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 찬미 예수님
제주 항공 여객기 참사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하느님께서 당신 품 안에 받아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또한 슬픔에 잠겨 있는 가족들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렇게 슬픔 중에 2025년을 맞이했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조문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사람이 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하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를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것은 ‘공감’의 능력입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그와 같은 처지라면’ 하고 생각해 보거나,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 공감의 마음입니다. 이는 동정심과는 다릅니다. 동정심은, ‘아, 저 사람들 안됐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의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일로 한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공감의 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타인의 입장에서 느껴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이 되실 능력이 있으시고 그래서 인간이 되십니다. 하느님께 인간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됩니다. 우리 일이 하느님께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당신 일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신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는 시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분들에게 공감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과 함께 있어 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025년 새해 첫날을 맞아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본당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시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2024년 한 해 11분의 형제자매님들과 그 외 본당 교우의 가족들을 하느님 품 안으로 보내드렸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주님 품 안에 맡겨 드리며,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조문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교우 여러분들, 그리고 항상 수고해 주시는 위령 봉사회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또한 세 차례의 세례식이 있었는데요, 성령 강림 대축일에 10분, 성모승천 대축일에 5분, 주님 성탄 대축일에 24분, 도합 39분이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또 20분의 학생이 첫영성체를 하였고 많은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11월에는 교구장 주교님께서 오셔서 견진성사를 집전해 주셨고, 115분의 형제자매님들이 견진성사를 받으셨습니다.
작년 1월은 새신부님들의 첫미사와 안수로 시작했습니다. 사순시기에는 예수마음선교 수녀회의 권민자 수녀님을 모시고 두 차례 사순 피정을 하였습니다. 부활시기부터 시작된 거룩한 독서에 271분이 신청하셔서 12월까지 35주 동안 모세오경과 네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고, 강의를 듣고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여러 봉사 활동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가두 선교를 해 주셨고, 노은 한마음 문화제에 초대받아 지역사회의 많은 분들께 우리 성당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부활 축제 한마당, 본당의 날 성지순례, 구역별 연도대회에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많은 분이 함께 해 주셔서 우리 모두 한 가족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연극 ‘여걸 강완숙 골롬바’ 공연을 관람하며 순교자 성월의 의미를 되새겼고, 대림 특강으로 대전가톨릭대학교 이상규 야고보 총장 신부님을 모시고 대림의 의미를 묵상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해 온 전주 전동 성당과 익산 성 글라라 수녀원에 정성을 모아 주셨고, 교구장 주교님의 탄소중립 선언에 동참하기 위해 진행한 에너지 진단과 태양광 발전 설비를 위한 협의에 많은 분들께서 좋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구역별, 분과별 모임에 참여해주시고, 소속된 여러 단체를 통해 주님께 봉사해 주신 은혜, 사회복지회원과 성소후원회원으로 참여하여 기도해 주시고 도움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봉헌 시간에 지난 일 년간 성물방 수익금을 주님께 봉헌할 건데요, 봉사자 여러분들, 그리고 성물방을 이용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로서 배우자로서 애써 주신 모든 노력과 사회 복음화를 위해 참여해주신 모든 노고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봉사와 노력에 강복하시어 우리의 봉헌을 영원히 썩지 않는 당신의 열매로 삼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 때 봉독된 복음의 다음 구절입니다. 들에서 밤새며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주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알렸고,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냅니다. 목자들이 천사에게서 들은 말을 전하자, 모두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 반응이 다릅니다. 그분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여기에는 희랍어로 쉰테레인(synterein)이라는 동사와 쉼바레인(symballein)이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쉰테레인은 ‘간직하다’ ‘지키다’ ‘보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먼저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한편 쉼발레인은 ‘대화하다’, ‘깊이 생각하다’, ‘묵상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불분명한 사건들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해석해서 올바른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섭섭한 얘기나 기분 나쁜 말을 마음에 새기고 곰곰이 되뇌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무엇을 마음에 새기고 되뇌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면서 제58차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인류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모두 함께, 또 개인적으로 불의의 사슬을 끊고,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체감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외채 탕감, 사형제 폐지와 함께 ‘군비를 축소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는 국제 기금을 설립하자’는 희년의 제안을 이번 담화문에서도 강조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외침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가 받은 부르심을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불의의 사슬을 끊으라’는 부르심이고,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2025년 새해에 모든 일 안에서 주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바라보며, 그 위로와 희망을 고통받는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주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우리에게 다가올 수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일들을 성모님처럼 대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https://youtu.be/Uch0FlNo3Go?si=m7ThFl-7CjQpp_xk
* 블라디미르 바빌로프(1925-1973), 아베 마리아, 샬롯 처치 (소프라노)
- 한 때 카치니(1551-1618)의 곡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바빌로프의 곡으로 판명되었습니다.
* 제58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담화] 2025년 제58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켈란젤로, 피에타, 1499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