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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현정)
라오까이 역에서 무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격한
감정에 못이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그녀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저 멀리 산 중턱에서 흐릿한 구름과 안개가 우리를 향해 덮쳐 왔다.
라우린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무이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더니 행복하다고 했다.
조잘조잘 귀에 속삭이는 무이와 함께 걸으니 발바닥까지 더워지는 느낌이었다.
시원스럽게 넓은 호텔 유리창 밖으로 흰 눈처럼 꽃잎들이 내리고 있었지만
나는 블라인드를 내렸다. 시원하게 깊은 동굴같은 무이의 눈동자를 보니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사랑을 갈망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다가 그녀의 블라우스의 단추를
격한감정으로 풀어 헤쳤다. 무이의 옷이 조금 찢어지고
내 남방셔츠의 단추가 뜯겨지기도 했다.
“부이 믕, 부이 꾸어 넨 콩 비엣 파이 람 지,
라응아이 뚜옛 버이 녓 쭁 더이 또이, 태경 씨."
(기뻐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에요)
나는 꽁까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무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다가왔다.
무이의 눈부신 알몸에선 작고 둥근 몽키바나나 향기가 났다.
그녀는 밤새도록 별이 되었고 입안에선 아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별을 잘게 부수고 또 부수어 다디단 즙을 만들었다.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이 났다.
창밖을 보니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퍼져오고 있었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무이. 그녀를 바라보는데 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무이의 모습에서 서영이의 환영이 아른거렸다.
서영의 존재가 아직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니.
테라스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에 한숨을 실어 보냈다. 연기는 꽃모양이 되지 않고 이내 흩어졌다.
다시 담배를 내 뿜으며 긴 한숨을 내 쉴 때, 무이가 눈을 뜨고 옆으로
누워 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영을 만나려면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녀는 휴일이면 나를 태우러 우리 집으로 왔다.
그날 일요일은 결혼한 형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형들과 나를 앉혀놓고 식사하기를 은근히 즐겼지만 난 이런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하지만 백수가 어쩌겠는가. 그저 백수답게 반찬 투정 않고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가족들과 사사로운 일상생활을 주고받을 때 난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가족들이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잠바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가 산처럼 수북이 쌓인
구석진 곳에서 서영이가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좀처럼 여자를 사귀지 않는 편이지만 한 번 눈에 든 여자에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사랑을 했다. 손이 오그라들 만한 낱말과 수식을 갖다
붙여 여자의 귀에다 넣어주곤 했다. 서로 다투어도 내가 먼저 냉정하게 돌아서지 않았다.
단언컨대 내가 안아본 여자들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하게 대해준 적은 없었다.
그게 내 천성이다. 그러나 단 한사람, 엄마한테만 퉁명스럽게 대했다.
엄마 앞에선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엄마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내뱉는 잔소리에 질려서다.
“언제 취직할 건데? 빈둥빈둥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오 년째야, 이놈아.”
이놈으로 끝내놓고 엄마는 스스로 끓는 물이 되었다. 압력밥솥에서 김이 터질 때가 되었다.
“정신 차려, 나쁜 놈의 새끼. 내일 모레면 에미가 칠순이다, 쌔꺄!”
엄마의 욕설에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서 쉴 텐트를 하나 장만했다.
엄마의 소프라노톤 히스테리가 발작할 때면 배낭을 메고 캠핑장이
갖춰져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각박하고 힘겨운
직장에서 누구나 한 번은 꿈꾸는 캠핑. 텐트 안에 있으면 세상 부러운 게 없었다.
캠핑장에 오면 텐트들이 비슷비슷하다. 개수대는 기본이고, 전기까지 사용할 수 있고
물론 샤워장도 잘 갖춰져 있다. 수 년 전에 펜션이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캠핑이 대세다.
엄마를 피해 캠핑을 즐기다가 서영일 만난 것이다.
흑백사진 같은 날씨였다. 집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러 갔다가
엄마에게 또 한소리 듣고 나니 약간 우울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걸었다.
고물차라도 한 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 한 대가 급제동을 걸었다.
난 차 옆 범퍼에 약간 부딪치며 넘어졌다.
“어머! 이거 어떡해. 어디 다친 덴 없어요?”
왜 안 다쳤을까?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드러누웠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과장된 몸짓으로 호들갑을 떨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녀를 쓰윽 훑어보았다.
목소리와 얼굴과 몸매가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그 짧은 순간에 입안이 바짝 말라버렸다.
“괜찮아요, 앞을 안 보고 걸어서 제가 미안하지요.”
“병원에 가실래요? 목이나, 다리가 별 이상이 없는지…….”
“그렇게 걱정되면 커피 한 잔 사주시겠습니까?”
나도 결정적일 땐 앞뒤 재지 않는 불같은 남자로 변한다.
그녀는, 마침 캠핑장에 텐트 하나 임대해서 하룻밤 지내기로 했는데,
친구가 약속을 취소시켜 실망하던 차에 사고를 냈다고 했다.
텐트 빌리기가 쉽지 않다면서 혼자라도 산을 가고 싶었다고 수줍게 웃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까 그녀가 좋아질 것만 같았다. 웃음소리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보다 키는 작아야 하고, 여자의 손가락은 가급적 길어야 한다,
내 손이 뭉툭하니까.
종일 산행을 해도 지치지 않을 체력을 지녀야 한다.
거기다가 얼굴 예쁘고 목소리 낭창하고 체력도 받쳐주고.
내 품안에 쏘옥 들어올 정도로 키도 아담했다. 손가락은 제법 길었다.
함께 했던 지난 몇 년간 우리는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두물머리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고.
영남알프스라 부르는 유명한 영알 9봉을 모두 종주했다.
둘 다 오지마을을 좋아해서 삼척 덕풍마을과 봉화 홍점마을까지 갔다 왔다.
여행을 하면서 감춰졌던 서영의 성격은 변덕이 죽 끓듯이 해서 나를 애태우게 만든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본성은 착하고 조신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걸 넉넉하고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를 위해 김밥을 싸와 캠핑장에 주고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식당엘 가도 찬물과 따스한 물을 같이 갖고 와서 마시고 싶은 걸 골라 마시라고 했다.
무슨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내게 지극 정성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캠핑장으로 와서 자고 갔고, 한 번은 내가 그녀의 원룸에 가서 잠을 잤다.
그녀의 단점이 또 하나 발견됐다.
그녀의 방을 들어서면 에넘느레한 책상과 옷장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사갈 집처럼 어지럽혀진 집안 치우는건 모두 내 몫이었다.
어느 날 서영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태경 씨, 왜 내게 결혼하잔 말 안 해? 우린 사랑하잖아.”
“아직 결혼 준비가 안 되어서…… 직장도 잡아야 살 집도 얻을 게고.”
“걱정 마, 내가 직장 다니니까 자긴 몸만 와. 태경 씨가 살림하면 되잖아.
요즘 살림하는 남자들 많아.”
이 무슨 횡재 일보 직전인가 싶어도 속으로 그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현실에서 보는 눈은 안 좋아. 남자가 살림하는 거 별로 좋게 보진 않잖아.”
살림하는 남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주변에서 놀림당할 게 뻔했다.
취직을 못해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있냐는 식의 소리는 듣기 싫었다.
백수는 내가 처한 현실이다. 대학도 마쳤고 취직도 했는데,
잘 나가던 운명이 잠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직장생활은 방랑벽이 있는 나와는 물과 불의 관계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다닌 보일러회사는 신이 내린 직장이었다.
고임금과 넉넉한 복지시설과 별일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조건은
취업 준비생들에겐 밤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도 내겐 피곤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야근이 잦았다.
주 6일 근무에다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 퇴근을 했다. 수당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외수당은 급여에 정해져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 월급보다 더 가지고 갈 자신이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얼마간 마음 놓고 쉬더라도 내가 들어갈 곳은 있을 줄 알았다.
과감하게 회사를 때려 치웠다. 주변에서 뭐가 아쉬워 회사를
그만두었냐고 걱정을 했다. 한마디로 잘난 척 한 셈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괜찮게 봐 왔던 서영이 내 곁을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댔고, 때로는 앙칼진 소리를 질렀다. 난 이런 삶이 싫었지만
내가 먼저 돌아서진 않았다. 그녀가 먼저 돌아서기를 기다렸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이 오십 년이 넘어가는데 남는 건 악다구니밖에 없는지 부부싸움은 여전했다.
부부는 서로가 긴장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영도 지쳐 가는지 출근할
때만 두세 마디 잔소리를 했다.
“양말 거꾸로 벗어놓지 마. 텔레비전 봤으면 꺼야지.
새벽까지 윙윙 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깼잖아.”
기회가 왔다. 제발 먼저 떠났으면 싶은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해. 소리 지르지 말고. 좋은 사람 있으면 가!”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어? 나 좋다는 사람 있어. 붙잡지 마.”
“그래 안 붙잡는다.”
참 유치하고 쉽게 헤어졌다. 서영이 먼저 떠났으니 나는
내 입장을 지킨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서영이 다른 남자한테 쉽게 갈 성격이 아니다.
그녀가 욱해서 뱉은 말인데도 난 오랫동안 열을 받았다.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서영과 얼마 전에 크게 다투고,
안 본 지가 꽤 되었다. 서영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속사포 같은
푸념도 늘어놓고, 애교도 부린다면 눈 한 번 감고 못 이기는
척 그녀를 전처럼 대하려고 생각했다.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은근히 화가 났다. 다시 캠핑장으로 왔다.
눈을 뜨면 물 한 병을 들고 산을 올라갔다.
망원렌즈까지 들고 올라가니 땀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흘러내렸다.
태극기를 꽃은 백운대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엔 클라이머들이
자일에 몸을 의지하고 내려가고 있었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이승의 삶이 부질없어 보였다.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산을 내려오니 엄마와 시집간 누나가 와 있었다.
엄마는 다른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했다. 아버지가 연장을 들고
일을 해도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티그 용접기를 사가지고
자전거를 만들어 이웃집이나 친척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보일러 설치하고 고장수리할 때 들고 다니던 그런 연장을 만지는 게 제일 싫었다.
누나는 연장들을 건네주는 공구 아르바이트 일을 해보라고 했다.
오래 하는 것도 아니고 단 몇 달이면 되니까 베트남에 한 번 갔다 오라고 했다.
운명은 역시 예고 없이 온다. 매형을 만났다.
“처남 베트남 안 갈래?”
“베트남에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데. 좀 더워서 그렇지, 월급 단가가 쎄다더라.”
“제가 그쪽에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텐데요.”
“산업용 공구를 내주는 일인데 일주일 동안 배워보고 갈 생각 있으면 전화해.”
공구 일엔 관심 없었지만 해외를 나간다는 게 마음이 끌렸다.
“한 번 가보죠, 뭐.”
그리고는 매형 회사에 가서 공구 일을 배웠다.
한시라도 빠르게 한국에서 증발하고 싶었다.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무이는 중남부 지방에 위치해 있는
판티엣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녀와는 코드가 맞았다. 서영은 불이었고 나도 불이었다. 무이는 물이었다.
무이는 나를 위해 사막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무슨 사막이 있을까 궁금했다.
끝없는 정글은 많이 보아왔어도 사막에 호수와 오아시스도 있고
바다가 있다는 말에 며칠간 잠을 못 잤다.
협곡 사이로 붉은 흙들이 흘러 내려올 것만 같았다. 순간 넋을 잃었다.
배낭여행을 다녀 봐도 몽환적인 곳은 처음 봤다. 적토를 밟고 올라가는데
하늘에서 내리 쪼이는 가마솥 같은 뜨거움과 습기에 미칠것 같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무이를 한쪽 팔로 껴안고 나는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앞으로의 인생은 손익계산서 작성을 잘해야 한다. 밑지는 인생이 될는지,
쭉 뻗은 신작로처럼 일이 잘 풀리는 인생이 될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담배 연기 사이로 베트남에 오던 날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서영을 한국에 두고 여행가는 기분으로 베트남으로 갔다.
하노이에서 내려 몇 시간을 기다려 다낭 국내선을 타고 오지마을에 내렸다.
같이 일하는 김 대리가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아침부터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난 감독관 직원들과 금방 친해졌다.
베트남 직원들은 하급 노동자 중에서도 괜찮은 노동자들을 뽑아야 했다.
회사가 가동을 중단하면 일은 거의 없었다.
난 모든 면에서 예의 바른 컹에게 비옷과 모자도 주고,
커피도 같이 마시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무미건조한 나날들과 우기가 겹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점잖게 생긴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컹이 아들이라면서 일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렀다고 했다. 며칠 있으면 베트남 국경일이 끼어있어 삼일을 쉴 수
있다면서 컹의 아버지는 집에 놀러오라고 말했다. 결혼 안 한 딸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겠느냐고 했다. 실례되는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컹의 아버지가 나를 쉽게 초대했을 리가 없다.
분명히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자존심이나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베트남 사람이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는 건데.
며칠 뒤 컹의 집에 전화를 하고 갔다. 컹의 집안은 잔치 분위기였다.
컹의 조카는 인형처럼 귀여웠다. 랩까이, 뎁짜이 같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단어를 외워서 그 사람들 앞에서 써먹었다.
껑하이 시내로 나가보면 조경이 잘 되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숲이었지만
그건 숲이 아니라 커피 재배지라고 했다. 향도 향이지만 먹는 맛이 독특했다.
옆에서 커피를 맛나게 마시는 컹의 누나 무이는 직업이 약사였다.
무이는 처음 만났는데도 친근하고 진심으로 정을 베풀 줄 아는 아가씨였다.
무이에게 자꾸만 눈이 갔다. 차분하게 차를 따라주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저녁마다 무이 집에 놀러갔다.
몇 달을 같이 지내다 보니까 베트남에 정착하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봤자 희망이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은 전화를 하거나
만났다 하면 경제와 살림 이야기였다. 주식이야기,
아파트 이야기에 목에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마누라와 맞벌이하지 않으면
한국에선 살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들은 차라리 이민이나 가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비정규직인 나는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세월 따라 나이만 먹으며
늙어가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산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무이와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었다. 만난 지가 얼마 안 됐는데
무이는 처음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태경 씨는 원래 성격이 그런가요? 우리 베트남에선 명령하는 것을 싫어해요.”
무이는 여자였다. 내가 베트남어에 서툴기에 우린 주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도,
그녀는 내가 권위적인 스타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성격을
고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곳 사람들의 사는 스타일이 부러웠다.
얼굴의 표정에서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베트남 일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에 컹의 누나 무이를 다시 만났다.
무이는 나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이가 마음에 들었지만 아직 시간을 더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이가 많아서 결혼도 서둘러야 하는데 무엇보다
내 미래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서영이와 헤어졌다고 해도, 아직 결혼도 않고 날 기다리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 돌덩이 하나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우린 헤어진 게
아니라 서로 말없이 냉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무이하곤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난 곧바로 한국에 가지 않고 산간오지
쪽으로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이는 사파라는 고산족 마을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긴 시간을 불편한 침대에서 자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라오까이
역에 도착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또 가야 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오지마을 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산으로 끝없이 올라갔다. 계단식 논들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악마을의 풍광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껑하이에서 불볕더위에 지쳐 있던 몸을 일단 추스르고 싶었다.
어떤 의욕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몇 달 동안 고생한 내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일하면서 틈틈이 여행 스케치를 그려보았다. 트레킹 할 수 있는
산이 있고, 번잡스럽지 않은 조용한 휴양지를 자주 머릿속에 그리며 살았다.
한적한 이곳 고산지대가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힘들게 일했던 피로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예약해 놓은 호텔로 향했다.
남서쪽으로 창문이 나 있어 전망이 멋졌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산과 계곡이 보이고 마을도 보였다. 날씨가 좋아
저녁노을까지 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에서 오랜만에 망중한을 즐겼다.
깊숙이 가라앉았던 어둠이 물러나고 안개가 몰려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빛 풍광들을 바라보며 앞날을 걱정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우리나라의 시골마을과 비슷해서 낯선 곳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자연 속에서 돈 걱정 안하고, 적당히 일을 하고, 적당히 먹고,
욕심을 비우며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야 될 텐데.
호텔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휴식이던가.
돈이 아깝다고 하루 만에 다 돌아보고, 다시 낯선 지방으로 여행을 하는 조급증은 없었다.
한곳에 머무르더라도 충분한 휴식과 여유를 가졌다. 며칠을 꿈속에서
지냈는지 모르겠다. 날짜도 잊어버렸고, 무슨 요일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내리는 비로 인해 감았던 눈을 떴다. 비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베트남의 전형적인 스콜이 내리고 있었다. 비뿐만 아니라 번개도 쳤다.
어제 빌린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비포장도로라 잘 달리지 못했다.
내리막길은 시동을 끄고 내려가야 한다는 걸 깜빡 잊었다.
순간 중심을 잃고 나는 논 한가운데로 처박히고 말았다.
발목을 약간 삐끗 거렸지만 다행이 다친 곳은 없었다.
여행은 잠시 뒤로 미루고 호텔로 가는데 다낭에서 만났던 무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휴가를 내어 사파에 왔는데, 내 호텔을 알려달라고 했다.
무이는 잠시 뒤에 나타났다. 그녀는 전날에 도착했는데 내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다른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약사인 무이는 내 다친 부위를 치료해주었다.
발목을 삐어 트레킹은 할 수가 없었다. 무이와 호텔로 돌아왔다.
낯선 타향에서 외로움에 지쳐 있는 내게 무이는 사랑스런 눈길을 건넸다.
무이와 헤어지고 나는 여행을 끝냈다.
그동안 무이에게 연락하지 않고 베트남을 몇 번 갔다 왔다.
모든 것들이 여유로움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파에 있으면 딱딱한
도시의 회색빛이 싫어졌다. 이곳은 더 이상 나를 반겨주는 도시가 아니었다.
사파가 그리웠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나는 괴로웠다.
그러나 자연 하나만 보고 베트남으로 들어가기엔 아직 용기가 없었다.
서울은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왔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는지 서영에게 전화가 왔다.
난 못 이기는 척 앙증맞은 손에 이끌려 서영의 집으로 갔다. 직장도 구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나를 서영의 부모님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직업이 없다는 것만으로 결혼도 하기 전에 서영의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마음이 편치 못했고 의기소침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영의 집을 나왔다.
며칠 뒤에 나는 서영에게 결혼은 하지 말자고 했다.
사윗감으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그녀의 부모가 눈앞에 아른거려
서영과 헤어져야만 했다. 애원하는 서영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의 집을 나왔다.
지저분한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듯 모두 밀어내고 싶었다.
산바람이 휘몰아치는 한적한 신짜이 마을이 그리웠다.
안정된 직장 없이 서영과 결혼한다는 게 겁이 났다.
명퇴나 노후에 대한 고민이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영과는 도저히 한국에서 살 마음이 없어졌다.
일거리만 있으면 베트남으로 가고 싶었다. 한국을 떠난다고 친구를 안 만나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과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니다.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살면 몇 달에 한 번 한국을 왔다 갈 수 있다.
그동안 무이와는 메신저로 연락했다. 용접학원에 다니면서 Tig, 아크, co2용접자격증을 따놓았다.
이제는 쫓기듯이 살지 말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설계하는 꿈도 꾸어보았다.
그곳도 삶의 연장인데.
사파로 갈 준비를 했다.
무이에게 라오까이 역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가을날, 나는 신짜이 마을에 방 하나를 얻었다.
*쓰게 된 동기.
외국인 이주자가 많은 현실에서,
오히려 역으로 베트남에 둥지를 트는
백수 청년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
첫댓글 현정이의 단편 자작 글?
묘사도 좋고 ㅎㅎ
재미있게 잘 읽었다오~♡
보라 언니
오늘 많이 덥나요?
모레 서울 간다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어요.
바빠서 여성방에 댓글은
못달아도 글이 없어
올렸어요.
사촌동생이 놀고 있기에 신랑이
내 허락도 안받고 우리 집에서
10일간 무료 하숙 했거든요.
15년전에 사파. 다낭 얘기를
해주는데 소설감이다 싶어
필 받을때 썼어요~~
와우!
필 받으면 술술 써진다는 현정이..
작가로 등단해도 되었을거 같으오~^^
@보 라 언니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당 ~~
소설 쓰려면
시간하고 돈이 있어야 해요.
글감 채집도 해야 하니까요~~~
소설어 사전 한권 사서 가끔
보고 있어요
@현 정
뭐든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현실에 맞춰가며 실행하는
현정이의 삶을 응원 할께~~~♡♡♡
@보 라
오늘도 일더미에 시간
다 가고 있네요
사파는 글 쓴 이후에
방송국에서 몇번 나왔나봐요.
다낭처럼 아니 요즘은 나트랑 간다죠?
사파도 많이 간다고 하네요.
다랑이논 보러.
나이 더 먹기 전에 한번은
갔다 오고 싶어요~~
베트남 세번 갔는데도
사파는 처음 들어보네..
다랑이논 보러 간다니
오지인가 봐~
나도 가보고 싶다~^^
언니
같이 가기로 해요~~
단숨에 재밋게 다 읽었습니다.
작가로 데뷰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응원하겠습니다.
아이구
과찬의 말씀입니다.
단편이라 글이 제법
길었는데
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감은 계속 메모하고
있어요~~
현정님의 애독자입니다.
사파란 제목에 끌려..
아름 문학방에서도 본 듯한 글감..
지난 해 다낭,무이네 사막 투어..
사파도 담 여행리스트에 담아두고 있어 더 친숙하네요.
자주 현정님의 글 읽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애독자라고 말씀 하시니
많이 쑥스럽네요.
동생이 1년동안 신랑 회사에서
일했어요. 베트남 얘기 해주는데
무이네도 그때 알았어요.
무이 이름이 이뻐서 지었지요.
사막투어도 하고 싶네요.
소설에선 무이한테 갔지만
현실에선 서영이랑 결혼하고
말았네요~~
낮에는 가족들 때문에
집중이 안되어서
지금 단숨에 몰입해서 읽었어요.
작가로 등단하셔도 되겠어요.
번듯한 직장이 없이도
서영과 무이..
두 여성을 차지 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사람인가..ㅎ
사파는 베트남 고산지대에 위치한
유럽풍의 최고의 휴양지..
tv 여행프로에서 다 보았어요.
정겹네요..^^
현정이 항상 농사하느라
고생하는데
작가로도 불리면 좋겠다..^^
언니
굿모닝입니다 ~~
글이 길어 2부로 나눌까 했어요.
글의 리듬이 끊어지면 재미
없을까봐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휴양지로 조성 됐다고 하네요.
사파 검색해 보면 유럽풍
건축물들이 많더군요.
동생 성격이 좋아요.
그러니까 여자가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백수인 동생과
결혼한걸 보면요~~
현정님 농사일에도 바쁘실텐데 문학 끼가 있으신것같어요
끝까지 읽는데 조금 걸렸네요
다낭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데 ...
사파에서 무이와 행복하게 잘 살겠죠
사파에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현정님이 좋아하시는 글쓰기
작가로의 길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둥근해님
굿모닝입니다 ~~
글 읽는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 제 글이라 그런지 오자
찾는다고 수십번 수백번
읽어보네요.
제가 글을 쓸때만 해도 사파가
알려지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이 가고 있더군요.
다랑이논이 이제 황금빛으로
물들겠지요?
저도 꼭 가고 싶네요~~
저도 사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숨은끼가 있는 현정님
맘껏 펼치시갈 바랍니다
긴글 천천히 잘읽었습니다
보내주신 고추 농산물도
새벽에 잘 받았구요
먹을때 마다 현정님 생각날것
같습니다
서산갔다가 새벽 1시쯤
돌아왔는데 문앞에 있더군요
방금 아점겸 고추 된장에
찍어서 먹었어요~♡
칼라풀님
트롤리안 브릿지 잘 타고
오셨나요.
저도 등산 도반 있으면
좋겠네요.
사파는 나이 먹기전에
꼭 갔다오려고 해요.
소설 습작은 시간과의
싸움이죠. 여행도 많이 다녀야
글감도 많이 나오구요.
@현 정 네
잘다녀왔습니다
@칼라풀 와우~~
재미 있었겠네요~~
@현 정 보내주신 고구마
혹시 더 살수 있은까요?^^♡
10k
@칼라풀 고구마가 맛있나요?
심이 조금 있어서요.
제가 서울에 있고
신랑이 알바 다니기에 추석
지나고 캡니다~~
@현 정 네~~
방금 전자렌지에 돌려서
저녁으로 남편줬더니
맛있다고 합니당
@칼라풀
풍원미라고 호박 고구마
종류입니다.
신풍종이거든요.
@현 정 그럼 추석지나고
부탁드립니당
@칼라풀
그래요~~
고마워요~~
해피 추석 되시구요 ~~
사촌동생 이야기 듣고
핌이 와서 소섴작업 작품 대단하고
더욱 멋진 형정님만의 능렵입니다
현정님 삶의방 정모에 오심 수고하셨습니다
지인 운영자님
지금은 필이 잘 안오네요.
그래도 습작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서울 갔다 오니 할일이 많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강렬한
붓터치의
화가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
대단하신
현정님 ~♡♡♡
이궁
쑥스럽네요.
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굿 저녁 되세요~~
정말 ~ 놀라워라
무심코 들여다 본 글에서 빠져 나올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재밌네요
글쓰는 농사도 짓는 작가로 사세요
정말 놀랍습니다.
언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쓸 시간이 없어요.
아직도 습작만 하고 있어요.
행복한 밤 되시구요~~
@현 정 정먄 ㆍ 다시 보여요
우리나이가 벌써 60대이니
얼마나 농익은 글들이
나오겠어요
문학 예술하면서 ~ 아름답게 익어가요
현정씨 응원하고
동생으로 생각할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