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1(목)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희망은 목표에 집중한다 .
희망이 있는 사람은 뭔가 눈빛도 다르다.
눈빛이 흐트러지질 않는다.
희망을 가지면 목표만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심에서 잡다한 잔가지를 쳐 준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자들은 '아, 핸드백 하나 사고 싶다'
그러면, 그날부터 핸드백만 보인다.
핸드백, 가죽 핸드백, 에나멜 핸드백,
짝퉁 핸드백,거리를 다니면 온통 핸드백만 보인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의 핸드백이 안 보인다.
여자들이 뭘 들고 다니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반면에, 여자들은 이에 관심이 있어 어떤 핸드백을
들고 왔는지,또 무슨 옷 입고 왔는지 다 안다.
이렇게 희망은 우리의 관심이 이리저리 분산되는 것을 막아 준다.
나아가 희망은 에너지를 집중시켜준다.
우리에게 [감자]와 [배따라기]로 유명한 소설가 김동인이
서울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어렵게 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견디다 못한 그가 동아일보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편집국장으로 있던 이광수에게 연재소설을
쓰기 위한 지면 할애를 부탁하기 위해서 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광수는 원고료를 한꺼번에 지급하면서 위로까지 덧붙였다.
"자네의 좋은 작품 기대하겠네."
이후 김동인은 방에만 틀어박혀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필력은 놀라웠다.
200자 원고지로 1,600여 장에 달하는 204회 분의
연재소설을 단 한 달 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원고료로 환산해도 600원이 넘는 돈을
벌어 한 달 만에 셋방살이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문인들은 그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돈을 낳는 거위'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광수의 위로와 기대는 문학청년 김동인으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했고,이는 그를 집필에 몰두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듯이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에 몰두하게 한다.
열정을 갖고 혼신을 바치게 하는 힘은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로 희망으로 인해 에너가 모아지는 것이다.
분산되고 흩어지고 소멸되는
에너지를 모으면 이것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희망을 향한 이러한 집중력은
그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신념'에 비례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은 그대로 사실이다.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 한 명의 힘은 관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 아흔아홉 명의 힘과 같다."희망을 가져라.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실로
우리 이웃의 삶의 질이 향상되리라는 신념을 가져라.
그러면 그 신념이 혼신을 바쳐 목표를 관철하고 말 것이다.
여기 희망의 장인 퀴리부인의 권고에 귀 기울여 보자.
퀴리부인이 태어났을 당시 폴란드는
제정 러시아의 점령하에 있던 상태라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학대 받으며 암담한 생활을 해야 했다.
퀴리부인은 이렇게 도저히 실험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 연구가 성공을 거두었을 때에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구는 애국심의 표현이며
동포애 실천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퀴리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일에 참여하면 목표로 한 모든 것을 성취할 때까지
손을 떼지 마라.우리는 무엇이든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어떠한 희생을 치를지라도
도달해야 할 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좋은글 중에서 -
김동인(金東仁)
예술지상주의를표방하고순수문학운동을벌인우리나라의소설가(1900~1951). 호는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이다.
1919년최초의문학동인지(同人誌) 《창조(創造)》를창간하고, 처녀작 <약한자의슬픔>을비롯해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닮았다> 등의단편소설을발표하였다. 근대문학의확립과정에서문단을주도했던이광수의계몽적 교훈주의에서벗어나, 문학의예술성과독자성을바탕으로한본격적인근대문학의확립에이바지하였다.
이광수(李光洙)
이광수((1892. 3. 4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 1950년10월 25일) )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 친일파이었으며, 조선왕가의 방계혈족,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쓴 소설가. 친일에 앞장서 조선문인협회 의장을 지냈고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일본명으로 창씨개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때 독립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 등을 맡기도 했었다. 유교적 봉건 도덕, 윤리관을 비판하였고,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했다. 언론 활동으로는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번역가로도 활동하여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1921년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칼럼과 장·단편 소설, 시 등을 발표하였다. 안창호, 윤치호, 김성수 등의 감화를 받아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제창하였으며, 1922년흥사단의 전위조직인 수양동맹회를 조직하고, 안창호를 도와 흥사단 국내 조직과 수양동우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하여, 친일파로 변절한 이후에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규탄받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민족성, 인간성의 개조를 주장하였고 한때 나치즘 등에도 공감하기도 했다. 그는 안창호, 윤치호의 사상적 계승자이기도 했다.
1969년도 제작되어 2014. 12. 26개봉된 영화.
이광수와 그의 아내 허영숙이 만나게 된 동기에서부터 그들의 사랑이 익어 가는 동안의 작품활동과 중국망명시에 안창호와 함께 한 독립운동,일제 말기에 부득이 양심을 속이고 학병지원을 권장하였으며 8.15해방 이후 반민 특위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고 무죄석방을 받았으나 6.25당시 납북 당하는 등 춘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영화화 한 전기물.
1939년 12월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창씨개명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해방 이후 백범일지의 교정, 윤문과 안창호의 일대기 집필을 주관하였다. 1949년반민특위에 기소되었으나 석방되었고, 1950년 6월 한국 전쟁때 서울에 있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납북되었다. (그해 10월 사망).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소설가로는 구한 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청소년 남녀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년 5월 20일~1873년 5월 8일)은 영국의 사회학,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서,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사회평론 등에 걸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경험주의 인식론과 공리주의 윤리학,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사상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공리주의는 대부이자 스승이었던 벤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여기에 생시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가미해서 나름의 체계로 발전시켰다. 『논리학체계』, 『정치경제학원리』, 『자유론』 등, 전 33권으로 이루어진 전집("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University of Toronto Press)이 있고, 그 밖에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집필한 수많은 보고서를 남겼다.
마리 퀴리(Marie Curie )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폴란드어:Maria Skłodowska-Curie, 폴란드바르샤바, 1867년11월 7일 ~ 1934년7월 4일)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이다.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폴란드어:Maria Salomea Skłodowska)이고, 프랑스식 이름은 마리 퀴리(프랑스어:Marie Curie)이다.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다.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2회 수상한 기록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인물로서는 최다 기록이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회상(어젯밤 이야기)
李사장 사무실에 잠깐 들렸습니다. 그는 선배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강원도 고성의 자신의 집에서 직접 만든 저염도 명란 젓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눈물나게 고마웠습니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훌륭한 사업가인 후배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한성동우회의 번개팅 모임이 봉천동 소재의 '동창식당"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는20연년전 강의를 해 주셨던 鄭교수님이 처음으로 참석하시어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분은 오래 전부터 우리 한성모임에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 오셨는데, 이제 정년퇴임을 한 후라서 드디어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모시게 되었지요. 이날을 위해 울 마나님께 '킹크렙'을 주문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때마침 오전에 집에 그 택배물이 도착했으나, 그걸 갖으러 근무중에 멀리 집까지 다시 갈 수 없었습니다. 마나님께 버스를 타고 회사로 좀 갖다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퇴근시간을 앞두고 이것 역시 여의치 않아서 에라이~ 그냥 가자! 라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대신 저녁식사는 내가 내면될 껏으로 판댄했지요. 그런데, 동창식당에 마련된 거한 음식값은 나우바리가 이곳인 맹사장께서 화장실을 간다고 핑게를 대곤 이미 계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흑~흑~흑~
퇴근길
노량진에서 회라도 한접시 떠서 갈 생각이었느나, 엄청 차량이 밀려서 봉천동 모임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리지 못하고 그냥
통과한 것이 그래서 더 무지 아쉬웠습니다. 모처럼 귀한 모임자리였지만 차량을 갖고간 터라 맥주만 딱 2잔을 하곤 승용차를 몰고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처럼 교수님이 참석한 자리라서 늘 하던 '단합대회 놀이'를 오늘 만큼은 생략했기 때문이지요. 어떻든 이로 인하여 때마침
여의도에서 퇴근도 하지 않고 야간근무 중이던 아들녀석과 연락이 되어 함께 귀가할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20여년 前, 옛 원우회
시절 우리를 담당했던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은 너무도 소중했고 또 많이 행복했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