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철대오라 하는 것은 돈오(頓悟)여 돈오
송담 큰스님
이 참선은 점진(漸進)이 아니여.
점진적으로 차츰차츰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이여.
확철대오라 하는 것은 돈오(頓悟)여 돈오.
확철대오, ‘몰록 깨달라버리는 것’이지 차츰차츰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그래서 어떻게 허면 확철대오를 헐 수 있느냐하면 사량분별심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자꾸 분별하고 분석하고 사량하고 복탁(卜度)해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한에는 확철대오는 없는 것이여.
화두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조주무자(趙州無字)’나 또는 ‘시삼마(是甚麽)’나
문헌에 오른 공안이 천칠백인데 어느 공안이 되았건 어떠헌 선지식으로부터 한 화두를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 되거나 공부가 잘 안된다고 느껴지거나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화두에를... 화두를 탓허지를 마.
화두를 탓허지를 말고 오직 그 화두 하나에 의심만을 들고 관조해나가는 것이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무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생각뿐이어야 하는 거여.
‘이 무엇고’를 하는 분은 ‘이 무엇고?’ ‘「이」 허는 이놈이 무엇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현전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만을 묵묵히 관조 허는 거여. 보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 이 뭣고? 헌 의심을 이렇게 떠억 봐. 관조허는 거여.
그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거기다 자꾸 ‘이 뭣고’ ‘이 뭣고?’ 자꾸 거기다가 덮치기로 자꾸 안해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여.
간절한 의심을 내기 위해서 있는 디에다 자꾸 덮치기로 들어쌓면 못쓰는 것이여. 오히려 그 정경(定境)이 흩어지는 거여.
그러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묵묵히 관조허는 거여.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면 그때에 다시 ‘이 뭣고?’ 이렇게 드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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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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