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95678202
여러분들은 잘은 몰라도 다들 한 번씩 방글라데시란 나라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 ㅎㅇ
그런데 이 나라의 역사가 왜 저 멀리 한국과 유사하다는 걸까?
방글라데시는 남한보다 50% 큰 영토와 3배가 넘는 인구를 가진 국가이며 역사의 대부분을 인도와 함께했는데
그리고 한국의 여말선초기인 14세기 무렵, 드디어 뱅골인들은 민족 국가(?) 건국에 성공했지만
(무굴 제국 : 넣을게?)
강력한 무굴제국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금 주권을 상실하였으나 오히려 무굴 치하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강대한 무굴 제국 전체 세수의 절반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of 핵심으로 거듭났었는데 문제는 바로 그 새끼의 등장이었다.
혐성 : ㅎㅇ
혐성국은 무굴제국에서도 풍부한 물산의 산지인 벵골 지역에서 경쟁자인 프랑스를 꺾은 이후
무굴 제국의 황제를 협박해 벵골의 징세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하고 말았고 이를 전초기지 삼아서 결국
크고 아름다운 인도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헀으나 인도인들의 독립의지가 강하자 자신들의 주특기인 갈라치기를 시전했다.
혐성 : 자 행정구역이 복잡하니까 행정 편의상으로 벵골을 무슬림 위주의 동벵골과 힌두교 위주의 서벵골로 분할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분과 달리 영국의 의도는 단순한 행정구역 편의성 따위가 아닌 유서깊은 갈라치기였었다.
유사 이래 단일 지역 공동체로써 지내온 벵골이 분단되자 영국의 의도처럼 난리가 났으나 정작 난리의 대상은 영국을 향했다.
단순히 행정구역만 보더라도 벵골을 그대로 두면서 다른 지역들을 분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샤, 비하르 서벵골과
동벵골, 아삼으로 나누며 누가 봐도 벵골을 갈라치기하려던 모습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종교를 이유로 분할했다지만 아삼은 힌두교가 우세인 지역이니 사실상 혐성의 갈라치기인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반발에 결국 영국은 1911년 분할령을 철회하기에 이르렀으나 무슬림과 힌두교의 갈등을 확인한 꼴이 되었다.
그러던 중 2차 대전이 터지고 사실상 인도의 독립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똥은 지들이 싸고 치우기 싫던 영국은 알아서 하라고 위임시켰고 그 결과 벵골은 동, 서로 분할되기에 이르렀고
결국 서 벵골은 인도로, 동 벵골은 동 파키스탄으로 독립하면서 재앙이 시작되고 만다.
유사 이래 단일 민족, 단일 문화, 단일 경제 공동체이던 벵골 지역이 남북한처럼 하루 아침에 독립하였던 것이다.
먼저 인도로 편입된 서벵골은 식량은 다른 인도 내에서 수입하고 면화는 자체 재배하며 위기를 넘겼으나
남한처럼 1차 산업 위주로 발달했던 동벵골은 식량 및 면화 판매처를 잃고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동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업국가이던 대한민국은 1950년대부터 강력한 국가 주도 산업화를 시도하며
결국 산업화에 성공하며 기존의 농업 국가에서 탈피해 공업국가로 거듭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똑같이 분단되었어도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할 수 있던 한국과 방글라데시는 상황이 달랐다.
선진국 막차를 타는데 성공한(?) 한국이 1950년대부터 공업화에 열을 올릴 동안 방글라데시는 그런 시도를 못했다.
1970년대까지 서 파키스탄에서는 방글라데시를 사실상 식민지 취급하며 기존처럼 1차 산업에 종사하게끔 하였기 때문이다.
서 파키스탄보다 인구가 많은 동 파키스탄이었기에 이들의 발전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차별 정책이 누적되자 불만이 쌓인 동파키스탄은 결국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동 파키스탄(방글라데시) : 투표 결과 동파키스탄에서 우리가 압승했으니 꺼지쇼
파키스탄 : 누구 맘대로 독립을?
인도 : 내가 독립 지지하는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1971년 방글라데시는 독립에 성공하였으나 독립 과정에서 파키스탄군에 의해 인프라가 박살났고 군정의 혼란기마저 거치며 50년대부터 산업화의 기초를 다지던 한국과 달리 방글라데시는 발전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한국과 달리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90년대부터 시작한 공업화는 제대로된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있으나 최근 들어 투자를 받고있으니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보냈으나 이런 발전 시기가 약 30년 간 차이가 나면서 두 국가의 운명도 매우 바뀌게 되었다.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1. 유사 이래 단일 민족 지역이었었다.
2. 그러나 외세에 의해 둘로 분단되었다.
3. 분단 이후에는 가난한 농업국가로써 군정이 실시되었다.
4. 군정시기부터 공업화를 시도하였으나 시기가 너무 늦었다.
사실 본문에 올리면 정치적인 얘기가 될 수 있어서 올리지 않았지만 국부라고 추앙받는 지도자의 딸이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통해 국가 수반에 이르렀으나 시위로 인해 퇴진한 역사까지 있으니 이 정도면 한국과 역사가 겹치는게 많은 국가인 것 같습니다.(사실 셰이크 하시나 관련 뉴스 보다가 갑자기 삘받아서 쓴 글입니다.)
잘모르니 댓펌............
근데 파키스탄군이 어떻게 방글라까지 간 거지 누가 드랍해줬나?
원래 한 나라일때 주둔하던 군대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인도에 막혀 못 왔습니다
나중에는 오고싶어도 인도가 전쟁을 걸어서 인도 전선 막는데 급급하기도 했고요
사실 대한민국 건국 초만 하더라도 공무원들 행정 경험 연수를 파키스탄으로 보냈긴 했었죠
지금 방글라데시 분위기 보면 아무래도 넘쳐나는 게 사람이다보니
1960년대 대한민국이 그랬던 것처럼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 집약 산업에서 성과가 나오고 있긴 한데
다만 나중에 부가가치를 더 크게 창출하려면
이런 의류 같은 경공업 구조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텐데
지금 상황 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기본적인 인프라 투자에 손 놓지 않는 정도가 한계라
한국이 유신 시절 '군수공업 유지할 기반 없으면 김일성이가 내려오면 우린 망한다!' 같은
그런 절박함에서 나온 무모할 정도의 국운을 건 중화학 공업화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흔히 우리가 한국 사례를 생각하고 자본이 축적되면
경공업 하던 나라가 중화학 공업으로 갈아탈거다 이런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중화학 공업이라는 게 때려박아야 하는 돈이 천문학적이라 어지간한 자본가들도 감당이 안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선진국들도 미국 같은 사례를 빼면 중화학 공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춘 게
대부분 군수 산업 같은 필요성에 의해 국가에서 노골적으로 중화학 공업을 밀어준건데
방글라데시 같은 경우 나라에서 돈 많다는 가문조차 한국으로 치면 좀 큰 중소 사장님 수준이라
아무래도 대만처럼 경공업만 파다가 중화학 공업 전환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경공업만 파게 되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중화학 공업 도전해도 중국에게 밀리겠지만, 개도국이 경공업만 파면 아무래도 태국 정도가 한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너무 길어질까봐 안적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은 독재자가 나와도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중공업이 필수였는데 방글라데시는 사실상 미얀마를 제외하면 주변 나라와 분쟁의 여지가 적어서 중공업을 발전을 등한시해서 이제와서 하기에는 중국이 사다리를 걷어찬 것도 있어서 힘들죠
당장 방글라데시 총리 월급이 160만원 정도로 경공업만 해서는 큰 부를 가지기 힘들긴 합니다(다만 뇌물이나 비리로 수백억을 축재한 거 보면..)
방글라데시의 발전 가능성은 0임. 일단 인도 바로 옆의 국가라는점과 바다를 끼고는 있으나 핵심 무역 루트를 비켜가는 곳이라 미국과 서유럽의 관심을 끌수 없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임. 동남아 몇국가가 그나마 살아 남은건 핵심 무역루트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방글라데시는 그런게 전혀 없음.
ㅇㅇ 답이 없음 그냥 독립할 때 서벵골이랑 갈라진 시점에서 망한 거임
서벵골 들고있었으면 인구 3억명에 자체적인 산업들도 있어서 중공업으로 도약 가능했는데 동벵골만으로는 답 없음
지금은 방글라데시가 인도계 3국 중에 제일 잘산다더라
2010년대 이후에 섬유산업으로 드라이브 제대로 걸어서
근데 공무원 개혁으로 지금 나라가 온통 뒤집어졌다고
첫댓글 와 개흥미돋...재밌다
잘봤어 여샤 흥미롭다 갑자기 방글라데시가 3개국 중에 젤 잘산다는 섬유 드라이브 이부분이 궁금해ㅠㅠ 공무원 개혁도 궁금... 더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