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전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훈민정음’ 등 국보·보물급 100여점 ‘명품 중의 명품’ 첫 대규모 나들이
한국 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인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마침내 시민들에게 더 다가왔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 설립 기념전 ‘간송문화(澗松文華)-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는 한국미술에서 ‘명품 중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지난 40여년간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전시회를 가진 간송미술관의 첫 대규모 외부 나들이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는 국보·보물 등 다양한 고미술품 100여점이 짙은 문화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먼 뒷날 민족의 문예부흥을 꿈꾸며, 사라져가는 문화재를 수집함으로써 ‘문화적 독립운동’을 벌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노고 덕분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기념전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내 디자인박물관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품을 세심하게 관람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숱한 비화를 지닌 명품들
6월15일까지 이어지는 1부 전시에는 평소 접하기 힘든 미술품들이 나와 있다. 명품 감상도 의미가 크지만, 무엇보다 전시된 명품은 간송의 수집 일화들이 오롯이 녹아 있는 것이라 더 주목된다.
첫 일반 대중전시인 ‘훈민정음’(국보 70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한글을 만든 원리와 자음·모음의 내용, 문자 사용에 대한 해설을 묶은 책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원본’으로도 불리는 책은 세종 28년(1446)에 엮었는데, 유려한 글씨를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됐다. ‘훈민정음’은 15세기 출판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간송의 ‘훈민정음’ 수집일화는 극적이다.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이 거세진 1940년 7월 중순 어느 날, 간송은 경성 시내 한남서림에 들렀다가 책 거간으로 이름난 한 인사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있다’고 직감, 그를 불렀다. 그는 “경상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출현했는데 그것을 사기 위해 1000원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1000원은 큰 기와집 한 채 값이다. 간송은 1만1000원을 내주며 “1000원은 수고비”라고 말했고, 결국 ‘훈민정음’은 그가 세운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에 소장돼 간송 컬렉션의 백미로 꼽힌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유려한 글씨를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됐다.
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교과서 등에도 실리며 고려상감청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은 그 아름다움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41.7㎝ 높이에, 흑·백 이중으로 상감된 원 안에는 하늘로 날아가는 학을, 원 밖에는 땅으로 내려오는 학을 그렸다. 고려 때 최고급 청자를 빚은 강진이나 부안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구름·학은 고대 신선사상과 연관돼 장수를 상징한다. 간송이 1935년 일본인 골동상에게 거금 2만원을 주고 확보했다.
처음으로 전면이 공개된 ‘촉잔도권’은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과 더불어 ‘삼재’로 불리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의 일생일대 대작이다. 가로가 무려 818㎝, 세로 58㎝의 유례가 드문 크기의 작품은 현재가 타계 9개월 전 평생 화업을 총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을 쪼개 부분적으로 관람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촉잔도권’은 또 문화재 수집·보호에 대한 간송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너덜너덜한 ‘촉잔도권’을 5000원에 수집한 간송은 무려 6000원을 들여 이를 일본 교토로 보내 수리·표구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촉잔도권’을 볼 수 있는 이유다.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부분). 조선시대 ‘삼재’로 꼽힌 심사정이 평생의 화업을 정리하며 남긴 일생일대의 역작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중 ‘단발령망금강’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한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도 있다. 화면 위의 바위산은 북방계의 강한 붓질법(필묘), 앞의 흙산은 남방계의 부드러운 먹칠법(묵묘)으로 처리하는 등 화면 구성에 음양조화의 ‘주역’ 원리가 적용됐다는 평가다. ‘단발령망금강’은 21점의 그림·시로 구성된 ‘해악전신첩’의 하나다.
‘해악전신첩’은 1930년대 초반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가 될 뻔한 것이 결국 간송에게 들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30점이 수록된 ‘혜원전신첩’(국보 135호)도 순차적으로 처음 모두 일반에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그네를 뛰고, 창포에 머리를 감는 단오날 풍속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단오풍정’ 등 10점이 선보이고 있다. 간송의 스승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서화감식의 대가 위창 오세창은 1936년 1월 ‘혜원전신첩’에 ‘일본인 거상의 손에 넘어가버려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이를 확보하기 위해 간송은 여러 해 동안 공력을 들여 겨우 지키게 됐다’는 내용의 발문을 써놓았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중 ‘단오풍정’
추사 김정희의 ‘침계’. 추사가 제자인 침계 윤정현에게 써준 편액으로 ‘침’자는 30여년의 고심 끝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회에는 추사체를 이룩한 추사 김정희가 제자인 침계 윤정현의 부탁을 받았으나 ‘침’자의 예서 전형을 찾지 못해 30여년 고심 끝에 예서·해서 합체로 썼다는 ‘침계’, 현대적 미감으로도 세련된 형태에 절제된 화려함이 돋보이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294호) 등도 있다. 또 간송이 1937년 땅 5000석지를 팔아 일괄 인수한 도쿄의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도 전면 공개됐다.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270호) ‘청자오리형연적’(국보 74호) 등이다.
국보 제294호인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국보 제270호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 간송미술관의 변화
간송미술관은 1971년 가을 첫 전시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1년에 봄·가을 두번 전시회를 열어 왔다. 2000년대 들어선 전시 때마다 많은 관람객이 몰리면서 전시 환경개선 등이 요구됐다. 이에 간송미술관은 지난해 8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이사장에는 간송의 차남 전성우 전 서울대 교수, 간송미술관장에는 삼남인 전영우 전 상명대 교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에는 최완수 전 학예연구실장, 전 이사장의 장남 전인건씨가 재단 사무국장을 맡은 체제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전으로 시대 변화에 맞춰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DDP에서의 전시는 앞으로 3년간 전시품을 교체하며 진행된다. 재단은 또 중장기 계획으로 현대식 미술관과 연구소, 종합문화관을 건립하고, 다양한 문화사업, 민족문화예술 연구와 진흥을 위한 저술활동, 장학사업 등도 계획 중이다.
전인건 사무국장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간송미술관 수장품의 보존 활동 현대화, 연구 활동의 활성화 등으로 민족문화 발전에 계속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민족문화재 수호자’ 간송 전형필
간송미술관 설립자 전형필의 생전 모습.
간송은 ‘문화적 독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일제 강점기에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을 갖고, 이를 평생 실천했기 때문이다. 또 민족학교인 보성고보(현 보성중·고)가 폐쇄 위기에 놓이자 인수, 민족교육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서울의 대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생가, 양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그는 선조들이 남긴 빛나는 문화유산이야말로 일제가 왜곡시킨 역사와 전통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믿었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들은 일본인들이 ‘싹쓸이’해 빼돌리거나, 훼손돼 사라지는 실정이었다.
20대 후반인 1930년대부터 타계 전까지 그는 평생 온 재산을 쏟아부으며, 끈질긴 노력으로 이들 문화재를 수집·보존했다. 숱한 수집 일화는 문화계의 화젯거리다. 그가 문화적 독립운동가가 된 배경에는 스스로에 대한 시대적 성찰과 더불어 스승들의 영향도 컸다. 고교시절 미술교사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 고희동, 춘곡의 소개로 만난 위창 오세창 등이다. 간송은 수집품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1938년 지금의 성북동에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이번 전시회에는 간송의 삶과 예술을 보여주는 유품들도 있다. 그의 비망록, 친필 에세이, 사진, 서화와 도자, 전각 등이다.
<도판 제공 | 간송미술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