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쑥을 캐 놓고
삼월 둘째 목요일 아침이다.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라 창원역 앞으로 나가는 길에 역사로 들어 한 가지 용무를 먼저 봤다. 열흘 뒤 주말에 서울로 가서 아들네 얼굴을 한 번 보고 올 일로 열차표를 구해 놓는 일이다. 평일이 아닌 주말 서울행 표를 구하기가 날로 어려워짐을 실감한다. 서울역과 수서역을 놓고 저울질해가면서 어찌어찌 가까스로 당일치기 왕복표를 끊어 놓기는 했다.
역사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근교로 가는 버스 교통편을 살폈다. 마을버스가 아닌 김해로 다니는 시외구간 운행 140번 버스를 타고 소답동을 지나 용강고개를 넘었다. 동읍 덕산에서 좌곤리를 지나 낡은 아파트단지에서 내려 들녘으로 뚫린 포장도로 갓길을 걸었다. 2번과 25번 국도를 겹쳐 우회시킨 찻길이 들녘을 거쳐온 진출입 교차로는 출근 시간대여서 교통량이 늘어 혼잡했다.
주남저수지 배수문에서 흘러온 주천강에 놓인 남포교를 건너서 마을 안길을 따라 걸었다. 한갓진 골목을 지나자 묶어둔 한 마리 개가 짖자 이웃집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 외지인의 방문을 푯대 나게 영접해 신경쓰였다. 개는 짖어대도 주인은 집을 비웠는지 인적은 끊겨 적막하기만 하고 어느 집 뜰에는 산수유만 노랗게 피어 이른 봄 계절감을 드러냈다. 마을에서 들녘 들길을 걸었다.
벼농사만 짓고 휴경지로 둔 논바닥에는 귀향 대열에 아직 오르지 않은 한 무리 기러기들이 먹이활동을 했다. 대다수 본진은 북녘으로 날아가고 적은 개체수가 남았는데 열량을 더 보충하기 위함인지, 비대한 몸집을 다이어트로 가벼이 하기 위함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문득 남북으로 오르내리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에서 가장 후미에서 뒤따르는 새는 맹금류라던 얘기가 떠올랐다.
남포에서 펼쳐진 들녘은 아주 넓은데 주로 종자용 볍씨를 생산하는 일모작 지대였다. 그 가운데 한 구역은 연중 대형 비닐하우스를 설치한 특화된 온실이 나왔다. 대산 일대 비닐하우스단지와 일반 농가에 보급하는 각종 모종을 생산하는 육묘장이 나왔다. 근래 들어 채소 모종 생산은 부가가치가 높은 농가 소득원으로 기술이 고급 인력이라 외국인 노동자가 대체할 수 없는 분야다.
남포 육묘장 대형 비닐하우스가 북향의 바람을 막아준 양지바른 자리에 마른 검불을 비집으니 움이 튼 쑥이 파릇하게 보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의 칼을 꺼내 볕살을 등지고 쑥을 캐 모았다. 검불 속이라 깨끗한 쑥이 여려서 손으로 만져진 촉감이 부드러웠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도 비닐봉지가 쉽게 채워졌다. 비닐하우스단지 바깥 쑥을 캐던 자리를 벗어나 들녘을 지났다.
들녘 복판에는 경남 도청 농업기술센터 산하 화훼연구소가 나왔다. 장미를 비롯해 절화용 화초를 개량하고 시험 재배해 화훼농가에 보급하는 기관이었다. 여러 동 비닐하우스에는 사철 꽃을 가꾸었는데 일반인 단체 탐방은 절차를 밟아야 가능해 혼자서는 구경할 수 없어 먼발치서 바라만 봤다. 대신 옥외 뜰에 움이 튼 수선화가 노란 꽃을 피워 한동안 살펴보고 피사체로 삼았다.
들녘을 더 걸어 가술에 닿아 주공 아파트단지에 이르니 엊그제 봤던 홍매 백매는 만발해 향기가 진해 벌들이 날아와 바쁘게 움직였다. 매실나무 곁에 조경수로 심어둔 목련에서도 봉긋하던 봉오리가 하얀 꽃잎을 펼쳤다. 아까 남포리 산수유의 개화에 이어 매화와 목련화까지 바야흐로 봄은 무르익어 가는 중이다. 가술 거리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한 끼 점심을 때우고 공원을 찾았다.
아까 캐 모은 봉지의 쑥을 꺼내 검불을 가려 놓고 정한 시간이 되어 들녘에서 주어진 임무를 마저 수행했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 ‘수선화’를 남겼다. “땅거죽 얼고부터 얼마나 기다렸나 / 땅속에 알뿌리는 볕살이 번져주길 / 움트는 새봄이 되자 세상 환히 밝힌다 // 뾰족한 순이 돋아 파릇한 잎줄기로 / 그 틈새 꽃대 솟아 봉오리 부풀더니 / 노랗게 꽃잎을 펼쳐 화사하게 웃는다” 25.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