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쥬신제국사28-부여의 개아지쥬신 해체>
☯ 북부여의 개아지쥬신 해체와 삼한(三韓)의 형성
한편, 님ᄀᆞᆷ성을 탈출한 기준왕(奇準王) 일행은 이미 수백 년간 무역으로 익숙한 뱃사공들의 안내를 받으며 황해를 남하해 갔다. 그리하여 처음의 목적지였던 목지국(目支國)을 버리고, 그 대신 강화를 돌아 한강을 따라 올라와서 현재 서울 강남구[송파구] 잠실(옛 이름 한터[한지(韓地)])에 상륙하여 가락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 기준왕 일행의 이동경로》

그리하여 부왕(父王)인 마한(馬韓)단군(檀君)의 이름을 따라 나라 이름을 마한(馬韓)이라 하였다. 이를 한터마한[한지(韓地)마한(馬韓)]이라 한다.
돌연 기준왕(奇準王)이 출현하여 한터마한이 세워지자, 아산만 미추홀에 먼저부터 내려와 있던 목지국(目支國)의 옛 신하들은 깜짝 놀라 스스로 찾아와 마한의 제후국으로 자처하니, 마한은 한강 유역, 경기 일대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말풍선)
“좋은 땅이다. 이곳에 마한(馬韓)을 세우리라!” (기준왕)
한편 님ᄀᆞᆷ성을 확보한 위만(衛滿)은 그 기세를 몰아 개아지쥬신의 서울 펴라[평양(平壤)]를 향하여 맹렬한 진격을 계속하였다. 님ᄀᆞᆷ성과 펴라 사이의 수십 성이 허무하게 깨어져 유린되고, 위만과 그의 흉노군이 패수(浿水; 지금의 요하遼河)까지 도달하였다. 이들을 막아낼 자신이 없는 마한(馬韓)단군(檀君)은 황급히 ᄀᆞᆷ달[금미달(今彌達):남펴라-지금의 평양]으로 도망가고, 요동 반도에 넓게 퍼진 개아지쥬신의 전 영토를 무방비상태로 남겨 놓았다.
《위만의 침공과 마한단군의 패주 경로》

너무나도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 역사적인 대사건들이 속속 백악산(白岳山) 아사달에 전달되니, 경악한 해모수 천왕랑은 연타발(延陀勃) 장군을 급히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위만과 그의 흉노군의 맹렬한 진격을 패수 강변에서 간신히 막아내고, 광풍 앞의 촛불 같던 개아지쥬신의 요동 반도를 지켜 낼 수 있었다. ♣
서기전 195년. 북부여(北夫餘)의 시조(始祖) 해모수 천황이 죽고, 제2대 대단군(大檀君)으로 모수리(慕漱離)가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말풍선)
“그대는 즉시 현부군(玄部軍) 2만 명을 데리고 가서 연타발 장군을 도와 반적 위만이 서압록(西鴨綠)을 넘을 수 없도록 하고 펴라성을 강하게 개축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라!”
(모수리 대단군)
모수리 대단군은 그 동안 이미 국권을 상실한 불쥬신의 변왕[변한(卞汗)]과 신쥬신의 진왕[진한(辰汗)] 두 왕에게 마한(馬韓)의 남쪽 영지를 각각 주어 제후(諸侯)의 나라를 세우도록 하니, 변왕과 진왕은 각각 그들의 측근들을 인솔하고 새 임지로 떠났다.
대단군은 쥬신계 지도부를 모두 축출하여 나라의 주요 직책을 부여계(夫餘系)가 완전히 장악하게 하였다.
모수리 대단군은 자제 종친을 중신(重臣)으로 등용하여 옛 삼왕(三王), 즉 진왕[진한(辰汗)], 변왕[변한(卞汗)], 마왕[마한(馬汗)]과 귀족들을 대거 축출하여 마한(馬韓)의 남쪽 지역으로 발령을 내렸다.
옛 쥬신의 일부 유민(流民)들과 그 지도부집단은 남쪽으로의 이동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북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흑룡강(黑龍江)변에 자리를 잡고, 쥬신의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이를 원래의 쥬신[조선(朝鮮)]과 구별하여 이두문표기로 숙진[숙신(肅愼)]이라 쓰지만, 그 발음은 다같이 쥬신이다.
《불쥬신의 유민과 지도자들의 이동경로》
★사진 속 설명
<좌하>:
서기전 195년~서기전 193년의 2년간 동북아시아는 엄청난 변혁의 파동에 휩싸였으니, 그 시작은 연(燕)나라에서 벼슬하던 쥬신인[조선인(朝鮮人)] 교포가 흉노군(匈奴軍)을 이끌고 모국(母國) 개아지쥬신의 님ᄀᆞᆷ성[임검성(任儉城)]을 침략한 일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韓半島)의 남북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우상>:
붉은선: 연타발 장군 펴라와 대수(帶水) 방어
청색선: 위만의 님ᄀᆞᆷ성 공격경로
녹색고리선: 옛 신쥬신 유민들의 분산 이주
연두선: 불쥬신 유민들 나라 잃고 변한지구로 이동
연홍고리선: 준왕의 님ᄀᆞᆷ성 탈출, 한터마한을 세움
적색화살선: 마한 단군 남펴라로 쫓겨 감
<우하>:
개아지쥬신의 마지막 단군(檀君) 마한(馬韓)은 연(燕)에서 온 동포 위만(衛滿)의 공격을 받아 남펴라[지금의 평양]로 서울을 옮겼다. 이로써 개아지쥬신은 시조(始祖) 서여(西余)단군(檀君)으로부터 시작하여 42대 역년(歷年) 1097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 낭부[浪部-낙랑(樂浪)]의 설치
마한(馬韓) 단군(檀君)이 남펴라[평양(平壤)]로 남천(南遷)함으로써, 펴라를 중심으로 하는 구 개아지쥬신의 영토가 주인을 잃게 되었다. 중앙 정부는 즉시 그곳에 낭부(浪部)를 설치하여 욕살에 최씨(崔氏)를 임명하였다.
♬(말풍선)
“마한(馬韓)은 도망을 갔지만, 펴라 지방은 우리의 중요한 요충지이니 잘 맡아주시오!” (북부여 모수리 대단군)
↔
“대단군 님ᄀᆞᆷ의 뜻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낭부 욕살 최씨)
다행히도 명장 연타발(延陀勃) 장군의 활약으로 위만군을 서압록(西鴨綠)에서 막아 내었고, 마한(馬韓)왕이 도망가며 뒤에 남겨놓은 개아지쥬신의 구토에 아직 살아남은 25열국들은 이제 중앙 정부로부터 새로이 발령 받고 부임하는 낭부[양부(良部) 또는 浪部]의 욕살 최씨(崔氏)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말풍선)
“내가 이번 낭부의 왕이 된 최가(崔家)로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와 더불어 이 낙랑국(樂浪國)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키느 데 있는 힘을 다하도록 하라. 더 이상 한구를 한 놈도 이 땅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첫 낙랑왕 최씨)
※ 낙랑(樂浪): 나라[국(國)]의 이두식 표기로서 넓은 땅을 의미한다. 즉, 펴라[평양(平壤)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낙랑의 공식 명칭은 낭부이다.
새로 낭부의 낙랑왕(樂浪王)으로 임명된 최씨(崔氏)는 즉시 옛 개아지쥬신의 열국들을 통합하여 그의 제후국(諸侯國)으로 받아들이니, 그 수가 무려 25국에 달하였다.
낙랑국의 25 제후국들은 다음에 열거하는 바와 같으나, 그 반수 이상의 지명이 지금의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 부득이 지도를 생략할 수밖에 없음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 25제후국: 희귀 한자명이어서 사진으로》

朝鮮 쥬신: 위만 쥬신을 인정해 주고 조공국으로 승인했음을 뜻함
浿水 패수: 지금의 난하 지방의 100리 공지, 패수의 이름은 여러 곳에 있음.
?(言+月)邯(감) 염함 - 列口 열구 - 東?(日+施) 동시
含資 함자 - 長岑 장잠 - 不而 불이
黏磾 점제 - 屯有 둔유 - 蠶台(태) 잠대
遂成 수성 - 昭明 소명 - 華麗 화려
?(土+會)地 승지 - 鏤方 누방 - 前莫 전막
帶方 대방 - 提奚 제해 - 夫租 부조
駟望 사망 - 渾彌 혼미 - 邪頭味 사두미
海冥 해명 - 呑列 탄열 ★ 이상 25제후국 §
2020.4.13. 편집
一鼓 김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