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 아우름길로
삼월 중순 월요일이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굣길은 동선의 단조로움을 피해 평소와 다른 경로를 정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걸어 퇴촌교삼거리로 나갔다. 창원천 상류에 해당하는 창원대학 앞으로 향해 최근 조성된 천변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대학 캠퍼스 주변을 잠식해 어지럽게 경작되던 텃밭은 말끔히 정리 단장해 공원처럼 꾸며져 시민들의 산책 공간이 되었다.
대학 구내로 드니 학생회관과 같이 쓰는 사림관은 리모델링으로 공사 가림막이 설치되어 편의시설은 다른 공간을 써야 할 듯했다. 학생 수 비중이 상당할 공학관은 동문 일대 몇 개 동 건물로 나뉜다. 너른 캠퍼스에는 정원수로 가꿔진 여러 수목에서 봄이 오는 기색이 완연했다. 겨우내 앙상한 나뭇가지에 달린 꽃눈이 솜털로 감싼 봉오리였던 목련이 하얀 꽃망울을 일제히 터트렸다.
유실수지만 캠퍼스에서는 조경수로 삼을 매실나무와 산수유에도 화사함이 절정을 이루었다. 캠퍼스가 볕이 바른 남향이라 여느 곳보다 일찍 꽃을 피웠다. 그동안 몇 차례 창원중앙역으로 가던 길에 일부러 공학관 앞을 지나면서 꽃망울이 부푸는 낌새를 살펴왔다. 대한과 입춘을 넘기면서 더디게 부풀던 망울이 이제 더 참지 못해 꽃잎을 펼쳐 향기를 뿜어 벌들이 찾아 꼼지락거렸다.
공학관에서 창원중앙역으로 올라 순천에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에서 기본 구간 승차권을 한 장 구했다. 정한 시각 진주를 거쳐온 객차에 올라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진례를 지난 진영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 화포천 아우름길로 들러 단감이 자라는 언덕을 넘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와 묘역으로 가는 길과 다른 화포 습지로 가는 길로 들면서 지름길 구간을 택해 걸었다.
징검다리 건너 삼미마을 앞에서 둑으로 가는 길이 아닌 철길 교각이 세워진 습지 바닥을 걸었다. 농지와는 거리가 떨어졌고 탐방객이 찾지 않는 곳이라 평소 인적이 전혀 없는 화포천 저지대였다. 냇물이 흐르는 수로에는 수액이 올라도 아직 잎이 돋는 기미를 볼 수 없는 우람한 왕버들이 버텨 서 있었다. 시들고 야윈 물억새와 갈대는 색이 바랜 채 움트는 채비가 늦은 편이었다.
아침 해가 비친 상공에는 늦게 귀환할 독수리가 선회비행을 하고 있었다. 다수의 철새가 이미 북녘 귀향 대열에 올랐고 일부만 남아 마지막 먹이활동을 했다. 주로 기러기들이고 간혹 재두루미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덩치 큰 독수리는 외양이 맹금류처럼 보여도 사냥으로 먹잇감을 구하지 못해 죽은 사체를 먹어 초원의 하이에나와 같이 청소부 역할을 맡아 맨 나중에 떠나도 된다.
봉하마을 앞에서 흘러온 물이 습지로 모여드는 건너편 둑에는 화포천 생태박물관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질 않고 철길과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습지로 가는 탐방로는 AI 확산 방지를 위해 통행을 금지했다. 볕이 바른 곳에는 쑥이 내밀고 자라 허리를 굽혀 몇 줌 캐 모았다. 엊그제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 금산 편백림에서 베틀산 기슭 임도를 따라 걸으며 캤던 쑥에 보탤 참이다.
철길과 나란한 한림 국궁장에 이르니 화포천 산책로가 끝난 곳이었다. 마산에서 서울로 가는 KTX가 객차를 길게 달고 휘어진 선로를 따라 달렸다. 한림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김해 내외동을 출발해 진영으로 가는 버스가 오길 기다리면서 따뜻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잔 받아 손에 쥐었다. 커피를 식혀 비운 사이 버스가 와 동뫼와 가동을 지나 맑은 물 순환 센터를 지난 진영에 닿았다.
진영에서 대산 신전으로 가는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주호교를 건너니 창원 대산 우암 들녘이었다. 유등으로 내려가 북부리를 거쳐 가술을 앞둔 제동리를 지날 때 내렸다. 추어탕으로 점심 요기하고 삼봉공원 쉼터에서 아까 캔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려내고 주공 아파트단지 남향에 핀 매화와 산수유꽃을 완상했다. 목련화는 아침에 지나온 창원대 캠퍼스보다 더 활활 순백으로 피어났다. 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