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월요일(루카12,13-21)
참 부자가 되십시오
한때“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참된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 부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얼마만큼 돈을 버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만큼 잘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많이 가졌다고 해서 부자일 수는 없습니다. 참 부자가 되고 싶은 바람을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주님을 경외하며 가진 적은 것이, 불안 속의 많은 보화보다 낫다’(잠언15,16).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큰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수확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이 또한 허무로다’(코헬5,9). 재산에 욕심이 생기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해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즐겁게 살 줄 모릅니다(집회14,5). 그러므로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마저 버리십시오(잠언23,4).‘재물은 조금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돈이 있다고 우쭐대다가는 나둥그러집니다’(하바2,5). 그러므로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습니다. 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습니다’(토비12,8).
사실 생명은 지상의 재물이나 넘치는 부의 산물이 아닙니다. 생명을 안배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현대의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영원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의 소유를 통해서 생명의 안전을 생각하는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하느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결코 부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큰 부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가 되십시오. 석가모니도 말했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가족은 물론 친지가 없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작은 아파트에 계셨는데 본당 수녀님께서 틈틈이 방문하여 청소도 해드리고 말벗도 해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수녀님께서 할머니를 책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처분해서 양로원에 들어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혹 서운해하실까 조심스레 할머니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양로원에 들어가면 당신의 재산을 다 잃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생각을 접고 할머니를 열심히 챙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님은 홀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발견하고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연고자가 없는 관계로 이러저러한 조사 끝에 동사무소를 통해서 쓸쓸히 장례를 치렀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아파트가 생명이나 다름없었겠지만 그 아파트를 잘 활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재물을 모으려거든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0.21).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렘브란트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627년, 나무판에 유채, 32x42cm, 베린 국립미술관, 베를린, 독일.
밤은 이미 깊었다. 부자의 신생도 밤처럼 끝자락에 있어 그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름진 이마와 얼굴은 그의 황혼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부자의 눈은 오로지 돈에만 집중되어 있다. 안경을 낀 부자는 동전을 오른손에 쥐고 유심히 본다. 재산대장은 빈 곳이 없이 책상 가득히 쌓여 있고, 촛불의 빛은 동전을 들고 있는 오른손에 의해 가려졌다. 그 빛은 오로지 동전을 살피는 데에만 사용되었다. 부자의 책상에는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작은 저울이 있는데도 부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촛불이 꺼질까봐 조심스럽게 손으로 가리고 있는 동작은 부자의 불안한 심리를 잘 나타내준다.
참 부자가 되고싶은 바람을 하느님께서 꼭
들어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
지금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큰 부자입니다.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