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숲길을 걸어
봄이 무르익는 삼월 중순이다. 삼일절이 토요일이어서 세 번째 맞은 주말이다. 지난주 주말은 여항산 미산령을 넘으면서 고산지에 핀 복수초를 완상했다. 그 이튿날은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변산바람꽃을 보고 나왔다. 이후 평일 주중에는 대산 들녘을 누비면서 봄이 번지는 기색을 살피느라 하루해를 짧게 보내고 다시 맞은 주말은 들녘보다 산자락으로 발길을 나섬이 자연스러웠다.
엊그제 남포 들녘을 지나다 육묘장 비닐하우스가 북향 바람을 막아준 볕 바른 자리 돋은 쑥을 몇 줌 캤다. 그러면서 주말이 오면 산자락 임도를 걸으며 청정지역에 움이 튼 쑥을 더 캘 생각을 해두고 맞은 토요일이다. 서북산이 봉화산으로 뻗은 지맥의 임도를 걷고자 기다란 주말이다. 강수가 예보된 주말인데 늦은 밤부터 일요일에 걸쳐 올 것으로 보고 우산은 챙겨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서북동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려고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주말이면 근교에서 생산된 푸성귀를 펼쳐 파는 노점이 형성되는데 상인들은 비가 와 난감해했다. 평일에도 노점이 서기는 해도 주말 이틀이 붐비는데 새벽부터 비가 오니 푸성귀를 펼쳐 놓으면서도 손님의 발길이 끊어질까 염려였다. 공을 들여 캤을 쑥을 비롯한 산물을 내가 사 줄 여건이 못 되어 미안했다.
정한 시각에 출발한 73번 버스를 타고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과 삼성병원을 거쳐 어시장을 지났다. 밤밭고개를 넘어간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환승장에 들렀다가 지산을 둘러 덕곡천을 따라 금산에서 내렸다. 학동저수지와 가까운 산기슭에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 집이 그림처럼 보였다. 고령화된 농촌으로 묵은 논밭이나 빈집이 늘어난 골목에는 수령이 오래된 매화가 꽃을 피웠다.
인적이 끊긴 고샅길을 지나 금산 편백림 숲으로 가는 비탈길로 올랐다. 오래전 한 독림가가 조성한 편백숲은 그가 작고하자 아들이 이어서 관리하는 사유림인데 근동에서는 알려진 치유의 숲이다. 한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 숲으로 개발해 보려다 산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사유림이라 일반인 출입은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차를 몰아간 입장은 어려워도 산책객 입산은 가능했다.
평일은 찾는 이가 드물 테고 주말에 비가 와 인적이 끊긴 숲이었다. 수종의 특성상 잔가지가 없이 미끈하게 쭉쭉 뻗은 둥치가 하늘로 솟구친 수천수만 그루 편백림은 바라만 봐도 품어져 나오는 음이온에 압도된 느낌이었다. 숲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가니 황토방으로 지은 산막은 인적이 없고 흰둥이 한 마리가 짖어대는데 낯선 방문객에 경계심이라기보다 외로움을 떨치는 듯했다.
편백림에는 몇 갈래 숲길이 있는데 베틀산으로 가는 길로 들어 편백림을 벗어난 산자락이 펼쳐졌다. 아까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가랑비가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산모롱이를 돌아간 어디쯤 산마루에는 산주가 소나무 수형을 전정시켜 잘 가꾼 숲이 나왔다. 훗날을 내다보고 정원 어디에다 옮겨갈 조경수로 가꾸는 소나무인 듯했다.
여항산에서 온 서북산 산마루는 봉화산을 거쳐 진동 대현 광산과 쌀재에서 무학산으로 향해 갔다. 봉화산으로 가던 낙남정맥은 베틀산이 분맥이 되어 진동만으로 향하는 산자락을 따라 뚫은 임도를 따라 걸었다. 빗방울이 약하게 내리는 즈음이라 길섶의 자연석이 젖었기는 해도 쉼터로 삼아 간식을 꺼내 먹고 배낭을 추슬러 일러서니 잎줄기에 윤이 나는 춘란이 몇 포기 보였다.
베틀산을 돌아가는 가파른 비탈 임도는 산사태에 대비해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 길섶은 남향이라 일찍 돋은 쑥이 간간이 보였는데 약하게 내리는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쪼그려 앉아 몇 줌 캤다. 앞으로 봄날이 다 가도록 나뿐만 아니라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산자락이라 쑥의 존재감은 내가 확인시켜주었다. 비탈길이 끝난 외딴 농막에는 여러 마리 흰둥이들만 짖어댔다. 2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