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무지의 불행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2024.8.28.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2테살3,6-10.16-18 마태23,27-32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선택입니다. 주님을 선택하여 주님 중심의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국민 절반이 울분상태 ‘30대 심각’”, 새벽 인터넷 뉴스를 일별하는 순간 들어온 말마디입니다. 어제 유투브에서 본 70대 이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준비하라는 10가지 지침도 일부 공감이 갔고 유익했습니다. “1.저축, 2.배우자, 3.건강, 4.친구, 5.취미, 6.배움, 7.연금, 8.도전, 9.일기(기록), 10.대화(자녀간)”로 아주 현실적인 지혜로운 처방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볼 때,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하나가 빠졌음을 봅니다. 삶의 목표이자 방향, 삶의 중심이자 의미인 “하느님”이 빠졌습니다. 이어 제가 주장해온 노년의 품위있는 삶을 위한 3대 우선 순위,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도 생각이 났습니다. 더불어 오랫동안 강조해온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란 말마디도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무지의 탐욕에, 어리석음에 눈이 가려 길을 잃은, 희망과 꿈을, 빛을 잃은 중생들입니다. 그러니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이요 국민 절반이 울분상태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관상적 삶과 쉼의 선택과 훈련이 참으로 절박한 시점입니다.
‘살 줄 알면 행복인데 살 줄 몰라 불행’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어제에 이은 마지막 둘의 불행선언으로 마태복음 13장 7개의 불행선언은 모두 끝납니다. 마태복음 5장 서두의 “행복하여라”로 시작하는 참행복선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6.“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7.“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저주’가 아니라 깊은 좌절감의 반영인 ‘깊은 아픔’이자 ‘분노’입니다. 인간의 위선적 무지의 병이 너무 깊습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에 대해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참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참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무지의 탐욕에 중독되어 눈멀면, 광신과 맹신의 무지에 눈멀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이래서 참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적극적 자발적 회개의 선택과 훈련이 필수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불행선언은 회개의 촉구입니다. 회개의 은총을 입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는 회개의 선택과 실천이, 그리고 계속된 회개의 여정을 사는 것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회개의 여정은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자아초월의 겸손과 지혜의 여정입니다. 참으로 회개 없이는 자기를 아는 겸손도 지혜도 없습니다. 참된 회개를 통한 하느님 중심의 진실과 겸손, 지혜의 삶만이 표리부동의 위선적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회심의 대가이자 달인이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인 바오로 사도요,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입니다. 어제 성인의 모친 모니카에 이어 아드님의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이 제 나이와 같은 76세에 선종하셨다는 사실이 더욱 분발하게 합니다. 17년 동안 모니카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주효하여 마침내 아드님을 결정적 회심으로 이끈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사건은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회심의 열매는 하느님 중심의 질서와 전통의 강조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바로 바오로의 이런 모범적 삶과 더불어 다음 성도들에 대한 평화의 축복이 회개의 열매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온갖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언제나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한번의 결정적 회심에 이은 부단한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사도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진리의 연인’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극적 회심 사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밀라노 정원에서 앉아있을 때 보이지는 않지만 소년의 “Tolle, lege(집어 읽어라)”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고 되는 대로 성서를 펼쳤을 때 한눈에 들어온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2-14)
이어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두 대표적 아름다운 고백을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과 저녁성무일도에 나오는 내용으로 최민순 신부 번역입니다.
“주여,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에,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하시나이다. 당신 안에 쉬게 될 때 까지는 우리 마음이 평온치 못하리이다.”(즈가리야의 노래 후렴)
“옛 것이나 항상 새로운 주님의 아름다움이여, 늦게서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주님은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게 하셨나이다.”(성모의 노래 후렴)
바오로 사도 이후 최고의 신학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요 천주교, 개신교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두 성인입니다. 두분의 생애를 보면 결정적 회심후에도 죽을 때까지 회심의 여정에 항구했음을 보며 회심의 여정은 동시에 보속의 여정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구원 은총에 감사하며 보속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던 두 성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심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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