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코리안
최현득
“하오한! 하오한!”
만면에 웃음꽃이 핀 채 엄지를 치켜세운다. 하오한(好漢)! 사내대장부란 뜻이다. 운전기사 양반, 관용차를 모는 당당한 직업에 풍채 또한 당당하니 목소리도 우렁찰 수밖에. 살다가 이런 말대접도 처음이리라.
김포국제공항을 통과할 때 환율 1,000원을 돌파하여 아찔하게 느꼈으니 1997년 가을인가 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북경 시내 한 호텔 앞에서의 일이다. 옛날 옛적에 만리장성의 끝부분 널따란 초원에서는, 가을날 높푸른 하늘 아래 말이 살찌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과 함께 등장한 용어인 ‘어글리 코리안’. 주로 외국에 여행 가서 몰상식한 추태를 부리고 진상 짓을 하는 한국인을 말한단다.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라지만 성찰의 의미가 있다면 그리 나쁜 말도 아닐 성 싶다. 술을 즐기는 나로선 얼굴을 붉힐 만한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는데, 그 중에서도 단박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스위스. 선진지 견학이란 명분이 어째 촌스러운, 글자 그대로 꿈의 여정이랄까. 어쨌든 1991년 당시로선 유럽여행은 공무원에겐 대단한 행운이었다. 공무국외여행보고서란 것이 목에 가시였지만 잿밥이 보통 잿밥인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샤를르 드골 공항에 내렸다. 샹젤리제와 루브르 베르사유를 눈앞에 둔 파리의 첫날밤, 유럽의 첫날밤이었다. 그러나 들뜬 가슴을 가라앉혀야 했다. 듣던 대로 한국식 밤 문화가 없어 호텔방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창밖의 밤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이심전심, 일행 넷이 한 방에 모인다. 아껴 먹어야 할 팩 진로소주가 그 자리에서 동나버리고, 그리고 고성과 음주, ‘어글리’의 본질적 행태라고 할까.
점입가경 제2라운드는 나의 독무대, 술자리에선 늘 한술 더 뜨는 체질이 탈이다. 몽롱한 가운데 객실 통로에 나와 혼자서 몸도 마음도 오락가락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 동안이었는지 어디까지 헤맸는지는 모른다.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도 모른다. 돌아오는 항공권 다발을 몽땅 잃어버렸다는 것만은 확실하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르는 법, 후속조치가 이어진다. 이튿날 아침 호텔식당에선 우리 좌석만 지정되었고,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서 파리바게트 조각을 씹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 가서는 템스 강과 버킹엄궁을 보기 전에 KAL 런던지사에서 항공권을 재발급 받았는데, 영국인 직원이 무척 친절해서 ‘신사의 나라’를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IMF 초입에 들른 중국.
그날 오후는 만리장성에 오르기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3년 전 만리장성 팔달령 구간에서 본 그 한글 경고팻말. 그대로 있는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그 의미를 새겨보겠다는 나만의 목표가 있었다.
사달이 난 것은 또 술 때문이다. 3개월 합숙의 중국어연수과정. ‘꽌시(關係)’가 대세인 나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 등등 중국어 외에 배우는 것도 많았다. 고된 훈련(?)의 보너스인 현지여행에 신이 났다. 북경의 수도공항[首都機場]에 내려 4인 1조로 실전회화에 들어간다. 스릴 넘치는 술자리에 인연과 꽌시가 얽혀 일이 흘러간다.
우리 일행과 친분이 있는 중국 공무원들이 접대를 나왔다. 공사가 애매한 이런 경우에도 정부 예산을 쓴다고 했다. 그러니 저네들도 시원시원하고 호탕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나로선 지상 최고의 오찬이 마련된 셈이다. 으리으리한 식당, 벼슬이 젤 높다고 나는 입구 맞은편 정중앙에 앉게 된다. 열 명이 앉는 라운드테이블에 60도짜리 진짜 고량주(당시 한국에 건너오는 중국술은 전부 가짜라는 설도 있었다). 맥주잔 크기의 잔만 준비되어있는 것이, 어쩌면 꾼들만 선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얼핏 국격(國格)이나 국위선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생애 최고의 순간임을 절감하면서.
저녁 여섯 시, 호텔방에서 나 홀로 눈을 떴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들…. 깐뻬이! 깐뻬이! 돌아가며 열 번은 외쳤을까. 乾杯, 글자 그대로 단숨에 잔을 비우고. 몽롱한 가운데 관용차의 바닥에 무엇을 쏟아내고. 그리고 술이 좋은지 술에 강한지 한참을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중화인민공화국 동무들이 작별 인사를 온 것이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얼굴들에서, 손님이 토할 만큼 엎어지게 대접을 잘 했다는 만족감을 읽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대변한 말, 하오한!
문제가 남았다. 나 스스로 어글리 코리안을 자칭하면서 한참을 주워섬겼으면 결론은 뻔하다. 반성하고 뉘우쳐야 한다. 앞으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별 자신이 없다. 반성할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환경이 세상이 많이 변해버렸다. 이 땅에 신의 축복이 내린 것일까. 어느덧 프랑스도 영국도 별난 선진국이 아니요 중국 또한 신비의 천하가 아니지 않는가. 코리안 드림이니 K-컬처니 하는 신기한 말들이 유행하고 있는 판이다. 해외여행에서 누구나 있게 마련인 실수들, 양념 같은 ‘어글리’의 추억담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느긋하게 공감해 주리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양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응원도 들린다. 술은 시간의 낭비이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고. 지난해 일본에 간 한국인만 6백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어쩌면 코로나와 황혼육아로 오랫동안 좁은 공간을 맴돌고 있는 나의 인생길 소풍이 초라하고 답답해서 한 푸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나의 삶 자체가 엉뚱하고 사고투성이였지 않나. 그 삶과 닮은꼴일 수밖에 없는 그 흔적들. 한번뿐인 삶을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것도 부질없는 노릇이다. 그저 한번 싱긋 웃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