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처녀 해순이의 상경기 4
고장난 고물 트럭을 도로가에 밀어놓고
저절로 나오는 한 숨을 참으며
몰골을 보니 말이 아니다
옷은 구겨지고 얼룩이 져 흉하고
신발은 온통 흙덩이 천지이다
미안한지 뻔질이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해순이한테 주면서
땀을 닦으라 한다
닦아 보았자 무슨 대수인가
땀으로 화장은 지워져 울긋불긋하지
영락없는 상거지 광대 모습인데
뻔질이는 급하게 뛰어가 주변 공중전화로
견인차를 부른다
두시간쯤 지나니 견인차가 오고 해순이와
뻔질이는 아무런 말없이 차에 올라 타
정비공장으로 향한다
트럭을 폐기처분 하라는 정비주임의
말을 무시하고 뻔질이는 무조건 고쳐
달라고 하며 사정을 하고
배고픈 해순이 시커먼 기름투성이인
정비 공장 사무실밖에서 초조히 기다린다
조금 있다 뻔질이가 나와 집으로
가자며 해순이를 인도하고
둘이는 터덜터덜 걸어서 구로동으로
풀죽은 거위처럼 걸어간다
1시간쯤 걸어가니 아스팔트길이 비포장
도로 바뀌며 주변 환경이 급변한다
서울역 근처에는 으리으리한 빌딩과
차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전부 다 학고방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목조건물이다
큰 건물은 숫제 하나도 보이지 않고
진흙탕길 도로 양옆으로 길게 일자로
작은 집들이 너덜너덜 형체만 갖추고 있다
전부 다 허름한 건물앞에 무어 그리
잘난지 해순이 쌍판데기보다 더 큰
건판을 달았고, 그 건판에는 제법 그럴싸한
무슨 무슨 주식회사란 상호를 쓰고 있다
아무리 무식한 해순이라도 웃음이
나와 배꼽이 아파온다
그냥 무슨무슨 구멍가계라 하면 어디
덧나냐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어찌나 주변 환경이 더러운지 찌린내
케케한 냄새들이 해순이 몸에 배는 것 같다
도로 중앙으로 지나는 차를 피하고 진흙탕을
피해 가자 중간쯤 ‘뻔질 슈퍼마켓’
이란 건판이 보이고 뻔질이는 자기
사업장이라고 으스대면서 곁눈으로 깔보며
내려다본다
해순이는 원래 태생이 촌녀라 아는 것이
있어야지 속이 아니꼬워 쓰리지만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꾹 참는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치경제 시간에 도시락
꺼내 먹지말고 열심 들을껄
늘 수업시간에는 잠만자다가 도시락 먹고
또 자고 방과후 열심 활동하는 올빼미
족속인 자기가 넘 안타깝다
‘과거는 과거 현실은 현실’
뻔질이 가게뒤 서너평 되는 골방에 짐을
내려 놓고 근처 돼지갈비집에 저녁 먹으러
간다
뻔질이는 구두쇠라 보통은 라면 보통, 국수
로 끼니를 떼우지만 오늘은 정인 해순이와
만나는 초면날이라 큰 인심을 써 본다
여기저기 음식집을 기웃거리다 뻔질이는
아주 싸고 허름한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간다
1인분에 3,500원 된장찌개 공짜, 밥 셀프
하여튼 싸도 너무 싸다
보통 1인분에 6000원하는데 이유가 있다
아프리카 수입산 돼지고기이다
주문한 음식이 오고 고기가 적당히 익자
뻔질이와 해순이는 게걸스럽게 정말
누가 와도 모를 지경으로 허겁지겁
먹느라 양손이 쉴 틈이 없다
배가 좀 부르자 여유를 가지고 뻔질이는
해순이에게 구애를 하고
해남으로 돌아가기 싫은 해순이는 구애를
흔쾌히 받아준다
즐거워져 명랑해진 뻔질이는 얼른 소주 한병과
김치등을 주문하며 많이 먹으라고
해순이 앞에 있는 그릇에 잔뜩 고기를
산처럼 쌓아 놓는다
해순이도 사실 겉으로는 냉정한척 했지만
속으론 무척 걱정이었다
뻔질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은 된다
해남에서는 이런 정도의 기반 잡고 결혼하자는
놈 한 명도 없었다
뻔질이가 혹시 구애 안하고 돌려 보내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에 걱정했는데
이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었겠다
왕내숭은 여기까지만 하고 우선 고픈
배나 채워야겠다
갑자기 속도를 내어 상추에 고기를 넣고
된장 듬뿍 바르고 파무침도 넣어
커진 상추쌈을 보기 좋게 입에 넣고
맛있게 돼지처럼 우물거린다
근데 절반쯤 삼키려던 해순이 이빨 사이에
무언가 딱 하고 걸려 버린다
얼른 뱉어 보니 썩은 이빨이다
화가 나 씨근대고 싶었지만 잘 보일 뻔질이
앞이라 얼른 상밑으로 버려 버리고
수저로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된장찌개를
퍼서 먹는다
근데 또 아뿔사! 돌이 딱 하고 깨물려
이빨이 시그럽고 부서진다
아니 근데 왜 나만 그런가
앞에 앉아 있는 뻔질이는 괜찮은 것 같다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자 뻔질이 무슨 영문이지
궁금해 물어 오고 해순이는 이번에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여행길에 피곤해서 그렇다고 한다
이젠 괜찮겠지 하면서 이번에는 아주
주의깊게 살펴보며 골라서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고 씹다가 삼키려던 순간에
목이 콱 막히며 아파온다
숨이 가빠오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옆으로 픽 쓰러진다
파무침에 이쑤시개가 있는 것도 모르고
삼키다 목에 걸린 것이다
해순이가 쓰러지자 주인이 달려 오고
뻔질이는 급히 119를 호출한다
구급차가 오는 순간 혹시나 숨이 멎을까봐
뻔질이가 발을 동동 구르자
배도 나오고 대머리가 시원하게 까진
주인 아저씨가 얼른 달려와 인공호흡을
시행한다
브라자가 채워진 주변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해순이 입에 대고 숨을 불어 넣고
여러번 반복 또 반복한다
뻔질이는 그 모양을 보니 눈이 홱 돌아가며
진짜 억울해 진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즉에 인공호흡법을 배울껄
자기 부인될 사람한테 다른 남자가 입맞춤을
하는 꼴을 보니 쌍판이 개쌍판으로 변한다
해병대 상사 출신인 주인아저씨는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열심히 해순이
가슴도 주물렀다 입도 맞추었다
얼굴에 미소까지 띠며 부지런하다
뻔질이는 짧은 순간이 영원같이 길게 느껴진다
빨랑 119 구급차가 왔으면 기도해 본다
15분이 지나자 ‘왱왱’ 거리며
빠알간 붉은등을 번쩍거리며 골목길로
들어와 해순이를 이송해 차에 태우고
달아나 버린다
뻔질이는 차가 가버린 후 제정신이 돌아온다
아니 어느 병원에 가는지 물어 볼껄
비싼데 가면 어찌하나
사람 걱정 돈걱정 한숨이 꼬리를 문다
어쨌든 여기서 음식 먹다 일어난 일
여기 음식점 주인이 다 물어야 할테니
남은 음식을 비닐에 싸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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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각만해도 고기맛이 
떨어집니다

둥쳐둔 돈있걸랑 후하게 베풀며 살아갑시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혼자선 살 수 없는 세상
ㅎㅎㅎㅎㅎㅎㅎ
아무리 싼 음식이라도
마음 먹기에 달렸답니다
우리 서민들은
싼 값에 먹는 재미도 있답니다
둥처둔 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미래보다는
하루 하루가 소중한걸요
감사합니다
모네타님

산행엔 어째 안 보이시네여

불쌍한 해순이 돼지갈비를 그렇게 맛나게 먹더니 어쩌다 목에 이쑤시게가.........크게 아프지나 말아야 하는데 ....... 재미나게 전게되네요 다음편 기대민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