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주남저수지
삼월 중순 화요일이다. 근교 농촌으로 나가는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이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시작되었느니 오늘로 한 주를 보내는 날이다. 새벽같이 이른 시간은 아니라도 학생 등교나 직장인이 출근보다는 일찍 현관을 나선다. 이번 자연학교 등굣길은 동선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평소와 다른 경로를 택했다. 아침 식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용지호수로 진출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20여 년 전 용지호수와 가까운 신설 학교로 부임했을 때 추억이 떠올랐다. 그 무렵 40대 후반이었는데 여러 군데 흩어져 근무하던 낯선 얼굴의 동료들이 모두 첫 부임으로 모였는데 나의 외모가 교장으로 오인을 받아 당사자에게 미안했다. 아침이면 근무지까지 멀지 않은 거리여서 호숫가 산책로를 두세 바퀴 거닐고 출근했다. 퇴근 때도 집으로 곧장 가질 않고 호숫가를 둘렀다.
용지호수는 엷게 낀 구름 사이로 대암산 산마루에서 솟아오는 아침 햇살이 비쳤다. 공원 관리 부서에서는 산책로에 낙엽이나 휴지 조각 하나라도 띄지 않게 깨끗하게 해두었다. 드물게 산책을 나선 이들이 거니는 호숫가를 두 바퀴 돌았다. 벚나무는 가지에 꽃눈이 도톰해지고 능수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가지가 휘어 드리워졌다. 호숫가 산책을 마치고 원이대로에서 소답동으로 갔다.
평소보다 조금 늦어진 시간에 창원역을 출발해 근교 농촌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은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거쳤다. 가술에 이르기 전 가월마을을 지난 주남저수지에서 내렸다. 주남저수지와 수문으로 경계를 이룬 동판저수지를 바라보니 갯버들은 움이 트는 낌새를 느낄 수 없었다. 아침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니 갯버들 가지는 더욱 앙상했다.
동판저수지를 뒤로 하고 주남저수지 둑길로 드니 색이 바랜 물억새는 야위어 길게 이어졌다. 높이 자란 이태리포플러 꼭대기는 묵은 까치집이 보였다. 정글을 이루다시피 무성한 갯버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는 듯했다. 드넓은 주남저수지는 겨울 철새들이 대부분 떠나 빈 둥지였다. 상당수 겨울새는 북녘으로 귀환하고 일부만 남아 잠을 자고 들녘으로 먹이활동을 나간 시간대였다.
주말이 아닌 평일 아침나절이라 산책객은 아주 드물어 호젓하게 혼자 걸으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나 싶었다. 산책로 데크가 세워진 기둥을 따라 볕 바른 곳에 쑥이 자라 나왔는데 이다음 누군가 햇살을 등지고 쑥을 캐는 이가 있을 듯했다. 탐조 전망대를 지나 배수문에 이르러 앞으로 계속 나아가질 않고 주남마을로 향했다. 거기 길섶에는 쑥을 캐는 할머니를 한 분 뵙게 되었다.
주남저수지 배수장 지나 들녘을 가로지른 포장길을 따라 걸으니 햇살이 퍼져 따뜻함을 느꼈다. 가을에 탈곡 이후 논바닥에 떨어진 낱 곡식을 주워 먹던 철새들은 모두 사라져 흔적이 없었다. 선발대와 본진에 합류하지 못한 몇 마리가 공중에서 끼룩거려 날았는데 녀석들도 오늘내일 종적을 감출 테다. 일모작 논바닥은 트랙터로 마른갈이를 마쳐 놓아 어느새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오후가 되면 들녘 학교 아동안전지킴이 임무를 수행하는 신동마을 안길을 거쳐 가술 산업단지에 닿았다. 마침 때가 되어 회사원들이 한식 뷔페로 모여들어 나도 그들 틈새에서 점심을 때웠다. 산업체 공장지대라 한 끼 식사를 들만한 식당이 흔해 불편을 겪지 않는다. 식후에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한 잔 마시고 삼봉 어린이공원에서 느긋하게 쉬면서 오후에 주어질 임무를 기다렸다.
정한 시간에 맞춰 동료와 더불어 현장으로 나가 오후 햇살 아래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오전에 거쳐온 둑길이 떠올라 ‘새봄, 주남지’를 남겼다. “하루가 저물 때면 저수지 되돌아와 / 수면에 잠을 청한 고니 떼 기러기 떼 / 봄 오자 나래를 펼쳐 본향 찾아 떠났다 // 색 바랜 물억새는 가닥이 야위어져 / 갈대꽃 부풀어서 바람에 흔들리니 / 텃새가 알 놓아 품을 둥지 삼을 자리다” 2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