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용두동에 있는 침향(沈香) 업체 사장님께
무려 두 시간에 걸친 상담 아닌 강의를 경청했고
종로5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인사동 학고재화랑에서 판화가 이철수 님의
2000년 '신상품' 판화를 구경하고
5시,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지하룸에서
갈옷패션쇼를 침흘리면서 구경하고...
갈옷이 뭔고하니
제주에서 나는 감으로 물들인 옷인데요, 제주에서는
그 옷을 갈중이라고 하지요. 그 감물옷을 새로운 패션의
한 영역으로 제안하는 그런 패션쇼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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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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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이철수씨, 전국 5곳서 동시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기자 = 지난 80년대 초, 민중작가로 목판화작업을 시작했던 이철수 씨는 충북 제천 박달재 아래에서 농사지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가요 < 울고 넘는 박달재 >에 나오는 바로 그 박달재가 실오라기처럼 걸려 있는 천등산 자락에 농토를 펼쳐놓고 아내와 두 아이와 더불어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태생으로 농사일에는 인연이 없는듯 했던 그가 이곳에 정착한 것은 올해로 15년째. 모두 270평의 대지로 시작했던 시골생활이 이젠 3천여평의 논밭이 말해주는 것처럼 상당히 `부유'해졌다. 쌀농사, 고추농사, 배추농사 등 못 짓는 게 없고 농사일 사이사이에 기왕에 해오던 목판화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구릿빛 얼굴의 이씨가 5년만에 작품을 한 아름 안고 도심 전시장에 나타난다. 지난 95년 `마른 풀의 노래'전 이후 5년만의 일. 모두 134점이 출품되는 이번 개인전(22-12월 16일)은 서울(학고재.아트스페이스서울)과 부산(공간화랑), 대구(예술마당솔), 전주(전북학생종합회관), 청주(무심갤러리) 등 다섯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전시주제는 `이렇게 좋은날'.
전시작은 그가 시골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케 한다. 함께 사는 개를 소재로한 < 개소리 >를 비롯해 < 초록 > < 바람 > < 아무 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 좋은 날이다 > < 봄 이야기 > < 길 > < 일 하는 날 > 등이 그렇다. 이밖에 < 법주사 > < 부도 > 등 불교잡지 등에 간간이 기고한 작품도 있고, 60폭짜리 병풍은 덤처럼 내놓는다.
이씨는 선화적(禪畵的) 색채를 띠면서도 결코 고답적이지 않은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문인화 형식을 취하되 그 나름의 미학으로 삶과 예술을 관조하고 있는 것. 그는 이에 대해 '나는 작품에 매달리지 않는다. 농사 짓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림을 그려낼뿐'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이씨는 역시 도시출신인 아내와 함께 논밭을 갈면서도 이견으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농촌행을 순순히 받아주고 그 생활에 더 잘 적응하며 기쁨을 얻는 아내가 오히려 대견할 정도라는 것. 자라나는 생명들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어 이 생활이 대만족이라며 웃는다.
이씨는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청정농사를 짓는다. 우렁이를 무논에 넣어놓고 벼농사를 짓는 것도 그중 하나. 단순한 생계수단으로 농사일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수확은 거의 시장에 내다팔지 않고 친척이나 지인들과 나눠 먹는다.
농사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작품생산에 애를 태우지 않는다. 오며가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 하고 별도의 시간이 나면 은행나무판 등을 이용해 선과 면을 구성해낸다. 작품이 완성된 나무판은 20-30장의 그림을 찍어낸 뒤 곧바로 파괴해 `뒷탈'을 없애버린다.
이씨는 도시인이 목가적으로 생각하는 농촌상에 대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도시인이 앓기 쉬운 인간의 내면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더 큰 상처를 안고 떠날 위험성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자연은 그와 친숙해지려는 준비가 돼 있는 인간에게 치유의 힘을 안겨준다'고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