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가 떠난 LG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직구’를 가진 투수는 누구였을까. LG 선수들이 입을 모아 ‘정찬헌’이라고 말한다.
정찬헌은 팔꿈치 수술로 인한 재활과 공익근무를 마치고 올 시즌 돌아왔다. LG가 정찬헌에 거는 기대는 컸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르는 그가 불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2014시즌 성적은 7경기에 나와 2패 평균자책점 5.79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불펜투수로서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등판하며 묵묵히 공을 던졌다. 정찬헌은 “준비하라고 하면 준비하는 것이고, 던지라고 하면 던지는 것이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언제든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다.
정찬헌은 지난달 21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한화전에서 정근우에게 2번 연속 몸에 맞는 볼을 내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팀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팬들의 원성은 높았다. 정찬헌은 징계를 받고 2군에 내려갔고, LG는 불화설을 비롯한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논란이 계속될 쯤 수장은 옷을 벗었다.
LG 2군경기장에서 만난 정찬헌은 벤치클리어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아꼈다. 그는 말을 아끼는 이유에 대해 ‘자신이 야구선수이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말로서가 아닌 팬들에게 좋은 야구를 보여 주는 것 뿐 이라고 전했다. 다만 “정근우 선배께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찬헌은 인터뷰 후 6일 한화와의 3연전을 앞두고 1군으로 콜업 됐다. 정찬헌은 경기 전 훈련을 마친 후 한화 더그아웃을 찾아 정근우를 만났다. 정찬헌이 정근우에게 "지난번에 죄송했습니다"라고 사과를 했고, 이에 정근우가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라며 화답했다. 정근우 뿐 아니었다. 다른 한화 선수들도 정찬헌이 인사를 하자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다음은 콜업 되기 전 2군 경기장에서 만난 정찬헌과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시즌 구위가 좋아보였다.
“‘LG에서 구위가 가장 좋다’는 칭찬도 들었다. 자신감도 있었는데 타자들에게 많이 맞았다. 경기 중 ‘왜 좋은 공을 던지는데도 맞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손재주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 한 개를 익히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포크볼도 2009년부터 연마하고 있는데 아직도 완성이 안됐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이번 시즌 성적이 공익근무를 하기 전 성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가다듬어서 올라가야 한다.”
- 손가락이 짧은 편인가.
“손 자체는 크다. 그런데 바닥이 넓고 손가락은 짧다. 손가락만 비교하면 여자분들과도 한마디도 차이나지 않는다. 손가락을 찢어보려는 생각도 했다.”
- 언제 그런 생각을 했나.
“공익 근무를 할 때 찢으려고 했다. 일본 선수들은 많이 하는 수술이라고 하더라. 병원까지 알아보고 찾아갔으나, 의사로부터 ‘손가락을 찢는것은 포크볼을 던지는데 큰 의미가 없다. 찢는다고 해서 포크볼이 더 예리해지고, 더 잘 떨어지는 게 아니다. 현재 손으로도 충분히 던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 구속이 150km 이상도 나오지 않나.
“올 시즌 사직 경기에서 149km까지 나왔다. 6월, 7월이 되면 더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원래 ‘파이어볼러’는 아니다. 최고 구속이 아닌 평균 구속이 140후반이 되어야 ‘파이어볼러’라고 생각한다. 리즈나 롯데 최대성 선배님, 넥센 조상우, 한신 오승환 선배님처럼 최고 구속이 150km 중반까지 나와야 ‘빠르다’는 말도 들을 수 있다. 다만 내게 구속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맞아 나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은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겨내고, 경기에 이기고, 평균자책점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지, 빠른 구속을 지나치게 탐낼 필요는 없다. ‘공 빠르고 평균자책점 5.00 이면 뭐하나’는 생각도 든다.”
- LG가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못 찾고 있다. 어떤 심정인가.
“내가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9개 구단이 다들 잘하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안되는 게 야구다. 그래도 100경기 남았다.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2군에서도 LG와 관련된 기사를 많이 찾아보고 TV중계도 본다. 이제 조금씩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 불펜진에 함께 있었던 봉중근과 이동현이 분투하고 있다.
“선배님들이 시즌 초반인데 너무 많이 던지셨다. 그야말로 우리 팀 ‘필승조’고, 우리 ‘마무리’인데, 가리지 않고 나가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지치고 힘드실 것이다.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 내가 더 잘하고 믿음을 줬어야 했다.”
- 2군 경기를 찾아 온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관람석 입구를 찾는 팬에게 직접 길을 알려주는 모습을 봤다. 역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야구를 하고 싶은가.
“당연하다. 그러나 야구로서 사랑을 받고 싶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좋은 야구를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