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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삼국유사" 두 책은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고 연구되는 대표적인 중세시대의 서적입니다. 그리고 또 김부식, 김경명 두 사람 중세인의 시각으로 고대를 다루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60여 가지의 괴물들을 하나 둘 보다보면, 중세이전의 여러가지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고, 거기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괴물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억지로 "뭐뭐 귀鬼" 라든가 "천天 뭐뭐", "선仙 뭐뭐" 하는 식으로 한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일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책 원문에 나와있는 괴물을 묘사하는 한문어구를 그대로 발췌해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또, 괴물이 발견된 지명이나, 괴물을 발견한 사람을 괴물의 이름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 삼국사기 - 21. 경어목야유광 그런데 어두운 곳에가면 눈에서 빛을 뿜을 수 있기 때문에, 밤 바다를 환하게 비출 수 있다. 그 빛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물고기를 불러 모을 수 있기에, 그 속임수로 사냥을 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래를 잡은 뒤에도 밤이 되면 눈에서 빛이 나기 때문에, 이 고래의 눈을 도려내면 불 없이도 빛을 비출 수 있을만 하다. 47년에 고구려의 지금 동해안 지역에서 고주리라는 사람이 한 마리 바친 적이 있다. 심해어 아귀/ 연등행사/ 고래.
수심이 깊지 않고 강과 시내로 연결되지 않는 내륙의 연못에서 아늑하게 살며, 흐르는 물이나 깊은 물에서는 살지 못한다. 붉은 날개로 날아 올라 다른 연못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디 물 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는 동물이므로, 이렇게 날아다니는 것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오직, 커다란 홍수를 앞두고, 연못물이 넘칠 지경에 이르면, 그때 살기 위해서 물밖으로 나온다. 습기와 날씨를 미리 알아채서 다른 연못으로 이동해 홍수 지역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9년에 고구려의 고안연이라는 연못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발견된 후에 매우 극심한 홍수가 일어났다. 흰색 열대어와 날치.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나온 미래에서 조류 자리를 꿰찬 진화된 생선류.
뿔 두 개는 크고 뿔 하나는 작은 모습이다. 근처에 있는 사람, 동물 내지는 먹이를 주는 사람과 동물에게 항상 행운을 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혀 있어서 갑갑한 느낌을 가져서, 고통 받는 소리를 지르고 울음소리를 내거나 하면, 크게 놀라서 죽어 버렸다고 믿었던 듯 하다. 상당히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나 신음소리도 알아 듣고 비실비실거리다가 죽는 수가 있을 정도 라고 짐작된다. 77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삼각록을 얻게 되자, 이를 이유로 각종 고문을 중단하여 서둘러 죄수들을 방면했다고 한다. 사슴 일러스트와 장식물 길을 알려주거나 먹을 곳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등 착한 일을 하다가 도리어 사냥당하는 등 억울한 일을 많이 겪는다. 그래서 억울하게 갑작스런 위기에 놓인 동물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나 다른 짐승에게 잘 속고,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금방 친하게 따르며 믿는 습성도 있다. 그 때문에 쉽게 멸종되어 없어진 듯 하다. 영리한 편이라서, 간혹 사람말을 알아듣고 도구를 사용하고 사람 사는 이치를 이해하게 되어, 옷을 입고 작업을 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다. 77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장미토는 소위 "신명후예"인 경우가 많을 것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신명후예는 성스러운 존재의 자손으로 각종 동물이나 사 람이 해당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몸속의 장기를 잠시 동안 인위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 몸 밖으로 그런 장기를 꺼내서 따로 보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 자기 종류의 평균에 비해서 영리한 편이다. 642년에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선도해와 술을 마시다가 가장 유명한 판소리, 동화 중의 하나인 "별주부전" 이야기를 하다가 언급한 바 있다. 별주부전 민화와 남미 유우니 사막에 서식하는 비스카챠(Viscacha)
꼬리가 없어서 사람처럼 다닐 수도 있으며, 온 몸에는 검은 색 얼룩무늬 줄무늬가 마치 호랑이 처럼 나 있다. 영리한 동물이며, 크기도 보통 3,4 미터 정도로 거대해서 힘도 상당하다. 때문에 보통 호랑이, 표범 등에 비해 훨씬 귀하고 잡기 어렵다. 105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바디페인팅과 호랑이 효자. 백호 이미지.
이 꼬리를 이용해서 나무에 매달리거나 동물을 휘감거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만큼 꼬리를 붙잡힐 위험이 많아서, 꼬리를 말고 다니거나 휘감고 다니거야 해야 하는 등, 고생도 많다. 107년에 고구려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고양이 장모종 메인쿤과 소말리. 당시 해외에서 들여온 고양이나 원숭이를 보고 쓴 글일 수도 있겠다. 27. 계룡 색깔은 머리 부분 혹은 몸 전체가 흰 빛으로 되어 있고, 순식간에 움직이며 아주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다. 사람의 수정란이나 태아, 혹은 갓난아기를 잡아 먹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먹게 되면, 소화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있는 주머니 같은 장기에 넣은채로 계속 자라나게 된다. 그러면, 태아나 아기는, 사람의 태반과 매우 흡사한 계룡의 뱃속에서 자연스럽게 기생하게 된다. 아기가 너무 많이 자라는 동안 계룡은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계룡은 결국 죽는데, 계룡이 죽게되면, 아기는 배를 찢고 나오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자란 아기는 입이 닭부리 모양으로 되는데, 계룡의 몸밖으로 꺼내서 맑은 물을 많이 접하면서 키우면 얼마지 않아 보통 사람의 입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원전 53년에 신라에서 지금의 경주 지역, "아리영 우물"이라는 우물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동물의 배를 가르고 한 할머니가 아기를 꺼냈는데, 이 사람이 박혁거세의 아내가 되어 신라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냥 알영정 설화. 그림은 계룡두상과 닭뱀 타투. 28. 유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커다란 나무로 보통 버드나무와 비슷한 종류이다. 걸어다닐 수도 있을 정도이나, 너무나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에 한자리에 가만히 있고 극도로 움직임을 꺼린다. 가끔 가뭄이 너무 심해서 말라죽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살기 위해서 물이 가까운 곳으로 조금 움직인다거나 한 두 발 걸어간다거나 하는 정도이다. 수분과 땅의 양분, 빛의 밝고 어두움 정도를 느낄 뿐 특별히 눈코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253년에 지금의 경주땅에서 발견되었다. 설명 보면 그냥 엔트.... 아래는 능수버들. 겨울에 얼어붙은듯.
처음에는 남자의 몸속에서 살며 기생하다가, 남자가 장성할 무렵이 되면, 남자의 정자를 먹어치우며 살고 그 정자를 몸속에 저장한다. 그러다가, 남자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그때부터는 밤이나 새벽에 날아다니며 움직이고 낮에는 숨어 있게 된다. 항상 습기를 머금어야 살 수 있으므로, 보통 물가나 우물근처에 숨어 있는다. 어두워진 후에 움직일 때는 힘을 많이 소모한다. 때문에 날아 올랐을 때는 별처럼 빛을 내며, 한 자리에 앉아 물속에 가만히 있을 때에는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마침내, 길가던 여자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몸속에 품고 있던 정자를 이용해서 여자 를 임신시킨다. 임신한 아이가 여자라면 더 이상 살지 못하고 결국 죽게되지만, 임신한 아이가 남자인 경우에는 다시 이 남자의 몸속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데, 생명이 위급해 질 수록 진한 향기가 난다. 삼국사기에는 유례이사금의 어머니가 임신한 경우로, 삼국유사에는 범일법사의 어머니가 임신한 경우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태몽을 이야기한 것이 와전된 경우로 보입니다. 이 임신을 시키는 빛 덩어리의 이야기들을 대체로 종합해보면, 이것을 일종의 기생생물처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팅커벨과 유성 이미지.
발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동물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날씨가 좋고 곡물이 잘 자라나서, 민가에 먹을 것이 많아지고 풍요가 넘칠 기미가 있으면, 그 풍요와 번영을 구경하러 사람 곁에 아주 간혹 나타나는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동물 자체가 풍년과 온 세상에 경사가 생길 상징으로 추앙 받는 동물이라 할만하다. 376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고, 그 해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청자기린향로와 유니콘 31. 개이죽엽 바람 처럼 등장해서 바람처럼 사라지므로 정처를 알 수 없고, 정체도 알기 어렵다. 싸움에도 매우 능하며 말이 별로 없는 무뚝뚝한 편이다. 보통 수백수천 정도의 무리로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깊은 산속이나 숲속에 살고 있다는 볼수도 있고, 지하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볼수도 있다. 존경이나 맹세를 할 때 혹은 중요한 일을 겪을 때 등등 특정한 이유에 따라 귀에 있는 대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떨어지게 된다. 수명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의 1대 보다는 긴것이 거의 확실하다. 297년에 신라에서 지금의 경주 땅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서고국의 군사가 침공해 왔을 때 갑자기 나타나 신라를 도와 물리쳐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죽은 미추왕, 혹은 미추왕릉과 관련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상상력이 빈곤한건가. 왜 엘프밖에 안떠오르지. 32. 대영차 특이한 심해어나 괴상한 종류의 복어류를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특히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이후에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어촌의 생태를 잘 몰라서 생전처음 보는 기이한 물고기 모양에 놀라서 괴물로 여긴 경우가 많을 법 합니다. 그런데, 416년의 경우는 이 정도로 거대한 모양을 볼작시면, 외뿔고래(monodon monoceros)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외뿔고래는 길고 단단한 뿔처럼 생긴 이빨 하나가 튀어나온 기이한 고래인데, 현대까지 북극권에서 주로 살고 있습니다. 발견지가 동해인 것을 보면,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동해에 한류가 유입되었을 때, 특이한 외뿔고래 한 마리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 북극권까지 표류했다가 살아돌아왔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외뿔고래의 죽은 사체,뼈 같은 것을 우연히 건져내서 보인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내가 보기엔 청새치 같은데. 일각고래일수도 있고.
비교적 자주 보이는 동물이나, 매우 아름다운 생물이라서, 기념품과 나라간의 선물로 귀하게 여겼다. 496년, 793년 등등 여러 차례에 걸쳐 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나타난 적이 있다.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백치는 최근에도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단순히 신기한 경우를 넘어서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상징으로 여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은 흰공작. 왼쪽은 실재의 흰꿩. 34. 육안귀 비늘이 있고, 털이 없는 동물인데, 걷는 모습과 딱지로 둘러쌓인 모습은 달팽이나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달팽이 눈 같은 식으로 눈이 여러 개 튀어나와 있는데 그 숫자는 여섯개이다. 배 아래쪽에 복잡하고 묘한 무늬가 생기고 꾸물거리면서 자꾸 변하는데, 마치 글자처럼 보일 때가 있다. 488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대형달팽이와 상상속 미래의 달팽이 진화판 만약 여러마리가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군대가 나선다고 해도 치명적이다. 멀리 바다 저편에 있으면서, 호시 탐탐 사람을 잡아 먹을 궁리를 하고 있으나, 헤엄을 칠 수가 없어서 바다나 강으로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다. 그러나 만약 누가 고의로 배에 실어서 이것을 운반해 준다면 위험해진다. 얼굴 모습 역시 공포스럽다. 울릉도 사람들이 매우 사납고 무서운 괴물로 믿어서, 언젠가 말세가 오면, 바다 저편에서 이것이 나타나 사람들을 다 죽인다는 소문을 믿었다고 짐작된다. 전후 사정을 보면, 이것은 자연적인 동물이 아니라, 세상을 멸망시킬 사람이 나무로 교묘하게 만든 기계 로봇[!??]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512년 아찬 이사부가 신라 하슬라주를 다스리는 제후가 되었을 때, 나무로 이 괴물 모양을 생동감있게 만든 후에, 울릉도에 가서 괴물을 풀어놓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당시 우산국을 건국하고 살고 있던 울릉도 사람들은 크게 겁을 먹고 항복하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런데 512년은 불교를 조정에서 채택하기 전이므로, 불교의 영향력이 특별히 강했던 시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6세기 초에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무서운 사자 모양의 괴물은 사자와 특별히 닮은 점이 없는데 다만 로봇이라니;;; 기록만 그렇게 남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자를 두려워한 것이, 불교 전래 초기의 오해와 신기함이라든가, 혹은 토착 신앙을 믿던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느꼈던 이상함, 거부감을 나타낸 일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번 움직일때에 채 1백보를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움직이는데 서툴지만, 성격이 무서워 잘 싸우며, 무게가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돌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만약 이 돌로 탑이나 불상을 만들면, 그 탑이나 불상이 언젠가는 움직이고 걸어다니게 될 수가 있다. 638년, 816년 등 몇차례에 걸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돌이 움직인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돌, 특히 사람이나 동물과 비슷한 모양의 돌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가 있기 때문에, 돌이 걸어다니는 전설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돌고 있습니다. 울산바위 이야기 같은 것이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데, 그에 비해, 신라 때의 이야기는 돌로 만든 불탑이 서로 격투를 했다는 둥 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몇차례 있습니다. 차례로 룬,용미리석불,돌정령 37. 장백척 매우 강한 맹독을 품고 있어서 물속에서 독을 뿜으면 일대의 물고기가 다 떠오를 정도이다. 가끔 자기가 자신의 독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듯이 날뛰다가 강 밖으로 뛰쳐나올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죽어버린다. 독이 매우 강해서, 물고기가 죽은 뒤에 이 물고기의 살을 조금 떼먹어도 사람은 즉시 죽는다. 655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오어피쉬와 해외의 메기,민물장어. 38. 흰 까치 다른 특징보다는 "흰 까치"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 때문에 유명하다. 662년, 720년 등등 여러차례에 걸쳐 한반도 각지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에 흰 까치가 중요한 것은 연역법, 귀납법, 외연, 내포 등의 추상적 개념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까치"가 뭔지 정의내리거나 설명하라고 하면, 누구나 "몸 색깔이 까맣다"라는 설명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모든 면에서 까치와 완전하게 동일한 동물이 있고, 어미도 까치고 형제자매들도 까치인 동물이 있는데, 다만 색깔만 흰색이라면, 이 동물도 "까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만약 이 동물을 까치로 인정한다면, 특징 몇 가지를 더 위배할 때까지 까치와 까치가 아닌 생물을 나눌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39. 수악당 자식 간에도 아무런 인의가 없어서 사악하다. 인상이 더럽고, 모습이 흉칙하며, 무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주로 맨손으로 싸우고 설치며 도덕 관념을 찾아 볼 수도 없다. 악행을 하면 할 수록 몸속에 이상한 성질이 쌓여서 점차로 주변에 먹구름을 생기게 하고 강한 번개가 떨어지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것이 등장하는 일대는 분위기가 몹시 흉흉하게 되는데, 나중에 가서 도가 지나치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도 벼락을 맞아 결국 죽게 된다. 사람과의 잡종이 생길 수도 있으며, 이 때에는 사람의 성질을 가지는 수도 있으나, 그래도 본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662년 신라의 사찬 작위를 갖고 있던 여동 이란 자가 기록되어 전해진다. 이젠 진화해서 스스로 벼락을 조종하는듯. 40. 북원이조 깃털은 깃털 하나하나 마다 미묘한 글자, 그림, 무늬 같은 것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어서 한 마리를 잡아 깃털을 뽑으면 책 한권치는 될만할 정도이다. 678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중간형태의 동물 같은 것일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는 오래전 멸종한 허스트 이글과 사냥당하는 자이언트 모아. 그외의 맹금류 사진.
그러나 모습을 따지고 보면, 짧은 다리가 있고 올챙이 같이 머리만 커다란 몰골이다. 그런데 털이 돋아 나 있는 것이 아니라, 털처럼 작은 불꽃이 온몸에서 나와 활활타오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밝다. 머리가 항아리만하고, 꼬리는 1미터 정도의 길이이다. 하늘 위에서 표표히 살기 때문에 거의 죽는 일이 없는데, 가끔 죽으면 더이상 하늘을 날아다니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아주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천구가 땅에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땅이 넓게 패이고 작은 지진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667년, 710년, 748년 등에 신라를 중심으로 발견된 적이 있다. 있어서, 말그대로 하늘에 사는 개같은 괴상한 생물로 여길만도 합니다. 포메라니안 종과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 심볼 42. 독오각 이것을 등위로 처들고 다니면서, 삶에 사용하거나 적을 공격한다. 766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소와 촉수라니, 뭘 어쩌라고.
눈부시고 뜨거운 빛을 낸다. 도깨비불 종류라기 보다는, 운석이나 비행접시 등과 비슷한 더 크고 뜨겁고 강한 것이다. 세 개의 덩어리가 하나로 뭉칠 때, 뭉쳤던 덩어리가 떨어질 때, 더욱 강한 빛과 열을 내며 터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767년에 신라의 왕궁 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아래는 보기드문 방전현상과 비행접시, 러시아의 구상번개현상. 본문설명은 ufo보담 구상번개현상에 가깝다.
그러나 뿌리를, 파보면,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뿌리가 있다. 이 뿌리는 인삼인데, 마치 커다란 사람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인삼으로서의 효능이 없다거나, 오래 살던 인삼을 헤쳤기 때문에 벌을 받는 다거나 하는 나쁜 소문도 있다. 799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그것은 고려 인삼이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요한 특산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인삼을 캐는 사람들이 깊은 산중을 돌아다니면서 고달프고 험한 무용담을 많이 겪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삼을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이나 어린이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사람인 줄 알았더니 커다란 인삼이더라 하는 이야기라든가, 사람을 따라 갔더니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인삼이 있더라는 류의 이야기가 상당 수 입니다. 물론, 그러한 변형판 중에서 가장 기막히게 멋진 걸작은 속칭 "내다리 내놔" 이야기로 통하는 덕대골 전설일 것입니다. 799년에 발견된 이 인삼은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거대한 경우입니다. 아래는 만드라고라 상상도. 45. 남지이조 그런데 부리가 특별히 길게 튀어 나와서 수십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고, 눈빛은 사람과 꼭같고, 밥을 많이 먹는다. 흉측하고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는 성질이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799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태국의 국가문장 가루다와 북미 새토템, 그리고 도널드 덕.
외국어, 문학 등지에서 사람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의 체계가 고등하기 때문인지, 혹은 말과 문자 이전에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600년대에 지금의 김해 땅에서 강수의 어머니가 강수를 낳을 때 어머니 태몽에서 만난 적이 있고, 강수 역시 왠지 머리 뒤편에 뼈가 불쑥 튀어나온 모습으로 태어나 외모가 특이했다고 한다. 강수의 본명은 자두 인데, 이러한 외모를 보고 당시 신라 태종이 강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기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두라는 이름보다는 강수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우고 있다. 백결선생은 본명이 알려져 있지 않아 백결선생으로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강수는 본명이 있는데도 본명을 무시하고 강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은 한국 전통 도깨비가 아니라 일본 오니를 삽화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한국 도깨비는 뿔이 없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민족주의의 비분강개처럼 돌고 있는데, 이것은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물론, 대중화된 도깨비의 그림이 일본의 오니 삽화에서 온 것은 맞지만, 한국 도깨비에도 뿔은 있습니다. 뒤에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한국에서 "도깨비"란 것은 그 실체가 명확하거나 모습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어떤 한 가지 괴물의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여기에 언급된 신라 때의 강수선생을 필두로 해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뿔이 있는 괴물은 지속적으로 보입니다. 뿐만아니라 방패나 깃발에 그리는 도깨비 얼굴 그림이나, 기왓장이나 벽돌 등에 새겨넣는 도깨비 얼굴 조각에도 뿔은 자주 들어갑니다. 만주지역에 실존했다는 뿔달린 사람 "왕" 오른쪽은 세일러문의 페가수스. 47. 속독 눈동자는 노랑색, 초록색, 파랑색 등의 밝은 빛이며, 남자의 경우, 얼굴에 수염을 잔뜩 기르고 있고, 얼굴에는 이마와 광대뼈 부분에 유난히 뼈가 튀어 나와 있다. 대체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하는 종족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멀리 이동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고, 장풍을 쓴다든가 하는 묘한 기술에 능하기도 하다. 남녀가 짝을 지어 다니기를 잘하고, 머리 뒤로 길게 늘어뜨리는 특이한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고, 그 밖의 옷차림도 삼국이나 발해, 중국, 일본 풍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원래 고향은 머나먼 서쪽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는 종족이다. 879년에 신라의 왕이 서양인 혹은 중동인 네 사람의 노래와 춤을 구경했던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와전되면서 신령스러운 존재로 과장해서 상상하여 믿던 이야기가 신라사람들 사이에 퍼졌다고 한다. 또 신라 후기에 속독을 표현하는 가면 무도회가 있어서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파생되었다고 짐작되는 것입니다. "속독"은 수그디아나를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우세한데,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이를 표현하는 가면을 만들고 이야기가 부풀어지면서 신비한 이야기와 믿음이 자꾸 덧붙은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유명한 처용이 보통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외모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속독은 좀 사람 같지 않게 생겼다는 것 입니다.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탈춤 속 "말뚝이" 의 원형적인 한 형태라는 설도 있습니다. 인도의 가네샤와 탈놀이의 말뚝이. 세번째는 사마르칸트의 벽화. 오른쪽에 조우관을 쓴 고구려[혹은 신라]인이 있다.
낙타처럼 사막을 헤메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때문에 몸은 모래먼지로 뽀얗게 뒤덮혀 희뿌옇게 지저분한 모습이다. 이빨이 날카롭고 입이 커서, 어떠한 동물도 공격해 잡아먹을 수 있을만큼 강한 동물이다. 하지만, 의외로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온순해서 강아지 처럼 잘 따르고 말을 잘 듣는 묘한 습성이 있다. 음악을 좋아해서, 좋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도 많다. 신라 후기에 신라사람들이 이 동물을 믿어서 이를 표현하는 탈춤이 있었으므로,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입니다. 불교의 설화들과 관련이 있어서 널리 유행하기도 했고, 때문에 실크로드 저편 중동과 서양 지방에서 건너온 괴물이라는 생각이 당시에 퍼져 있었다고 보입니다. 사자는 귀신이나 악귀를 쫓는 신령스러운 존재, 혹은 무시무시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언급되곤 하는데, 삼국사기의 신라 기록에 나오는 산예는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로 흥겹게 춤을 즐기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한국 사자춤의 원시적인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이 경우에 사자는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탐관오리나 재수없는 위선자들을 잡아 먹는 재미있고도 위엄있는 존재입니다. 북청사자놀음의 사자와 설표, 실물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