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가자는 지인들을 뿌리치고
목욕탕을 가기 위해 준비물을 챙긴다.
정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는 목욕탕
바디로션, 이태리타월, 일회용 샴푸 손톱깎이가 나의 연장이다.
아주 오래전 한산했던 목욕탕
어느 아저씨에게 교대로 등을 밀자며 내가 먼저 등을 말끔히 밀어드렸건만
그분이 조금 후 팔이 아파 못 밀어줘 미안하는 소리를 듣고
그 후로 나의 목욕탕 세신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한 참 떨어진 곳
미리 봐둔 목욕탕에 들어서면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한다.
혼자 등을 밀수가 없어 긴 타올로 등을 청소하듯 하는 어르신
혼자 오신 분들에게" 제가 등 밀아드릴게 저도 밀어주실래요?"
도움을 청해도 되련만
그 말을 못 해 괜스레 샤워기 밑에서 씩씩한 척하는 학생
가끔 조폭 같은 젊은이의 등에 그려진 뱀 문신이 지워져라 밀어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힘없어 피부가 너덜 해 지신 어르신들이다.
혼자 오신 어르신. 학생의 등을 밀어준다 돌려 앉히면
돈을 얼마 드려야 하냐고 물어오곤 한다.
몇 분인가의 몸을 닦아 드리면 배도 고프고
힘이 빠져 피곤이 밀려오면. 천천히 짐 정리를 한다
등에 발라드렸던 로션
이태리타월 다음을 위하여 깨끗이 빨아 두는것을 잊지 않는다.
탕을 나오려 할 때 왼쪽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이 들어오신다.
그분이 탕 속에 들어가 몸을 불릴 동안 인내하며 기다렸다가
몸 구석구석을 닦아 드렸지만
세신 하는 분과 마지막 싸움이 남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벌써 나를 마중하듯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말이 서투른 분이 빈정대며 앞을 막는다.
전에는 무시하며 콧노래 부르며 탕을 나왔지만
오늘은 왠지 화가 나 큰소리 낸다.
"이 아저씨야?
내가 닦아 드리는 분들은 당신에게 돈을 (삼만 원) 주고 등을 절대 안 밀어
왜 그런지 알아"
"그분들은 돈이 없으시기 때문이야
그래서 내가 밀어드리는 거야
그러니 영업방해가 아니란 말이야~
당신이 그런 내 앞을 막으면 어쩔 건데?"
해보자는 거야 씨팔~!
세신하는 분이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사장님이 때밀이라면 어떡하겠어?"
나도 받아친다.
"걱정하지 마
난 당신 나라에 가서 절대 때밀이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때 이발하시는 사장님이 오해가 있었다며
그 세신 하시는 분을 데리고 간다.
여기 목욕탕엔 다음엔 못 올 것 같다.
밖의 바람이 상큼하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배고프다 말하면 쫓겨날 것 같아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가 먹는 순대국이 꿀맛이다.
조용한 커피숖에서 쉬었다 오는 것도
이 또한 나의 계획된 행복이다.
어슬렁 목욕탕 일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며
"우리 집 분리수거는 안 하고 왜 남에 등만 밀어 대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손을 공손히 잡고
"여보? 당신에겐 정말 미안해~"
"그런데 내가 등 밀어 드린 어르신
그분 팔에 해병대 문신이 있으셨어"
내가 해병대 후배라고 말 안 했어
말하면 그분 자괴감 들까 봐서~
"그 해병 선배님 박스를 주으러 다니신대"
목욕탕에서 등을 밀려면 빈 박스를 얼마나 주워야 할지 나도 몰라
"또 다른 학생은 아빠가 오른손 못 쓰시는 불구자이시래
왼쪽 팔로 아들의 등을 밀어주는 아빠가 슬퍼 보여
혼자 목욕탕에 온다네 그래서 내가 등 밀어주었어~"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일이야
내 체질이 그러니 어쩌겠어?"
이건 고맙다고 어느 어르신이 주신 박카스야
안 받으려 했는데
자꾸만 주머니에 넣어 주시더라~"
이건 당신이 마시고
"나는 당신이 내려 준 얼음 동동 아이스커피 마시고 싶어~"
나의 말을 듣던 아내가 구겨진 얼굴을 펴고
"그렇다고 우리 집 분리수거 안 한다고?" 깜짝 놀라며
아니 이렇게 이쁜 마누라 손에 구정물 묻게 할 순 없지
화가 풀렸는가
웃어 대는 아내의 미소 위로 시월이 시작되고
아내가 만들어준 얼음 동동 띄운 커피잔 속에 하루가 지난다
첫댓글 목욕탕 때밀이(洗身)를 돈 내고 한 적은 없었네요.
헌데 호주, 시드니에 몰에 가서 긴 때밀이 타올을 눈 씻고
찾아 봤었으나 한 군데도 없음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문화적 차이에서였습니다. 긴 막대 솔로 등을 닦는
서양인들은 긴 타올을 쓸 줄을 모르는 겁니다.
결국 '한인마트'에 갔더니 거긴 때밀이용 긴 타올이
있는 게 보였습니다. ^^
지금도 긴 때밀이타올을 사용해 등을 닦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독립성(獨立性)을 잃지 않고 남의 도움
없이 등의 때를 밀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