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12-23]
“우연히 봄”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먼 길을 걸어간 끝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을 바꿀 인물을 만납니다.
바로 ‘골리앗’입니다.
우리 본문 23절을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17: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마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성경은 ‘마침’이란 단어로
다윗과 골리앗의 만남을
영화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을 위해 전쟁터에 갔을 때
골리앗이 화장실을 가거나 배가 아파
다윗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겠죠.
다윗도 심부름 마치고
금방 지나 갔을 수도 있어요.
하나님의 타이밍은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과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바꿀 인물이라면
좋은 사람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좋은 스승, 좋은 선배, 좋은 동료,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적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우리를 공격하는
적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그때 만난 역경 때문에
인생의 황금기로 접어든 인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골리앗은
다윗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골리앗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이 축복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골리앗이
인생을 바꾸는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사무엘상 17장 전체를 통해
세 가지 비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자랐습니다.
7명의 형들 사이에서 사랑둥이로 자라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막내임에도 형들에 비해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죠.
그런 중에 이새의 아들 중 세 명이
전쟁에 징집되어 집을 떠납니다.
한달 가량 되었을 때 이새는
아들들의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부릅니다.
“다윗, 지금 형들을 위해 이 도시락 좀 배달해줘.”
도시락을 배달하라는 말에
다윗은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곡식 한 에바(약 22리터)와
떡 열 덩이가 곱게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걸 다요?”
“그래. 그거 다 가지고 가렴.
아, 그리고 여기 치즈 열 덩이가 있는데
이것도 같이 가지고 가.
이건 부대장님께 주면서
형들의 안부 좀 물어보거라.”
아버지는 다윗에게 모든 짐을 맡기고
방으로 돌아가 쉬었습니다.
다윗은 아직 십대 소년에 불과했는데
이 모든 짐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다윗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전쟁터인
엘라 골짜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약 25km입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가야하니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어떠실 것 같나요?
저라면 아버지께 다른 종들에게
시키라고 했을 것 같아요.
아니면 형들도 많은데
왜 하필 저냐면 따졌을 것 같아요.
다윗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죠.
‘왜 굳이 나지?’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얼마나 억울할 때가 많습니까?
회사 생활하는데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저런 걸 나한테 시켜?’란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사원증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막상 사원증을 하고 나니
목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회사에서 돈을 받는 대신
청춘을 바치는 노예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목에 있는 사원증 때문에 숨이 막힌다.”
대리라는 이유만으로 과장의
시시콜콜한 농담에 반응해야 하며,
부장을 벗어나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주말에 임원들과 골프를 다녀야 하는 것들.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 아닙니까?
자영업하시는 분들은 또 어떤가요?
거래처와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야 하는 때도 있죠.
우리는 누구나 다윗과 같은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 본문 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7: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부탁받은 것들을
하나씩 챙겼습니다.
자기 양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윗의 특징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다윗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그저 묵묵하게 순종합니다.
그것이 우연을 축복으로 바꾸는
첫 번째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억울한 상황에서도
순종을 선택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어요.
그랬더니 그곳에서
놀라운 일을 마주합니다.
골리앗이라는 변장된 축복과 만나죠.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감정과 기분에 따라 살지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축복의 길을 걷길 바랍니다.
골리앗이 축복이 되는 두번째 비밀은 준비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0절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먼 길을 오면서 물매를 준비하고 있었죠.
그렇다고 도구만 준비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력도 준비되어 있었어요.
양을 치면서 수많은 곰과 사자를 상대하며
실력을 키웠죠.
가위를 들었다고
다 미용실 원장님이 되는 게 아닙니다.
축구화 좋은 거 신었다고
손흥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실력을 갖춰야 해요.
그 실력이 빛날 때까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요.
명검(名劍)일수록 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이런 말을 했죠.
‘만약 나무를 벨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이 있다면
도끼를 예리하게 가는데 45분을 쓰겠다.’
그만큼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준비된 자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 ‘opportunity’의 어원은
도시나 상업의 장소로
물이 들어오는 입구라는 뜻을 지닌
port(항구)에서 나왔습니다.
옛날에 항구는
조수와 바람의 상태가 좋은 날에만 열렸습니다.
그 날은 무역을 하거나 침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항구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항구가 개방되는 것을 미리 인지하는 사람만
열린 항구를 이용할 수 있었죠.
기회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그 기회를 포착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준비된 사람이었어요.
그 시간이 하루 이틀정도 끝나지 않았죠.
외로움의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다윗은 탁월한 실력자로 거듭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장 결과가 없어도
기회는 반드시 찾아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철저히 준비할 때
우리의 삶과 교회가 부흥 성장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지런하고 준비되었다 해도
막상 골리앗 앞에 서면 어떨까요?
두렵습니다.
저는 대학 입시 때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면접실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결국 면접을 망치고 말았죠.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골리앗을 만납니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큰 위기 앞에 서기도 합니다.
질병의 문제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죠.
자녀들이 반항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나름 실력을 쌓았다 하더라도
우리 힘으로 안 될 때가 있어요.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죠.
우리 사무엘상 17장 45-4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자신의 실력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를 자기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길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도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대형견은 이렇게 짖습니다.
“에프 에프”
중형견은 이렇게 짖죠.
“알알 알알”
소형견은 이렇게 짖습니다.
“엘엘 엘엘”
그런데 조용한 밤 시골에서 사는 개는
이렇게 합니다.
“오오오오오오”
개가 짖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무서워서 그렇답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짖는 거죠.
혹시 자기에게 해가 될까봐 말입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짖지 않아요.
그래서 주인이 오면 가만히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40일 동안이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랑 싸울 자 없지? 그렇지? 한 놈만 나와봐.
너희가 이기면 우리가 종이 될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군대는
모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어요.
그 소리를 듣고 오히려 거룩한 분노,
즉 의분이 끓어 올랐어요.
“저 할례받지 못한 자가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까?
저걸 가만둬서 되겠습니까?”
다윗에게 골리앗의 우렁찬 소리는
대형견이 짓는 ‘에프 에프’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골에서 조용한 밤에 짓는
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저 멀리서 무서워서 짖는 개 소리였죠.
우리는 어떤가요?
세상이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에
두려워하고 있진 않습니까?
이번주에 두 번이나 코피를 쏟았어요.
그런데 어제 말씀을 준비하며
그 이유를 알았어요.
설교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거였어요.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하는데 혹시라도 늦을까봐
걱정 때문에 매일 밤 제대로 잠을 들수
없었던 겁니다.
동시에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목사의 자녀로 잘키우기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잘하는 건지, 뭐가 맞는 건지 말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경제에 대한 부담이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걱정하진 않으십니까?
이런 모든 것들이
대형견의 짖는 소리처럼 들리진 않나요?
그럴 때 기억하십시오.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얼마 전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
노래 하나를 들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은
<우연히 봄>이란 곡이었습니다.
자세한 곡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잘 알 수 있어요.
저는 말씀을 묵상하던 중이었기에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이 들었어요.
다윗이 우연히 전쟁터에 나갔다가
골리앗을 본 걸로 보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에선
우연이 아니었어요.
분명한 필연이었습니다.
우연이 필연이 되기 위해선
다윗의 순종이 있어야 했어요.
또한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싸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오늘도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싸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싸웁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준비된 각자의 물매를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