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 시비를 구분하라
사람들은 종종 말이 오가는 모든 상황을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대화가 섞여 있다. 하나는 생각을 넓히는 토론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부딪히는 시비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성격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토론이라는 말은 한자로 討論이라 쓴다. ‘토(討)’는 따져 묻고 살핀다는 뜻이고 ‘론(論)’은 이치를 말한다는 뜻이다. 결국 토론은 어떤 문제를 깊이 따져 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는 데 있다. 그래서 토론에는 반드시 주제가 있고, 주장에는 근거가 따르며,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제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토론은 시작된다.
반면 시비는 是非라는 말에서 온다. 본래의 뜻은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의미였지만, 일상에서는 점차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시비를 건다”는 말은 상대에게 트집을 잡아 다툼을 일으키는 행동을 가리킨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화가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충돌에 가깝다.
두 대화의 차이는 목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토론은 진실을 찾기 위한 대화이고, 시비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다툼이다. 토론에서는 문제를 중심에 두지만 시비에서는 사람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토론에서는 근거와 논리가 오가지만 시비에서는 감정과 말의 날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토론이 이어지면 이해가 깊어지지만, 시비가 이어지면 관계가 금세 거칠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시비가 처음에는 토론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논점이 문제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면 대화는 방향을 잃는다. “그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라는 말이 “당신은 생각이 짧습니다”라는 말로 바뀌는 순간 토론은 끝나고 시비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대화는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를 이기려는 싸움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차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말하고 있는가.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말하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 동안 서로의 말 속에서 살아간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말은 관계를 만들고 세상을 움직인다. 그 말이 토론이 되면 지혜가 쌓이고 공동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그 말이 시비가 되면 마음은 닫히고 갈등만 남는다.
결국 문제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진실을 찾으려는 마음은 토론을 만들고, 이기려는 마음은 시비를 만든다. 그래서 품격 있는 사회는 말을 많이 하는 사회가 아니라 토론을 많이 하는 사회다.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생각을 나누고 있는가, 아니면 감정을 부딪히고 있는가. 이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말은 싸움이 아니라 배움이 되고, 의견의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지혜의 문이 될 것이다. 토론과 시비를 구분할 줄 아는 순간 대화의 수준도, 사람의 품격도 한 단계 높아지기 때문이다.
#박진하칼럼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