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에 취한 푸른 밤을 손에 쥐고 —마녀 일기 17
강 순
쉰 살의 마녀가 스무 살 마녀를 불러온다 누구에게나 젊음은 위약 같은 것 쉰 살의 마녀는 스무 살 마녀의 영혼을 조금씩 심장 속에 불어 넣고 있다 긴 주문을 외는 동안 엄습하는 폭풍 같은 한숨의 고리 시작과 끝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느낌표 정수리를 지나 목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는 말줄임표 길 잃은 난민들이 낯선 곳을 헤매고 선동된 사람들이 전쟁 애호가가 버린 밀담을 꽃이나 열매처럼 주워 먹는 시대 악이 열린다는 나무를 알아챌 수 있다면 악의 꽃이나 열매를 따 버릴 수 있다면 쉰 살의 마녀가 힘 빠진 어깨를 쓰다듬는다 잦아지는 기침만큼 마력이 쇠해지고 한밤에 깨어 결핍을 확인하는 일도 점점 힘들어져 눈을 뜨고 문을 열고 숲속을 가로질러 게임 장면 같은 핏빛 전장이 저기인데 무거운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지팡이야 방울뱀처럼 흔들려라 뾰족모자와 구두가 기다린다 감기약에 취한 푸른 밤을 손에 쥐고 최선의 주술로 시간을 주무르며 살아남아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전사처럼 최선을 궁구할 때 심장에 숨긴 스무 살 마녀가 귀가 들리는 태아처럼 희미하게 꿈틀대기 시작한다
—《웹진 님Nim》 2024년 3월호 --------------------- 강순 / 1969년 제주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199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크로노그래프』『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