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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
洪 性 敏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
Ⅰ. 서론
Ⅱ. 노인혁명은 가능한 일인가?
Ⅲ. 老軀에 대한 두 가지 사회적 인식
Ⅳ. 유교철학에서 본 養老의 정치학
Ⅴ. 결론
<국문요약>
이 논문은 유교철학의 관점에서 노년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노인 복지
의 필연성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 글은 우선 노화된 몸의 사회적
의미를 탐색함으로써 문제에 접근한다. 이 글이 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까
닭은, 그간 노년 문제를 다룬 동양철학의 연구들이 다분히 개인적이고 관념적
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 현안에 대한 유익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
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노인혁명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노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 글은 현
대 사회와 동양 사회에서 노화된 몸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비교 고
찰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이와 대비되
는 동양 사회의 유익한 지점을 밝히고 있다. 고찰에 따르면, 동양 사회에서
노화된 몸은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는 영예로운 대상이
었다. 이점은 심각한 폄하와 소외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노년의 실상에 대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글은 왜 유교철학에서 養老를 국
가적 정치 행위로 규정하고 실행하였는지의 이유를 고찰하고 그 의의를 해명
한다. 논문에 따르면, 유교의 정치학에서 양로는 비단 노인 뿐 아니라 모든
* 이 글에 대해 적실한 지적과 귀중한 조언을 해주신 세 분의 익명 심사자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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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생명을 존중하고 창달케 하는 것으로, 단순한 개인적 윤리 행위가 아니
라 국가의 필수적 정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老年, 養老, 老軀, 장수, 사회적 안전망
I. 서론
우리 사회는 고령화 사회를 지나 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2018년
에는 인구의 14% 이상이, 2026년에는 인구의 20% 이상이, 또 2040년에
는 인구의 40% 이상이 노인들의 자리가 될 것이다.1) 우리 사회는 급격
히 늙어가고 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은 여전히 미비한 상
태이다. 이런 사회적 추세를 잘 악용이라도 하려는 듯, 새로운 소비자층
을 겨냥한 실버산업이 각광받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마술 같은 안티 에
이징 상품이 나래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의 노인들 중 얼마나 이
러한 상술에 호응하여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노년 문제의 실상은 노인 일자리 창출과 월 20만원
의 기초 연금 수급에 관한 것이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 처한 상당수의
노인들에게 실버산업과 안티에이징은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사
회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사회적 설움에 진입하는 것이며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철학의 본
질이 인간과 인생을 통찰하는 것에 있다면, 늙음의 문제는 철학이 다루
어야 할 필수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노년의 문제
를 다룬 철학 연구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서양철학 분야에서
그렇다. 보부아르(S. de Beauvoir)가 말한 대로 서양 사회에서 노년은 수치
1) 「경제발전 주역인 노인 세대, 누가 ‘흘러간 청춘’을 보상해줄 것인가」 한국경제
신문, 2014년 3월 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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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운 일로 치부되기 때문일까? 노년은 서양의 철학과 문학에서 혐오
스러운 주제로 인식되고 있다.2) 뿐만 아니라 보부아르가 노년 연구의
필요성을 그렇게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양 철학에서 이 문
제는 무관심하거나 혹은 회피되는 주제이다.3)
그렇다면 동양철학의 사정은 어떠한가? 동양철학 분야에서의 노년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하다. 보부아르가 노년을 폄하해온 인류의 역
사에서 중국을 제외시켰던 것과 같이, 분명 동양적 전통에서 노년은 서
양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로 간주되어왔다.4) 동양 사회에서 노인은 항상
사회 계층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고 동양 문화의 담론에서 노년은 자연
스럽게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했다. 더욱이 敬老와 養老는 동양 윤리학
에서 가장 핵심적인 항목이기도 했다. 요컨대 동양문화에서는 노년에
관해 이야기할 거리가 풍부하였고, 그런 만큼 현재의 연구 역시 다양하
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동양철학의 전통에 기대어
현대 사회의 노년 문제에 접근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받을 것이라 기대
할 수 있다.
2) 보부아르(S. de Beauvoir), 노년, 나이 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책세상, 2002. 8쪽.
3) 국내의 연구 성과 중 서양철학 분야에서 노년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는 장영란
의 논문이 있다. 「늙음의 현상과 여성주의 윤리」, 동서철학연구제51호, 한국
동서철학회, 2009와 「늙음과 죽음의 윤리」, 서양고전학연구제35집, 한국서양
고전학연구회, 2009가 있다. 이외 강손근의 「늙음과 돈으로 보는 플라톤의 정의
론」, 철학논총제57집 3권, 새한철학회, 2009.도 있다. 그러나 강손근의 논문은
전문적으로 노년의 문제를 다룬 연구라기보다 정의 문제에 더 초점이 놓여 있
음을 감안한다면, 서양철학 분야에서 노년에 관한 연구는 장영란의 논문뿐인
것 같다.
4) 보부아르, 앞의 책, 123~125쪽 참조. 보부아르는 중국이 노인들에게 기이한 특
권적 조건을 부여한 나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왜 중국 문명에서 노인들이 특
권을 누리게 되었는가에 대해 두서없이 간략하게 언급한다. 그리고는 그 문화
안에서 젊은이들(특히 젊은 여성들)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노인의 권위 순종해
야 했다는 언급을 늘어놓고 있다. 중국에 관한 그의 생각은 단순하고 비우호적
이다. 그가 노년의 역사에서 중국을 예외로 둔 까닭은 중국 문화의 특수한 가
치를 인정하려 한 것이라기보다 중국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나라라고 간주하였
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중국 이해는 헤겔의 폄하적 中國觀과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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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양철학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행여 실망으로 끝나지는 않을
까 우려되기도 한다. 동양철학에서 노년의 문제를 다룬 논문들은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즉 한 노년의 개인이 늙음이라
는 자연적 현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고 또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에 많이 치중해 있다. 이 연구들은 주로 孔子의 從心경지
를 이상적 모델로 삼고서, 도덕과 욕망, 자유와 인격이 합일된 인격을
추구하는 것이 동양적 노년학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러한 연구들은 동양철학에서만 추구되어온 노년의 정신 경계를 매우 훌
륭하게 조명하고 있고, 그 현대적 의의도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만,5) 이것
만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과연 이 사회에서 노년의 문제가 그렇게 개인적인 일에 불과한 것일
까? 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고 노인의 삶의 질은 최악의 수준인 우
리 사회에 필요한 철학적 제안을 동양철학에 제공할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현대 사회의 노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철학적 정치철학적
혜안을 동양철학이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논문의 목적은 노년의 사
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철학적 시각을 유교철학으로부터 발굴하여 제
안해보는 데 있다. 적어도 유교철학에서 노년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인
격 도야에 국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 복지와 정치의 목적이라는 차
원에서 더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왔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철
학에서 표명되는 노년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노년 문제를 검토
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더 근본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
고 판단된다.6)
5) 이에 관해서는 김경호, 「늙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퇴계와 율곡의 경우를 중심으
로」, 율곡사상연구제9집, 율곡학회, 2004./ 김경호, 「웰이에징: 노년의 삶에 대
한 여헌 장현광의 성찰」, 동양고전연구제49집, 동양고전학회, 2012./ 김문준, 「유학에서의 ‘늙어감’에 관한 지혜」, 철학제106집, 한국철학회, 2011./ 최재목, 「유교에서 ‘老’의 의미와 기능」, 유교사상연구제33집, 한국유교학회, 2008./ 이
승연, 「유가에 있어서 ‘老人’」, 유교사상연구제42집, 한국유교학회, 2010. 등을
참고할 것.
6)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노년문제에 접근한 논문으로는 임헌규, 「노년문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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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에서 이 글은 노년의 의미를 현상적 사회적 범주에서 접근
하고자 한다. 즉 원숙한 정신보다는 늙어가는 몸을, 개인적 인격 도야보
다는 사회적 복지의 문제를, 윤리학적 敬老보다는 정치학적 養老의 문
제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企圖하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우선 노년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한 입장(‘노인혁명’론)에 대해 비판
적인 분석을 감행할 것이다. 이 입장은 노년 문제를 사회학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신중히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 입장에 대한 검토를 수행하는 과정
에서 이 글이 지향하는 노년관의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
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 다음으로 현대사회와 전통유교사회에서 ‘늙은
몸’의 사회적 의미를 대비시켜 봄으로써, 노년에 대한 유교적 관점의 의
미가 무엇인지 제시할 것이다. 유교사회에서 노년을 어떻게 인식하였고
노인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였는지 살펴보고 그 철학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교사회
에서는 왜 敬老를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하였고, 또 養老를 왜 국가적 차
원의 중대한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였는지를 사회철학적 정치철학적 관
점에서 해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유교철학의 노년관이 현재의 노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색해보고자 한다.
동양철학적 접근(1)」, 철학연구제108집, 대한철학회, 2008./ 홍승표, 노인혁
명, 예문서원, 2007./ 이현지,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본 한국 노인복지의 현주
소」, 동양사회사상 제22집, 2010 등이 있다. 이 중 임헌규는 현대 사회의 노
년 문제가 근대적 개인주의의 팽배로 인해 발생한 병폐라고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가철학의 관계적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타당하나 얼마나 구체적 상황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홍승표와 이현지는
거의 같은 논조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검토하
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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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노인혁명은 가능한 일인가?
유교철학에서 노년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었으며, 국가 정권의
정당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정치적 문제이기도 했다. 만일 동양철학의
노년관을 단지 인생의 달관과 인격의 완성으로만 국한시킨다면,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일 뿐 아니라 동양철학에 대한 깊은 오해를 양산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 필요한 유익한 의미를 제공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학적 차원에서 동양철학의 노년관을 재해석하고
있는 ‘노인혁명’론7)은 의미 있는 주장임에 틀림없다. ‘혁명’이라는 타이
틀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이 주장은 노년문제에 대한 사회적 범주의
논의일 뿐 아니라 실천적 차원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주
장은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동조를 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동양철학의 노년관에 대한 오해와 왜곡의 위
험이 잠복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주장의 문제점을 상세히 검토해보
기로 하자.
이 주장에 따르면, 노인 소외의 문제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인해 발생
하였다. 근대적 세계관의 특징은 노동력을 궁극적인 가치로 여기고, 욕
망 충족을 삶의 제1 목적으로 간주한다. 이와 비교해 볼 때, 현대 사회
의 노인이 처한 상황은 정반대이다. 노인은 노동력을 상실한 무용한 존
재이고 노인의 욕망은 충족될 수 없거나 추잡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근
대성과 노인은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적 세계관에서는
노년을 비관적 시기로 간주하고 사회 바깥으로 배제시키려 한다. 이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노인 소외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를
검토할 반성적 시각도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탈현대의 사회가 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술 혁명으
7) 홍승표의 노인혁명, 예문서원, 2007을 가리킨다. 이 장에서는 이 책의 제1부
제2부를 중심으로 비판적 검토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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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되고 有閑
의 대중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탈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생산해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얼마나 더 질 좋은 여가를 누릴 것인
가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이러한 여가의 증가는 근대 문명
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눈 뜨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有閑한 개인들 중
에 ‘창조적 일탈’을 시도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창조적 일탈이란, 근대적
인 가치들(예를 들어 성공, 안정된 직장, 사회적 지위, 부의 축적, 쾌락
등)을 거부하고, 깨달음, 자연친화적인 삶, 樂道하는 삶, 자유로운 삶, 한
가로운 삶과 같은 탈근대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8) 그들
의 행위는 탈현대 사회의 모범이 된다. 이제 모든 有閑한 사람들은 외적
이고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참된 자기’에 대한 진지
한 관심으로 삶의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통일체적 세계관’이다. 통일체적
세계관이란 서양의 근대적 세계관에서 개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설정하
고 개인 간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것과 상반되는, 세계를 하나의 全體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華嚴의 一卽多多卽一, 道家의 萬物一體, 성리학
의 理一分殊가 공통적으로 그러한 통일체적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자기 수양에 전념할 때, 근대 문명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의 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혁명의 주인공은 특히 여가시간이 많은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자
기에게 주어진 많은 여가를 창조적 일탈을 위해 활용해야 하고, 또 자기
수양을 통해 통일체적 세계관을 체득하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근대 문명을 전복할 수 있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소외의 대상이었던 노인은 탈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창
8) 홍승표는 창조적 일탈의 대표자로 하버드대학 출신 승려 현각과 그 외 미국 상
류층 가정과 명문대 출신인 여러 승려들, 서울대 출신 8명의 승려들, 안정된 직
장을 버리고 전원생활을 택한 몇몇 사람들을 제시하고 있다.(위의 책, 58~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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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양과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존재의 비약을 이룬 노인이 자신이 체득한 동양의 통일체적 세계관으로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는 혁명의 주역이 된다는 것이다.9)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그리고 얼마나 현실적인 설
득력과 실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회의적이다. 우선 이 주장의
전제부터 다시 뜯어봐야 한다. 생산현장에서 소외된 노인은 확실히 많
은 여가를 누린다. 그러나 과연 노인들의 시간을 ‘여가’라고 말할 수 있
을까? 여가는 여유 있는 시간이지 할 일 없는 시간이 아니다. 대한민국
은 OECD국가 중 최악의 노인빈곤 국가이고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
라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게는 ‘할 일이 없는’ 시간들만 있을 뿐이지
여유 있는 시간이란 없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과연 여가란 말이 어울리는가? 지하철 택배와 같은 사소한 노동에라도
老軀를 팔아야 하는 노인들에게 여가가 있는가? 여전히 생산 라인에 머
물고자 안간힘 쓰는 그들의 생존 욕구를 근대적 사고관이라고 비판할
것인가? 이런 노인들에게는 통일체적 세계관을 배우고 수양과 깨달음으
로 여생의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학대가 되지 않을까?
이런 노인들이 탈현대 사회의 혁명 주체란 말인가? 노인혁명론은 현재
노인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
은 채 오직 노인들은 시간이 남는다는 표면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그 남는 시간이 주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
지 않는 것 같다.
보부아르가 꼬집어 말하는 것처럼, 노인들의 많은 시간을 자유와 여가
라고 표현하는 것은 ‘염치없는 거짓말’에 가깝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
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생활수준은 너무도 비참하
다. ‘늙고 가난한’이라는 말은 중복 표현이 되었다. 극빈자의 대부분은 노
9) 이현지는 홍승표의 주장을 적극 추종하면서 노인혁명을 재차 강조하고, 한국
노인복지의 새로운 방향을 修養과 樂道의 교육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현지, 앞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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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이다. 여가 시간이 많다고 해서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
는 게 아니다. 한 개인이 마침내 여러 가지 구속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
는 그 자유를 활용할 수단을 빼앗긴다. 그저 쓰레기 신세가 된 그는 고독
과 권태 속에서 그럭저럭 목숨을 부지하는 수밖에 없다.”10) 노인혁명론이
제기되기 37년 전 보부아르는 이미 노인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은 교환화폐도, 재생산자도, 생산자도
아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11) 그런 노인이 사회
혁명을 주도하는 혁명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런 비판에 대한 반론도 예상된다. 즉 모든 노인들이 혁명의 주
체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여가를 창조적 일탈에 활용하고
끝없이 내면을 수양하는 노인들만이 새 시대의 혁명 주체가 될 수 있다
는 말이라고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는 또 하나의 계급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진정한 여가를 누리는 노인이라면 이미 충분한 경
제적 여건을 갖춘 부자 노인일 것이고, 창조적 일탈을 할 수 있는 노인
이라면 이미 상당한 학식을 갖춘 식자층 노인일 것이다. 이들 개개인의
인격적 고양과 정신적 혁명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과연 근대적 생산
체계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창조적 일탈의 세계를 창출하는 사회적 혁명
이 이들로부터 성취될 수 있을까? 이것은 자기 파괴가 아닐까? 이들이
혁명의 주체라면 근대적 엘리트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이른바 통일체적 세계관이라 이름 붙인 동양의 정신문화가 과
연 근대적 병폐를 치유할 대안인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설령 동양의 전
체적 세계관과 직관적 사유방식이 탈현대의 몇몇 특징과 비슷하다고 해
서 당장 동양 문화로 근대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느
슨해 보인다. 화엄의 일즉다 다즉일 논리는 則天武后와 일본천황의 전
체주의를 옹호하는 국가 이데올로기12)였고, 주자학의 리일분수는 名敎
10) 보부아르, 앞의 책, 15~16쪽.
11) 보부아르, 앞의 책,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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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常의 계급질서를 옹호하는 봉건사회의 이데올로기였다. 이러한 점 때
문에 동양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그 전체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기 위해
부단한 사상적 투쟁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근대의 문
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전근대적 사유 방식을 여과 없이 찬양한다는 것
은 역사의 진보와 퇴행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李澤厚의
말처럼 “비록 전근대와 후기 근대가 서로 근접하거나 유사한 측면이 있
기는 하지만, 양자는 본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다르며 서로 통하지도 않
는 것”13)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인 소외 문제를 동양사상으로부터 해결해보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
다. 그러나 구체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엔 이 주장의 전략은 너무 신비
롭고 추상적이다. 이 주장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늙어간다는 사건을
몸의 변화와 정신의 변화로 양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인혁명론에
따르면, 서양 근대적 사고방식에서는 老化를 몸의 늙어감이라 규정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반면, 동양 전통적 사고방식에서는 노화를 정신의
성숙함이라 규정하고 긍정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통
일체적 세계관을 가진 동양의 노인들은 몸의 늙어감을 한탄하기보다 정
신의 성숙만을 기뻐했는가? 하지만 수많은 歎老歌와 回春의 열망을 보
면, 동양의 노인들이 몸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라고 안타까워
했는지 여실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성현들 중에는 육체의 노화를 초월하
여 정신의 성숙을 추구한 이가 있었고, 그래서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귀
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추구된 당위적
가치였지 동양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 서양은 물질과 육체와 욕망
을 중시하고, 동양은 정신과 심령과 도덕을 중시한다는 단순한 이분법
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거친 이야기에 불과하다.
현대 사회의 노년 문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중
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 문제에 대해 얼마나 타당한 해법
12) 심재룡, 중국불교철학사, 철학과현실사, 1994. 제7장 참조.
13) 李澤厚, 김형종 역, 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 지식산업사, 1992. 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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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년 문제는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다급
한 사회 현안이지 문명 간의 비교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서서히 해
결해야 할 느긋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노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
제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복지 문제를 연구해야 하며 노인을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에 대해 강론해야 한다. 그런 구체적인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년 문제에 대한 해법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에 대
해 많이 연구하고 主義에 대해서는 적게 말해야 한다.”(多研究些問題, 少
談些主義)
Ⅲ. 老軀에 대한 두 가지 사회적 인식
1. 불안한 몸: 老軀에 대한 현대적 시선
늙어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주름이 생기
고 머리가 새고 눈이 어두워지는 등 신체의 쇠퇴가 늙음을 알려주는 뚜
렷한 신호이다. 그러므로 몸의 변화를 도외시하고 정신적 경계의 고양
으로 늙음을 규정한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관점이다. 동양철학자들이
노년을 다루는 글에서는 종종 몸의 노화를 초월하여 천지와 합일되고
자연에서 소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동
양의 人生境界論에 입각해볼 때 그러한 노년의 상황은 결코 거짓이 아
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너무 확대하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다.
공자에게 있어서도 늙음은 從心만이 아니었다. 공자는 몸이 노쇠해질수
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경계했으며,14) 몸이 늙어가자
젊은 날에 품었던 이상과 열정이 점점 식어간다는 것도 솔직하게 토로
하였다.15) 몸의 노화는 가장 예민하게 포착되는 자아의 변화이다.
14) 論語, 「季氏」: 孔子曰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
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50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노년을 몸이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노년의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데도 유익할 것이다. 몸의 노화는 자연적이
고 개인적인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타자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몸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자 사회적 의미를 담은 기표
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문제 역시 노화된 몸에 대해 사회가 어떠한 의미
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과 해결의 경로가 달라질 수밖
에 없다. 동양 사회에서는 늙은 몸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
을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현대 사회에서 늙은 몸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기표인지 먼저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노화된 몸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맥킨리(N. M.
McKinley)가 제시하는 ‘대상화 신체의식’(objectified body consciousness)이라
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맥킨리는 몸에 관한 푸코(M.
Foucault)와 보르도(S. Bordo)의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social construction
perspective)을 활용하여 외모 관리에 치중하는 여성의 심리적 기제가 무
엇인지 밝혀내고자 한다.16) 맥킨리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 여성의 몸은
타자의 시선에 의해 ‘응시되는’(to be looked at) 대상으로 구성되어 왔다.
여성은 어려서부터 자기 몸을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응시하도록 길들
여져 왔다. 이로 인해 여성은 타자의 시선(사회문화적 신체 기준)을 스스
로 내면화하여 그것이 마치 원래의 자기 몸인 양 여기게 되고, 또 그 기
준에 자기 몸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이와 같이 여성은 자신의 몸을 대상
화하여 경험하면서 이런 경험이 온당하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바로 대상화 신체의식이다. 자기 몸을 대상화하여 타자의
시선(사회문화적 신체 기준)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에 맞게 자기 몸을 구
성해나간다는 것이다.17) 맥킨리는 객체화 신체의식을 세 가지 요소로 세
분화한다. 첫째, 신체 감시성(body surveillance), 둘째, 문화적 신체 기준의
15) 論語, 「述而」: 子曰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16) N. M. McKinley & J. S. Hyde,“ The Objectified Body Consciousness Scale”, Psychology
of Women 20, 1996. 181~182쪽.
17) 위의 글, 183쪽.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51
내면화와 이에 따른 수치심(internalization of cultural body standards and
shame), 셋째, 외모에 대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신념(appearance control
beliefs)이 그것이다.18) 특히 매스미디어는 이상적 신체 기준을 반복적으
로 보여주면서 여성에게 그것을 자기 몸의 기준으로 인식하게 강요한다.
여성은 매스미디어가 강요한 시선으로 자기 몸을 감시하고 또 부끄러워
하며, 급기야 그것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결국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여성 자신의 자기관리 능력과 책임 탓으로 귀결된
다.19) 맥킨리의 생각은 비단 여성의 몸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
다. 늙은 몸에 대한 의식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활용될 수 있다. 사회문
화적으로 늙은 몸은 어떻게 간주되는가? 늙은 몸에 대한 사회문화적 시
선이 노인의 신체 의식을 결정지을 것이고 노인의 수치감과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젊은 몸만이 유용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
고, 늙은 몸은 사회에서 무용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오로지
영원히 젊은 몸만 승인될 뿐 늙은 몸은 사회 밖으로 퇴출된다. 노화는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 비정상적 질병으로 간주된다.20) 노인들에게는 그
기준에 맞추어 자기 몸을 대상화하고 스스로 감시하는 일이 강요된다.
노인들은 자신의 늙은 몸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또 그 몸을 치유하려
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의 사회적 존재 가치는 말살되기 때문
이다. 1년이라도 더 직장에 다니려면 젊은이 같은 체력을 보여주어야 하
고, 퇴출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젊게 보여야 한다. 몸의 노화는 수치스러
움을 넘어 생존의 위협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년 여성들의 경우
도 마찬가지이다. 매스미디어가 보여주는 젊음의 과장된 가치는 노년
여성들의 내면에 이상적인 신체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과장된 광고들
은 늙은 여성의 몸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늙은 여성들은
18) 위의 글, 181~183쪽.
19) 위의 글, 183~186쪽.
20) 장영란, 「늙음의 현상과 여성주의 윤리」 참조.
52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자연적 노화가 일어나는 자신의 몸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여러
성형수술과 시술을 통해 늙음을 물리치고(anti-aging) 다시 젊음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고 믿는다.21)
그들이 추하게 늙었다고 비난하기 전에, 이것이 현대 소비사회가 조
장하는 ‘정상화의 메커니즘’(normalizing mechanism)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
요가 있다. 이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이 불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여겨지
고 질병과 죄악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야 불안과 수치심을 해소하고 질병과 죄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있는 노인은 사회의 기준에 부
합하려 노력하고 가난한 노인은 불안과 박탈감 속에서 여생을 살아간다.
노화를 질병으로 간주하는 그 생각이 바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22) 사회
는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부자연스러운 불안
을 조장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노인은 언제나 불안과 절망감에 처
한다. 자신의 늙은 몸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영예로운 몸: 老軀에 대한 유교적 인식
이와 대비하여 동양의, 특히 유가적 가치관을 채택한 전통 사회에서
늙은 몸이 함의하는 바는 상당히 달랐다고 판단된다. 결론부터 말하자
면, 동양 사회에서 늙은 몸은 불안의 상징이 아니라 안전의 징표였으며,
부끄러움의 상징이 아니라 명예로움의 기표였다.
노인을 봉양함에 有虞氏는 燕禮로써 봉양하였고 夏后氏는 饗禮로써 봉양
하였으며, 殷나라 사람들은 食禮로써 봉양하였고 周나라 사람은 이 세 가지
를 겸해서 행하였다. 쉰 살 노인은 마을(鄕)에서 봉양하였고, 예순 살 노인은
나라(國)에서 봉양하였으며 일흔 살인 노인은 태학(學)에서 봉양하였다. 이러
21) 최현진, 「중년 여성의 성형수술 경험을 통해 본 여성의 나이 듦」, 여성건강
제6권 1호, 2005. 117~119쪽.
22) 장영란, 「늙음의 현상과 여성주의 윤리」 참조.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53
한 예는 제후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시행되었다. …… 쉰 살에 쇠약해지기 시
작하니, 예순 살에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고 일흔 살에는 비
단 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으며 여든 살에는 다른 사람의 체온으로 덥여주
지 않으면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아흔 살에는 다른 사람의 체온으로 덥여
주어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쉰 살에는 家邑에서 지팡이를 짚으며 예순
살에는 鄕黨에서 지팡이를 짚고 일흔 살에는 나라 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여
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다. 아흔 살이 되면 천자가 문의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천자가 직접 그 노인의 집에 찾아가서 문의하는데, 갈 때
는 산해진미를 가지고 가서 그의 말에 따른다.23)
위 인용문은 고대 중국 사회에서 행해진 養老의 禮를 기록한 것이다.
50세부터 노인으로 간주하면서 그 연령대에 맞는 봉양의 예를 실행했음
을 알 수 있다. 노인을 봉양하는 예를 국가적으로 실행된 것이었고 연령
에 따라 그 규모와 대우가 달랐다. 60세 노인에게는 고기로 음식을 봉양
하고 70세 노인에게는 비단옷을 지어서 봉양하였으며 80세 노인에게는
직접 돌봐주는 이를 붙여주었다. 90세 노인은 천자가 직접 찾아갈 정도
로 극진히 봉양되는 존재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중국 사회에서 노인
들이 어떠한 상징적 기표로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늙은
몸은 수치와 질병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적 차원에서 존중 받는
귀중함의 기표였다.24)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노인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제도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노인이라는 무용한
존재들의 생존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의 사회적 시혜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예기에 기록된 養老의 禮는 노인의 존재를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점에서 노인의 지팡이도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
이었다. 그것은 노인의 특별한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지팡
23) 禮記, 「王制」: 凡養老, 有虞氏以燕禮, 夏后氏以饗禮, 殷人以食禮, 周人修而兼
用之. 五十養於鄕, 六十養於國, 七十養於學, 達於諸侯. …… 五十始衰, 六十非
肉不飽, 七十非帛不煖, 八十非人不煖, 九十雖得人不煖矣. 五十杖於家, 六十杖
於鄕, 七十杖於國, 八十杖於朝, 九十者天子欲有問焉則就其室以珍從.
24) 孟子, 「公孫丑下」: 天下有達尊三: 爵一, 齒一, 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54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이는 연령에 따라 각기 다른 지역의 범위에서 노인이 자기 존재감을 인
정받게 해주는 징표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 지위는 높아졌고 인정의
범위 역시 넓어졌고, 80세 노인의 지팡이는 국가 전체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는 상징을 뜻했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는 鄕飮酒禮와 같은 지역
의 중요한 행사를 주관하고 통괄하는 자의 표징이기도 했다.25)
漢代에는 노인의 지팡이에 더욱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
다. 漢文帝(B.C.202~B.C.157)는 추석에 전국적인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조
사하여 70세 이상 노인에게 비둘기 머리 조각26)을 새긴 9척의 긴 지팡
이를 선물하였는데, 이것은 특별한 노인 우대정책의 선포를 뜻하는 것
이었다.27) 또한 漢宣帝(BC91~BC49)는 王杖詔書令을 반포하여, 왕이
하사한 지팡이를 가진 노인을 한 600石의 봉록을 받는 郡丞과 동격으로
간주하였고, 이 노인이 官府에 드나들 때는 다른 백성들처럼 고개를 숙
이거나 종종걸음을 걷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吏民중에 이
노인을 욕보이는 자는 대역무도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하여 棄市에 처
하게 하는 엄벌 규정도 있었다.28) 이와 같이 지팡이는 노인들이 사회적
으로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법적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는 면책 특권도 부여되었다. 80세 이상의 노
인은 죄를 짓더라도 형벌을 면제해주는 특혜가 주어졌다. 이는 7세 이하
의 어린 아이(悼, 철부지)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제한다는 규정을
동등하게 적용한 것으로, 80세가 되면 판단이 혼미해지고 지각이 쇠퇴해
서 죄를 저질러도 고의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을 면제한다는 것
이다.29) 이러한 면책의 특권은 노화된 몸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25) 論語, 「鄕黨」: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26) 비둘기는 목이 메지 않는 새(不噎之鳥)로서, 이것은 노인이 음식을 잘 섭취하
고 건강할 것을 축원하는 의미가 담긴 상징이다.
27) 漢書, 「禮儀志」: 仲秋之月, 縣道皆案戶比民, 年始七十者, 授之王杖, 餔之米粥,
八十九十, 禮有加賜. 王杖長九尺, 端以鳩飾.
28) 「王杖詔書令」: 制詔御史, 年七十以上杖王杖, 比六百石, 入官府不趨, 吏民有敢毆
辱者, 逆不道, 棄市.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55
인정해주는 처사였다.
또한 노인을 봉양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부역을 면제해주는 특혜가 내
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여든 살 노인을 봉양하는 경우에는 아들 한 사
람의 부역을 면제해주었고, 아흔 살 노인을 봉양하는 경우에는 그 집안
식구 전체를 부역에서 면제해주기도 하였다.”30) 이것은 포상의 성격도
있겠지만 양로의 중요성을 전사회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이라 판단된다.31) 그러한 점에서 국가는 백성들에게 鄕飮酒禮를 통해
尊長養老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養老가 모든 사회윤리의 근간이라고 강
조하였다.
백성은 어른을 높이고 노인을 공경할 줄 알아야 집안에 들어가 孝悌를 실
천할 수 있다. 백성이 집안에 들어가서는 효제하고 밖에 나와서는 어른을 높
이고 노인을 공경할 수 있은 다음에라야 나라의 교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나
라의 교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라야 나라가 편안해지는 것이다.32)
이상과 같이 볼 때 유교 사회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노인의 안녕을 보
장하고 노년의 권위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동양 문화의
맥락에서 노화된 몸의 사회적 상징성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늙은 몸은 전사회적인 존중을 받는 대상이자 국가가 승인하는 면책 특
혜의 상징이었으며 모든 사회윤리 실천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양 사회에서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권리와 권위를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양 사
회에서 늙는다는 것은 감추어야 할 수치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29) 禮記, 「曲禮上」: 八十九十曰耄, 七年曰悼, 悼与耄, 雖有罪, 不加刑焉. 百年曰
期, 頣. 大夫七十而致事. 呂氏注참조.(김문준, 앞의 글, 6쪽에서 재인용)
30) 禮記, 「王制」: 八十者, 一子不從政, 九十者, 其家不從政.
31) 이승연, 앞의 글, 224쪽.
32) 禮記, 「鄕飮酒義」: 民知尊長養老, 而后乃能入孝弟. 民入孝弟, 出尊長養老, 而
后成敎, 成敎而后國可安也. 君子之所謂孝者, 非家至而日見之也, 合諸鄕射, 敎
之鄕飮酒之禮, 而孝弟之行立矣.
56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적극 권장되는 명예로운 사안이었던 것이다.
물론 유교 사회에서 노인이 절대적 존중을 받았던 사실을 무조건 긍
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상하의 위계를 고착시키고 아랫사람
을 도구로 간주하게 하는 봉건적 사고방식의 원형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노인의 존재에 특
별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의 삶을 적극 보장해주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노인이 육체적으로 소외되고 그로 인
해 정신적 정서적으로도 심각한 소외를 겪고 있는 상황에 대비해볼 때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Ⅳ. 유교철학에서 본 養老의 정치학
1. 생명, 長壽, 그리고 仁
그렇다면 왜 동양사회에서는 노인들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아끼지 않
았고,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던 것일까? 이점에 대해 두 가지 설
명이 있어왔다고 판단된다. 첫 번째는 매우 일반적인 견해로서 관습적
으로 敬老의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농경생활을 했던
동양사회에서는 나이 든 사람의 경험적 지식이 농경에 필수불가결한 정
보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노인을 공경하는 관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 수단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군주는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백성을 자
연스럽게 복종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였다. 이에 군주는 국가와 가
정을 동일시하고 노인에 대한 孝敬의 윤리를 군주의 忠信의 태도로 직
결시킴으로써, 백성들이 노부모에게 복종하듯 군주에게 복종하도록 만
들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노인에 대한 공경은 군주에 대한 복종
을 유도하는 정치적 수단이었다는 것이다.33)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57
이러한 두 가지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과 근거가 있는 것이지만, 유교
문화권에서 敬老와 養老가 적극 권장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
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기존 견해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 즉 경로와 양로가 단지 사회 관습이나 통치 수단이었던
것만이 아니라 정치의 목적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정치 목적으로서의
양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점에 관해 우리는 유가 정치철학에서 노
인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伯夷가 紂임금을 피해 北海의 물가에 은거하다가 文王이 군대를 일으켰다
는 소식을 듣고 흥겨워 말했다. “그에게로 돌아가야지! 내가 듣건대 西伯(문
왕)은 늙은이들을 잘 보살펴준다고 하더라.” 太公이 紂임금을 피해 東海의
물가에 은거하다가 文王이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흥겨워 말했다.
“그에게로 돌아가야지! 내가 듣건대 西伯은 늙은이들을 잘 보살펴준다고 하
더라.” 천하에 노인들을 잘 보살펴주는 이가 있으면 어진 현자(仁人)는 그를
자신의 귀의처로 삼는다. 五畝의 집에 살면서 담벼락 아래 뽕나무를 심어서
아낙이 길쌈을 하면 노인도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암탉 다섯 마리
와 암퇘지 두 마리를 때에 맞게 잘 키우면 노인도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
다. 百畝의 밭에서 사내가 농사를 지으면 여덟 식구가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백이 노인을 잘 보살펴준다는 말은, 토지 제도를 잘 정비하고 백
성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가축 기르는 법을 잘 가르치며 처자를 잘 인도하여
그 노인들을 봉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50세가 되면 비단옷이 아니고서는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70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고서는 배가 부르지 않는
다고 한다. 따뜻하지도 않고 배부르지도 못한 것을 일러 얼어 죽고 굶어죽었
다고(凍餒) 하는 것이다. 문왕의 백성들 중 얼어 죽고 굶어죽은 이가 없었다
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34)
33) 漢代에 이루어진 孝의 이데올로기화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는 김진우의 「中國古代'孝'思想의 展開와 國家權力」(고려대 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7.)에 자세히 나와 있다. 몽테스키외 역시 중국의 孝문화를 이러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몽테스키외, 신상초 역, 법의 정신 을유문화사,
1983, 282~283쪽 참조.)
34) 孟子, 「盡心上」: 孟子曰伯夷辟紂, 居北海之濱, 聞文王作興, 曰‘盍歸乎來! 吾
聞西伯善養老者.’ 太公辟紂, 居東海之濱, 聞文王作興, 曰‘盍歸乎來! 吾聞西伯善
養老者.’ 天下有善養老, 則仁人以爲己歸矣. 五畝之宅, 樹牆下以桑, 匹婦蠶之, 則
老者足以衣帛矣. 五母雞, 二母彘, 無失其時, 老者足以無失肉矣. 百畝之田, 匹夫
58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孟子는 문왕의 왕도정치를 養老, 즉 노인을 잘 봉양하는 것으로 수렴
시킨다. 그는 두 어진이(백이와 태공)가 문왕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문왕
이 養老를 잘 했기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천하의 민심도 문왕에게 귀의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한다. 맹자가 주장하는 王道政治는 거창한
도덕적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한 가정에서 노인들
이 온전히 봉양을 받을 수 있도록 서민들의 생활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
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노인들에게 비단옷을 입혀 몸을 따뜻하게 해주
고 고기를 먹여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게 하는 정도의 서민의 생활 여
건을 보장해주는 것이 왕도정치라는 것이다.
맹자는 정치의 목적이 養老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인들이 편안
히 살 수 있는 사회가 가장 도덕적인 사회이고 또 가장 성공한 정치의
형태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인들을 편안히 살게 해주었을
때 천하통일의 꿈이 7년 안에 실현될 것이라고 장담한다.35) 이러한 맹자
의 생각은 孔子에게서 비롯된 것36)이라는 점에서, 養老는 맹자만이 아닌
유가 정치철학의 근본 목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유가에서는 노인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간주했던 것일까? 이것은 동양인의 행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양
사람들은 여러 행복의 덕목 중 ‘長壽’를 가장 중요한 행복의 항목으로
여겼다. 공자는 “仁者는 장수한다.”(仁者壽)고 말했고, 莊子는 匠石의 눈
을 비껴간 쓸모없는 상수리나무가 오히려 장수를 누리게 되는 것을 찬
耕之, 八口之家足以無飢矣. 所謂西伯善養老者, 制其田里, 敎之樹畜, 導其妻子,
使養其老. 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 文王之民, 無凍餒
之老者, 此之謂也.
35) 孟子, 「離婁上」: 孟子曰伯夷辟紂, 居北海之濱, 聞文王作, 興曰‘盍歸乎來! 吾
聞西伯善養老者.’ 太公辟紂, 居東海之濱, 聞文王作, 興曰‘盍歸乎來! 吾聞西伯善
養老者.’ 二老者, 天下之大老也, 而歸之, 是天下之父歸之也. 天下之父歸之, 其子
焉往? 諸侯有行文王之政者, 七年之內, 必爲政於天下矣.
36) 論語, 「公也長」: 顔淵·季路侍. 子曰盍各言爾志? 子路曰願車馬·衣輕裘, 與朋
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願聞子之志. 子曰老者安
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59
탄했다. 道敎의 수양 목적이 不老長生인 것도 그러하다. 書經, 洪範
편에 나오는 인간의 다섯 가지 행복, 즉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중
富와 攸好德을 제외한 세 가지는 모두 장수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
다. 심지어 儒醫李濟馬(1838~1900)는 도덕적으로 살 때 건강하고 장수
할 수 있다(命數自美)고 하여,37) 도덕 실천의 정당성마저 장수에 두고 있
다. 동양 문화 전통에서 장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을 찾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개인적 고통이거나 사회적 악덕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양사회에서 장수는 왜 가장 중요한 행복의 항목
이었을까? 장수의 철학적 정당성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는 살고자 하는
의지(生意)를 지닌다. 동양에서 그 생의는 우주적 차원에서 정당화되고
또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天地之大德曰生) 그래서 程子는 生意를
仁이라 명명하였고 주자는 천지가 만물을 살려주는 마음(生物之心)이 仁
의 본체라고 정의하였다. 최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仁은 생명의 창달
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데 仁은 단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생명의 창달로서 仁은 개인의 구체적 몸에서 長壽라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仁이 형이상학적 실체라면 壽는 그것을 실
현하고 있는 구체적 현상이다. 仁과 壽는 서로 다른 덕목이 아니라 본질
과 현상으로만 구분될 수 있는 단일한 사태인 것이다. 장수는 우주적 차
원의 생명의지가 한 사람의 구체적 몸에서 현상하는 것이다. 오래 사는
사람일수록 그만큼 천지의 생명력을 잘 간직하고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장수하려는 욕망을 육체에 대한 집착이나 세속에 대한
애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왕도정치의 목적이 仁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왕도정치의 실현, 仁의 실현이란 바로 백성들을 장
수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장수라는 것이 오직 노인에
37) 李濟馬, 東醫壽世保元, 「性命論」: 善行, 則命數自美也.
60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 젊은이에게 장수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왕도정치의 실현이란 노인들이 장수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장수하는 노인
이 많은 사회는 그 사회적 구조가 온전하다는 것을 뜻하며, 그 국가의
통치가 합당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양 사회에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노랫말은 “한 세상 백성들을 이끌어서 모두 仁壽
의 땅에 들게 하시네.”38)라고 되기도 했던 것이다.
2.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養老
뿐만 아니라 역으로 노인의 장수는 그 나라의 정치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치가 올바르다면 그 나라의 백성들은 편안
히 살며 장수할 수 있으며, 정치가 올바르지 않다면 백성들의 삶은 그렇
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39) 이러한 점에서 유교철학적 관점에서 養老는
본질적으로 정치의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가 성공적
인가의 여부는 얼마나 백성의 기초적인 욕망, 즉 살고자 하는 욕망을 끝
까지 잘 보장하고 충족시켜 주었는가로 판정될 수 있는데, 그 판정의 관
건이 바로 養老인 것이다. 그래서 백이와 태공은 養老를 기준으로 문왕
의 정치적 능력을 가늠하였던 것이고 맹자는 養老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왕도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철학에서는 너무 노인들만 우대하고 젊은이들의 삶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노인들을 위해 젊은이의 삶을 희
38) 漢書, 「禮樂志」, 驅一世之民, 入仁壽之域.
39) 國語, 「齊語」에는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다. 閭丘先生이 齊宣王에게 장
수하게 해달라고 하자, 제선왕은 人命은 在天이니 어떻게 당신을 장수하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여구선생은 “왕께서 훌륭한 관리를 뽑아 善
政을 베푸신다면 신이 조금이나마 장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但願選良吏, 臣
少得壽焉)이라고 답한다.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61
생되어도 된다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양로의 정치적 함의를
보다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앞서 맹자는 각 가정에서 자기의 노부
모를 잘 봉양하도록 하는 것이 文王의 養老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실현 방법은 토지제도를 정비하여 각 가구에 五畝의 집과 百畝
의 농지를 부여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가축 기르는 법, 길쌈하
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맹자는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각 가정에서
노인을 공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養老를 국가의 정치적 사안
이 아니라 가정의 문제로 떠넘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가정
은 양로의 토대가 되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양로가 가능할 수 있게끔
백성들에게 恒産의 경제제도를 마련해준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양로는 단순히 노인을 봉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확보해준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양로는 모든 다시 말해 모든 가정이 양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해주는 문왕의 정치는 모든 이가 생존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각자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養老는 모든 백성의 항
산을 마련해준다는 것을 뜻하는 정치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유교 정치학에서 볼 때, 양로는 단순히 관습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
체가 정치의 목적이다.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백성
을 편하게 살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노인이 많은 나라는 그만큼 사람
이 살기에 안전한 나라라는 것을 뜻한다. 노인이 생에 불안을 느끼지 않
는다면, 젊은이들도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리 없다. 그래서 유교철학
에서 양로를 국가의 정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사회 계층 전체의 공생을 도모하는 데 양로의 정치
학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62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V. 결론
지금부터 25년 뒤에는 생산가능 인구 2명당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고, 노인의 기초연금지급을 위해 생산가능 인구 1명이 연 346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40) 더구나 그때가 되면 유소년 인구가 노인 인구
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을 것이어서, 그 후 10년 뒤 생산가능인구가 져
야 할 노인 부양의 부담은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도래
하면, 젊은이들은 항의할 것이다. 내가 왜 열심히 일해서 저 얼굴도 모
르는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가? 내가 일하는 목적이 저 일하지 않는 노
인들의 삶을 연장시켜주기 위한 것인가? 저 빈곤한 노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 삶을 빈곤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유용한 미래 세대를 위해
투자되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어째서 저 무용한 과거 세대를 위해 쓰여
야 하는가? 생존의 보트(G. Hardin's lifeboat)를 왜 노인들에게 내주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이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닥칠지 모른다. 노년 문제
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철학적 혜안이 절실하게 필요
한 시점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유교철학적 관점에서 해
법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노인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사회로부터 배제되었으며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들에겐 여가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독과 권태,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만이 그들 곁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은 이러한 사회
현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그 해법을 유가철학으로부터 찾아보
고자 시도하였다. 이 글에서는 몸의 문제, 즉 노화된 몸의 사회적 의미
를 재정립함으로써 문제에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 몸의 문제
에 초점을 맞춘 까닭은, 그간 노년 문제를 다룬 동양철학의 연구들이 다
40) 물론 이러한 예상 통계치는 소득별 과세액을 고려하지 않고 인구당 평균치로
계산한 것으로, 복지정책이 세금폭탄으로 이어진다고 착시하도록 조장한 정치
적 수작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기초연금 확대 땐 세부담 1인당 28만원”
정부, 비난여론 의식 착시 효과 노리기」경향신문, 2014.1.13.일자 기사 참조)
洪性敏 / 儒敎의 관점에서 본 老年의 사회적 의미와 養老의 정치학적 함의ㆍ63
분히 개인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 현안에 대한 유익한
해법을 미처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노인혁명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노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나
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다음 이 글에서는 현대 사회와 동양 사회에서 노화된 몸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비교 고찰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문제점
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이와 대비되는 동양 문명의 유익한 지점을 밝혔다.
고찰에 따르면, 동양 사회에서 노화된 몸은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국가적
으로 보호를 받는 영예로운 대상이었다. 이점은 심각한 폄하와 소외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노년의 실상에 대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글에서는 왜 유교철학에서 養老를 국가적 정치 행위로
규정하고 실행하였는지의 이유를 고찰하고 그 의의를 해명하고자 하였
다. 논문에 따르면, 유교의 정치학에서 양로는 비단 노인 뿐 아니라 모
든 이의 생명을 존중하고 창달케 하는 것으로, 단순한 개인적 윤리 행위
가 아니라 국가의 필수적 정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보부아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는 개인이 생산성을 가지는 한에 있어서만 그에 대해
염려한다. …… 그러나 사회에서 밀려난, 이제 지치고 헐벗은 노인에게
남은 것은 눈물 밖에 없다. (자본주의라는) 기계는 인간을 빻고, 사람들
은 그 속에서 으깨지는 대로 가만히 있다.”41) 보부아르는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소의 목표만이라도 제시하려 한다. 그래서 그
는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보부아르의 외침은 절박하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
사회의 노인들을 위하여 최소한의 인권과 최저의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외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41) 보부아르, 앞의 책, 761쪽.
64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다만 그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사회
의인 유용과 무용의 구분틀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검토했는지 의구
심이 든다. 노인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유용과 무용의 구분틀이 아닐까? 유용과 무용을 새롭게 정
의한다면, 그에 따라 노인 문제를 풀어갈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만일
노인이 이 사회에서 왜 유용한가를 밝혀낸다면 그들의 복지 역시 더 잘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철학의 생각은 이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판
단된다. 유교철학에서 양로는 노인을 위한 복지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이점이 현대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
한 유교철학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 투고일 : 2014.03.03. 심사일 : 2014.03.10~03.25. 심사완료일 :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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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 주역인 노인 세대, 누가 '흘러간 청춘'을 보상해줄 것인가 한국
경제신문, 2014년 3월 1일 기사.
66ㆍ儒敎思想文化硏究 第55輯 / 2014年 3月
<Abstract>
The Significances of the Aging Body and Caring of the Aged in
Confucian Society
Hong, Seong-min
This paper sheds new light on the social problem of the old age, and justifies the
philosophical necessity of the old age's welfare. For this purpose, this paper
researches the social significance of the aging body. The reason why this paper
focuses on the aging body is to propose concrete and useful solutions about this
pending issue, while the previous papers of asian philosophy about this issue
proposed too individual or ideal solutions. Especially this paper attempts to criticize
about 'the theory of old men revolution.' Further, this paper compares the social
significance of the aging body in traditional asian society with this in modern
western society. According to this paper, the aging body in traditional asian society
indicated the sign of social respect and governmental preservation, while it signifies
the symbols of be disregard and alienation in modern western society. Lastly, this
paper researches the reason why Confucianism defined caring of the aged as
governmental political action, and elucidates the meaning of this in contemporary
society.
Keywords: the old age, caring of the aged, aging body, longevity, social safety
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