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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극을 분류하는 것에 대해 글을 올리려다 다 날려버려서 축약한 것만 올렸는데, 다시 써서 올려봅니다.
개똥철학입니다. 전문적인 글은 아니니, 전문적인 것을 바라셨다면 뒤로가기를...
과연 역사라는 것을 컨텐츠로 쓰는 작품들은 고증이 필수적인 요소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가끔 애매모호한 경우나 논란이 있는 경우가 있는것 같습니다. 비록 모든 사극들을 분류해낼 수는 없을 듯 하지만, 그럭저럭 중립적이라 여겨지는 척도로 사극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눠봤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게임, 소설 등에도 적용될 이야기지만, 그냥 사극이라는 용어로 통일해 분류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정통사극: '역사고증이 아니라 역사재현'
이 부류는 기본적으로 역사책에 가까운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가장 무난한 작품이 정관의치라는 드라마가 아닐까 합니다. 이벤트, 인물들의 비중이 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실존 인물과 기록에 거의 대부분의 컨텐츠가 의존할 뿐 아니라, 당시 시대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것을 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학적으로 말하자면 문화, 사회와 정치적 분위기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역사가 돌고 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각 시기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고증 빵빵하게 넣고 약간 다른 해석(사학계에서 거론되는 영역 내의 해석)을 넣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정통사극이 지향해야할 목적은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하다간 예술성에서 한계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 예가 알렉산더라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예술성의 중점은 '메시지 전달'이 아닐까 합니다. 당연히 정통사극의 특징상 수많은 메시지가 분산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예술성을 갖추려면 뚜렷한 메시지전달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고증면에서 무난하고, 새로운 해석도 사학계에서 대충 거론되는 수준이며, 세계관재현도 잘 하고, 무엇보다 메시지전달이 훌륭히 이뤄진 드라마들 중엔 정도전이란 드라마가 있겠습니다. 이 드라마의 황산전투와 알렉산더영화의 가우가멜라전투는 고증면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전투'가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전달은 전자가 더 뚜렷하죠. 이처럼 정통사극에서 중요한 것은 '고증'이 아니라 '재현'이라고 봅니다.
유로파유니버설리스란 게임과 토탈워도 사실 단순 고증디테일때문에만 역덕들이 매력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게임 인터페이스, 게임시스템, 이벤트 등등이 그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할 수가 있었을 일이거나 당시 분위기를 잘 재현해냈고, 그래서 이런 겜들이 극찬을 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뭐... 사실 이런 겜들은 그래도 살짝 '픽션사극'과의 경계에 위치해 있기는 합니다.
픽션사극과의 경계에 서 있지만 그래도 '재현'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은 태조왕건이란 드라마가 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복장은 고증이 거의 다 틀렸을 겁니다. 사회분위기를 재현하는데도 고증이 틀린 것이 많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틀려도 일단 시도해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감독이 삼국지빠라 그렇지...^^;; 이처럼 좀 더 넓게 사극의 범주를 보자면, 양복을 입히고도 조선시대 사극을 찍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그래서 우린 개량한복을 입고 전통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당시 세계관을 적절히 표현해서 재현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덧으로, '재해석'이 눈에 띄게 들어갔음에도 정통사극으로써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은 팅덤오브헤븐영화같은 부류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 알렉산더가 실패한 것을 해낸 작품이라고 봅니다.
반면 정통사극이 되길 거부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만 두고 보자면 신삼국이란 드라마는 정통사극이지만, 삼국지연의는 소설이므로 이 드라마는 정통사극일 수가 없습니다.
영드 '롬'의 경우 고증디테일과 세계관재현만 보고 따지자면 정통사극이란 분야에선 거의 반신급입니다(저 팔보호대만 없었다면 신이 됐을듯). 하지만 픽션인물들이 주연인지라...쳇.
2. 픽션사극: '우리도 역사책이 필요하다!'
픽션사극은 고증이 꼭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감독에게 역사책은 여전히 중요한 가이드입니다.
드라마 대군사연맹의 경우 고증도 무난하고 일어나는 사건들도 무난하게 모두 다룹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심엔 픽션사건들에 대부분 치우쳐서는 역사와 인물의 공백을 매꾼답시고 픽션요소들을 들이붓습니다. 심지어는 실제했던 사건들을 뒤틀어 차례들을 뒤집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정통사극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사극을 제작하는 데에 역사책이 필요한 것은, 여전히 이 드라마의 픽션사건들도 당시 세계관에 무리가 없을 이야기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연성과 기승전결이 엉망진창이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사학은 모든걸 밝힐 수가 없지만, 그 공백을 매꾸는데 문제가 없으려면 당연히 개연성이 유지가 되도록 사학적 지식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의 경우 옷고증 하나는 중국영화중에서 깡패급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역사의 공백'을 매꾸는데 집중했고, 이것을 위해 사학적 지식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장안궁에 엄청난 로지스틱기계가 등장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가 나오더라도 작품의 개연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고, 또한 특이한 재해석이 들어가더라도 그에 알맞는 분위기를 개연성있게 이미 끌어 냈으므로(항우와 여치의 두 협박은 이 작품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대조를 이룹니다.) Political Correction이니 뭐니 등의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게임 어세신크리드도 마찬가집니다. 이 게임의 제작진 상당수는 고증과 사회분위기 재현에 투입됐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메인주제와 주연은 클레오파트라도, 레오나도다빈치도 아닌, 단순히 당시 세계관에 적절히 녹아든 픽션인물들입니다.
즉, 픽션사극은 픽션사극대로 만들기가 정말 까다롭습니다. 이를 어려워하여 픽션사극과 판타지사극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드라마 무신의 경우 대군사연맹과 비슷한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감독이 역사책을 더 열심히 읽지는 못했는지, 사건과 인물들의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까진 좋았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해서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됐던 부분들에게 지나치게 손을 많이 댔습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인 'Political Correctness'시비에 걸릴 정도 수준으로 가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이 컸던 작품입니다.
아마 최근 이슈가 된 베틀필드5란 게임도 픽션사극이냐 판타지물이냐에 대해 기준이 애매모호한 가운데 시비가 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나중에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해 지겠지만요.
3. 판타지 사극: '역사가 아닌 배경설정이 더 중요'
한마디로 굳이 과거라는 설정이 필요하진 않았을 작품들을 이릅니다.
판타지사극이라고 꼭 고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없는 사랑노래 발라드라는 영화의 경우 고증만 보자면 왠만한 정통사극도 저리가라할 수준입니다. 하지만 전부 픽션인물들과 픽션사건으로만 채워져 있어서, 무대를 옛 일본이 아니라 중간계의 어느 한 영주의 영지로 잡아도 큰 무리가 없었을 영화죠.
드라마 선덕여왕도 사실 그냥 워햄머 세계관으로 찍었어도 큰 어려움은 없었을 거라 봅니다.
드라마 주몽의 경우 그냥 온라인겜 만만한거 하나 골라서 그걸 세계관으로 삼았어도 내용전개에 큰 문제가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 드라마들에겐 고증은 커녕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그냥 옵션입니다. 이렇다보니 사극이라는 글귀는 단순 홍보용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예술성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배경설정이 작품의 내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역사에 충실하면 역사가 알아서 배경설정의 기반을 마련해주지만, 역사를 무시해 버리면 작가가 다시 전부 다 짜지 않는 한 배경설정이 위험에 빠집니다.
이를 무시하고 판타지사극이면서 정통사극 내지 픽션사극임을 주장하다 예술성에서 흑역사를 남긴 작품들도 있습니다.
드라마 광개토대왕의 경우 작품의 장르분류가 명확하지 않으면 국뽕, 연애물 등 극약처방에도 쪽박을 찰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드라마 기황후의 경우 히트는 쳤지만, 돈말 벌어다 줬지 작품으로썬 본받을 부분이 전무한 작품입니다. 타임루프물도 아닌데 인트로로 보여준 미래의 장면이 끝에 가서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극의 특징을 무시하고 역사를 배경설정 삼아놓곤 역사를 무시하니 곧 배경설정을 무시해 버리면서 생긴 사단이라고 봅니다.
미래. 사극이 조심해야할 점: 'Political Correctness'
사실 어떻게 하든 일단 예술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컨텐츠로 쓴다면 '특정 사상'을 옹호하거나, 대중심리를 호소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드라마 1864의 경우 일단 정통사극입니다. 고증이고 재현이고 메시지고 개연성이고 암튼 전부 무난무난하고, 일단 일반 병사들과 시민들을 고증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깡패입니다. 대중에 대한 역사연구는 참 어려운 만큼 정통사극으로 재현하기 어려운데, 이걸 무려 여러편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한 가지 부분에서 양면성이 보입니다.
한 가지 이 드라마가 잘 한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것은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럼에도 열심히 살자'라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즐겨보는 유툽 역사채널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None of them represent anyone of us.' 그 누구도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역사는 그 누구의 손도 일단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권력자도, 노예도, 왕정제도, 민주주의도, 민족주의도, 사회주의도(히오스와 서기장만은 진리) 모두 이 드라마에선 다 '거기서 거기'라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제작진은 또 다른 사상에 빠지게 됩니다. '세계시민주의'사상과 비슷한 느낌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다문화주의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드라마의 본론이 흘러갑니다. 이로써 또다시 제작진은 역사가 딱히 왕도라고 알려주지도 않은 바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실수를 저질렀죠. 그러는 바람에 몇몇 정치인들(타문화배타적 선동가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컸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이 딜레마는 언제나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왠만한 사극들은 이걸 조심하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의 답은 우린 솔직히 다들 막연하게 알지만, 하나 하나 유한한 시간속에서 유한한 방법들로 흝어보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를 현혹하기도 한다고 저는 여깁니다.
혹자는 특정한 것이 '진리다'라고 박박 우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겐 단순히 심리를 이용한 정당화 내지 현혹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모든 예술작품들도 경계는 하고 볼 사항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영화 아바타의 경우 매트릭스, 이퀼리브리엄같은 영화들처럼 권력자나 억압구도 등이 무너져 속박받았다 여기고 부정받아왔던 것을 자유롭게 한다는 분위기를 통쾌하게 여기는 대중심리를 호소했다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 본다면 영상미 빼곤 정말 평이한 작품이 되겠죠.
이런 방식의 작품은 시청자로 하여금 현실에 대해 여러가지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컴터공학을 공부한 제 지인은, 인공지능을 주제삼은 디트로이트란 겜을 보고 지나치게 편중적이라고 평하더군요. 저도 인공지능들을 진화론적인 양육강식체제에 가둬놓거나 모든걸 아는 현자에 대한 개개인 이상향의 액자에 끼어넣어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로 만드는건, 알파고정도 수준의 컴터가 나온 오늘날엔 너무 식상하다고 여깁니다. ㅎㅎㅎㅎ... 이처럼 일반적인 공상과학내용도 대중 혹은 시청자의 심리는 이처럼 현실을 편중적으로 보고 미래를 상상하게 이끌기도 하기에, 더 많은 것이 밝혀진 과거를 다루는 사극은 이런 부분에 매우 예민해야 하죠.
또 다른 예로 좀비물의 경우는 공상과학의 부류에 넣기에 너무도 우스꽝스럽습니다. 제가 보기엔 좀비물 영화나 소설 대부분은 우리 인류가 비잔틴제국 종말론자들처럼 서구문명에서 수천년 전 부터 끝없이 가져온 종말론을 상상하는 버릇의 결과물이지, 오늘날 정말 바이러스로 사람이 뮤턴트가 될 수도 있는 확률이 높아져서 혹은 저럴 수 있는 상황이 과학적으로 부분적으로 설명이 더 돼서 나온 컨텐츠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애초에 좀비의 유례도 종말론과 거리가 크죠.)
뭐, 사실 제가 예술/문학가들에게 너무 이상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저는 대중심리를 호소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고 쓸모없다 생각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쉽게 접하는 웹툰 칼부림, 영화 택시운전사 같은 정도면 무난하게 이런 요구들을 해소해줬다고 보기에, 너무 높은 척도에 불만을 가지진 말아줬으면 하는군요 ㅎㅎㅎ..
옛날에 한 파라오가 신 토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문자의 아버지시여, 당신은 사랑의 마음으로 인간에게 자신들이 진정으로 소유한 것과는 정반대의 힘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기억의 묘약이 아니라 회상의 묘약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모양만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읽겠지만 교훈을 얻지 못할테고, 그러므로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로만 남겨질 수 있던 역사인 만큼, 역사 대부분은 바로 이런 문자와 같은 속성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예술/문학가들이 사극을 다룬다면 정통사극, 픽션사극, 판타지사극 아니면 그 어느 형태의 작품이 나오더라도 작품으로써 부끄럽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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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홀리 쉣. 영화 게시판으로 이동시켜주세요 ㅠㅠ
@본계 닭장군 감사합니다! ^^
한국사극에게 바라는 점은 오로지
1.필력
2.개연성
3.해석을 보여주는 배우들을 데려올 것 입니다.
이 3가지만해도 저는 여한이 없
습니다.기황후같은 작품이 욕을 먹
어도 그나마 나은 점은 인물들이 평
면적이지 않는다는거죠.
작품성만 따진다면 그리 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사극'이라는 장르에게 기대하는 바가 각각 다른 듯 하여 이렇게 분류를 해 봤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홍콩영화 초한지와 차이가 큰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냥 복식과 시대상만 잘표현해주면 욕은 안먹는거 같습니다. ㅋ
웬만하면 그렇긴 한데.. 고고학적 고증과 역사적 고증은 서로 꼭 같이 갈 수만 있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정통이든 퓨젼이든, 재미있는 놈은 재미있고, 재미 없는 놈은 재미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