敬其心,盛服以嚴其貌,洋洋乎如在其上,在其左右,豈敢有一毫私意哉?此正養中庸之幾也。故引"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爲證。夫有度、有射,皆私意耳,非戒愼、恐懼,其可以享鬼神乎?夫鬼神弗見聞,而使人聳然不敢起,非心邪意,儼然如在者,則以中庸之道發於幽者,不得不爾。嗚呼!微之顯,誠之不可掩,其狀乃如此。君子之於愼獨,其可忽乎?
24、子曰:舜其大孝也歟!德爲聖人,尊爲天子,富有四海之内,宗廟飨之,子孫保之。故大德必得其位,必得其祿,必得其名,必得其壽。故天之生物,必因其材而篤焉,故栽者培之,傾者覆之。『詩』曰:"嘉樂君子,憲憲令德。宜民宜人,受祿於天。保佑命之,自天申之。"故大德者必受命。
(說︰)夫戒愼不睹,恐懼不聞,其見於舜也,内則以養中和,外則發之於好問,好察邇言,隱惡而揚善,與夫大孝之德。夫所以好問,所以好察,所以隱惡,所以揚善,所以爲大孝,皆戒愼恐懼之形見也。此所謂誠諸中,形諸外,有不可得而已者。夫舜負罪引慝,祗載見瞽瞍,夔夔齊慄,非戒愼恐懼之形見乎?此所以爲大孝也。且應龍之翔,則雲霧滃然而起,震風薄怒,則萬空不約而號。使自戒愼恐懼,發而爲大孝,以德則爲聖人,以尊則爲天子,以富則有四海之内,而宗廟飨之,子孫保之者,此必致之理也。夫何故?以大德必得其位,必得其祿,必得其名,必得其壽,猶石韞美玉,則一山爲之蔥青,水懷明珠,則一川爲之秀潤。天理如此,何足怪哉?蓋天之生萬物,初無容心也,因其材而成之耳。如鸞凰爲瑞物,自取尊榮,鴟梟爲妖祥,自取彈射,楩楠自取棟梁,蒲柳自取薪爨。天亦因其材而成之耳,豈能有所損益哉?栽者本根深固,自取培益。傾者本根搖動,自取顛覆,亦豈有心哉?是以知大德者,自取位祿名壽,而無德者,自取貧賤刑戮也。是位祿名壽,乃大德之形見也。不如是,是吾德之未至也。故引「嘉樂」之詩爲證,而斷之曰:"大德必受命"。其言判别不疑,此所以勉天下之爲德者,當始於戒愼恐懼,而以位祿名壽以卜德之進否也。世之論者曰:"孔子大聖人,而名位祿不著,顔子大賢,而壽亦不聞。"斯言欺我哉?曰:"學者讀書,當識立言之體,方論大德受命之理,此天下之正理也,安得以孔顔爲說?至於孔顔,可謂天理顛倒,事之不幸者也,豈可以爲常談哉?然而孔顔之位祿名壽,亦豈可誣也?雖不得志於當時,而萬世之後,天子師事,巍然南面,尊主大國,合天下而拜之,大德者必受命,亦可知矣。君子第當論大孝大德如何,至於位祿名壽,至與不至,盍亦日日新又日新,以警省其所未至乎?上以大舜當年爲則,下以孔顔後世爲準,豈不韙哉?
『中庸說』卷第二
『中庸說』卷第三
25、子曰:無憂者,其唯文王乎?以王季爲父,以武王爲子,父作之,子述之。
(說︰)戒愼不睹,恐懼不聞,則無適而不在中和,中和則無憂也必矣。古之人有享斯效者,其惟文王乎!夫中和之中,自當有賢父聖子,文王其見之矣。以王季爲父,是父所作者中和也。以武王爲子,是子所述者中和也。文王處賢父聖子之間,夫何憂哉!中和之見於人者,即文王可知矣。然則舜以瞽䀻爲父,以商均爲子,則中和將何處乎?曰:中和之見於人,當如文王之無憂。至於大舜父子,斯天倫之不幸也。不幸,豈可以爲常乎?學者當知此意,中和之道無所疑矣,此不可不辯明焉。
26、武王纘太王、王季、文王之緒,壹戎衣而有天下,身不失天下之顯名,尊爲天子,富有四海之内,宗廟飨之,子孫保之。
(說︰)武王纘太王、王季、文王之緒,緒即中和也。天命已逼,民心久遏,乃一戎商而有天下,嗚呼!豈得已哉!戎商宜若,非中和也,是何言歟?子思不曰︰喜怒哀樂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乎?武王一怒而安天下,此怒之中節也,此中和也,此太王、王季、文王之緒也。然而武王之舉,危道也,聖人之不幸者也。其曰︰"不失天下之顯名",與必得之言相並,則知武王之舉,危道也,聖人之不幸也。然而又不失"尊爲天子,富有四海之内,宗廟飨之,子孫保之"者,則以出於中和,故其理當如是也。
27、"武王末受命,周公成文武之德,追王太王、王季,上祀先公以天子之禮。斯禮也,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父爲大夫,子爲士,葬以大夫,祭以士;父爲士,子爲大夫,葬以士,祭以大夫。期之喪,達乎大夫;三年之喪,達乎天子,父母之喪,無貴賤一也。
(說︰)夫武王之中和,豈止行之於克殷一事而已哉?又於追王之事見之。夫追王乃中和所當然也。周公承文王、武王之中和,以行追王太王、王季之禮,與夫推追王之心,以行上祀先公以天子之禮,又推追王之禮,以下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如父爲士,子爲大夫,葬以士,祭以大夫是也。夫士而受大夫之祭,此追王之意,下達於大夫也。使父爲庶人,子爲大夫,亦將葬以庶人,祭以大夫矣。此深察人子之心,以致意於其先也。審如是,父爲大夫,子爲士,葬以大夫,祭以士,抑吾貶吾親就士之禮耶?追王之意安在哉?曰:事各有稱,葬以大夫,是喪從死者之義。祭以士,是祭從生者之義。以己之祿祭其先人,此意與追王之心一等也。惟深思者見之。儻以世俗之心,以榮辱吾親,非中和之道也。至於"期之喪,達乎大夫;三年之喪,達乎天子;父母之喪,無貴賤一也",皆喜怒哀樂已發之中節者也。此天理之自然者,不可加損焉。惟事事隱之於心,如追王,如"祭以天子",如"達乎諸侯,達乎大夫,達乎天子,無貴賤一也,皆輕重中節,天理自然,無一毫私意偏倚於其間。中和之形見於作用者如此,不可不致精以求之也。至於論名數之意,呂與叔(呂大臨,1040-1092)辯之甚詳,此不復叙。
28、子曰:武王、周公其達孝矣乎!夫孝者,善繼人之志,善述人之事者也。春秋修其祖廟,陳其宗器,設其裳衣,薦其時食。宗廟之禮,所以序昭穆也。序爵,所以辨貴賤也。序事,所以辨賢也。旅酬下爲上,所以逮賤也。燕毛,所以序齒也。踐其位,行其禮,奏其樂,敬其所尊,愛其所親,事死如事生,事亡如事存,孝之至也。
(說︰)祖廟、宗器、裳衣、時食、昭穆、貴賤,辨賢、逮賤,序齒、踐位、行禮、奏樂、敬尊、愛親、事死、事亡,雖施設隱顯未詳,然皆文王中和之所發見,寓於心志事爲之間者如此。此文王之志,文王之事也。繼志述事者無他,第於戒愼不睹,恐懼不聞處,致其察,以養中和之理,然後深見文王之所爲,一一皆天理中發見者,随時損益而不忘其中和之大。此文王之志、文王之事,所以望於武王、周公者,而武王、周公所以爲達者,亦正以是也。此所以反復具載於此篇,則以中庸之德當如是也。若夫名數之學,精微之義,則呂與叔(呂大臨)、龜山(楊時)先生辯之甚詳,此不復叙。
29、郊社之禮,所以事上帝也,宗廟之禮,所以祀乎其先也。明乎郊社之禮、禘嘗之義,治國其如示諸掌乎!
(說︰)郊社之禮、宗廟之禮,皆自中和中出,豈私智所爲哉?夫郊社之禮、禘嘗之義,此先王深知天神、地示、人鬼之心,而即國外之郊以祀天,國中之社以祭地,禘嘗之禮以享鬼神。不知先王居於何地,知天神自郊求,地示自社求,人鬼自禘嘗求哉?夫其數可陳也,其義難知也。"明乎郊社之禮、禘嘗之義",治天下國家,直推此而爲之耳。然而禮義徑自何而明哉?惟戒愼不睹,恐懼不聞,以養中和,則天神、地示、人鬼之心皆見於此矣。且天地位於此,萬物育於此,治國豈能出此理哉?是以君子愼其獨也。
30、哀公問政,子曰:文武之政,布在方策。其人存,則其政舉,其人亡,則其政息。人道敏政,地道敏樹。夫政也者,蒲盧也。
(說︰)文武之政,即中和也。布在方策,書此中和也。有中和之君子,則見文武之心,故其政舉;無中和之人,雖如方策所言,一一行之,若「王莽傳」中所載井田賦祿之政,無不依三代制作,然篡逆之臣,豈嘗夢見中和?是以一切顛倒,天下大亂,適以資笑具而已。則其政息,復何疑哉?夫使人誠得中和之道,則不疾而速,不行而至,颦笑之間,天下已丕變矣。人道敏政,猶之地道焉,布種下實,未及頃刻日夜之息,一經雨露之潤,則勃然而生,爲萌爲芽,爲芽,爲枝,爲葉,以至爲華、爲實,向來荒虛之地,一旦青蔥秀潤,可攬可掬矣。以地道敏樹觀之,則人道敏政可見也。蓋地道亦已得中和故也。然政之變化,何止如地道哉?系乎其人如何耳。堯舜率天下以仁,則人人如堯舜,而比屋可封;桀纣率天下以暴,則人人如桀纣,而比屋可誅。真如蒲盧取螟蛉,祝之曰:"類我,類我,久則皆似之矣"。使以中和布之於政,發起天下之中和,則江漢之女無思犯禮,兔置之人莫不好德,人人有士君子之行,不難到也。此所以載此章於中庸焉。
31、"故爲政在人,取人以身,修身以道,修道以仁。仁者人也,親親爲大;義者宜也,尊賢爲大。親親之殺,尊賢之等,禮所生也。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
(說︰)政如蒲盧,蒲盧祝螟蛉,則螟蛉變爲蒲盧矣。爲政豈不在中和之人乎?有中和之人,則有中和之政。取中和之人,則當以身爲則,身中和,則取人亦中和矣。然則何以致身之中和哉?戒愼不睹,恐懼不聞,以率性可也。率性之謂道,故修身以道,即中和見矣。然"仁者人也。親親爲大,義者宜也。尊賢爲大。親親之殺,尊賢之等",隆殺等降,有品節焉,一出於仁義而已矣。仁人心也,義人路也。義自仁中出,路自心中來,則所謂義又出於仁也。惟仁有品節焉,此修道以仁也。"仁者人也。義者宜也。"其意安在?曰︰非矜私意,非行小慧,坦然與天下同其功者,此仁也,而其用莫大於親親。不高以絕物,不卑以累己,適然得萬事之理者,此義也,而其用莫大於尊賢。親有上下,故有隆殺;賢有小大,故有等級。隆殺等級,禮自此而生矣,此所謂教也。"修道之謂教",其是之謂歟!然則中和之理,何在而不然哉?
32、"故君子不可以不修身,思修身,不可以不事親;思事親,不可以不知人;思知人,不可以不知天。
(說︰)夫欲行文武之政,不可以無人,而取人當以身,故身不可以不修。修身以何爲則?以事親爲則。事親以何爲則?以知人爲則。知人以何爲則?以知天爲則。何謂天?喜怒哀樂未發以前,天也。戒愼不睹,恐懼不聞,於不睹不聞處,深致其察,所以知天也。推知天之心,以知人,則人之幽隱深微無不察矣,故賢不肖洞然不可亂。推知人之心以事親,則親之幽隱深微無不察矣,故能先意承志,先事幾谏,而事親得其道也。事親得其道,則修身之效也。修身既效,則以此中和識天下之中和矣,故能取天下中和之人,以行文武中和之政。然則子思首之以"天命之謂性",意乃在此,其言豈不深密乎!學者其可以易而觀之哉?
33、"天下之達道五,所以行之者三,曰︰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交也。五者天下之達道也。"知、仁、勇三者,天下之達德也,所以行之者一也。或生而知之,或學而知之,或困而知之,及其知之,一也。或安而行之,或利而行之,或勉強而行之,及其成功,一也。
(說︰)和也者,天下之達道也。是君臣父子、夫婦、昆弟、朋友之交,皆和之所發見也,故謂之達道。智,知此理而行;仁,覺此理而行;勇,決此理而行。君臣、父子、夫婦、昆弟、朋友之交,天下之所同,故謂之達道。知仁勇,一己所自得,故謂之達德。所以行君臣、父子五者,在知仁勇,所以行知仁勇者,在誠。一者,誠也。誠即喜怒哀樂未發以前是也。夫是誠也,或生而知之,若堯舜是;或學而知之,若湯武是;或困而知之,若太甲是。所以知之者,何物哉?誠也,知之耳。吾未能有行焉,是未能運用此誠也。然有安而行之者,亦若堯舜是;有利而行之者,亦若湯武是;有勉強而行之者,亦若太甲是。夫行之者其何物哉?亦誠也。是行達道者,知仁勇,行知仁勇者誠;知誠者誠,行誠者誠。夫誠一耳,何爲行知仁勇者誠,而又知誠者誠,行誠者亦誠哉?此蓋有說也。其說安在?曰:行知仁勇者,誠也。以謂誠如是盡矣,而所以知此誠者,其誰乎?即誠也。知之耳,未及行也。所以行此誠者,其誰乎?即誠也。此聖人極誠之所在而指之也。行知仁勇者誠,知誠者將以爲它物耳,又是誠耳。知未及行,行誠者又將以爲它物耳,又是誠耳。誠字雖同,而行知仁勇之誠,不若知誠之誠爲甚明。知誠之誠,又不若行誠之誠爲甚大也。嗚呼!誠之爲物如此,其可以淺易窺之哉?此於穆不已,天之所以爲天;純亦不已,文王之所以爲文王也,其深矣哉!
34、子曰:好學近乎知,力行近乎仁,知恥近乎勇。知斯三者,則知所以修身。知所以修身,則知所以治人。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說︰)行達道者,知仁勇。知仁勇自何而入哉?此聖人所以又指以入知仁勇之路也。夫好學,必有所見而然也,故謂之知。力行,必以不能自已而然也,故謂之仁。知恥,必斷然不爲也,故謂之勇。然而不直指好學爲知,力行爲仁,知恥爲勇,而曰近者何也?近之爲言,以言不遠也。不遠即在此而已矣。第知所以好學者誰,所以力行者誰,所以知恥者誰,則爲知爲仁爲勇矣。夫見於言語文字者,皆近之而已矣。唯人體之,識所以體之者爲誰,當幾而明,即事而解,則知仁勇豈他物哉?知斯三者,則直趨知仁勇之路,身豈有不修哉?知所以修身,則於天下之人皆當開導之,使自趨知仁勇之路。知仁勇,天下所同有也。故知所以修身,則知所以治人;知治人之路,不出乎知仁勇,則周旋四顧,其所以治天下國家,亦不出乎知仁勇之路而已。嗚呼!豈不簡易明白乎!夫所謂學,所謂行,所謂恥,何也?即戒愼不睹,恐懼不聞之謂。學者不於此入,則泛然如萍之在水,逢風南北,有何所寄泊乎?此君子所以愼其獨也。
35、凡爲天下國家有九經,曰︰修身也,尊賢也,親親也,敬大臣也,體群臣也,子庶民也,來百工也,柔遠人也,懷諸侯也。
(說︰)夫知知仁勇,則知所以修身。推而極之,以至於治天下國家。其爲天下國家也,則散而爲九經,九經則知仁勇之用也。夫時當孟春,則不期而魚上冰,獺祭魚,鴻雁來矣。時當孟夏,則不期而蝼蝈鳴,蚯蚓出,王瓜生,苦菜秀矣。豈孟春、孟夏區區號令於魚、獺、鴻雁、蝼蝈、蚯蚓、王瓜、苦菜哉?一氣之行,其法當如是耳。審乎此,使不知知仁勇則已,如其知知仁勇發於爲天下國家,則亦不期修身、尊賢、親親,敬大臣、體群臣、子庶民、來百工、柔遠人,懷諸侯矣。使一事不備,必知仁勇未盡其道也。誠使知仁勇皆盡其道,則此九經以次而行,不先不後,不遲不速,皆中其會矣。此天理之自然,非私智所能爲也。嗚呼!從戒愼不睹,恐懼不聞,發爲知仁勇,其極施於天下國家如此。然則"中庸之爲德,其至矣乎"之言,一一見矣,豈欺我哉?然而知知仁勇三者,則知所以修身,以至知所以治天下國家。今爲天下國家,又先曰修身。夫前言修身則能治天下國家,今爲天下國家又曰修身,何也?曰:中庸之道無止法也。此又於穆不已,純亦不已之意,唯力學者乃能識之。
36、修身則道立,尊賢則不惑,親親則諸父昆弟不怨,敬大臣則不眩,體群臣則士之報禮重,子庶民則百姓勸,來百工則財用足,柔遠人則四方歸之,懷諸侯則天下畏之。
(說︰)夫自中和之理,發於君臣、父子、昆弟、夫婦、朋友之間,變其名爲知、仁、勇,又變其名爲一,又變其所以達道者爲九經,皆中和之作用,無往而不中節也。夫惟中節,故以之修身則道立,以之尊賢則不惑,以之親親則諸父昆弟不怨,以之敬大臣則不眩,以之體群臣則士之報禮重。"體",若「四牡」之詩所謂"有功而見知則說"是也。"知",謂體悉之也。以之子庶民則百姓勸,以之來百工則財用足,以之柔遠人則四方歸之,以之懷諸侯,則天下畏之。夫所以立,所以不惑,不怨不眩,所以報禮重,所以勸,所以足,所以歸,所以畏,是乃中和之中節,故其效自爾也。使吾修身而道未立,吾親親而怨以至,吾懷諸侯而不畏,是吾於中和未至其極也。且致中和,則天地位於此,萬物育於此,九經其有不效乎?此君子所以愼其獨也。
『中庸說』卷第三
右五行原題在卷一首葉及卷二末葉,移錄於此編者識,貳冊之内,寶永三年丙戌(1706)八月良辰,龍菖首座代,龍奭修褙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