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8] 강종원 (康種元) - 예시로 이끌어주신 뜻길 13. 수도권 복귀의 명을 받고 1 1981년 10월, 아버님께서 “430가정 이상 선배 가정은 수도권 복귀를 위하여 총동원하여 서울과 경기도 인천에 각 동마다 교회를 세우라.”라고 하시면서 각 동마다 한 가정씩 배치하셨다. 2 지방 목회자 가정들은 준비 기간이 필요하여 1982년 2월에 임지에 도착하였는데, 나는 당시 서울 변두리 지역인 강서구 신월 2동에 방 두 개를 얻어 하나는 교회로, 다른 하나는 여섯 식구가 사는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잠잘 때는 편히 누울 수가 없어서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잤다. 그래도 겨울나는 데는 견딜만했지만, 그 해 여름은 더워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3 서울에서의 개척 생활은 지방에서보다 더 고생이 많았다. 아이들은 커서 학교를 다니고, 개척교회라서 식구는 없고 하여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각하였다.
4 집사람이 보따리 장사를 하였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다가 머리에 이고 어깨에 메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이집 저집 팔러 다녔다.
5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데, 2층 집 계단을 오를 힘이 없어 대문 밖에 봇짐을 내려놓고 주저앉아있으면 부축하여 올라오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6 나는 스스로 세탁도 하고 밥도 하는 한편 가정 방문도 열심히 하면서 전도에 열성을 다하였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노정같이 우리도 앞으로 3년은 죽었다 하고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고 출발한 서울 개척 생활이었다. 혼자 사는 정춘택 식구가 동네 노인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왔다.
7 그래서 나는 그런대로 강의도 할 수 있었고 서너 명이 모여서 예배도 드렸다. 얼마 후 김영자 집사와 박일섭씨 부부가 교회에 나와 합세하니 큰 힘이 되었다. 1984년이 되자 식구들도 30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신정 5동에 30평짜리 성전을 마련하여 이사하였다. 8 3년 기간이 끝나갔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집사람도 보따리 장사를 그만두고 전도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특별 40일 철야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식구들도 함께 정성을 들이며 열심히 전도를 하였다. 그 결과 식구가 60여 명으로 불어났다. 9 나는 교회 발전과 전도 목표를 12명 21명 40명 70명 120명 210명의 숫자를 찾아세우는 것으로 정하고 활동했는데, 한 단계의 목적이 달성되면 이상하게도 식구들이 시험이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식구 간에 불화가 생기는 현상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10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한 단계 목표에 도달하면 즉시 탕감 조건을 세우는 방법으로 40일 철야 기도나 7일 금식 기도를 하였는데, 그렇게 하니까 식구들이 단합되고 순조롭게 다음 단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11 식구들이 불평하거나 순종치 않으면 식구들을 타이르거나, 야단치는 대신 내가 탕감 조건으로 금식하고 철야하는 생활로 교회를 이끌고 식구들을 인도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은혜로운 분위기 속에서 차츰 발전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