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96728201
이번 글에서는
'샤자르 알 두르'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해
제목으로 뽑은 여성 술탄과 관련하여
당대에 그녀가 술탄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지적(물론 그녀가 군주로서 인정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데, 샤자르 알 두르는 무슬림의 여왕으로 불렸어)도 있지만
그녀의 이름으로 발행된 주화에서
샤자르 알 두르는 술탄으로 칭해져
이 여성은 본래 노예 출신이었어
그러므로 그녀의 혈통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한 가지 유력한 설은 몽골군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린 아르메니아 출신의 튀르크인이었다는 것이야...
비록 노예 출신이었지만
이 여성은 아름답고 지적이었으며 경건한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이집트의 통치자였던 술탄 알 살리흐(샤자르 알 두르는 본래 바그다드에 거주하는 칼리프의 소유였지만, 이집트에 선물로 보내짐)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지...
* 술탄은 총명했던 그녀를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녔다고 해
그러한 그녀의 남편 알 살리흐는
'성왕 루이'
즉 프랑스 왕 루이 9세를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 끝에 승전하였으나
철군 중 사망하였고
샤자르 알 두르는 남편의 죽음을 비밀(마치 술탄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 망자에게 음식이 진상되었어)에 붙였는데
이는 십자군과 같은 외적도 의식한 조치였지만
한편으로 내부의 불온세력의 준동을 경계하기도 한 조치로
이 당찬 여성은 군대의 지휘관들로부터
투란샤(알 살리흐의 첫 번째 부인의 아들)에 대한 충성맹세를 받아내는 등
투란샤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어
* 술탄이 병상에 있을 때부터 그녀는 그의 업무를 챙겼다고 함
물론 언제까지 술탄의 죽음이 비밀일 수는 없었는데
알 살리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십자군은 카이로를 목표로 진군하였어
하지만 샤자르 알 두르는 바이바르스의 전략을 채택하여 적들을 격퇴하였고
시리아에서 군대를 끌고 온 투란샤가 이어서 전선을 지휘하여
끝내 프랑스의 왕을 생포하기에 이르렀지
한편 아유이브 왕조의 새로운 지도자 투란샤는 사실 아버지의 신임을 받지는 못하던 아들로 일찍이 변방으로 보내져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수도 카이로에서 기반이 없었던 그는
시리아의 키파성에서 데려온 이들을 요직에 앉혔지
하지만 이는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십자군과의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운
튀르크계 백인 노예들이었던 '바흐리 맘루크'들의 분노를 사는 일이었어
* 투란샤는 의붓어머니도 정적으로 대하였고, 그녀에게 선왕이 하사했던 값진 패물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함
샤자르 알 두르는 분노하여 맘루크 바흐리야의 지휘관들에게
투란샤의 배은망덕함에 대해 토로하였고
곧 쿠데타가 일어나 투란샤는 살해되었지(그의 시체는 3일동안 강변에 방치됨)
* 그리고 쿠데타의 주역들은 샤자르 알 두르를 옹립하였어
그렇게 이집트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그녀는
금요예배를 여성 술탄의 이름으로 진행하게 하고
'움므 칼릴(칼릴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칼릴은 어렸을 때 죽은 그녀의 아들)'이라고 새긴 '옥새' 또한 만들었어
그리고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도 자신의 술탄직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였지
하지만 바그다드의 칼리프 알 무스타심은
'이세민 행동'을 하는데...
여자는 술탄이 될 수 없다면서
"너희가 술탄이 될 남자를 찾지 못한다면 내가 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였어
* 이 칼리프 알 무스타심은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로 '몽골 당하심'
샤자르 알 두르는
총독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주고
이집트의 일반 백성들에게도 민심을 얻기 위하여 세금을 인하하는 조치를 하였지만...
칼리프에게 술탄으로 인정이 거부되는 등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 술탄'으로 지속적인 통치를 하기에는 그 '유리천장'은 너무나 공고한 것이었지
결국 그녀는 재혼한 남편 아이바크에게 술탄 자리를 넘겨주고
80일만에 퇴위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들 부부의 관계는 어떠하였을까?
이 남녀의 '부부싸움'은 역사에 남을 만한 것으로...
아이바크는 젊은 여자를 원하였고...
샤자르 알 두르는 이에 분노하였지...
그리고 이들 부부의 다툼은 단순히 남녀 간의 '치정 문제'만이 아니었는데...
이것은 명백히 '정치적 갈등'으로
양쪽은 각자의 파벌을 거느렸는데
아이바크는 자신을 따르는 맘루크들을 요직에 앉힌 반면
샤자르 알 두르를 옹립했던 공신들은 대부분 제거되었어
이에 그녀는 이혼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아이바크의 반응은 '오히려 좋아'였어
그는 이러한 이혼 요구에
모술의 아미르 바드르 알 딘의 딸과 결혼을 추진하는 것으로 답하였지
이들 부부(라고 쓰고 사실상의 정적)의 관계는
이렇게 파국을 향해 치달았는데
바드르 알 딘은
아이바크에게 샤자르 알 두르가 진즉에 시리아의 아유이브 군주 알 나스르와 접촉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찔러줬고
이에 분노한
아이바크는
샤자르 알 두르를 처단하려 하였지만...
샤자르 알 두르의 행동이 더 빨라서
아이바크는 목욕을 하던 도중 암살당하여
그 생을 마감하였지....
하지만 샤자르 알 두르의 운명 또한 평탄할 수 없었는데...
아이바크 한 명의 죽음으로 상황이 반전될 수 없었던 것이
이미 이집트 조정은 아이바크의 추종세력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간밤에 급사한 것으로 둘러대었지만(술탄이 과연 사고로 죽었을까? ㄷㄷㄷ)
쿠투즈를 위사한 아이바크의 심복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이바크의 15살난 아들(샤자르 알 두르의 친아들은 아닌)이 새로운 술탄으로 옹립되었어...
여전히 샤자르 알 두르에게 충성하던 바흐리 맘루크의 잔존 세력들 덕분에 그녀는 일단은 목숨은 건졌지만...
이미 쿠투즈는 이 여성의 운명을 결정하였고...
붉은 탑에 감금되었던 샤자르 알 두르는 결국 살해되었는데...
새로운 술탄 알 만수르의 알리와 그 어머니를 섬기던 여자 노예들에 의하여
그녀는 나체 상태에서 나막신으로 맞아죽었다고 해 ㄷㄷㄷ
* 이상으로 샤자르 알 두르에 대한 소개를 마칠게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댓펌
저 시기가 살라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의 말기 상황이었죠.
그녀가 결혼한 첫 남편은 살라딘의 남동생이자 잉글랜드왕 리처드 1세의 여동생 조앤 공주와 혼담이 오가던 알 아딜의 손자이자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예루살렘 협상을 한 알 카밀의 아들이었을 거예요.
반대로 레반트 십자군 국가에서는 조기에 멸망한 에데사 백국을 제외하면 여성군주가 배출되었죠.
예루살렘의 5명 / 안티오키아의 1명 / 트리폴리의 1명이에요
인도쪽 이슬람 여성 술탄으론 라지아도 있긴 함 이쪽도 말로가 비슷했지만 그래도 4년이나 버텼지
첫댓글 와 개흥미돋이다
와...너무 흥미로움. 여자술탄 상상만 했는데 진짜 있었구나.
약간 다음웹툰 하렘이야기 생각나 여기서 모티브를 따온걸까?
하렘생존기는 오스만제국 쾨셈 술탄!
오 첨 알았어
진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