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청와대 오시라” 김정은 “초청하면 언제라도”
◇ 윤영찬 수석, 두 정상 비공개 대화 브리핑 ‘역사적 상봉’ 각본 없는 드라마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처음 만난 27일 오전 9시30분부터 두 정상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각본 없는 드라마를 그려냈다. 문 대통령이 의장대 사열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다 김 위원장 초청 의사를 에둘러 밝히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초청해 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이 두 정상의 오전 회담이 끝난 뒤 판문점 자유의집에 차려진 프레스 센터에서 전한 내용이다. 윤 수석은 “오늘 두 정상이 엠디엘(MDL·군사분계선)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시작한 이후부터 환담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대화내용을 말씀드리겠다”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게된 사연부터 공개했다. 군사분계선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나눈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남쪽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느냐”고 농담을 섞어 말을 건넸다고 한다. <△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식 환영식 후 평화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 그러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온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는 것이다. 윤 수석은 “(그렇게 해서) 오늘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사진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의장대 사열을 하는 도중,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에둘러 밝히자 김 위원장은 이를 덜컥 수용했다.
◇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갔다 다시 남측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같이 의장대 사열을 하면서 “외국 사람들도 우리 전통의장대를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보여드린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완곡하게 초청 의사를 밝히자 김 위원장은 “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평양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나는 것이 더 잘됐다. 대결상징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갖고 보고 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 상처가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수석이 전한 두 정상의 대화에서는, 김 위원장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화법도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 사진: "김 위원장과 역사적인 악수를 하면서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5센티미터 높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되돌아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 문 대통령이 백두산을 화제로 올리며 북쪽을 가보고 싶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거 같다. 평창올림픽 갔다온 분들 말하는데 고속열차가 좋다더라. 남쪽에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민망스러울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 오시면 편히 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쪽으로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6·15 선언에 담겨 있는데 10년 세월간 실천하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달라져 그 맥이 끊어진게 한스럽다. 김 위원장의 큰 용단으로 10년 동안 끊어진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이후 강도높은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협력 분야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 두 정상은, 사전환담장 앞 장백폭포와 성산일출봉 그림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다, 백두산 관광, 고속철도 등 교통 인프라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꺼낸 셈이다.두 정상은 민감한 안보 이슈마저 ‘농담’으로 녹여버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김 위원장이 먼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화답했다.(...)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오면서 보니 실향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며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보면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도 전했다.북한 최고 지도자가 직접 탈북자, 접경 지역 주민의 불안한 심정을 헤아리는 발언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동안 북한 언론이 탈북자들을 “인간 쓰레기”라고 부르는 등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특히 이들에 대해 언급하고, 이들의 걱정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김 위원장의 성격이 상당히 솔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김 위원장이 특히 실향민, 탈북자, 연평도 주민이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올까 불안해 한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의미가 있다. 현재 남북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김보협 기자 3D3Dbhkim@hani.co.kr">3Dbhkim@hani.co.kr">3Dbhkim@hani.co.kr">bhki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