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앙이 얕을수록 극단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얕을수록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2. 신학대학에서 공부할 때 1학년은 목사님 같고, 2학년은 전도사님 같고, 3학년이 되면 중직자 같다가, 4학년이 되면 성도와 같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3. 신학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처음에는 모든 것을 아는 것 같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4. 지하철을 타고 오시는 김기석목사님과 매일 수리산에서 만나서 교회로 걸어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목사님의 고백이 가슴에 남습니다.
5. 처음에는 한국교회를 변화 시키리라고 생각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무것도 아님을 자각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저 겸손에서 나온 말씀이 아닌 진심이 담긴 고백이었습니다. 삶 자체가 메세지가 되신 분의 고백이기에 더욱 와 닿았습니다.
6. 저도 신학 대학원 공부를 할 때는 한국교회를 조금이라도 변화 시키고 싶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는 한국 교회는 변화 시키지 못해도 제가 섬기는 교회는 변화 시키고 싶었습니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민족과 열방을 변화 시키는 사람들을 강조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묻는다면 이제는 저 자신 조차도 변화 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7. 목회자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섬짓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신이 성경의 본질과 다른데도 오만과 독선에 사로 잡혀서 자신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을 때입니다.
8. 그런 분들의 특징은 대체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묵상과 연구도 하지 않습니다. 말재주가 있어서 말은 잘하는데 깊이 파고 들어가면 삶은 전혀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리사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꽤 자주 보입니다.
9. 그저 속이는 자기 중심적인 말로 어찌 보면 성도들에게 사기를 쳐서 먹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분들과 이단적 성향이 있는 분들이 대체로 그러합니다.
10. 객관적으로 분별해 보면 얕아도 너무 얕은 신학과 신앙을 가진 분인데도 거짓된 확신에 기초해서 막말을 해도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종노릇 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자기 확신으로 이데올로기로 선동하는 극단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나 이단적 성향이 있는 목회자들은 오히려 성도들의 신앙과 삶을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11. 오늘 우리 시대는 그런 사역자들이 자극적인 것을 추종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명한 목사님을 공격하는 자극적인 말로 추종자를 모아서 자신들이 하나님 노릇을 합니다.
12. 위험한 신앙입니다. 삶은 빠지고 말만 난무하는 것은 영적 위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얕은 신학과 신앙이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 포장되어지고 그것을 소비하는 신앙은 아주 위험한 신앙입니다. 그 틈새를 이단과 사이비도 파고 들어 스스로 이단과 사이비의 올가미에 걸려 드는 경우도 늘어갑니다. 위험한 신앙에 빠져서 죄짓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13.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아는 신학적 신앙적 지식으로 친구를 말로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얕아도 너무 얕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은 위기의 순간 결정적인 순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위험한 신앙입니다.
14. 고통 속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탄식하는 욥에게 자신들이 아는 율법으로 정죄할 뿐이지 깊은 신앙에서 흘러 나오는 위로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위험한 신앙입니다.
15. 그들은 욥이 부요하고 명예가 있을 때는 친구였지만 욥을 겉모습으로만 대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시험인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거친 말로 자신들이 아는 보응의 원리로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로 욥을 심판하기를 주저함없이 했던 것입니다. 위험한 신앙입니다.
16. 엘리바스의 말은 물이 말라버린 개울과도 같아서 먼지만 일으킬 뿐 살리는 능력은 제로였습니다.
17. 더구나 욥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까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욥6:21)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18. 자신이 행여 손해를 볼까봐서 부유할 때는 더 가까이 가려고 했지만 고통 당하는 욥을 보고는 욥과 거리를 어찌하든지 멀리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것을 욥은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욥6:22)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19. 옳은 말이 얕은 위험한 신앙에서 나올 때는 죽이는 칼이 됩니다. (요16:25~27) "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26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27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
20. 욥의 시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21. 언젠가 한 회사의 대표가 심방을 부탁해서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목사님이 지나가다가 들렸다면서 와 있었습니다. 그분은 영파를 자쳐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예언을 해 준다면서 기도를 해 주는데 들어보니 양복입은 무당과 같았습니다.
22. 그래서 솔직한 피드백을 그 대표분에게 해 드렸습니다. < 예언을 믿지 마시고 성경을 묵상 하십시오. 그분의 말을 듣지 마시고 삶의 자리를 확인해 보십시오. 그래야 속지 않습니다. 좋은 말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씨름이 있는가 입니다. >
23. 목회자든 성도든 직분에 관계없이 삶이 빠지면 얕은 신앙, 천박한 신앙, 위험한 신앙이 됩니다.
24.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지 않으면 얕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할 위험성이 자리합니다.
25. 건강한 신앙은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신앙입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신앙입니다. 고통 당하는 이들 곁에 머물러 있어 주는 신앙입니다.
26. 우리의 신앙이 실개천처럼 얕아서 금방 메마르고 생명를 품지 못하는 신앙이 아니라 더 깊어져서 많은 생명을 품어주고 보듬어 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품는 품이 넉넉한 건강한 신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7. 오늘 내가 품어야 하는 욥은 누구인지 질문해 보십시요. 그리고 위헌한 신앙인 엘리바스와 같은 접근이 아닌 건강한 신앙으로 고통 당한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상갑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