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도움 자체를 요청하는 것도 때로 부담일 수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저도 연합 사역을 위해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분은 어려운 부탁을 하게 해서 송구하다고 합니다. 알아서 도왔어야 했는데, 연락 주어 감사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이런 부탁 자체가 쉽지 않은데 자신에게 해 주어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도움을 줄 사람보다 함께 기도할 개인과 교회를 더 찾게 됩니다. 기도자가 평생 동역자임을 깨닫게 해 주셔서, 우선 기도 요청을 더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요청하고,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요. 흔쾌히 기도도 해 주시고, 재정적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고 하시는데요. 너무 적게 도와 송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우려고 노력하는데요. 때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 책 펀딩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지인 목사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2달간 모집을 했는데 진행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도우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말 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출판사 대표분에게 연락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시는 마음이 있어, 도전하는 마음으로, 돕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가 10권 정도를 선 구매했습니다.
아는 목사님들에게 함께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사실 펀딩에 뛰어들어 도와준 분들 중 바로 어떤 유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출간되어 선한 영향력이 교회 안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일 겁니다.
세상적 투자는 뭔가 명확하게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투자자에게 가장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흐름이 교회 안에, 선교지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바로 눈앞에 유익이 아니라 멀리 보이지 않는 열매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 본문에 전도자는 떡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나요? 왜 그렇게 하라고 하였을까요?
#전도서 11장 1-8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1) 전도자는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하였을까요? (1절)
- 무모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할 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나 자신은 지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런데도 투자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 있나요?
3) 전도자는 왜 7 혹 8곳에 나누어 주라고 하였을까요? (2절)
- 나중 무슨 재앙이 임할지 모르기에, 가능한 한 선을 베풀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D. A. 개럿은 1-2절이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안목을 가지고 장기적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자 용어로 ‘투자를 다양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2절은 자선이 아니라 장기 투자를 말한다. “7~8곳에 나누어 주는 것”은 현대 용어로 투자를 다양화하는 것이다.“
(개럿, D. A.(1998). 시와 지혜의 책. D. S. 도커리(Ed.,), Holman 간결한 성경 해설 (p. 250). Nashville, TN : Broadman & Holma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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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s 1–2 speak of long-term investment, not charity. To “give portions to seven or eight” is, in modern terminology, to diversify investments.
Garrett, D. A. (1998). The Poetic and Wisdom Books. In D. S. Dockery (Ed.), Holman concise Bible commentary (p. 250). Nashville, TN: Broadman & Holman Publishers.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1) 전도자는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인 것 같은가요? (3절)
-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듯, 때가 되면, 자연히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됨을 시사하였습니다.
2) 나무가 남 혹 북으로 쓰러지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나요? (3절)
-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다고 하였습니다.
G. S. 오그던은 그의 주석에서 3절에 두 비유를 주어진 조건이 특정한 결과를 가지게 된다고 그 원리를 말합니다.
“주어진 조건(비가 가득 찬 구름, 나무가 쓰러지는 것)이 특정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Ogden, G. S., & Zogbo, L. (1998).,뉴욕 : 연합 성경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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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tates the principle that a given condition (clouds full of rain; a tree falling) has certain results.
Ogden, G. S., & Zogbo, L. (1998). A handbook on Ecclesiastes (p. 396).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3) 풍세를 살펴보는 자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4절)
- 파종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4)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고 하였나요? (4절)
- 거두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5) 전도자는 바람의 길, 아이 밴 자의 태에서 자라는 뼈를 알지 못함 같이 사람이 무엇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나요? (5절)
-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6) 사람은 미래의 일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 자신의 10년 후 어떤 모습은 대략 어떨 것 같은가요?
<예정론에 관한 오해>
공저자와 책을 쓸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책을 쓴 분이 예정론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영향력 있는 분이었는데요.
예정론을 운명론 혹 숙명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정론을 잘못 이해하여, 여전히 공로주의적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는 분이 있습니다.
예정론의 신학적 체계는 어거스틴(아우거스티누스)의 구원론에 있습니다.
예정론은 왜 나오게 되었을까요?
그 근본적인 뿌리는 터툴리안(테르툴리아누스)의 구원론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터툴리안은 구원이란 “인간이 태초의 아담처럼 무죄한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터툴리안에게 구원이란 태초의 아담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채무’를 해결하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하여, 터툴리안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구원으로 여겼습니다. 즉, 죄 사함의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터툴리안의 구원론은 나중 어거스틴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어거스틴 역시 죄 사함의 세례를 구원과 동일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거스틴처럼 죄 사함을 구원으로 인식하게 되면, 구원은 너무나 쉽고,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단지 믿는다는 고백 하나로 충분하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구원파와 비슷했습니다. 믿음을 시작하는 순간에 즉각적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어거스틴에게는 믿음을 시작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믿음의 시작’이 구원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간이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완전한 구원이 공짜로 주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구원론은 인간의 의지 여부가 구원의 중대한 변수로 등장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고로, 자유의지는 구원을 결정하는 주도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반면, 은총은 그저 자유의지를 추종해야 하는 부수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해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나중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 이 ‘믿음의 시작’을 사이에 두고 논쟁의 사투를 벌였습니다. 펠라기우스는 믿음의 시작이 ‘자유의지’에 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오직 ‘은총’이 믿음을 시작하게 만든다고 방어하였습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대결은 은총 vs 자유의지 중에 어느 것이 ‘믿음의 시작’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나중, 어거스틴의 입장에서는 ‘믿음의 시작’에 있어, 자유의지가 개입할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야 했습니다. 만일 거기에 자유의지가 조금이라도 개입하면,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구원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 구원’이라는 의미가 퇴색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타락한 ‘인간의 의지’가 믿음의 시작에 개입할 능력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이 인간이 믿음을 시작하도록 만든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 예정론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1) 전도자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나요? (6절)
-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왜 전도자는 손을 놓지 말라고 하였나요? (6절)
- 어떤 것이 잘 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전도자는 어떤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나요? (7-8절)
- 빛은 아름다워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7절).
-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8절).
4) 전도자는 인생에 즐거움이 있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삶이 더 펼쳐진다고 하였나요? (8절)
- 그러나 실제로는 캄캄한 날이 많으니 그날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 인생의 다가올 일은 다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5) 나 자신의 인생은 지금 어떤가요? 인생에 즐거움 혹 캄캄한 어두움 둘 중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6) 오늘 말씀 중 주신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