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 묵집을 찾아서
토요일에 이어 비가 오락가락한 삼월 중순 일요일이다. 전일은 마산역 광장에서 농어촌버스 타고 진동으로 나가 서북산이 봉화산으로 건너가는 금산 편백림 숲길을 걸었다. 산간마을 고샅은 인적이 끊겼고 묵혀둔 밭둑에는 수령이 오래된 매화가 빗속에 피어나 봄날 운치를 더했다. 편백림에서 베틀산 기슭으로 뚫은 호젓한 임도를 따라 걸으며 가는 빗줄기에도 쑥을 몇 줌 캐 왔다.
일요일은 종일 비가 내린다면 도서관에 머물 참인데 그러지 않아도 될 여건이다. 이른 아침 자연 학교로 나서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배낭에 챙겼다. 원이대로를 건너 폴리텍대학 구내에서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에 닿아 대출 도서 2권은 무인 반납기에 투입했다. 새로운 책을 빌리고 싶어도 열람실이 열리려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해 후일 다시 찾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교육단지는 사립 재단을 포함한 초중고에서 내가 교직을 마무리 지은 거제로 건너가기 직전 근무했던 여학교도 있다. 마침 교직원과 학생이 등교하지 않을 일요일이라 지난날 근무지 교정에 피어날 꽃이 궁금해 발길은 그곳으로 향했다. 공립으로 설립 연도가 계획도시 창원이 출범한 시점과 같아 연륜이 꽤 오래되어 교정의 수목이 우거지고 특히 뒤뜰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넓은 운동장이 천연 잔디로 입혀진 교정에서 본관을 돌아 뒤뜰로 가니 10여 년 전 추억을 떠올랐다. 수업이 빈 시간이면 정원을 거닐거나 봉숭아와 맨드라미를 심어 가꾸기도 했다. 복사꽃이나 살구꽃이 피는 봄날은 무릉도원이 연상되고 그보다 이른 매화가 피어 향기를 뿜었다. 낮게 자란 정원수와 자연석에 어울려 자라는 다년초 수선화가 그때와 다름없이 노란 꽃을 피워 반겼다.
교정에서 나와 마산역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합성동 터미널에서 근교 농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삼월 초순 여항산 미산령 복수초와 의림사 계곡 변산바람꽃 탐방에 밀려 남지 강가로 나가려던 일정이 늦춰진 걸음이다. 서마산에서 칠원 읍내를 거쳐 칠북 유계에서 칠서 이룡을 지난 강변에서 내렸다. 우리병원에서 강둑으로 나가자 낙동강 강심으로는 다리가 놓여 차량이 질주했다.
자전거 길과 같이 쓰는 남지대교 보도 따라 걸으니 상류에는 옛 남지철교 트러스트 교량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을 건너 남지에 이르러 둑길과 나란한 강변을 따라 옛 철교가 놓인 다리목 근처를 지나다 묵집을 발견했다. 일전 한 문우가 지방지에 맛집 탐방으로 소개해 틈을 내서 찾고 싶던 식당이었다. 메밀묵 전문 식당은 삼랑진에도 한 군데 알고 있는데 공교롭게 둘 다 강변이다.
묵밥을 시켰더니 따뜻이 우려낸 맛국물에 채로 쓴 메밀묵이 가루 김은 고명으로 얹혀 나왔다. 차림표에 메밀전이나 전병도 있으나 곡차를 끊어 안주 삼을 일이 없어 맛보지 않았다. 묵집을 나설 때 주인 아낙이 꽃 필 때 또 오십사고 했는데, 번잡함을 피해 당겨왔다면서 언제 다시 들리겠노라 했다. 둑을 넘어 둔치에 자라는 풋풋한 유채와 보리밭을 걸어 용산 양수장 근처까지 올랐다.
건너편은 남강이 낙동강 본류와 합수한 지정면 성산 두물머리였다. 강 언저리를 서성이면서 반구정 언덕배기 자생하는 남바람꽃이 피면 그곳을 한 차례 찾아갈 생각이다. 시든 갈대의 열병을 받으면서 유유히 흐르는 물길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 남지철교 교각 아래 이르니 한 사내가 낚싯대에서 팔뚝만한 잉어를 낚아채 올렸다. 둔치를 더 걸어 아까 건너온 남지대교에서 둑을 넘었다.
강촌 남지 버스터미널에서 마산으로 합성동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 제 시각에 온 차를 탔다. 고속도로를 달려온 차 안에서 ‘남지 묵집’을 한 수 남겼다. “땅콩을 심어 캐던 모래흙 남지 둔치 / 무배추 뒤를 잇는 유채꽃 상춘 인파 / 강가라 맛집으로는 민물횟집 찾는다 / 철교로 드는 길목 눈에 띈 묵집 간판 / 옛 추억 메밀묵에 발길은 주저 않아 / 지난날 허기 달래던 묵밥 대접 시켰다” 2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