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경기남부 읽기 모임에 참석했어요
2대 수괴인 민동샘이 준비해온 벗카페에 올려진 오늘의 교육과 벗에 대한 몇몇 글들을 가지고
벗과 오늘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후기라고 제목은 달았지만 사실은 경기남부모임샘들의 이야기보다는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될 듯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수괴의 엄명(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지나가며 툭 던지 한마디인..샘이 카페에 글 한번 써보시죠?) 때문임다^^;
기록하지않아서 기억에만 의존하여 적다보니
제가 한 말들도 솔직히 어렴풋하여 아마도 후기의 양식을 빌린 벗에 대한 평소 제 생각을 적게될 듯 합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ㅋㅋ
1. 교육불가능성은 완성된 담론인가?
-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글에선가 담론으로서의 교육불가능성은 이제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고 그로 인해 완결되어져가는데 벗은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흐름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육불가능성은 담론으로서 시도되었을 뿐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담론이 선언적으로 설파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완결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에서 저는 선언적 언표가 지닌 상징성에서 수용했을 뿐 그것이 담보하고 있는 수많은 현실내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기남부 모임의 동준샘의 표현처럼 수많은 결들이 존재하는 데, 그 결들을 드러내는 것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교육불가능성 담론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논의로 진입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었다는 데에 저는 동의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육불가능성 담론과 '증언'으로서의 기록이 가지는 의미는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증언이 없는 담론은 허황된 선언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에 여전히 교육불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결을 드러내는 증언들이 필요하고 드러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증언의 부족이 담론의 완성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론이 아니라 증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증언은 이른바 진보성만이 아니라 일반성(뭐랄까요..탁월함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제 나왔던 이야기처럼 교육불가능성에 대해서 교육가능성을 언급할 수도 있어야하며, 또한 교육불가능성 안에서도 생태적 전환만이 아닌 평범한, 어쩌면 이기적으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저같은 혁신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교사들의 생각까지도 논의의 장에서 활개칠 수 있는 증언들이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은 교사 컴플렉스만큼이나 진보연한 교사 코스프레(이건 저에 대한 용어입니다..진보적이지 못한데 진보연한 것처럼 보이려는 저의 욕망에 대한 표현입니다요~)도 논의를 확장시키지 못하는 한계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불가능성과 그것의 증언의 부족. 여전히 담론으로서의 교육불가능성이 미완결임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 벗은 협동조합이다. 그런데 나는 조합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 이 부분은 교육공동체 '벗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으로서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벗에 가입했는가? 조합원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또는 조합원은 어떤 일을 하는가? 벗은 조합의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는가? 벗이 조합이라면 조합원이 결합하는 사업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보다는 주식회사의 소액주주일 뿐은 아닌가?와 같은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협동조합으로서의 벗이 하는 사업으로 저는 매체인 '오늘의교육'의 발간과 두더지연구소나, 조합원문고(맞나요?)와 같은 사업이 조합원이 참여하는 조합방식의 사업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벗의 사업이 수익사업모델이기보다는 조합원의 참여와 나눔의 방식이라는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벗은 그러한 사업을 하는데 조합원이 나는 그러한 사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른바 벗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서말한 소액주주로 벗을 관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사업 기획에 참여하지않고, 기획된 사업에 참여만한다는 의미에서 소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결론은 저는 조합원이기보다는 소비하는 소비자인데, 아주 적은 지분은 가진 소액주주의 정체성을 가진 것일뿐이라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내가 으샤으샤해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봐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생각해본 것이라고는 그래도 벗이 필요해..라는 뭉뚱그리다 못해 어정쩡을 넘어 나이브의 정수를 보여주는 제 의식과 인식의 안이함을 확인하는 정도였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으로서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아니 벗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기는 한가?라는 질문만 던져준 채 다시 후다닥 도망치는 결론만 나버렸습니다. 어이없죠?^^;;
3. 지역 읽기 모임은 무엇을 할 것인가?
-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이야기인데요.. 벗의 지역읽기모임은 단순한 읽기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무국 분들의 인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저희 경기남부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읽기모임이 집행, 실천 단위로 기능할 것인가? 예를 들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욕설하지 않기나 아이들 이름 불러주기와 같은 지역읽기모임 자체의 약속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작은 것들이라도,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우리들이 터하고 있는 학교에서 무언가 변화의 씨앗을 심으며, 나 자신도 변하는 실천을 해나가는 것을 이야기는 했지만 전혀 진척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오늘의교육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내가 있는 학교에서의 답답함 또는 혼자라서 해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 마련이라는 것도 의미를 지닐텐데 그런 부분은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다른 지역에서 오늘의교육 읽기모임에 참여했다나 경기도로 전근을 와서 경기남부 모임에 오신 샘의 경우에는 현학적이거나 학술적인 용어가 오고가는 오늘의교육 읽기모임보다는 학교에서 부딪히는 답답함을 함께 공감하고, 분노해주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전교조의 경직됨이나, 교사모임의 과도한 친절(?) 또는 유함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모임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읽기모임은 그냥 사람을 좋아하고,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논쟁 아닌 논쟁을 통해서 성장하는 기쁨을 좋아해서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술도 좋아하구요^^... 사실 이건 그만큼 외롭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바로 내가 있는 학교에서 말이죠. 학교에 그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논쟁 아닌 논쟁을 하고 있다면 굳이 벗을 찾아나서지 않았겠지요. 그런 불만족이 벗 읽기모임을 찾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만남 경기남부 벗 읽기모임 샘들을 통해서 때론 제 생각을 다져갔고, 때론 제 부족함과 허술함을 알아갔으니 저에게 참 유익했던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읽기모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일단 모이고, 틀을 자꾸 만들지 말고 열어놓고 이야기하자...정도로 마무리되었네요. 이것도 느슨하죠?^^;
4. 벗은 교사모임인가?
- 요즘 청소년 활동가분들의 글들이 벗 카페와 오늘의교육 지면을 통해서 소개가 되고, 교육농 이야기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오늘의교육의 열독률이 심정적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리고 한편 교사들의 교실 속 세세한 이야기들과 신선한(?) 관점들이 벗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가입하셨다는 분들이 많았구요. 점차로 벗이 교사만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서 무관심의 영역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저는 솔직히... 오늘의 교육을 정독한지가 일년은 넘은 상황이라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모두 읽지 않고 읽고 싶은 부분만 발췌독했기 때문에 오늘의교육 텍스트에 대한 비평은 하지 못할 수준인지라... 여튼 교사모임으로서는 아니지만 교사들이 많은 벗의 특성이 좀 더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교사의 다양한 면모들. 최소한 우리가 비판해마지 않는 무지막지한 우리들의 동료교사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교사들의 이야기들이 눈에 띄기를 더욱 바라는 마음은 공통이었습니다. 그게 일반교사 또는 평범한 교사들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만.. 그런 교사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기 모임을 하다보면 몇명 되지도 않는데 거기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평범한 교사..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분들이 과연 어떤 분들이고, 그분들이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흔히 말하는 좀 더 다양한 결들. 성스러운 교사상, 헌신적인 교사상 말고 좀 더 일상에 찌들은, 어찌보면 이기적이다 보일수도 있을만한 생각들을 가진 지극히 내 옆의 사람은 좋지만 생각은 조금 졸렬하거나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단락은..써놓고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네요 ㅜㅜ 단순화시키면 벗은 교사모임으로서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좀 더 개방하라!
5. 벗은 위기인가?
- 아닙니다. 왜냐하면요..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벗이 위기다!하니까 득달같이 달려들어 뭔가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어하는 걸 보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성장통입니다. 끄읕.
ps) 참고로 이 글을 쓴 제가 생각하는 전.. 제가 선택해서 참여하는 모든 모임이 그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는 자뻑주의자이자, 변혁보다는 유지가 더 힘들고, 기획보다는 집행이 더 힙들다고 생각하여 유지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일상의 보수주의자며, 여전히 관료성을 경계하지만 찌든 나의 관료성을 부지불실간 인지하지 못하는, 꼰대가 되기 싫어하는 꼰대입니다.
첫댓글 "좋은 교사 컴플렉스만큼이나 진보연한 교사 코스프레도 논의를 확장시키지 못하는 한계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라는 부분이 정말 뼈저리게 와 닿네요.
전 예전에 익명게시판이었던가요, 방학 때 여행가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글이 올라왔을 때 왜 방학때 여행가면 안 되는 거지? 하고 생각했던 터라 이 글 마음에 듭니다. ㅎㅎ 솔직해지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자신의 맨 얼굴을 봐야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저도 방학때마다 놀러가도 자기 취미생활 즐기는 벗의 이야기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벗이 뭐 대단한 지사체 그런건 아니잖아요 ㅎㅎ
끝임없는 자기검열의 덫을 요리저리 피해갈 수 있는 약삭빠름,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합리화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메타인지로 버티며 살아가기가 참 힘들어요. 솔직해지자.는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해지는 구조의 벽을 같이 기어올라가보아여~
네, 대부분의 조합원이 벗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구요. 많은 벗들이 자기가 왜 벗에 가입했는지 자신을 조합원이라 생각하는지, 조합원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기는 벗인에서 무엇을 할수 있고 어디까지 할 생각인지 자주 생각해봤음 좋겠습니다.^^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과 뭘 하는 것이 계속 분리되어 생각을 풀어 놓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허나.. 혼자만이 아니라면. 언젠가??ㅎㅎ
@방외인(김용훈) 뭘할수 있을지가 생각이 안나면 벗에게 뭘 기대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여유와 여백이 느껴져 더 좋았습니다. 컴플렉스와 코스프레 모두로부터 해방된 교사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엄청난 비문의 홍수를 헤치고 읽어내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ㅋㅋ 여백과 여백이 느껴지셨다면 그건 아마도 제 스스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해요. 근데 거기까지가 딱 저인 것!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좋은 글이네요.
저에게 생각할거리를 던져준 벗 카페와 경기님부 샘들의 덕분임다. 샘의 생각도 나누어주시면 저 역시 다시금 돌아볼 수 있을 듯해요~ 샘 글도 함 찾아보겠음다!
' 다른 지역에서 오늘의교육 읽기모임에 참여했다나 경기도로 전근을 와서 경기남부 모임에 오신 샘'입니다. ^^
중구난방 이야기를 나누었던것 같은데 어느틈에 이렇게 정리를 하셨나요~~~? 대단하세요.
+ 전 다음 모임에는 '오늘의 교육'을 좀 읽고 나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