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judge)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파트(שָׁפַט)로, “재판하다, 다스리다, 통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여호수아 사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들을 일으키시고 백성들을 지도하도록 하셨다. 사사들은 단지 재판을 맡아 보는 사법적 기능뿐 아니라 행정과 종교적인 지도까지 곁들여서 지도한 종합적인 리더였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백열 살에 죽고 광야 세대들이 모두 죽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목격한 장로들도 갑옷을 벗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은 신속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떠나갔다. 하나님이 경계하신 이방인들과 연합하게 되고 저들의 우상숭배를 본받기 시작한 것이다.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삿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여기에서 “보김”이라는 지명의 위치에 대하여 대체로 학자들 사이에서 일치된 의견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보김”이라는 이름은 특정한 사건 때문에 덧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보김”에서 백성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연합함으로 더 이상 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결국에는 저들이 이스라엘의 가시 같은 존재들이 될 것이라는 선언을 하였다.
(삿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여러 가지 정황상 재림교회 성경 주석은 “보김”을 실로로 이해한다. “문자적으로 “곡하는 자들”이라는 이름은 지금 언급하고 있는 경험 후에 본 장소에 붙여졌다(참조 4, 5절). 오늘날 이 이름으로 알려진 곳은 없으며,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70인역」은 “보김”이라는 단어 뒤에 “그리고 벧엘에”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 사건이 벧엘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거기서 제사 드렸다는 사실(5절)로 보아 그곳이 그 당시 성막이 있던 실로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성경주석, 삿 2:1)
성경은 곡하는 사람, 울고 애통하는 자들의 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울어야 할 때 울 줄 아는 백성, 곡해야 할 때에 곡 할 줄 아는 백성이 하나님의 남은 무리가 될 것이다. 세상이 점점 허망하여지고 죄악이 무르익고 있으며 교회가 힘을 잃고 앞길이 캄캄해졌는데도 아무런 아픔이 없이 희희낙락하고 있다면 그들을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겠는가? 여호와 사자의 선언을 듣자 아직까지 양심이 살아있던 이스라엘은 울었다. 온 백성이 저들의 처지를 깨닫고 울었다.
페르시아의 수산궁에 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울었다. 앉아서 울고 수일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울음은 기도가 되고, 기도는 결심이 되었다. 에스겔에서 하나님은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천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에 (겔 9: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마지막 하나님의 인 맞는 사람들이 곡하는 사람들임을 암시하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로 인해 울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영혼들 때문에 울고,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 때문에 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는 자들이 웃게 될 것이다.
우리 얼굴에는 그리스도의 미소가, 우리들의 가슴에는 예수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급속히 타락하고 죄악은 더욱 창궐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무너지고 욕망이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삽니다. 울며 탄식해야 할 우리의 가슴에 눈물이 마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성령의 마음 곧 탄식하는 마음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정신이 회복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