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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검봉산 곰배령 정상 |
점봉산 곰배령은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함께 인제군을 대표하는 힐링 관광지이다.
몇 년 전 TV드라마를 통해 소개되면서 ‘천상의 화원’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별명 그대로 편도 5㎞의 등산로 전 구간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로 뒤덮여 등산객들에게 색의 향연을 제공한다.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이 희고 늘씬한 북구 미인의 외양을 닮았다면 곰배령은 보고 겪을수록 새록새록 아름다운 우리네 미인을 닮았다. 신록이 가득한 오월, 수수한 우리 미인을 만나러 곰배령에 오른다.
곰배령은 관리사무실에서 정상까지 어린아이나 노약자도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완만한 산길로 이뤄져 있다. 등산로에 표시된 산행시간은 왕복 4시간이지만 자연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시간이 크게 달라진다. 사실상 곰배령에서 등산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길섶에 저마다의 색깔로 수줍게 피어있는 꽃들에 홀리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산시간은 오전 9시와 오전 10시, 오전 11시로 국한한다.
곰배령 산행의 첫 관문은 관리사무실에서 예약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곰배령이 위치하고 있는 점봉산은 식물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교차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의 20%인 854종의 식물과 84종의 조·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보전가치를 지닌 곳으로 지난 1993년부터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에 따라 곰배령도 출입을 제한, 인터넷 예약시스템으로 한정된 인원만 입산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하루 400명만 입산을 허용했으나 올해부터는 하루 600명으로 200명 늘렸다.
관리사무소에서 입산 패찰을 받아 완만한 산길을 30여분쯤 걷다 보면 곰배령 산행의 실질적인 출발지인 강선마을에 도착한다. 강선마을은 주민들이 가벼운 먹거리와 손수 담은 산나물 장아찌 등을 파는 곳으로 입산객들은 주로 하산길에 들러 간다. 곰배령 등산로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반드시 몸을 가볍게 하고 가야 한다.
강선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강선입산통제소가 나온다. 이곳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산길과 화원이 펼쳐진다. 울창한 산림과 길가에 수줍게 피어있는 꽃들의 향연에 정신을 팔다보면 함께했던 일행은 없고 낯선 일행 틈에 끼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마타리, 왕고들배기, 달맞이꽃, 흰민들레 등 마을인근에서 보아 눈에 익숙한 꽃들 외에 노루귀, 기린초, 한계령풀, 개별꽃 등 생소한 이름이 담긴 푯말 옆에 흰색과 보라색 꽃들이 지천이다. 까마귀, 지빠귀, 산까치가 숲에 숨어 익숙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노래를 불러주고 많은 수량의 계곡물이 인간의 호불호를 외면한 장엄한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작고 예쁜 피사체를 흔들어 선명한 사진을 원하는 방문객을 애타게 한다. 다람쥐란 놈도 바지런한 발놀림을 멈추고 작고 까만 눈을 방문객과 맞춘다. 이런 아기자기한 풍경 속에 아름드리 고목은 장구한 세월을 잊지 말라며 점잖게 가지를 흔들고 어느 겨울 모진 바람에 뿌리째 넘어진 고목이 잘 마른 황태의 속살처럼 퇴색해가며 죽음 이후에도 긴 삶이 있다고 경계한다.
이런 풍경은 3.3㎞등산기간 내내 이어진다. 올해는 색다른 풍경이 더해졌다. 등산로변 야생화 군락지 곳곳이 새로 밭을 일군 것처럼 파헤쳐져 있다. 호랑이가 떠난 뒤 산의 제왕이 된 멧돼지의 짓이다. 사람이 그랬으면 철창신세를 면할 수 없을 중죄이지만 멧돼지가 그랬다니 용서가 된다. 이런 풍경도 자연의 일부이다.
곰배령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주인이다. 하늘을 향해 곰이 드러누운 모습을 닮아 이름 붙여진 곰배령은 기린면 진동리와 인제읍 귀둔리를 옛사람들이 넘나들었던 해발 1164m 높이의 고개이다. 정상에는 바람이 많아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털이 짧은 곰의 배와 닮은 정상의 지형은 곰배령이라 이름 붙인 우리 조상의 지혜에 대해 다시 한 번 탄복케 한다. 5월에도 손이 시릴 만큼 찬바람 때문에 정상등극의 기쁨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 힘들다. 오를 때 느꼈던 감격을 다시 음미하기 위해 하산길을 서두른다.
하산 길은 등산로의 되감기가 아니라 부록처럼 주어진 서비스 컷이다. 눈에 익지만 새로운 풍경이 다시 이어진다. 5㎞의 하산길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인제/안의호 eunsol@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