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鵲孤宿蜀黍柄(일작고숙촉서병)-한 마리 까치, 수숫대에 잠들어 있고
月明露白田水鳴(월명로백전수명)-밝은 달빛에 이슬은 희고, 논에 물 흐르는 소리
樹下小屋圓如石(수하소옥원여석)-나무 아래 작은 집, 바위같이 둥그렇고
屋頭匏花明如星(옥두포화명여성)-지붕엔 박꽃 별빛처럼 밝아라!
박지원(朴趾源)
고개 숙인 수숫대에 새벽 잠든 까치
이맘쯤 아침 시골 산길 들길을 걸으면, 아침 이슬에 삼베바지는 무릎까지
흠뻑 젖는다.
가을 이슬이 내리는 백로(白露)의 절기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새벽달 훤히 밝은데,
풀잎은 이슬에 흥건히 맺혀있고
조용한 나락 논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밭머리에 머리 푼 귀신같이 쑥 빼어난 수숫대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외로이 자고 있다.
모퉁이 길을 돌면,
느티고목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대나무 평상이 혼자 있다.
그 옆에 골반이 뒤틀린 듯 한 작은 오두막
지붕위에는 흰 박꽃이 평화롭게 피어 있는데,
아직도 집에 가지 못한 달빛과 별빛을 받아
수줍어 한다.
박꽃은 향기도 화려함도 없는 화장기 없는 민낯의 흰색 얼굴이지만
그 밑에 달려 있는 흥부의 복덩이는
속을 파서 식초에 무쳐 먹으면
허기진 배를 채워 박꽃처럼 소박한 웃을 나게 한다.
겉과 속이 모두 불그스레하여
안팎의 구별이 없는
수수팥떡
수수부꾸미
지금은 웰빙 식품으로 별미(別味) 대접을 받지만
하기야
그때에도 수수는 대접을 받았지
수수(高梁)를 절구통에 찧고
맷돌에 갈 때면
괜히 신이 나서
옆에 있는 삽살개를 발길로 걷어찼지
수숫대로 만든 빗자루로
콩기름 먹인 장판방을 쓸고 싶다.
수숫대 울타리 밑에 앉아
전깃줄에 모여 앉아
이사 갈 의논을 하는
9월의 제비들을 보고 싶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