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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3:1-6 어리석은 자는(1) : 칼빈
칼빈은 “이 시편은 제 14편과 거의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다른 주석을 덧붙이는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매튜헨리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편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이 시편은 제 14편과 사용된 단어까지 거의 동일합니다.
이 시편의 목적은 우리로 우리의 죄악들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죄악들로 부끄러워하며 두려워하며 떨게 하며 하나님을 향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깨닫기가 대단히 어렵기에 이런 말씀들을 거듭 들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은 두들겨 효과를 내는 망치에 비유됩니다”라고 했습니다.
Ⅰ. 하나님은 시편 기자를 통해서 중요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주십니다(1-).
② 하나님은 자신의 확실한 지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를 증명하십니다(2-3).
③ 하나님은 가장 악한 죄인들인 박해자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4-5)
④ 하나님은 박해받는 자기 백성에게는 하나님 자신과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6-).
14편과 이 시편 간에는 사소한 차이만 있습니다.
그 차이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14편의 5-6절과 이 시편의 5절만 서로 차이를 보입니다.
14편에는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능욕하는데 관한 몇몇 표현들이 사용됩니다.
여기 그런 표현은 생략되고 하나님이 악인들에게 수치를 안겨주실 예언이 나옵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교회의 합창 인도자에게 두 번째 넘겨 줄 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5절 말씀을 비롯한 몇몇을 수정하였습니다.
이 시편을 노래할 때 우리는 인간 본성의 부패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참할 정도로 타락한 사실을 탄식하면서도 주의 큰 구원에 대한 소망속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Ⅱ. 시편 53편의 주제와 본문이 있습니다.
시편 53 편
1. 본 시편의 주제는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마할렛에 맞춘 노래”입니다.
칼빈은 “교훈을 위한 다윗의 시, 인도자에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 라 했습니다.
다윗이 14편에서와 달리 “마스길” 이라는 말을 덧붙인 사실을 볼 때 성령 하나님이 의도하신 반복 교훈인 사실이 명백합니다.
또 마할렛에 대한 박윤선의 해설대로 그 의미가 “질병”이라면 인생의 가장 고질병의 치유를 위한 반복 교훈시인 셈입니다.
이런 주제의 말씀을 볼 때 시편의 전체 내용은 어떤 개인들이나 특정인들의 노래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의 찬송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온 백성들의 찬송인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혹 한사람이 찬송하든지 몇 사람이 그룹지어 시편을 찬송하게 될지라도 항상 음악을 감상하려는 쪽에 서지 않고 함께 중심으로와 진심으로와 전심으로 찬송한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2. 여기서는 본문에 대한 짧은 해설을 듣겠습니다.
1) 본문 1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 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입니다.
본문 1절은 다윗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선언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스스로 계속 완고히 다져진 내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 체계를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한 절 안에 “무지”와 “부패”와 “무능”이 함께 제시됩니다.
우리가 로마서 1:18-32절에서 보는 구조와 같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체계의 선언이 가장 큰 파멸이라는 말씀입니다.
혹 하나님이 없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생활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입니다,
2) 본문 2-4절은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 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입니다.
2절에서 4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시각이 나타나 있습니다.
2-3절은 개인들에게도 전적 무지, 전적 부패, 전적 무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인생들을 한 무리, 혹 전체를 두고 볼지라도 전적으로 무지할 뿐이요, 전적 부패에 도 하나님께로부터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다는 것이요, 전적 무능에도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으로 주께서 친히 규정하십니다.
시편 53 편
4절은 그 인생들의 전적 무지와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에서 수행하는 죄악,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는 그 반역의 극치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를 말씀합니다.
그들이 무지한 죄악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떡먹듯이 혹은 식은 죽 먹듯이, 스스름 없이 삼켜 버리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굳이 끝까지 살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자들로 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3) 본문 5절은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입니다.
5절은 하나님 없이 사는 악인들의 결국을 우리의 언어 방식으로 선언합니다.
물론 이런 선언이 영원한 파멸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들의 삶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 하는 자로 규정합니다.
마치 다윗을 대항하여 다윗을 포위하려고 진을 친 상황을 하나님이 흩으시듯이 하나님이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저희들의 뼈를 흩으신다”는 표현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다”는 어법에서 저들의 영원한 멸망이 제시됩니다.
또 이 땅위에서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최상의 수치인 사실을 하나님의 종 다윗, 곧 신실하시고 유일하신 종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백히 드러내신다는 말씀입니다.
4) 본문 6절은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 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입니다.
6절 말씀은 온 세상이 하나님 없이 사는 것 같은 대세 속에서도 하나님은 시온에 하나님 자신이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을 두신다는 사실이 말씀됩니다.
6절 초두는 특이하게 성령으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성령으로 우리의 고백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형식 입니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가 그 말씀입니다.
또 다윗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즉시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와 같은 사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체득된 지식이 되어 “그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형식에서 하나님을 알아 모신 참된 지식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의 예배와 일상의 모든 신앙 생활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편 53 편
시53:1-6 어리석은 자는(2)
여기서 우리는 메튜헨리의 해설을 따라 단지 죄에 대한 우리의 슬픔과 혐오를 좀 더 강화시키기 위해 죄와 관련된 내용들을 간략히 살펴봅니다.
1. 죄가 사실 죄로 증명됐는가? 죄에 대한 고소는 입증되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사실을 증언해 주실 증인, 곧 너무도 명명백백한 증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보좌에서 사람들을 굽어 살피셔서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선한 것이 없는지를 잘 아십니다(2-).
사람들의 마음과 삶의 모든 죄악된 모습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납니다.
2. 과연 죄가 지닌 잘못이 있는가? 죄 속에는 어떤 해악이 존재하는가? 그렇습니다.
죄는 악입니다(1, 4). 죄는 불의한 것입니다.
죄 속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1, 3). 죄는 나쁘고 해로운 것입니다.
죄는 해로운 것들 중에서 가장 해로운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금과 같이 이토록 악한 세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러가는 것입니다(3-).
3. 죄의 원천은 어디인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은 이토록 악해졌는가? 그렇습니다.
죄의 원천은 주님 없이 나아가는 타락한 천사들과 타락한 사람들의 의지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계속 “우리를 그 앞에 불러서 결산하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없다.
또 우리가 장차 두려워 떨며 그 앞에 서야 할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악한 행실들은 그들의 악한 사고방식에서 흘러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면서도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4. 죄인들의 무지, 곧 그들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무지하고 부패한 생각들을 품은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생각으로든 행위로든 무신론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시편 53 편
주를 찾지 않는 자들은 그들 속에 총명이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그들 속에 총명이 없으므로 짐승들과 같습니다.
사람은 이성의 힘이 아니라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 짐승과 구별됩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무지하여 참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자들입니다(4-).
5. 죄의 더러움과 죄인들의 부패가 있습니다(1-).
그들의 본성은 오염되고 썩었고 본성이 고상하면 할수록 그 본성이 부패하게 될 때 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천사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것들이 부패하였을 때 그것들은 가장 나쁜 것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들의 죄악은 가증스럽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악취입니다.
또 죄는 사람들을 악취가 나는 자들로 만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것을 하나도 미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을 참으로 더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하늘의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 앞에 고약한 냄새입니다
교만한 죄인들이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악은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이 확실합니다.
6. 죄의 열매를 의의 열매와 대조해 볼 때, 거기에는 죄인의 무능이 있습니다.
죄는 결국 사람들을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죄의 속임수에 의해서 완악해질 때,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 그들의 뼈 중의 뼈인 골육들에게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십시요.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과 함께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려 한다고 해서 그들은 떡먹듯이 그들의 형제들을 먹습니다.
그들이 짐승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짐승을 잡아 먹는 짐승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멸시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이 꿀꺽 삼키는지를 보십시요.
그들은 주를 부르지 않고 도리어 그들이 주께 은혜를 입고 있다는 말을 코웃음칩니다.
7. 죄에는 그 죄에 반듯이 죄책과 사망이며 두려움과 수치가 따릅니다(5-).
하나님을 자신의 원수로 만들어 버린 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그들 자신의 양심이 느끼는 죄책감으로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 죄책감은 그들을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채웁니다.
시편 53 편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느니라” 는 말씀이 그들에게는 사실로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이유를 보십시요.
그것은 하나님이 전에 그의 백성을 대항해 진친 그들의 뼈를 흩으셔서 그들의 세력을 꺾고 그들의 군대를 흐트셨고 그들을 죽이셔서 그들의 시신을 마른뼈가 되게 하시며 그 해골이 스올 곧 음부의 입구에 뿌려진자들같이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시141:7)
주의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포위해 공격하는자들의 결국이 그렇습니다(계20:9)
이런 사실을 안다면 주의 백성을 먹어치운 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기겁할 것입니다.
이 사실로 인해 처녀 딸 시온은 주께서 그 대적들을 멸시해 버리셨고 그들은 수치를 당했던 일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늘에 앉아 계신 이가 그 대적들을 비웃으시기에 처녀 딸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대적들을 비웃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찮게 여기시는 자들, 즉 우리의 원수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하찮게 여기시고 멸시하신다면 우리도 그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습니다
8.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성도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 큰 악을 치유하는 것과 관련된 성도들의 소망과 성도들의 능력이 주께 있습니다(6).
우리의 구세주로부터 큰 구원, 곧 죄로부터의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사모합니다.
그 날은 영광스럽고 즐거운 시대가 시작될 날입니다.
옛시대에는 이런 구속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기도하고 기다렸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1)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원수들의 죄악된 악의로부터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오랫동안 암울하고 비참했던 야곱과 이스라엘은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말씀에서 확인하는대로 그러한 구원 사건들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영광스러운 교회의 영원한 승리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2)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을 그들의 죄악에서 구원하셔서 그들로 죄악의 포로가 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영원히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구속주께서는 이 일로 말미암아 예수라는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이는 그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마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