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피는 따뜻했다
한반도는 공룡 천국이었다
과학자답지 못한 얘기겠지만 나는 공상과학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60년대와 70년대의 공상과학영화는 솔직히 너무 유치해서 싫었다. 당시 TV에서 방영하던 ‘우주 가족’이란 드라마를 가끔 본 기억이 있는데, 행동이 부자연스런 로봇을 보며 미래에 대한 나의 기대는 다분히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요즘의 공상과학영화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자극 그 자체에 목을 매는 것 같아 또한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감명받은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다. 이 영화는 제니의 초상,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만추’ 등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되었다. 지구에 살았던 가장 거대한 초식동물 중의 하나였던 브래키오소로스가 뒷발에 몸을 싣고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뜯는 장면에서 나는 그만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내가 실제로 그 거대한 동물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가슴 뜨거운 흥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의 경우 공룡에 관심을 갖는 시기가 있다. 우리 꼬마도 세 살 무렵 매일 공룡에 파묻혀 살았다. 그 발음하기도 어려운 공룡 이름들을 줄줄 꿸 뿐 아니라 마치 직접 키워보기라도 한 듯 그들의 습성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곤 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평원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타조 떼 같은 공룡의 이름을 미처 기억해 내지 못하던 그랜트 박사도 곁에 서 있던 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걸리마이머스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어른들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공룡의 이름들이 아이들에게는 마치 친구 이름처럼 친숙한 모양이다.
공룡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을 수 있는가? 아마도 그들이 지닌 신비로움 때문일 것이다. 중생대 시절, 이 지구를 호령하던 그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6천5백만 년 전 거의 동시에 모두 사라져 버린 그 엄청난 비밀 말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동물들이었을까? 세계 각처에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화석으로 남을 수 있는 몸 부위가 단단하고 썩지 않는 뼈와 알껍질 등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기에는 늘 부족하다.
몸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비늘로 덮인 피부로 미루어 공룡을 파충류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므로 항온동물인 우리들처럼 음식물에서 생성되는 화학에너지로 몸을 덥히는 것이 아니라,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을 옮겨 다니며 체온을 조절한다.
열대지방에서 동물들의 생태와 행동을 연구하다 보면, 도마뱀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을 종종 만난다. 언젠가는 도마뱀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관찰하러 따라나서곤 한다. 그런데 도마뱀과 같은 변온동물들의 행동은 좀 지루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양지와 음지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며 보낸다.
만일 브래키오소로스가 변온동물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 거대한 몸을 덥혀 활동하려면 아침나절 따뜻한 곳으로 옮겨도 저녁때나 돼야 발가락이라도 하나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또 해가 지고 차가운 밤이 올 것이 아닌가. 한번 제대로 움직여 보지도 못하고 매일 몸이 데워지길 기다리다 결국 죽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과학 자문으로 ‘쥬라기 공원’ 제작에 참여했던 유명한 공룡학자 로버트 배커(Rober Balker)는 이 같은 간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공룡은 항온동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척추동물의 뼛속에는 혈관과 신경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무수히 많은 관들이 분포하는데, 박물관에 있는 공룡 뼈를 절단해 본 결과, 그 관들이 파충류보다는 훨씬 빽빽이 들어차 있어 조류나 포유류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만큼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늘 따뜻한 피를 온몸 구석구석에 공급한 증거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또 심장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공룡 화석이 발견되어, 그들의 심장이 우리처럼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악어류를 제외한 모든 파충류와 양서류의 심장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심방은 좌심방 우심 방으로 나뉘어 둘이지만, 심실은 하나인 것이다. 악어들은 심장판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다른 많은 면에서 새들과 가장 가까운 사촌임이 밝혀졌다.
공룡 화석이 많기로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 북부와 몽고에 걸쳐 있는 고비 사막이다. 이곳이 그 옛날 중생대 시절에도 특별히 공룡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막이란 지형적 특성으로 화석이 비교적 잘 보존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최근 발견되는 공룡 화석을 보면, 우리나라도 옛날엔 공룡들의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남해안 바닷가에서 공룡 발자국을 찾는 일은 이제 그리 대단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발자국의 모양이나 크기 그리고 숫자로 미뤄볼 때, 작은 공룡들도 아니고 거대 초식공룡들이 떼 지어 다니던 곳이었다.
그 거대한 공룡들이 이 작은 반도 끝의 바닷가에서 도대체 무얼 했을까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남해안은 아마도 그 옛날 바닷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비교적 지대가 낮은 곳이었을 뿐이리라. 다도해라 불릴 만큼 많은 남해의 섬들은 모두 그 당시 바닷물에 잠기기 전에는 작은 산봉우리들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걸어 다니는 이 땅에 그 거대한 동물들이 활보했다 생각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거린다. 하지만 이런 공룡 천국에 공룡을 연구하는 학자가 몇 안 된다 하니 어쩐지 서글프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저
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