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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19) 본 걸 믿는 걸까, 믿는 걸 보는 걸까
얼마 전 17세기 유럽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바로크 시대 미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카라바조와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을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특히 이번에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요한 복음 20장의 한 장면을 그린 ‘성 토마스의 의심’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카라바조의 원본은 아니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 작가가 완성한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소장본이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토마스와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라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표현한 이 그림은 토마스가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를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와 극사실주의적 표현으로 마치 현장 상황을 보는 듯한 ‘성 토마스의 의심‘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그림을 통해 내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와 좀처럼 그림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믿음이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믿음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떠올리며 가톨릭 신자로서 삶의 자세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 세상에는 안 보고도 믿어야 할 것이 있으며, 그와 반대로 반드시 눈으로 보고 믿어야 할 것이 있다. 전자는 신앙적 측면에서의 믿음이며 후자는 세속적 삶에서 접하게 되는 사회현상과 뉴스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첨예한 정치적 의견 대립과 이에 따른 집단 간 갈등으로 시끄럽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갈라선 서로의 정치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인간은 어떤 사회현상이나 인간 행동에 대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현대의 뇌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믿음 혹은 신념의 형성은 분석적이고 합리적 과정의 산물이라기보다 개인적 경험·기억·감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대뇌 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영역들이 복잡한 신경망들과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뇌는 인체의 몸무게 중 단 2% 정도이지만 하루 중 섭취하는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따라서 에너지를 소비하며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보다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주관적 믿음을 바탕으로 어떤 현상을 바라보며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는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기도 한다. 거짓뉴스와 선동가들에게 현혹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피상적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하느님께 청해야겠다. 지금 나는 세상에 대해 보는 것을 믿고 있을까, 믿는 것을 보고 있을까?
[과학과 신앙] (18) 그 새가 왜 거기 있었을까?
1496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이며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박쥐의 날개 모양을 본뜬 비행 장치를 만들어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하지만 인간 근육의 힘만으로는 비행을 위한 추진력을 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독일의 기술자인 오토 릴리엔탈은 현대 항공학의 선구자적 인물로서 비상하는 새 날개의 공기 역학을 연구해 1891년 최초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제작했다. 그는 박쥐 모양의 날개를 한 글라이더를 타고 2000번이 넘는 비행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돌풍을 만나 추락사한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3개월간 1000번이 넘는 글라이더 시험 비행 끝에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무게 174㎏의 인류 최초 유인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Flyer)호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69년에는 음속의 2배가 넘는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민간 여객기인 콩코드가 등장한다.
현재 인류는 비행기를 이용해 자유롭게 대륙과 바다를 건너 지구 어디든 빠른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으며, 이제는 우주여행 관광상품으로 지구 대기권 100㎞ 높이까지 올라가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류의 삶의 질을 이전 시대보다 획기적으로 높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발달된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이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험도 가져왔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는 운송수단의 발달은 사고 발생 시 그만큼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보도된 국내외 항공기 사고다.
특히 작년 12월의 국내 항공기 사고는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철새와의 충돌 가능성을 꼽는다. 계절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철새들은 인간이 사용하는 나침반이나 GPS 장치 없이도 수백 킬로미터 이상의 대륙과 바다를 건너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철새의 이러한 놀라운 능력은 새의 망막에 있는 크립토크롬4라는 단백질이 새의 신경계로 하여금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인식하게 하는 생체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새들이 본능적으로 먹이를 찾아 다른 대륙에서 날아와 새로운 곳에 머무는 지점 근처에 공항이 있다면 새와 인간의 이해관계가 겹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천지 창조 이후 하늘은 인간의 생활 범위가 아닌 새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비행기 발명 이후 이제 하늘은 새들과 인간이 공존하며 서로의 목적과 안전을 추구해야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해법 제시는 새들이 아닌 인간의 몫이다. 인간 입장에서 ‘왜 공항 근처에 철새들이 많이 있을까?’의 문제는 철새들의 입장에서는 ‘본능에 의해 날아온 이곳에 왜 비행기가 있을까?’의 문제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밀랍으로 붙인 새의 깃털 날개로 크레타 섬을 탈출하려다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너무 높이 날아 날개의 밀랍이 태양에 녹아 바다에 추락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영향을 준다. 이 둘을 함께 만든 하느님의 의도를 어기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다 또 다른 이카로스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겠다.
[과학과 신앙] (17) 성 발렌티노 축일과 초콜릿
다가오는 2월 18일은 24절기 중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이다. 입춘(立春)도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기다리지만,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와 적은 일조량은 우수 어린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발생이 2배 이상 증가했는데, 특히 우리나라 우울증 발병률은 2020년 OECD 국가 중 1위였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국민은 100만 명을 넘었다. 이 중 여성은 67만여 명으로 남성 32만여 명의 2배가 넘었다. 이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남성에 비해 날씨·감정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연령별로는 20대가 18만여 명으로 최다(18.6%)였는데, 이는 사회 초년생인 20대가 겪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우울증의 임상적 정의는 ‘한 개인의 사회적·개인 일상사적 활동에 있어 정상적인 기능을 붕괴시키는, 극복하기 힘든 슬픔·절망의 상태’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과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자살률의 증가가 이를 증명한다. 우울증의 원인은 불명확하나 보통 사회적·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인체의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정서·수면·기억·식욕조절 등에 관여하며 결핍 시 우울증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해 자신에 대한 가치상실·무기력감·자신감 결여·식욕감퇴·자살 충동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세로토닌이 결핍되지 않게 하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항우울증 약의 원리는 뇌에서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인데, 단음식이나 초콜릿을 섭취해도 세로토닌의 분비가 증가한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에는 신경전달물질인 아난다미드의 분해를 억제하는 물질이 들어있다. 아난다미드는 사람과 돼지를 비롯한 동물의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기분·인식·수면·식욕 등을 자극해 기분을 좋게 해준다. 초콜릿을 먹으면 아난다미드가 서서히 분해되어 기분 좋은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팀은 초콜릿을 먹은 집단이 먹지 않은 집단보다 우울증 증상을 나타낼 확률이 70%나 낮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이는 초콜릿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줄이고 세로토닌의 분비를 도와 우울감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초콜릿 이야기를 할 때면 자연스레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떠오른다. 원래 이날은 로마 시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금지시켰을 때 비밀리에 혼인 성사를 주례하다 체포되어 순교한 성 발렌티노 사제의 축일이다. 14세기 영국에서 연인들을 위한 축일로 기념되기 시작한 성 발렌티노 축일은 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회사의 상술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변질되었다.
앞으로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주고받기보다는, 성 발렌티노 축일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도록 내 주변에 우울해하거나 홀로 힘들어하는 이는 없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나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했던 도움일 수 있다.
[과학과 신앙] (16)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198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로저 울컷 스페리 박사는 1970년대부터 뇌 연구를 통해 좌뇌·우뇌 이론을 만든 인지과학의 선구자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좌뇌와 우뇌로 구분되는 인간의 뇌는 특정한 기능에 더 특화돼 있다. 예를 들면 좌뇌는 논리적·합리적·이성적 판단 및 분석적 사고, 감정 절제와 관련돼 있고, 우뇌는 창의적 사고의 뇌로 직관적·주관적 판단·감정 표현에 관여한다. 좌뇌에서 나오는 신경은 목 쪽으로 향해 있는 뇌의 한 부분인 연수에서 신경이 교차해 우리 몸의 오른쪽 부분을 지배하고, 우뇌에서 나오는 신경은 그 반대로 우리 몸의 왼쪽 부분을 지배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감정 표출에도 영향을 준다. 정서와 관련된 기능은 우뇌가 좌뇌보다 더 정교해 똑같이 웃는 모습을 해도 우뇌의 명령을 받는 왼쪽 얼굴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사람의 얼굴에는 80여 개의 근육이 있는데 이 중 40여 개가 웃는데 영향을 준다. 사람이 웃거나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왼쪽과 오른쪽 얼굴의 미세한 근육 운동의 차이가 보는 사람에게도 차이를 만든다. 동·서양의 많은 초상화가 인물의 왼쪽 얼굴을 표현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왼쪽 얼굴을 보이며 미소 짓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1973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심리학자 이안 크리스토퍼 맥매너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16~20세기 서유럽 초상화 1400여 작품 중 남성은 56%, 여성은 68%가 왼쪽 얼굴이었으며, 2012년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심리학자 제임스 시치릴로는 왼쪽 얼굴이 오른쪽보다 상대방에게 더 매력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미술사학계의 대가 이강칠 선생이 우리나라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수록하여 펴낸 「한국명인초상대관」에도 196명의 인물 초상화 중 174명의 초상화가 왼쪽 얼굴이다.
2000년 전 유다인들은 왼손을 부정하게 여겨 자기보다 약자인 사람의 뺨을 때릴 때 오른쪽 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 한다. 오른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왼쪽 뺨을 때리는 것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뺨을 때린다는 것은 폭력이며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우월 의식을 드러낸다. 순우리말인 얼굴은 어원이 얼골이며 ‘얼’은 정신, 혼을 의미하고 ‘골’은 골짜기, 모양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따라서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통로이므로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뺨을 맞았을 때 더 큰 정신적 상처와 치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마태 5,3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참된 뜻은 폭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으로 받아들여진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가장 정서 표현이 잘 되는 왼쪽 얼굴을 보였을 때 상대에게 진심이 어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오른쪽 뺨을 맞았을 때 왼쪽 뺨을 돌려대는 용기와 진심을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 저항을 통해 실천했다.
일부 군중들의 폭력 사태가 언론에서 보도되는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어수선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비폭력 저항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과학과 신앙] (1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공식적인 첫 작품은 후원자였던 리아리오 추기경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술 취한 바쿠스(1497)’였다. 이 대리석 조각상은 로마의 술(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흥건히 취해 술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로마인들이 신의 축복이라 부른 포도주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인 술이다.
하지만 포도주를 포도주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다. 미생물의 이 놀라운 역할은 1864년에 와서야 프랑스 화학자이며 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서 밝혀진다. 파스퇴르는 프랑스 북동부 릴 대학 화학 교수로 있을 때 지역 양조업자로부터 포도주 제조 시 제대로 발효되지 않고 시큼해지는 현상에 대해 조사 의뢰를 받고 해결책 찾기에 몰두한다. 파스퇴르는 포도주 제조 때 사용하는 도가니에 효모가 아니라 유산균이 들어있는 경우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아세트산균에 의해 포도주가 시큼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과학사에서 빛나는 파스퇴르의 업적은 발효나 부패,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포도주의 주재료인 포도의 포도당 1분자가 효모에 의해 분해되면 최종적으로 에탄올 2분자와 이산화탄소 2분자가 생성되는데 이 과정이 에탄올 발효다. 효모 같은 단세포 생물의 생화학적 작용이 술의 에탄올을 만들어준다. 만약 포도주가 산소에 노출되면 아세트산 발효가 진행되어 식초가 되어버린다. 먹다 남은 포도주의 마개를 제대로 밀봉하지 않으면 시큼해지는 이유다.
2000년 전에는 포도주를 만들 때 포도를 으깨서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아 발효시켜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에탄올과 함께 생성되는 이산화탄소 기체는 가죽 부대를 부풀게 한다. 오래된 가죽 부대는 탄성이 떨어지고 뻣뻣해 결국 가죽 부대가 터지게 되어 술을 버리게 된다. 설사 터지지 않더라도 부푼 부대의 갈라진 틈으로 공기 중의 산소가 들어가면 포도주는 아세트산 발효가 일어나 시큼해져 마시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새 술은 탄력이 있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성경에도 이에 대한 말씀이 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 이 말씀은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2025년이라는 새 술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우리 사회는 그 술을 담는 부대이다. 정치·경제·문화·예술·교육·신앙 등 모든 분야에서 2025년은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초심을 잊지 말고 발전과 도약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 본질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의 본질, 교육자는 교육의 본질, 의료인은 의료의 본질, 신앙인은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과 역할과 시스템을 바꾼다고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철학과 결단력, 구습을 타파하려는 행동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초심을 회복해 기본으로 돌아가 본질을 회복하려 노력할 때 진정으로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이 모두 새로운 각오로 거듭나 새 술을 담을 만한 새 부대가 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