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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마 / 탕아의 귀가
비는 밤중에 그쳤던 모양입니다.
마당에는 질퍽한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
관목의 이파리마다 아침이슬보다도 굵은 물방울이 고루 묻어있었습니다.
습기는 머금었어도, 평소보다 기분 좋은 서늘한 공기가 안개를 타고 공원을 맴돌았습니다.
‘오늘은 관목에 진딧물이 붙어 있지 않을 거인 데스우... 대신 큰 벌레상이 붙어 있을지도 모르니 더 자세히 찾아보는데스’
마마가 그녀만 쓰는 플라타너스 이파리 이불을 개며 말했습니다.
‘마마는 일찍부터 장마 준비물을 구하러 가야 하는데스. 장녀 인솔하에 조용히 아침을 챙겨 먹고는 들어가야 하는데스우’
‘와따치만 믿어주시는테치!’
장녀 오네챠가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아침해가 명확히 뜨기도 전에 일찍이 마마는 봉투를 짊어지고 나갔습니다.
어제 하루의 먹이활동을 쉬어 보충해야 했고, 장마를 대비할 물품들을 구해와야 했습니다.
마마의 그날 일정은 매우 촉박했습니다.
‘테칫, 이따만한 벌레상이 있는테치이...’
잎을 훑던 차녀 오네챠가 기쁨을 애써 누르며 속삭였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하여, 이파리 뒤에 숨어있던 커다란 애벌레였습니다.
‘와따치는 여태 하나도 못 찾은테치이...’
‘테에... 와따치도 진딧물씨 운치 하나 구경을 못한 테치...’
‘테에, 찾은테치! 어느 벌레씨 알집테치!’
불행히도 하필 우리 집 마당 관목 이파리에 알을 낳은 어느 곤충.
이파리 뒤까지도 꼼꼼하게 확인하는 우리 자매에게 그것은 종종 찾아오는 아침의 작은 행운이었습니다.
‘테에에... 부러운테치.’
아침 식사는 찾은 실장석의 몫.
누구도 자매끼리 그것을 빼앗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레치이...’
키가 크지 않아 많은 잎을 훑을 수 없는 엄지챠에게 그것은 더욱 불리한 요소였습니다.
차녀 오네챠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매들의 운치라도 구걸하는 비참한 꼴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벌레씨 꼬리는 엄지챠 먹는테치?’
엄지를 유독 아꼈던 우리 자매들 중에서도, 차녀 오네챠의 엄지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고마운레... 레치? 웅덩이에서 뭐가 나오는레챳!’
‘테치! 저건...!’
바깥의 관목 수풀에서 우리 집 마당에 고인 웅덩이로 커다란 줄 같은 것이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단박에 그 동물이 처음 보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어떻게던 웅덩이를 찾아 본능적으로 멱을 감으려 했을 지렁이입니다.
‘지렁이씨 테챠아! 저걸 잡아 먹는테칫!’
‘그치만 저렇게 큰 테치이!’
‘테챠아아아!’
5녀 오네챠가 더 물어볼 것도 없이 지렁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자매들의 키 보다도 긴 지렁이가 마구 꿈틀댔습니다.
‘테베에엣!’
머리를 덮쳤다가 튕겨져 나간 5녀 오네챠가 바닥에 팽개쳐졌습니다.
‘용서하지 않는테츄! 반드시 와따치타치의 아침이 되게하는테치!’
장녀 오네챠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레치? 장녀 오네챠 도망가는레츄?’
장녀 오네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지챠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무언가를 낑낑대며 끌고 나오는 장녀 오네챠를 보고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창으로 찔러 죽이는테챠아!’
‘와따치도 돕는테츄! 복수 테치이!’
며칠 전 마마가 가져오신 닭꼬치의 꼬치였습니다.
아직도 육즙과 양념이 묻어 거무튀튀한 나무 꼬치는, 그간 잘 말라 그 뾰족함이 더했습니다.
여전히 힘차게 꿈틀대는 지렁이.
그것은 어린 자들에게 있어서 인간 어린이들이 거대한 구렁이와 맞서는 기분일 것입니다.
장녀 오네챠가 꼬치창의 앞을 잡고 꿈틀대는 지렁이의 몸을 향해 조준했습니다.
5녀 오네챠가 뒤를 잡고 들었습니다.
찔러창 자세를 유지하던 그녀들은, 장녀 오네챠의 ‘테챠아!’ 구령과 함께 달렸습니다.
이미 꼬치가 우리 집 상자에 구비된 이래, 내 제안 아래 구두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마친 그녀들이었습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를 만도 하련만,
보기 좋게 몸뚱아리를 정확히 명중한 꼬치, 아니 장창에 지렁이가 전에 없이 꿈틀댔습니다.
‘뽑는테츄우!’
‘테챠아아!’
‘와따치가 돕는테치!’
차녀 오네챠가 중간에 끼어 창을 뽑는 것을 도왔습니다.
장녀 오네챠가 다시 방향을 돌려 창의 앞부분을 조준했습니다.
‘저기 두꺼운 부분이 목일테치, 찔러테챠아아!’
그러나 두 번째의 일격은 빗나갔습니다.
그렇게 커다란 창을 세 마리의 자실장이 조준하여 맞추기에는, 지렁이의 굵기는 너무 가늘었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테츄!’
‘다시 찌르는테챠아아!’
이번에는 비스듬히 지렁이의 목을 맞췄습니다.
그러나 꼬치가 아무리 뾰족하다고 해도, 목재라는 재질과 자실장의 힘의 한계로 창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테치!’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가 이부자리 밑을 뒤졌습니다.
장녀 오네챠의 피가 묻어 반이 거뭇한 그녀의 이쑤시개와 차녀 오네챠의 이쑤시개.
그것을 찾아 마당으로 뛰어오니, 자매들은 세 번째의 유효타를 적중시키던 중이었습니다.
‘테치, 이래도 안죽는테챠아아!’
‘그럼 열 번 더 찌르는테츄, 안되면 백 번은 찔러주는테챠아아아!’
눈이 돌아간 장녀 오네챠가 포효했습니다.
마당에서 소리내는 것을 가장 커다란 죄악으로 여기던 장녀 오네챠였습니다.
그녀의 폭주 기관차는 그녀의 이성이라는 간이역에 정차하고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지렁이 사냥은 아침식사의 보장이 아니라, 일종의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들썩거리던 지렁이가 이제 온 몸을 물에서 건져내고는 관목 쪽으로 꿈틀대려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집의 영역을 탈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4녀 오네챠, 받는테치!’
‘테칙, 이걸로...?
‘자매들이 창으로 찌르는 동안, 우리는 다른 부분을 직접 찌르는테츄, 가는테치!’
‘테치!’
우리는 몸뚱아리 중간에 달려들었습니다.
그곳이 제일 덜 움직이는 부분임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테챠아아!’
‘테치이이!’
우리가 동시에 이쑤시개 목검을 지렁이 몸뚱아리에 찔러넣었습니다.
지렁이의 몸부림이 더욱 격해졌습니다.
‘테벳!’
꼬리 쪽에 좀 더 가깝던 4녀 오네챠가 격동하는 몸에 맞아 튕겨 나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목검을 주워 달려들었습니다.
‘죽는테챠아!’
그러는 동안, 장창 팀은 지렁이의 머리를 몇 번의 시도 끝에 명중시켰습니다.
머리 끝까지 파고 들어간 멋진 유효타였습니다.
그러나 지렁이는 머리가 없어져도 새로 생긴다는 질기디질긴 생명력의 대명사.
‘이거 머리를 맞아도 막 움직이는테치!’
‘구석구석 찔러줘도 살아남는지 어디 보는테챠!’
‘장녀 오네챠, 이제 포기해도...’
차녀 오네챠가 진땀을 흘리며 얘기했습니다.
‘닥치라는테츄! 중도에 포기하는 분충은 우리 자매에 없는테치!’
장녀 오네챠의 이성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렁이가 쓰러질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테챠아!’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 목검의 팀은 찌르고 튕기고 깔리고를 반복하며 사투를 벌였습니다.
‘테히이! 테히이!’
거친 숨을 마구 내쉬는 4녀 오네챠와 나.
유독 우리 자매 중에서는 체력이 영 따라주지 않는 둘이었습니다.
‘올라타는테츄!’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이쑤시개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미끈거리는 지렁이의 몸을 움켜잡고 바둥거렸습니다.
4녀 오네챠의 머리를 찬 것인지, 지렁이의 몸뚱아리를 찬 것인지, 무언가를 차 밟고는 마침내 몸뚱아리 위로 올라탔습니다.
‘얌전히 밥이 되는테챠아아아!’
내가 포효했습니다.
이제 나조차도 마당에서의 침묵이라는 룰 따위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쑤시개 목검을 마구 몸뚱아리에 박고 빼고를 반복했습니다.
지렁이가 마구 꿈틀댔으나 나는 다리와 가랑이의 힘으로 필사의 힘을 다해 떨어지는 것을 모면했습니다.
‘테챠! 테챠! 테챠! 테챠! 테챠아아아아!’
내가 마구 목검으로 내리치고 뽑아내자 마침내 깊게 찢어진 상처가 벌어져갔습니다.
‘테챠아아! 정통으로 맞은테츄!’
마침 장창 팀이 모가지를 꿰뚫는 멋진 일격을 성공시켰습니다.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죽는테치이! 죽는테치이!’
지렁이에 올라타지는 못했으나, 몸뚱아리의 중간서부터 꼬리까지 골고루 옆을 찔러가던 4녀 오네챠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없이 일관된 공격을 퍼붓던 우리는 어느새, 이 지렁이라는 질긴 생물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테츄우... 보는테치... 성공한... 테히이...’
‘테히이이... 테히이이...’
‘레츄츄... 오네챠들 고생하신레츄’
‘테히이... 테히이...’
모두가 땀에 범벅이 되어 뒤로 엎어졌습니다.
꼭두 아침부터의 운동치고는 심하게 격했습니다.
‘테히이... 하늘이 마구 핑핑도는테츄...’
4녀 오네챠가 쓰러져 말했습니다.
그러나...
‘테히이이...?’
지렁이의 꼬리 부분이 들썩 움직이더니 4녀 오네챠를 깔았습니다.
‘테...테? 테챠아아!’
‘아...아직도 살아있는...?’
푹
아직 지렁이의 몸 위에 올라타있던 내가 다시 목검을 깊숙히 꽂아 넣었습니다.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들치어 올라가려던 지렁이의 머리가 떨궈졌습니다.
이것으로 지렁이와의 사투가 모두 끝났습니다.
‘테에에... 보기보다 무거운테츄...! 꺼내주는테챠아아’
‘테... 생각해보니 조용히해야하는테츄, 아파도 조용히 있는테치!’
우리는 낑낑대며 지렁이를 끌어 집 안으로 옮겼습니다.
지렁이를 사냥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렁이의 점액으로 바닥이 젖어 보기 흉해졌지만, 괘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평소보다 늦었지만 푸짐한 아침 식사를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장녀 오네챠가... 테히이, 장녀 오네챠가 먼저 먹을 자격이 있는테츄’
‘그러엄, 와따치가 먼저 먹어보는테츄’
장녀 오네챠는 여기저기 꿰뚫려 상처가 흉한 지렁이의 머리로 다가갔습니다.
그러고는 크게 한입을 깨물었습니다.
‘테... 테츄?’
한입에 썰려나갈줄 알았던 것과 달리, 그 질긴 살에 장녀 오네챠는 한입을 베어 물지 못하고 당황했습니다.
‘테... 퉷! 흙맛만 나는테츄...’
한입도 씹지 못하고 핥다시피만 한 장녀 오네챠가 말했습니다.
‘테에에... 우리 이거 꽁친거인테츄까...’
‘테에에엥... 테에엥... 뭘 위해서...’
‘잠깐 기다려보는테츄’
내가 말했습니다.
‘마마가 먹여 주신 건 말린 지렁이씨인테치. 마마가 하신 방법대로, 햇볕에 쬐여서 말려보는테츄!’
‘일리가 있는테치! 테칙! 마마가 씹어주신 지렁이는 바싹 마른 것이었던테츄’
4녀 오네챠가 맞장구 쳤습니다.
우리는 다시 지렁이를 낑낑대며 끌어다가 마당에 던져두었습니다.
곧 호수공원에 오렌지빛 아침햇살이 가득 찼습니다.
‘테에에... 다 말릴 때까지 얼마나 걸릴테치까’
‘못해도 햇님상이 뜨거운 오후씨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테츄....’
‘쿠소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버린 우리였기에 더더욱 배가 고팠습니다.
결국 모든 자매는 처음으로 마마의 말을 의도적으로 어기는 것을 고민했습니다.
3녀 오네챠의 건의대로, 아침 식사 시간 이외로 잎을 훑는 것.
그러나 경황이 없어 그것을 마마에게 건의해보지 못했던 장녀 오네챠였습니다.
무엇보다 모두들 최악의 분충이었던 그녀와 같은 꼴이 되는 것이 우스워 보여 생각을 관뒀습니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는테츄... 이거 아침을 낭비한 기분인테치이...’
이 추측은 하루도 가지 않아 틀린 것임을 자매 모두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지렁이가 바싹 말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장창을 그날 아침에 써보았다는 중요한 경험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꼬치 창은 어디에다 둔 테츄?’
‘까먹고 마당에 던져둔 것 같은테츄. 어차피 잔뜩 젖어서 말려야 하는테츄’
‘나무보검은 와따치가 챙긴레츄... 장녀 오네챠 옆에 두는레치’
엄지 이모토챠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지렁이 사냥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마가 모아와 물컵으로 쓰게 해준 페트병 뚜껑에 물을 따라 지쳐서 쓰러진 자매들에게 떠먹이고, 뒷정리를 하는 등,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자매들은 그런 엄지 이모토챠를 쓸모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나름으로라도 열심히 하려는 착한 엄지챠를 귀여워했습니다.
‘테히이... 엄지 이모토챠는 정말 착한테치. 꼭 커서 착하고 세레브한 자실장이 될 테츄’
‘치프프프프...’
장녀 오네챠가 엄지챠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아침 해는 비스듬히 공원을 비추더니, 어느새 저 높은 상공에 떠올라 가고 있었습니다.
지친 우리는 금방 선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레후웃’ 거리는 소리에 실눈을 떠보면, 구석에서 엄지 이모토챠만 열심히 우지챠의 프니프니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집안이 달아올라 더운 나머지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잠을 안 자는 것도 아닐 정도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깊이 잠에 빠지지 못한 나는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목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느꼈습니다.
‘테에? 마마가 벌써 이 시간에테츄?’
깨어 있던 4녀 오네챠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비닐봉지 소리와 함께 걸어오는 발소리가 마당에서 잠깐 멈추더니, 이윽고 거침없이 집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것이 다른 성체실장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이 확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마가 온 데스우! 대체 마당에 지렁이는 무엇인 데스까!’
‘텟? 마마?!’
‘테치? 마마?!’
‘다녀오신레츄까!’
번뜩 일어난 다른 자매들.
나의 자초지종을 들은 마마는 매우 흡족해했습니다.
‘자들이 이렇게 커다란 지렁이씨를 직접 사냥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는 데스우!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자들데스우!’
마마가 구석의 엄지를 빼고 우리를 끌어 안으며 말했습니다.
‘테치, 마마? 엄지 이모토챠도 도와준테츄’
차녀 오네챠가 말했습니다.
마마는 대꾸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와따시의 자들이 아침을 굶었다니 다메데스, 일단 이것이라도 먹는데스. 저녁은 이따가 다시 마마가 구해오는데스. 지렁이랑 같이 먹는데스우’
마마는 곰팡이가 푸르스름한 식빵 두 장을 봉지에서 꺼내어 주었습니다.
봉지가 빵빵한 것이 많은 것이 들어있을 줄 알았던 나는 내심 실망했습니다.
‘마마, 봉지 안에 다른 것은 무엇인테츄까?’
‘장마 대비에 쓸 비닐봉지인데스우. 다행히 관리소 앞 분리수거장에 넘쳐났던데스. 오늘은 쓰레기 모아가는 닝겐상들이 오지 않은데스. 운이 좋았던데스.’
관리소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비닐봉지를 어디에 쓰려는 건지도 잘 몰랐지만, 마마가 흡족해하니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거 우마우마테츄, 양도 많은테치!’
‘빵은 목이 매이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데스우’
‘이게 빵이라는 것인 테츄까?!’
내가 이날로부터 빵을 다시 먹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이날 곰팡이가 잔뜩 슨 빵을 먹은 나는, 그때까지 빵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맛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들실장에게 음식이란, 자연 날 것의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남긴 부속물이나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장석들에게 그것은 충분히 영양있고 맛있었으나, 인간이 해 먹는 제대로 된 ‘요리’를 맛보지 못한 우리는, 그런 음식물 쓰레기들이 원래 그런 맛인가보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인간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들실장들의 실장취가 이것에서 비롯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마늘을 섭취함으로써, 실장석인 나는 늘 인간들이 지나갈 때 어렴풋한 마늘의 향을 느낍니다.
우리의 옛 고향이라는 일본의 실장석들도 필시 인간이 지나가거든 간장의 향기를 맡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인과 일본인이 씻지 않아 그러한 체취를 풍기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실장석은 여러분의 오해와는 달리, 씻는 행위를 ‘아와아와’한 기쁨으로 생각하며 자주 즐깁니다. 적어도 자주 즐기고 싶어 합니다.
들에서는 여건이 부족해서 필요만큼 청결을 챙기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만, 실장석은 본참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되면 어떻게던 감추려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물론 씻기를 등한시하는 분충들도 있으나, 대부분의 실장석은 스스로에게도 지독한 자신들의 체취를 경멸합니다.
그러니 살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먹다가 몸에 냄새가 밴 들실장들은 그저 자신들 스스로를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실장석들이 더러운 실장취를 풍기는 공원이 있다면, 그곳은 실장들이 실장답게 살기를 포기한, 인간들로 치자면 세기말의 멸망풍 도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호수공원의 호수라는 자연의 목욕탕¹은 데스우님이 주신 은혜 이상이었습니다. 나는 이 호수의 소중함을, 호수를 잃고서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¹ 고동 신도시가 세워질 때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 미도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됨. – 편집자 주)
‘테치이, 근데 빵에서 3녀 오네챠 냄새가 나는 거 같은테츄’
‘데에... 자꾸 그 자 이야기를 꺼내지마는 데스우...’
‘킁킁, 테칙, 이거 정말 그런테츄.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는테치’
‘레츄우...’
‘신나게 공놀이 하고 나면 나는 냄새 테츄’
‘지금 우리한테도 나는 거 같은...’
‘데스우! 안 먹는 자는 말리지 않는데스. 마마가 다 먹어야지~데스!’
‘테치! 잘못한테치! 먹는 테츄!’
‘레챳!’
마마는 투정 부리는 우리마저 귀여웠는지 조용히 ‘데프프’ 웃었습니다.
꼭 그러고 나서는 무언가 우수에 찬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늘 우리와 이전의 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사연 없는 들실장 없고 상처 없는 친실장 없다”던 안나 오바상이 들려준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아점에 가까운 식사를 끝낸 우리는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했습니다.
마마를 따라 비닐봉지 여러 장을 이빨로 뜯어 넓게 펼친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데스우! 데데데데...데슷!’
작았지만 마당에서 치고는 컸던 마마의 기합과 함께, 마마가 훌쩍 뛰어 집의 천장을 잡았습니다.
‘와따치가 돕는테츄!’
장녀 오네챠가 얼른 바둥대는 마마 밑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데데데...데슷!’
이윽고 장녀 오네챠의 어깨를 밟는 데 성공한 마마는 그대로 천장에 기어 올라갔습니다.
아무리 상자라지만, 다른 실장 가족들이 하우스로 쓰는 것과는 크기의 격이 다른 집이었습니다.
거대한 닝겐상들의 선풍기 상자였으니 말입니다.
키가 큰 마마도 무언가를 밟고 올라야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이였습니다.
그때 처음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 이 좁은 나무씨들 사이의 공터에 마마는 어떻게 이런 커다란 상자를 구해 안으로 들였을까?
실장석이 아무리 힘이 세어도 이 커다란 상자를 위로 던질 수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렇다고 넓은 틈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실장석이 이런 커다랗고 두꺼운 상자를 공수했단 것부터가 말이 안된 다는 것을 나는 본격적으로 공원을 알아가며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햇볕에 잔뜩 마른 천장인데스우. 젖어 있어서 무너질까봐 걱정한데스요’
우리는 마마의 명령에 따라 찢어서 펼친 비닐봉지를 창을 통해 높이 올려주었습니다.
마마는 창에서 그걸 받아내 집 천장에 펼쳤습니다.
열 장 정도를 다 건네주자, 마마는 이제 마당에 놓인 비닐봉지 속 돌멩이를 던져 달라고 했습니다.
‘테챠아, 마마 받는테츄!’
장녀 오네챠가 높이 돌멩이를 던지자, 보기 좋게 마마가 한 번에 캐치했습니다.
‘역시 장녀가 잘하는 데스우. 계속 오마에가 던지는데스’
‘테칫!’
마마의 칭찬에 어깨가 높이 치솟은 장녀 오네챠가 다음 돌을 힘껏 던졌습니다.
이윽고 가장 무거운 마지막 돌멩이까지 5녀 오네챠의 도움으로 지붕에 얹은 마마는 매우 흡족해했습니다.
‘데슷! 생각보다 정말 빨리 일을 끝낸데스. 이제 긴긴 비씨가 와도 끄떡 없을데스우. 여긴 태풍씨가 와도... 나무들이 있으니깐...’
마마는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훌쩍 마당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언젠가 내가 그보다 낮은 높이에서 뛰어내렸을 때는, 온종일 무릎이 쑤셔 고생했습니다.
‘자들 덕분에 빨리 일을 끝낸데스. 지난여름에는 이보다 작은 규모였는데도...’
마마는 더 말을 이으려다가 말았습니다.
나는 또 이전의 오네챠들을 떠올리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마마가 자신도 모르게 큰 실언을 하려다 급히 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들은 마마를 도와 새끼를 꼬는데스우. 해야지해야지 하다가 이렇게 밀린데스’
마마는 상자에 수북이 쌓인 마른 갈대를 쓸어 꺼내 바닥에 놓았습니다.
‘테칫, 이거 상당히 지루할테치...’
‘마마는 마마 말을 제일 잘 따르는 자를 제일 이뻐하는데스요?’
또 괜한 말을 하는 5녀 오네챠가 군소리를 들었습니다.
엄지챠까지 앉아서 갈대 몇 개를 하나로 꼬으니 일은 생각보다 금방 끝나갔습니다.
나는 줄을 꼬다가 문뜩 생각했습니다.
‘마마, 이 줄로 무엇을 하는테츄?’
‘물통에 묶어서 물을 채우러 갈 때 끌고가면 편한데스. 비록 저번 끈은 다 부스러져서 버렸지만데스’
‘그걸로만 쓰는 테츄까?’
‘아닌데스우, 알다시피 지렁이를 걸 때도 사용하고, 아까처럼 지붕 보수를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데스. 거래실장과 거래품으로 쓰거나, 구더기를 옮길 때 구더기를 엮어갈 수도 있고... 그 밖에도 무궁무진한 데스우’
그런 것 치고는 집에서 여태 다른 줄을 보지 못했다는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자들을 먹여 살리는데 바빴던 마마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삭아버린 줄을 다시 꼬아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납득이 갔습니다.
‘문을 잠그는 장치로는 사용하지 않는테치까?’
‘데슷? 그런 건... 처음 들어본데스’
나의 설명을 들은 마마가 집에 잠금장치를 단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날의 오후에 있었던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장치를 설치한 커다란 이유일 것입니다.
마마는 보검으로 집 대문으로 쓰는 박스 날개 마다 자실장 어깨높이로 구멍을 두개씩 뚫었습니다.
그리고는 구멍에 줄을 꿰어 밖으로 한 바퀴 돌리고 다시 바로 옆에 다른 구멍을 통해 안으로 꿰었습니다.
그러니 문 한짝마다 두 구멍으로 한 줄씩 꿰인 모양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배웠는지 마마는 줄을 묶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줄을 당기면 쉽게 풀리지만, 다른 줄을 억지로 당겨봤자 풀리지 않는 매듭법이었습니다.
한참의 교육 끝에도 오직 나와 4녀 오네챠만이 완벽히 숙지했으니, 이 잠금장치가 인간들 보기에는 매우 가소로워도 우리에게는 최첨단의 기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보통의 줄과 달리 갈대 서너 개로 엮은 매우 튼튼한 줄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6녀의 말이 그럴싸한데스우... 정말 머리씨가 비상한 자인데스. 생각해 보는데스우’
마마가 무척 놀라워하며 내 두건을 쓰다듬었습니다.
마마가 아팠던 어제 이외로 낮에 마마와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가지는 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우리 가족은 신나게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먹이를 구하러 나가야 한다며 일어서는 마마가 아쉬웠지만...
‘뎃... 그새 먹구름이 이렇게나 낀 데스우?’
‘테치, 비씨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은테치’
‘데에... 오늘은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스’
어느새 몰려든 먹구름이 그렇게 뜨겁던 햇님상을 가려버리고는 공원의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마마가 문을 닫은 지 얼마 안 돼 ‘쏴아아아’하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천장 방수 처리를 매우 꼼꼼하게 해냈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못하여 집이 습해졌습니다.
두꺼운 대형 박스였기에 이 정도인 것에 행복해야 하는 줄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데스우... 봉지를 더 가져다가 옆 부분도 보수해야 하는데스까...’
마마가 곤란해하여 말했습니다.
언제 폭염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가 매우 세차게 내렸습니다.
가끔 그치는가 싶게 비 오는 소리가 약해지다가 다시 ‘쏴아아’하며 강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테치! 마마! 지렁이씨가 마당에 있는테치!’
‘데스우우! 그걸 놓친 데스까, 더 질겨지기 전에 가져와야 되겠는데스!’
‘돕는테치!’
‘아서는데스요, 지렁이쯤 어른 실장은 쉽게 들고 오는 데스’
마마가 벌떡 일어나 플라타너스 잎을 머리에 이고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집에서만 들렸던 빗소리가 정말 거세게 들렸습니다.
‘쏴아아아아아...’
‘마마! 돕는테치’
‘자들은 거기 있는데스우우!’
빗소리에 모든 소리가 묻힐 정도였기에 마당에서 큰 소리를 냈음에도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마마가 널브러진 지렁이에 다가간 순간...
‘미야아아아아아옹!’
‘...’
불길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렸습니다.
마마는 동시에 플라타너스 잎을 떨어트리고 그 상태로 굳었습니다. (3화 참조)
‘야옹씨?!’
“이것이 야옹씨의 소리란다”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알려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야옹’에 가장 가까웠던 짐승의 울부짖음.
그리고 위석 어딘가에서 물려받은 조상들의 본능이 야옹씨가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듯 했습니다.
‘이건 야옹... 씨...?’
장녀 오네챠가 말을 못 이으며 말했습니다.
‘엄청... 가까이에 있는 테츄우...’
차녀 오네챠가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상태로 몇 초간 벙쪘습니다.
잎을 떨군 마마는 이제 실장 옷이 빗물의 무게에 축 늘어질 정도였습니다.
‘미야아아아아옹!’
‘쏴아아아...’
‘살려...테챠아...’
‘뭘하는테츄까! 차녀! 무기를 꺼내는테치!’
야옹씨의 두 번째 울음소리에서야 정신을 차린 장녀 오네챠가 외쳤습니다.
장녀 오네챠와 차녀 오네챠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부자리를 던지고 그 밑의 목검을 쥐었습니다.
‘오네챠! 꼬치창! 꼬치창 테츄!!!’
내가 외쳤습니다.
그러자 장녀 오네챠가 이쑤시개를 내팽개치고 장창을 찾으러 마당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차녀 오네챠도 이쑤시개를 팽개치고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당으로 뛰쳐나간 둘은 곧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장창을 높이 들쳐올렸습니다.
마마는 아직도 그대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패닉 상태였습니다.
나와 4녀 오네챠가 이쑤시개를 쥐어 들었습니다.
5녀 오네챠가 그보다 먼저 장창 팀의 뒤를 따랐습니다.
‘마마!’
‘마마! 정신 차리는테치!’
‘쏴아아아...’
빗소리가 모든 것을 삼키는 와중에, 우리는 우리의 외침마저 삼켜지지 않도록 가장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데에수... 데에수... 데에수... 마마...’
그러나 마마는 그것이 들리지 않은 걸까.
눈은 초점을 잃었고 몸을 이렇게 떠는 것은 비에 맞은 추위라고 보기에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마마! 정신차리라는테츄!’
어깨에 장창의 앞을 진 장녀 오네챠가 한 손으로 마마의 다리를 토닥토닥 쳤습니다.
‘....자 ...자들은... 데히, 데히, 마마... 잘못... 데에...’
‘쏴아아아아....’
‘미야아아아아아오옹!
‘테히이이익! 마마! 제발 정신을...’
‘쏴아아아...테챠아아...쏴아아아...마마...쏴아아아...구해주...쏴아아아....!’
‘쏴아아아....’
‘오... 오네챠? 야옹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쏴아아아....’
‘6... 6녀챠...! 방금 누가 살려달란 목소리 못 들었...’
‘쏴아아....’
‘캬하아악! 미야아아옹!
‘잘못한... 쏴아아아... 와따치는... 쏴아아아... 마마...’
‘설마... 그럴 리가 없는테치이...’
내가 중얼거렸습니다.
억수 같은 비에 내 중얼거림은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하고 흩어졌습니다.
‘테챠아아아! 살려주는테챠아아! 마마!’
‘누... 누군가가 또 있는테츄?!’
제3의 실장석과 야옹씨가 우리 집을 향하여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미야아아아아아아오옹!!’
커지는 야옹씨의 포효에 마마가 드디어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아닌데스우... 와따시는 자들과 실을 꼬면서... 그런데스우... 와따시는 자들과 실을...’
언제나 현명하고 용감했던, 빈틈없는 우리의 마마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와 다가오는 야옹씨,
분명히 그럴 리 없는 낯익은 실장석의 비명,
마마의 탈분과 돌아가는 행복회로.
어느 것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를 몰라 더더욱 공포스러운 우리 자매들.
이제 관목의 수풀이 세게 파헤쳐지는 소리!
머리는 긴장의 한도를 이기지 못하여 모든 감정과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힘을 상실했습니다.
탈분하지 않은 실장은 관목의 수풀 안으로 없었습니다.
미친 듯 떨지 않는 실장이 관목의 수풀 안으로 없었습니다.
‘파스락파스락파스락파스락’
‘먀아아아옹!! 캬하아아아!’
‘쏴아아아아...’
‘아닌데스우... 데프프... 데프... 데히이이! 마마...! 마마...! 마마...! 마마...! 잘못한데스우우우!!’
‘테히이이이이익! 오는테츄!!’
‘5녀챠! 차녀챠! 창을 세게 잡으라는테챠아악!’
‘쏴아아아아아...
‘와따치르으으으을!!! 살려주는 테챠아아아아아아아!!!’
집으로 들어오는 수풀 길이 팟 하고 열렸습니다.
뛰쳐들어오려는 어느 자실장의 모습.
다 벗겨진 머리.
찢겨져 없어진 원피스.
사라진 한 쪽 팔꿈치 아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잘린 한쪽 귀.
실성한 듯 풀린 눈과...
홀딱 젖어 흐르는 빗물에도 또렷한 색눈물.
그러면서도 신고 있는 오른쪽 구두.
뽀얀 연주황 살에 나지 않은 곳 없는 벌건 상처들.
너는...?
‘3녀챠아아!’
‘데...데스우?!!’
이때서야 마마의 동공에 초점이 돌아왔을까.
나는 알 수 없습니다.
탕아의 기막힌 귀환을 보는데 온 신경이 쏠렸으니.
아! 신이 있다면, 그것이 데스우건 누구던 간에 말입니다.
나는 분명히 생각건대, 그는 운명으로 모든 지성체를 희롱하는 데에 재미가 들린 파렴치일 것입니다.
얽히고 설킨 운명의 끈에서 먹고 죽이고 때리고 속이게 하는 악취미에도 모자라...
만약 3녀 오네챠 그녀에게 단 세 걸음!
아, 아닙니다. 큰 보폭으로 딱 한 걸음!
그녀에게 딱 한 걸음을 더 디딜 시간을 신이 주었더라면!
그녀는 그렇게도 그리워 했을 가족과 집 앞에서 신에게 조롱받았습니다.
‘미야오오옹!’
‘테복!’
이대로 수풀 안으로, 닷새 만에야 보는 집 마당으로 뛰쳐 들어오는가 싶었으나...
아니, 사실상 완벽히 안으로 뛰쳐 들어왔으나...
관목이 매우 크게 풀썩거리더니, 야옹씨의 커다란 앞발이 수풀 틈에서 마당으로 쑤욱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3녀 오네챠의 몸을 덮쳐 짓눌렀습니다.
그 흉악하고 거대한 짐승의 발톱은 연약한 그녀의 몸을 명쾌하게 꿰뚫었습니다.
그녀가 그대로 땅바닥에 끌려가는 것이 자연이 생각해 둔 순리였겠지만...
‘데스우우우우우우아아!!’
마마가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발톱에 박혀 끌려가는 3녀 오네챠의 상체를 잡아 끌어당겼습니다.
‘찔러어어어테챠아아아!’
한편 정신을 차린 장녀 오네챠가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당황하고만 있던 장창 중간의 차녀 오네챠와 끝부분의 5녀 오네챠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어정쩡한 공격이 허공을 쳤습니다.
‘테챠아아아!’
나와 4녀 오네챠가 달려들었습니다.
4녀 오네챠는 3녀 오네챠의 반절 남은 왼쪽 팔, 나는 멀쩡한 오른쪽 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분대에서 양분 빨아먹던 힘까지 써가며 당겼습니다.
‘데스우우우!!’
‘테챠아아아!!’
‘테...보오아악... 살려ㅈ...’
우리가 합세하여 당기자 바닥에서 끌려가던 그녀가 붕 떴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녀 오네챠와 함께 질질 끌려갔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야옹씨 앞으로 끌려가는 건가?
나는 그런 순간에서 3녀 오네챠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고민이 무용하게도,
‘테...테보오오옥....테챠아아아....!’
그녀는 수풀 틈의 입구, 관목에서 뻗은 두 중심가지의 사이에 몸이 끼어버렸습니다.
평소 걸어 나가는대로라면 절대 몸이 끼일 수 없었겠으나, 어정쩡한 각도로 붕 뜬 그녀의 몸이 관목의 우거진 수풀과 그 중심가지 사이로 엉켜 끼인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행운같은 불운이 있고 또, 불운같은 행운이 있어 하나의 사건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판단하기가 참 까다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녀가 관목 줄기 사이에 끼인 것이 그러했습니다.
‘찔러어어테챠아아악!’
이때 장녀 오네챠의 구령에 다시 야옹씨의 앞 다리를 향한 회심의 공격이 재행되었습니다.
그러나 3녀 오네챠를 당기는 마마와 나, 4녀 오네챠가 조준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공격은 다시 빈 수풀의 잎을 뀄습니다.
‘테에에에엑...!! 테보오오옥...!! 아픈... 마마아아아...’
‘살리는데스우우! 살릴거인데스우우! 와따시느으으으은! 더느으으은!’
‘테치이이이이이!!!’
‘쏴아아아아아...’
‘다시 찔러어어어어테챠아아!’
‘테챠아아아!’
푹!
‘미야아오오옹!’
찍!
......
‘쏴아아아아아...’
‘...’
창은 야옹씨의 하얀 발목 옆부분을 정확하게 찔렀습니다.
수북한 털과 두꺼운 가죽에 막혀 깊은 상처는 내지 못했겠지만,
장창의 끝에 뻘건 피가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피가 마당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3녀 오네챠의 귀환은 반쪽짜리의 실패이자 반쪽짜리의 성공이 되었습니다.
창에 찔려 놀란 야옹씨는 더 강한 힘으로 앞발을 뒤로 당겨 발톱을 빼면서 3녀 오네챠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풀에 걸려서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던 3녀 오네챠는...
우리가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던 상체와,
야옹씨가 발톱으로 박고 있었던 하체가 분리되었습니다.
급하게 발을 빼려던 야옹씨의 괴력 탓이었습니다.
톡 하는 소리로 이쪽 상체의 오네챠가 땅에 떨구어졌습니다.
툭 하는 소리로 저쪽 수풀 길 사이에 하체의 오네챠가 팽개쳐졌습니다.
커다란 짐승이 파밧파밧 빗속을 해치며 멀어지는 소리.
‘쏴아아아아...’
아! 빗소리! 이 끔찍한 날 세상이 무너지듯 퍼붓던 빗줄기! 빗소리!
‘데에... 데에... 데에히... 3녀어...?’
‘마...마마...’
‘3녀 오네챠아...’
‘잘못...했....잘...못...테치...’
‘오...오로롱... 와...와따시는... 아무...’
‘마...ㅁ... 오네... 잘못... 요옹...서어...’
‘아...안되는데스우... 살아주는... 살아줘....’
‘마... 와ㄸ...치... 살고 ㅅ...’
‘파킨’
“잘못했어요 마마. 용서해주세요 마마” 였을까?
“마마, 나 살고 싶어요” 였던 걸까?
이것이 탕아의 유언이었습니다.
눈도 감지 못한 3녀 오네챠는 그대로 콘페이토의 별이 되러 떠난 듯 보였습니다.
아직도 창을 꼬나쥐고 덜덜 떨고 있는 세 자매와
반쪽으로 돌아온, 잃어버렸던 자를 안고서는 말도 못 하는 채 입만 벌리고 색눈물을 쏟는 마마와...
잡은 팔을 놓지 못하는 나와 4녀 오네챠와...
집 안에서...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이 모든 광경을 목도한 엄지챠...
이곳에서 가장 행복한 실장은 결국, 엄지챠가 귀를 막고 엎드려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막내 우지챠 뿐이었습니다.
오네챠 몸뚱아리의 잘려진 단면,
상체의 끝에서 위태히 달려있던 위석은,
잠깐 초록색으로 영롱히 깜빡거리다가 어두운 올리브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빛나지 않았습니다.
빛이 꺼지고 탁해진 그녀의 오른쪽 눈 만큼이나, 탁하고 빨간 피가 마당을 가득 적셨습니다.
비에 희석되어 넓게도 퍼졌습니다.
그녀의 녹색, 붉은 색 눈물만이 탁하지 않은 진한 원색 그대로 흙투성이 얼굴을 흘렀습니다.
마당에 고여있던 웅덩이가 천천히 분홍색이 되었다가 다홍색이 되었다가 빨간색이 되었다가 적갈색이 되었습니다.
‘데에에에... 데에에에... 텟테레... 텟테레...♬’
마마가 굳어버린 반쪽의 자를 품에 안고 몸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
‘...마마...’
‘텟테레... 텟테레...♬’
‘쏴아아아...’
마마는 야옹씨에게 가족을 잃은 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더욱 불행한 이유였습니다.
돌아와도 곤란하다고 했던 3녀.
살아 있어도 다른 자매들의 미래를 망쳤을 거라 했던 3녀.
첫날부터 분충임을 알아보았다던 3녀.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인간의 속담
“상처 없는 친실장 없다”던 실장석의 속담
인간과 실장석의 속담이 돌아와 버린 자식을 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이 가련한 어머니의 모습을 동시에 꼬집어버렸습니다.
두 종족의 속담이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만큼이나, 참으로 괴이한 광경이었습니다.
‘...텟테레...텟테레...♬’
‘......’
노래를 부르다가 뚝 끊은 마마는 혀를 축 늘이고 탁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자신의 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자들은... 집에 들어가는데스우...’
‘마마...?’
‘들어가는데스...’
마마는 그대로 수풀 밖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자신의 세번째 자의 반을 안고서...
그러다가 수풀 길 중간에서 우뚝 서더니, 무언가를 주워 그것도 안고는 밖으로 탁 나가버렸습니다.
‘...’
‘...’
‘쏴아아아아...’
‘...오네챠, 수풀 틈을 닫고 오겠는테츄’
‘두는테치’
‘야옹씨가 근처에 있을텐데테치...’
‘...괜찮을테츄’
장녀 오네챠의 말이 맞았습니다.
마마는 몇 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던 한때의 내 언니는 없었습니다.
마마의 구두에는 펄이 묻어있었습니다.
우리 마당의 흙탕물을 밟아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호숫가 잔디밭 흙을 밟아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그런 펄을 보곤 했습니다.
호수에 들어가야만 묻어 나오는 것이므로...
비에 흠뻑 젖은, 이제 완벽하게 한 명의 결원을 재확인한 가족이 집 안에 모두 모였습니다.
지렁이가 외롭게 마당에서 비를 맞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비에 젖어 불었는지, 살아 있을 적의 그것처럼 피부가 매끈매끈했습니다.
나는 집의 문을 닫았습니다.
저녁이 오기도 아직 이른 오후의 일입니다.
3녀 오네챠는 바깥에서 닷새를 생존했습니다.
마마 없이 버려진 자실장이 닷새를 살아 보았다는 실례를,
적어도 내가 직접 본 기억은 이후로 없습니다.
들실장에게 물려서 한쪽 팔 반절을 잃었을까.
못된 사육실장이 산책을 가다가 우리 언니 머리를 뽑았을까.
학대파 인간이 지나가다 그녀의 옷을 빼앗은 걸까.
닝겐상이 멍멍씨 물어오라고 던진 공을 가지고 놀다가 할퀴어진 상처들이었을까.
어떻게 다섯 날을 살아남았는지.
왜 그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보다도...
물을 싫어하는 야옹씨가 장대비 맞아가며 자신을 쫓게 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3녀 오네챠만 그 진실을 안고 콘페이토 별이 되러 떠났습니다.
나는 이다음에 커서 친실장이 되거든,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진즉 “솎아내기”를 결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첫댓글 최고인레후... 설정도 상세하고 필력도 메챠 세레브한레후! 실생의 우마우마인레후!!
미친듯한 필력인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