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5. 25. 목요일.
햇볕이 맑고 밝고 푸르니 내 기분도 덩달아 되살아났다.
나는 추운 겨울철 태생(1월 말)인데도 늘 뜨거운 태양의 계절이 좋았다.
밝고, 따뜻하니까. 온천지에는 식물의 푸르름이 가득 찼기에.
일전 아내가 두어 차례나 나한테 말했다.
'할머니 제사는 생략해서 할아버지 제삿날에 합칩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기도할께요.'
나는 아뭇말도 안 한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쌍둥이었던 내가 동생과 함께 벚꽃 피는 4월에 아버지를 따라서 전학을 갔다.
시골학교 4학년 친구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울면서 울먹이면서 헤어져서... 역전으로 나갔다.
아쉽게도 그 무렵 할머니는 부여군 세도면에 있는 친정집에 다니러 가셨기에...
한 달 여 뒷날에 할머니는 시골집 안변소에 가다가 쓰려져서 뇌출혈로 사망하시고(1960년 5월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쌍둥이형제가 대전으로 떠나갔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는 엄청나게 우셨다고 어머니가 나한테 전해주셨다.
할머니의 제사날이 며칠 전에 있었지만 올해에는 할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나는 고향(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는 십여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종가종손...
내 어렸을 적 시향 때는 수십 명이 시향꾼이 몰려왔고, 산지기네 세 집에서 제숫물을 산으로 옮겨서 시향을 지냈다.
내 어렸을 적에 보았던 시향 참석자들(제례복장을 입은) 지금은 없다.
고향 읍내에 있는 사촌동생, 대천시내에 사시는 큰당숙네 등 극히 일부분만 참석한다. 내 아버지는 1982년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뒤를 숙부(작은아버지)가 제주를 대신했고, 숙부가 돌아가신 뒤인 2004년부터는 내가 직장 다니면서 제주가 되었고, 산지기네 두 집이 그만 뒤에서는 산지기네 한 사람이였던 진등식당 한 곳에서 제수물을 준비해서 차로 가져오면 사촌동생네에서 시제를 지냈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가고....
몇 해 전(2016년) 고향 선산(상장산) 일대가 일반산업단지로 조성 - 토지수용 되어서 - 산소 모두를 서낭댕이 앞산(죽청리산) 내 소유의 산에 이장했다.
* 서해고속도로 개설 당시에도 죽청리 산자락 하단이 토지수용되어서.. 파묘하여 구룡리 화망으로 이장했는데 ... 2016년에도 또 토지수용되어서 죽청리산 상단으로 이장해야 했다.
내가 방안 제사로 모셨던 고조부, 증조부의 제사를 몇 해 전부터 시향으로 돌렸고, 지금은 조부모와 부모의 제사만을 내가 모신다.
올해부터는 할머니 제사는 지내지 않고는 할아버지 제삿날에 함께 모셔야겠다.
시향, 차례, 제사를 준비하려면 정말로 힘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무척이나 편하다. 시장에 가서 제수물을 돈 주고 주문해서 차로 배달받으면 그뿐이니까.
그런데도 더 간소화해서 줄이고, 일부는 아예 없애야겠다.
나는 무신자이라서 아무런 종교관, 종교의식이 없다.
유교(향교, 제사 등), 종교(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미신(민속신앙) 등의 관념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내가 차례 제사 등을 형식적으로나마 지내는 이유는 조상의 영혼이 있다라는 것보다는 돌아가신 그분들을 한번 더 생각한다는 뜻으로만 해석한다.
올 8월 말쯤 산소벌초 시에 고향에 내려가서 친척들한테도 제사 등을 더욱 간소화하자고 말해야겠다.
조상의 영혼(각종 신, 영혼, 귀신 등)이 있다면 내가 요모양 요꼴로 살게끔 했겠느냐는 반항심도 생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야 하는데도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서해안 산골마을에 있는 최씨네.. 왜그리 자손이 적은지... 겨우 후손들의 명목만 이어간다. 아들이 없는 친척도 많고...
앞으로는 산소 묘역도 더욱 축소해야겠다.
서해고속도로 무창포나들목 인근에 있는 서낭댕이 선산에 오르면 멀리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웅천읍 무창포해수욕장, 남포면 용머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외연도... 남쪽으로는 서천군 발전소, 춘장대해수욕장도 보이고....
나중에 보탠다.
2023. 5. 25. 수요일.
요즘 내 건강이 많이 회복 중이기에 다시 컴퓨터로 생활일기를 쓴다.
다다닥 하면서...
첫댓글 조상님 모시는
일이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닙니다.
간소화해도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최선생님 수고가
많으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제사문화 많이도 축소했지요.
앞으로도 더욱 줄여야겠습니다.
돌집 가문이라서 돌장식품이 무척이나 많았던 묘지였지요.
제가 이장을크게 두번 하면서 대부분 파쇄하여 없애거나 일부를 옮겨서 축대 쌓고...
그 많은 돌장식을 모두 철거해서 아주 약소하게, 간소하게 재설치했는데도
훗날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었지요. 왜 그렇게 터를 넓게 잡았느냐고....
아무런 실익도 없는 제사... 무덤들...
제례문화라는 것이 결국은 허례허식 유산이지요.
없애버려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