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부 " 사랑의 이중계명"
2024.8.23.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에제37,1-14 마태22,34-40
“하느님
좋으시다 찬미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07,1)
“사랑은 아무나 하나?”
자주 되뇌는 물음입니다. 평생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평생공부가 사랑입니다. 눈먼 맹목적, 광신적, 이기적 탐욕의 사랑도 많기에 공부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사랑, 집착없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바로 평생 배워야 하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러니 평생 사랑의 학교에 재학중인 우리들에게 졸업은 없습니다. 죽어야 졸업입니다. 그동안 수도사제로 서품후 35년 동안 해온 강론 주제도 아마 대부분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도 참사랑에는 영원히 초보자라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빠진 인생에는 무지와 허무, 무의미만이 자리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소설이나 대중가요 역시 사랑은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밖에는 길이 없다는, 답이 없다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제 졸저 “사랑밖에 길이 없었네” 첫쪽에 나오는 나오는 글의 인용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이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실행해야 하는 동사다. 우리 온몸은 사랑하라고 있는 ‘사랑의 도구’다. 멀리 밖에서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함께 하는 가족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고 보내주신 모두가 ‘신의 한수’ 같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작은 행동으로의 사랑이다. 작은 사랑의 실천이 감동을 주어 우리를 치유하고 정화하고 충만하게 한다. 사랑의 기적이다. 사랑은 우리의 모두이다. 사랑이 있을 때 빛나는 인생이지만 사랑이 사라지면 어두운 인생이다. 사랑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람이다.”
요즘 뒤늦게 진가를 발견하고 독료한 책이 생태사상의 선구자 ‘토마스 베리(1914-2009) 평전’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토마스 머튼’(1915-1968)에 버금가는 동시대 미국의 예수고난회 수도사제인데 크게 알려지지 않다고 최근 각광을 받는 분입니다. 토마스 베리가 한 살 더 먹었고 95세까지 살았는데 토마스 머튼은 53세까지 살았고, 굴지의 영성가 두분간에는 생전 어떤 교류도 없었습니다. 토마스 베리가 얼마나 사랑이 충만해 있던 매력적 인품의 사람인지 다음 묘사가 입증합니다.
“토마스는 언제나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두눈은 항상 빛났으며 여차하면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다정함을 보여주었고 한없이 자애로웠다. 억누를 수 없는 즐거움이 넘쳐 누구를 만나든 환대하였다. 그래서 그를 처음 만난 사람도 그가 매우 가까운 친구인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평전; 293쪽)
사랑해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삶-사람’이란 말마디가 하나로 이어지니 흡사 같은 어원에서 시작되는 말마디 같습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랑할수록 충만한 생명이요 사랑할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희망의 실종된 사람들, 말그대로 제1독서 에제키엘서의 마른 뼈들이 상징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말씀은 에제키엘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말그대로 생명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마른 뼈들 같은 인생에 주님의 생명의 영, 사랑의 영이 주입될 때 비로소 산 인간이 됨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고무적이요 우리에게 샘솟는 희망과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언하여라.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대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생명의 영, 사랑의 영이, 주님의 은총이 작용하여 마른 뼈들같은 우리가 다시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나는 미사시간입니다. 이런 주님의 끊임없이 주어지는 생명의 사랑, 용서의 사랑이 우리의 마르지 않는 사랑의 원천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613개 율법의 요약이라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하며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
구별할 수 있되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검증되는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입니다. 고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의 좌우명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이 바로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끊임없는 사랑이 경천애인, 사랑의 이중계명 실천의 원동력이 됨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경외의 정신으로 사랑할 때 옛 어른의 말씀도 자발적으로 실행할 수 있겠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잘못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삼가라.”<다산>
“군자는 보지 않은 것도 경계하며 삼가고, 듣지 않는 것도 두려워한다.”<중용>
얼마전 집무실 게시판에 붙인 경구(警句)도 생각이 납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감이 신독(愼獨)이라 한다. 어느 자리에서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인간의 존엄, 품위, 분별력의 지혜를 지녀야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신독의 바탕에는 하느님 경외(敬畏)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서 사람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요 우리의 모두가 됩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평생 배워 훈련하고 익혀 습관화 해야 하는 평생공부가 경천애인의 사랑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이 우리 모두 한결같은 경천애인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자비하심을,
중생에게 베푸신 그 기적들을.”(시편107;8,15,21.31).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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