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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시아 전통의 축구 강국이죠~
우리나라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살펴보시죠~
<태극전사들의 포효하는 모습을 지켜보라! 한국>
- 월드컵 본선진출 횟수 : 9회 (1954, 1986, 1990,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 월드컵 최고성적 : 4위 1회(2002), 16강진출 1회(2010)
- 월드컵 통산성적 : 26위 (5승8무15패 28득점 61실점 -33 승점 23점)
- 아시안컵 :
본선진출 횟수 : 12회 (1956, 1960, 1964, 1972, 1980, 1984, 1988, 1996, 2000, 2004, 2007, 2011)
최고성적 : 우승 2회(1956, 1960), 준우승 3회(1972, 1980, 1988), 3위 4회(1964, 2000, 2007, 2011), 8강진출 2회(1996, 2004)
- 아시안컵 통산성적 : 2위 (27승16무13패 92득점 60실점 +32 승점 97점)
- FIFA 랭킹 : 53위 (2014년 01월 16일 기준)
- 2014브라질월드컵 예선 성적 : 아시아 지역 3차예선 B조 1위 (4승1무1패 14득점 4실점 +10 승점 13점)
최종예선 A조 2위 (4승2무2패 13득점 7실점 +6 승점 14점)
지난 2002한일월드컵 4강진출은 그 동안 한국 축구를 바라보던 지구촌 축구팬들의 시각을 바꿔 놓았다. 거스 히딩크라는 국제 축구계의 영향력 있는 명장을 영입한 한국은 대회 1년반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고 본선에서 그 효력이 발휘됐다. 중원에서부터의 압박을 통한 히딩크식 한국 축구는 당시 4강까지 오르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활을 했고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에 내놓으라는 강호들을 이기는데 중요한 전술이였다. 남미나 유럽 국가가 아닌 제 3대륙의 국가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은 1930년우루과이월드컵 미국(당시 3위) 이후 72년만의 일이였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 동북아 끝쪽의 중국과 일본의 사이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으며 면적 10만㎢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지난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1950년 한국전쟁 후 남,북한으로 분리됐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는 4,895만명, 수도는 아시아에서도 아름다운 도시 서울이며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도 바로 이 한국을 빛댄 말이다.
한국은 아시아 축구의 역사에 있어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업적은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존중받아야 하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전쟁의 아픔이 체 가시기도 전인 1954년. 한국은 일본을 꺽고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아시아 국가로는 38년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번째 본선참가였다. 그러나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나라 한국에게 스위스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고되고 힘든 여정이었다. 미 공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30시간을 날아가 가까스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고 그나마 2진급은 경기 당일에야 도착할만큼 열악한 조건 속에 첫 본선 참가가 이루어졌다. 당시 세계 축구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푸스카스의 헝가리에 0:9로 참패 당한 한국은 2차전 터키와의 경기에서도 0:7로 대패당하면서 혹독한 국제 무대에 신고식을 치뤘다. 이후 다시 본선에 진출하기까지는 32년이란 세월이 더 기다려야 했다. 58년스웨덴월드컵 지역예선을 앞두고는 축구협회 한 관계자가 참가 신청서를 분실하면서 어이없게 불참했고 62년칠레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게 2연패를 당하며 본선행이 좌절되고 만다. 66년잉글랜드월드컵에서는 기권했고 70년멕시코월드컵과 74년서독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모두 호주에게 발목이 잡혔다. 78년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는 이란에게 밀려 아쉽게 본선진출에 실패했고 82년스페인월드컵에서는 1차예선에서 쿠웨이트에 패하며 충격적인 예선탈락을 맛봤다.
54년스위스월드컵 당시 홍덕영 골기퍼의 모습
198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축구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차범근. 최순호, 허정무 등 수준높은 선수들을 앞세워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 속에 한국은 32년만에 1986년멕시코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다. 본선에서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 등 강호들을 상대로 1무2패에 그쳤으나 본선 첫 골과 첫 승점을 기록했고 특히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3:2로 접전을 펼치며 그 가능성을 전 세계 팬들에게 알렸다. 그러나..4년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90년이탈리아월드컵에서 아시아국가 최초 2회연속 본선에 오른 한국은 3전전패의 수모를 당하며 조기 탈락하고 말았다. 유럽 언론들은 "기본적인 개인기"부터 다시 다듬어야한다는 혹평을 내릴 정도로 경기 내용은 형편없었다. 94년미국월드컵 본선행은 한 편의 드라마도 같았다.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라크가 일본에게 경기 종료 직전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트리면서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3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다. 극적으로 본선에 오른 94년미국월드컵에서는 첫 경기에서 강호 스페인를 상대로 경기 막판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2:2로 비기면서 사상 첫 16강진출의 꿈에 부풀었지만 볼리비아와 득점없이 비기고 독일에 3:2로 아깝게 패하면서 아쉽게 16강진출에는 실패하고 만다. 이어진 98년프랑스월드컵에서는 멕시코에 역전패 당하고 네덜란드에 0:5로 참패당하는 등 본선 예선 도중 감독 경질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진 끝에 1무2패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했다. 이후 한국은 2002년한일월드컵에서 개최국 이점을 살려 4강에 진출했고 지난 2006독일월드컵에서는 토고를 꺽고 사상 첫 월드컵 원정승, 강호 프랑스를 상대로 1:1로 비기며 1승1무1패, 좋은 성적을 냈지만 마지막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2로 패퇴하면서 16강진출에 실패했다. 완벽한 신구조화를 이룬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 속에 그리스를 2:0으로 꺽고 나이지리아와 2:2 무승부를 거두며 사상 첫 원정 16강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사실 한국이 아시아의 강호라곤 하지만 그동안 월드컵에서 보여준 성적을 보면 조금 아쉽다. 2002한일월드컵 전까지는 5차례 본선무대에서 4무10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아시아의 축구변방으로 불릴만큼 국제 축구계에 큰 영향력을 주진 못했다.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아시안컵에서도 두차례 우승을 하긴 했지만 가장 최근에 우승한 것은 자국에서 열린 1960년대회다. 그나마도 당시에는 4개국밖에 참가하지 않은 소규모였고 진정 아시안컵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후부터는 준우승만 3번 차지했다. 일본이 최근 들어 아시안컵을 잇따라 제패, 아시아컵 통산 최다우승을 차지하며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해 국제대회 경험을 쌓은 것을 생각해본다면 한국은 분명 더 분발하고 뭔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축구협회 행정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그동안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등 AFC 주관 대회를 등안시 하고 월드컵, 올림픽 등 세계 축구계에서만 온갖 관심을 쏠려있었기에 아시안컵의 부진은 당연하다. 지난 92년아시안컵에서는 2진으로 예선에 참가했다가 탈락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단순히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진정한 아시아의 강자라 불릴 순 없을 것이다. 한국이 아시안컵 우승과 함께 최강이라는 칭호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국가들간의 대결인 AFC아시안컵을 좀 더 신경써서 준비해야지만 비로써 진정한 아시아의 최강자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부진을 거듭한 요인 중 하나로 바로 학원 축구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오랜 기간 한국 축구의 틀은 뿌리 깊은 학원 축구로부터 시작됐다. 선수들의 개인기량 등을 철저히 무시하고 성적 위주로만 돌아가는 학원 축구계는 그동안 한국축구가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주 된 원인이였다. 그 결과 선수들의 기본적인 역량이나 개인 기량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천연 잔디 구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들의 실력이 성장할 리 만무했다. 성적이 위주가 되다보니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립심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는 곧 생각하는 축구가 아닌 성적에 의한 유동적인 팀 플레이밖에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점은 국제무대에서 악영향으로 작용됐다. 심적 압박감과 성적의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선수들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개인기량에서도 다른 나라와도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문제가 많이 해결 되 나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점으로 학원 축구제 폐지와 맞물려 유소년 클럽 프로젝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한국 축구계에는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러오고 있다. 2009년 U-20청소년월드컵과 U-17청소년월드컵 8강진출, 그리고 2012올림픽 동메달과 2013년 U-20청소년월드컵 8강 쾌거는 이 시스템이 낳은 큰 수확물이였다. 탄탄한 기본기가 바탕이 되면서 큰 국제 무대에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는데 이는 바로 이 유소년클럽 프로젝트가 낳은 결과였다. 이들은 분명 미래 한국 축구 성장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특히 시스템이 바뀐 지 체 10여년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이러한 변화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012런던올림픽 3,4위전을 마치고 기뻐하는 한국올림픽대표팀
지난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AFC아시안컵에서 한국은 또 다시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51년만에 아시아 제패에 나선 한국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 속에 우승 후보로 대회에 임했지만 4강전에서 라이벌 일본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패하면서 3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아시안컵 성적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들은 아시아 축구 전통의 강호로 월드컵에는 8회연속 진출하는 역사를 썼지만 정작 아시아 최강자리를 가리는 아시안컵에서는 지난 1960년 이후 단 한번도 우승을 한 전례가 없다. 유독 아시안컵만 나가면 작아지는 한국의 모습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한국의 아시안컵 성적은 여전히 아시아 축구의 미스테리로 남을 거 같다. 이 아시안컵을 끝으로 지난 2002년한일월드컵의 유일한 멤버였던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약 10여년간 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 4강 신화와 첫 원정 16강진출의 산 증인이였던 이 두 레전드가 떠나면서 대표팀은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세대교체를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팀 개편 작업이 시작됐다..
2010남아공월드컵을 끝으로 허정무 전 감독이 물러나면서 예정대로라면 그의 후임자였던 조광래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한국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이끈 대표팀이 탄탄대로를 달렸다면 말이다...하지만 모든 일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스페인식 티키타카를 표본으로 한국식 패싱 축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한 조광래 감독은 2011아시안컵 3위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높았다. 조광래 감독은 기존의 주축 멤버들 외에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 발굴에 열을 올렸다. 대표팀의 세대 교체와 함께 신구조화를 목표로 그는 2014브라질월드컵 지역예선을 준비했다. 한국은 아시아지역 1,2차 예선을 자동으로 통과했다. 3차예선에서도 그들의 탑 시드 배정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일본, 호주 등과 함께 포트 1에 들어간 한국은 3차예선에서 쿠웨이트(2포트), UAE(3포트), 레바논(4포트)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모두 중동 국가라는 부담이 있었지만 조 2위까지 주워지는 최종예선 진출은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에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역예선 출발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고양으로 레바논을 불러들인 한국은 3차예선 첫 경기에서 6:0으로 레바논을 대파했다. 전반 8분만에 터진 박주영의 멋진 논스톱슛을 시작으로 전반 종료 직전 박주영이 헤딩으로 다시 한번 추가골을 성공시켰고 후반 들어 지동원의 2골과 박주영의 3번째골, 김정우의 골을 묶어 대승을 이끌어냈다. 나흘 뒤 쿠웨이티시티 원정에 나선 한국은 전반 9분만에 남태희의 땅볼 패스를 박주영이 선제골로 성공시키며 먼저 앞서나갔지만 후반 9분 쿠웨이트 후사인 알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로 비겼다.
UAE와의 2연전에서는 모두 승리하면서 승점 6점을 추가, 최종예선 진출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수원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는 후반 5분 서정진의 정확한 스루패스를 이어받은 박주영이 먼저 선제골로 연결한데 이어 후반 19분에는 기성용의 왼쪽 코너킥이 UAE 수비수 함단 알 카말리의 머리에 맞고 굴절되면서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경기 막판 이스마일 마타르에게 실점을 내줬지만 2:1 승리를 지켰다. 한 달 뒤, 두바이의 원정에 나선 한국은 힘겨운 승부 끝에 후반 43분 이용래의 땅볼 크로스를 이근호가 마무리 하면서 결승골을 터트렸고 추가 시간 박주영의 추가골을 더 해 2:0으로 UAE를 이겼다. 3승1무 승점 10점을 따낸 한국은 조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나흘 후 상승세의 레바논을 만난 한국의 상황은 180도로 바뀌었다. UAE 원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비난 여론에 시달렸던 조광래호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은 것이다. 레바논은 한국 원정에서 0:6으로 참패 당한 팀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베이루트에서 한국과의 경기를 맞이했다. 전반 시작 4분만에 알리 알 사디가 오른쪽 프리킥 상황을 그대로 골로 연결시켰다. 전반 20분 이근호가 헤딩하는 과정에서 레바논 라메즈 다요브에게 얼굴을 걷어 차이면서 페널트킥을 얻어냈고 구자철이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32분 구자철이 마무드 엘 알리에게 파울 범하면서 페널트킥을 내주면서 압바스 아트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날의 충격적인 패배로 한국은 레바논과 승점차 없이 아슬아슬한 조 1위를 지키고 됐고 같은 날 홈에서 UAE를 2:1로 제압한 조 3위 쿠웨이트에게도 승점 2점차로 따라잡혔다.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홈 경기 패배시 최종예선 진출 실패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러한 악재 속에 조광래가 경질됐다...그가 지휘봉을 잡은지 불과 1년반만에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협회의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어찌됐던 조광래는 삿포로 참패와 레바논전 충격패 등으로 인해 팬들에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너무 어린 선수들만 선호한다는 이유도 한 몫했다.
3차예선 1경기를 남겨두고 대한축구협회는 새로운 감독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단 한 경기로 자신의 감독 운명이 걸린 이 위험한 자리를 그 누구도 선뜻 맡겠다는 감독은 없었다. 국내 K리그 감독 중심으로 유력 후보들을 선별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전북 현대 감독이던 최강희가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내정됐다. 거절의사를 고수하던 그였지만 결국 축구협회과 협의 끝에 감독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그는 한시적으로만 감독을 맡을 것을 고집했다. 그는 월드컵 지역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본선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축구협회도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최강희 감독의 첫번째 지역예선 경기는 너무나도 중요했던 쿠웨이트와의 3차예선 마지막 홈 경기였다. 너무나도 중요했던 이 경기의 히어로는 백전노장 공격수 이동국이였다. 최강희 감독이 가장 신뢰하던 공격수였던 그는 위기의 순간 진가를 발휘했다. 전반을 득점 없이 마치며 불안한 경기를 펼치던 한국은 후반 20분 이근호가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내준 공을 이동국이 왼발로 정확하게 밀어넣어 천금같은 결승골을 뽑아냈다. 6분 뒤 이근호의 추가골까지 더한 한국은 2:0으로 쿠웨이트를 꺽고 4승1무1패 승점 13점을 확보하면서 조 1위로 천신만고 끝에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강희 감독이 힘겨운 고비를 넘어섰다.
한국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일정 및 순위
비록 어렵게 최종예선행을 확정지었지만 한국의 강자로써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3차예선에서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단연 공격수 박주영(29, FW, 왓포드, 예선 6골)이다. 그는 3차예선 총 5경기(최종예선까지 총 7경기)에 출전, 6골을 뽑아내면서 이번 지역예선 대표팀 내 최다득점을 올렸다. U-20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축구 천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해온 그는 지난 2004년 U-19아시아챔피언쉽에서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면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곧바로 이듬해 2005년 K리그 서울로 입단하면서 프로로 데뷔한 그는 그 해 골든볼과 골든슈,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소속팀 서울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 후 2시즌동안 단 4골만을 넣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지만 그는 유럽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8년 8월 프랑스 1부리그 모나코로 200만 유로를 받고 이적하는데 성공한 박주영은 첫 출전한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팀 승리를 이끌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뤘다. 프랑스에서의 그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첫 시즌 31경기에 출장해 5골을 넣으며 적응을 마친 그는 09-10시즌 8골, 10-11시즌 12골을 터트리며 주전 공격수로써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결국 이러한 활약을 빅리그 클럽들이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2011년 8월 그는 300만 유로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날 사나이가 됐고 그제서야 대표팀 유니폼이 더 잘 어울려 보였다. 계약기간은 약 4년이였으며 등번호 9번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그는 시련의 연속이였다. 볼튼과의 컵 대회에서 데뷔골을 넣었지만 당시 샤막, 반페르시, 아르샤빈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고집스러운 뱅거 감독은 그에게 많은 출장 시간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12-13시즌 스페인 셀타비고로 임대되 25경기 4골(컵대회 포함)을 넣으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지난 시즌 다시 아스날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날이 그를 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였는데 결국 박주영은 영국 2부리그 왓포드로 임대됐다.
소속팀과는 달리 대표팀에서 그가 남긴 업적들은 화려하다. 2005년 처음 A대표팀에 발탁된 박주영은 22살의 어린 나이로 2006독일월드컵에 참가했으며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전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터트리며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지난 2012런던올림픽에는 와일드 카드로 출전해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동메달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해냈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최강희로 감독이 바뀌면서부터 그는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에 단 2경기만 함께했으며 소속팀에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해 경기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매번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그를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근 1년 넘게 대표팀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설사 출전한다해도 옛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가 하루 빨리 소속팀에서 경기 감각을 되찾아 대표팀으로 복귀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뛰기를 팬들은 바라고 있다.
박주영
2012년 3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최종예선 진출 10개국에 대한 조편성이 이루어졌다. 한국은 호주와 함께 탑 시드를 배정받고 1포트에 들어갔다. 이란(2포트), 우즈베키스탄(3포트), 카타르(4포트), 레바논(5포트)이 한 조에 편성됐다. 조 2위까지는 주어지는 본선티켓은 한국에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도하에서 카타르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최종예선 일정이 시작됐다. 전반 22분 카타르의 역습에 허를 찔렸다. 왼쪽 측면을 돌파해 들어간 유세프 아메드가 곽태휘를 제치고 그대로 치고 들어가 오른발로 선취골을 터트렸다. 한국은 동요하지 않았다. 원정 경기임에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4분만에 이근호가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김보경이 왼쪽에서 올려준 공을 머리로 마무리했다. 후반 들어서부터는 한국의 완벽한 경기력이 빛이 났다. 후반 10분 김보경의 오른쪽 코너킥을 수비수 곽태휘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는 멋진 헤딩 역전골을 뽑아낸 데 이어 후반 19분에는 이동국의 오른쪽 땅볼패스를 받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오른발로 반대편 구석을 겨냥해 정확히 차 넣어 세번째 골을 완성시켰다. 후반 35분 이근호의 쐐기골까지 더 한 한국은 카타르를 4:1로 대파하면서 기분 좋은 첫 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는 국내파 공격수들의 활약이 빛난 경기였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직전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시련을 겪었던 이근호(29, FW, 상무, 예선 5골)은 이번 지역예선에 필드플레이어로는 가장 많은 12경기에 출전해 총 5골을 터트리면서 대표팀 내의 자신의 존재가치 중요성을 팬들에게 인식시켰다. 2004년 인천Utd에서 데뷔 후 2007년 대구FC로 이적, 2시즌 동안 19골을 넣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2007년 처음 A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축구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2009년 일본 J리그로 진출, 주빌로 이와타와 감바 오사카 등에서 뛰면서 짧은 해외 무대 경험도 가지고 있다. 지난 2012년 다시 국내 K리그로 복귀한 그는 여전히 좋은 골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유독 대표팀만 오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정작 중요한 메이저대회에서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올 여름 브라질에서는 그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최근 대표팀에는 196cm의 초대형 장신 스트라이커 한 명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김신욱(26, FW, 울산 현대, 예선 1골)은 이번 예선에서 최강희 감독 부임 이후 줄곧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면서 공격 진영에서 활기를 불어 넣어줬다. 2009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로 입문한 그는 큰 키를 이용한 제공력과 헤딩력이 뛰어난 공격수다. 이번 지역예선 총 8경기에 나와 1골을 넣었다. 비록 대표팀에서 많은 골을 넣어주진 못하고 있지만 가장 최근에 가진 러시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장신을 이용한 공격력이 본선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도 큰 관심이다. 이근호가 상무 제대 후 소속팀 울산으로 복귀한다면 같은 소속팀에서 뛰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지난 2012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울산 현대 우승의 주역들이다.
이근호(왼쪽)와 김신욱(오른쪽)
도하에서의 기분 좋은 승리 후 고양에서 레바논과 경기를 가졌다. 3차예선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한국 선수들은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 같았다. 한국은 레바논을 3:0으로 완파했다. 앞서 있었던 카타르전이 국내파 공격수들의 무대였다면 이 레바논전은 해외파 미드필더들의 활약이 빛난 경기였다. 이 경기 승리의 주역은 웨일즈 카디프 시티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 미드필더 김보경(25, MF, 카디프 시티, 예선 2골)이였다. 김보경은 왼발로만 2골을 터트리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 30분 이근호가 왼쪽 돌파 후 정면으로 내준 공을 김보경(25, MF, 카디프 시티, 예선 2골)이 왼발로 차 넣어 먼저 선제골을 넣었다. 이 골은 김보경의 대표팀 데뷔골이기도 했다. 후반 3분에는 수비 진영에서 한 번에 넘어온 패스를 받은 김보경이 약 30m를 혼자 치고 들어가 왼발로 방향을 바꿔놓는 절묘한 슈팅으로 두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그의 침착성이 돋보인 골이였다. 후반 45분에는 레바논 후세인 다키크의 볼을 빼앗은 구차절(25, MF, 마인츠05, 예선 2골)이 그대로 왼발로 골네트를 가르면서 한국의 3:0 승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종예선 초반 2경기에서 7득점에 1실점, 승점 6점으로 완벽한 경기를 선보인 한국은 조 선두로 뛰어오르면서 월드컵 본선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더욱 더 높혔다.
이 경기에서 25살 동갑내기 해외파 미드필더 김보경(25, MF, 카디프 시티, 예선 2골)과 구자철(25, MF, 마인츠05, 예선 2골)은 중원에서 한국의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면서 인상적인 경기 내용을 보여줬다. 2009년U-20월드컵 한국의 8강진출의 주역 중 하나로 레전드 박지성의 등번호 7번을 이어받은 김보경은 2010년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2부리그인 오이타 트리니타로 임대되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곧바로 다음 해 1부리그에서 복귀전을 가진 그는 2012년 7월 당시 영국 2부리그 소속의 웨일즈 카디프 시티로 이적하면서 유럽 무대에 진출한다. 12-13시즌 소속팀 카디프의 1부리그 승격을 도왔고 올시즌 당당히 프리미어리거가 되어 돌아왔다. 지난 2010년 처음 대표팀에 선발된 이후 2010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참가했고 2011아시안컵 3위,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큰 메이저대회에는 늘 그가 함께했다. 플레이 스타일이 박지성과 매우 흡사한데 정확한 패싱능력과 경기의 흐름을 잘 읽는 점이 그의 큰 장점이다. 이번 지역예선 총 6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으면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25, MF, 마인츠05, 예선 2골)도 김보경과 함께 2009년U-20월드컵 8강진출을 이끈 선수로 A대표팀에서는 지난 2011아시안컵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오르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케이스다. 조광래 감독시절부터 대표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지난 2012런던올림픽 3,4위전 일본전에서 쐐기를 박는 멋진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면서 조국 한국에게 동메달을 안겨다줬다. 2007년 제주Utd를 통해 프로에 입문한 그는 아시안컵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시험 받게 된다. 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된 후부터다. 11-12시즌 도중 임대된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주전으로 출전해 5골을 넣으면서 독일 무대 적응을 마쳤다. 지난 시즌부터 볼프스부르크로 복귀했지만 아우크스부르크 시절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결국 그는 최근 마인츠05로 다시 한번 팀을 옮겼고 다시 한번 비상을 꿈꾸고 있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그가 본선으로 갈 확률은 매우 높다. 큰 국제 무대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2011아시안컵에서처럼 폭발적인 공격력을 이번 월드컵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 지 기대된다.
김보경(왼쪽)과 구자철(오른쪽)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경기력은 점점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경우가 있다. 타슈켄트에서의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부터 한국의 부진한 경기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반 13분 우즈베키스탄 세르베르 제파로프의 오른쪽 코너킥을 기성용이 머리로 걷어낸다는 것이 자책골로 연결됐다. 44분 아르티옴 필리포스얀의 자책골로 균형을 이뤘고 후반 12분 박주호의 왼쪽 크로스를 받은 이동국이 역전골을 터트리면서 앞서나갔지만 곧바로 2분 뒤 제파로프의 코너킥을 받은 산야르 투르수노프에게 재동점골을 허용하면서 2:2로 비겼다. 10만 구름 관중이 몰려든 아자디 스타디움에서의 이란과의 경기는 더 힘들었다. 전반 중반 오른쪽 코너킥에서 날아온 공이 곽태휘 머리에 맞고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후반 들어 위기상황은 계속됐고 결국 후반 31분 데자가의 오른쪽 프리킥에서 흐른 공이 네쿠남의 오른발에 걸렸다. 0:1..예선 첫 패배를 당한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에게 조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영국에서 가진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0:4로 대패하면서 분위기가 더 침체되 있었지만 카타르와의 홈 경기에서는 극적인 승부 끝에 승리를 따냈다. 전반을 득점없이 마친 한국은 후반 15분 왼쪽에서 박원재가 올린 크로스를 이근호가 방향을 바꿔놓는 헤딩골로 먼저 기선을 제압한다. 곧바로 3분 뒤 카타르 이브라힘 칼판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추가 시간 이동국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긴 공을 손흥민이 다시 밀어넣으면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정말 중요했던 이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추가한 한국은 같은 날 홈에서 레바논을 제압한 우즈베키스탄과의 승점을 1점차로 유지했다. 최근 몇년동안 대표팀은 최전방 공격수 부재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바로 22살의 초대형 스트라이커 손흥민(22, FW, 레버쿠젠, 예선 1골)이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전 천금같은 결승골의 주인공 손흥민은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대표팀의 젊은 피로 공격 진영에서 그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2009년 U-17월드컵에서 한국을 8강으로 이끈 손흥민은 지난 2011아시안컵을 앞두고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나이 겨우 18살 되던 해였다. 아시안컵 인도전에서 바로 A매치 데뷔골을 작렬한 그의 혜성같은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였다. 탄탄한 개인기와 뛰어난 볼 트래핑 능력, 골 감각 등은 역대 대표팀 공격수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다. 어린 시절부터 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개인 훈련을 받으면서 성장해 온 그는 기본기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008년 KFA의 우수선수 해외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 유스팀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손흥민은 2010년 마침내 1부리그 성인 클럽에 합류하면서 프로에 진출하게 된다.
시즌을 앞두고 열린 첼시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역전골을 넣는 등 1경기에서 2골을 넣으면서 큰 기대를 모은 손흥민은 첫 시즌 13경기에서 3골을 넣으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12-13시즌 마침내 두자리수(12골) 득점을 올리면서 독일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손흥민은 2013년 6월 1,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받고 독일 전통의 명문 바이엘 레버쿠젠과 5년 계약을 맺으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과거 레전드 차범근이 그랬던 것처럼 손흥민 역시 분데스리가에서 훌륭한 공격수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이번 시즌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함부르크 시절보다 더 성숙된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이 해트트릭은 한국인 최초로 유럽 리그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이였고 아시아 선수로써는 단 3번밖에 없었던 대 기록 중 하나였다. 그의 놀랄만한 성장에 팬들은 설레어하고 있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그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아시안컵 이후 아직 이럴다 할 큰 국제 무대에서 뛴 적이 없는 손흥민으로써는 이번 브라질월드컵이 그가 한 층 더 성숙되고 성장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대회가 될 것이다. 이번 지역예선에서는 9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그는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경계하고 주목해야 할 공격수다.
손흥민
카타르전의 짜릿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승세는 지속되지 못했다. 베이루트로 원정에 나선 한국은 승부조작 등으로 어수선한 레바논을 상대로 고전 끝에 후반 추가시간 터진 김치우의 프리킥골로 간신히 1:1로 비겼다. 승점 1점을 추가한 한국은 경기가 없었던 우즈베키스탄을 골득실차로 밀어내면서 다시 조 선두에 오른다. 2위 우즈베키스탄과 3위 이란과의 남은 2번의 홈 경기에 한국의 본선행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일전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패할 경우 조 3위로 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전반 43분 김창수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우즈베키스탄 아크말 쇼라크메도프의 머리에 맞고 자책골로 연결된다. 이 자책골은 그대로 이 경기에 결승골이 되어 버렸다. 승리하긴 했지만 그리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은 아니였다. 짜임새 있는 공격력도 보이지 않았고 수비에서도 몇 차례 실점 위기를 노출시켰다. 하지만 어찌됐던 이 승리로 한국은 예선 4승째(2무1패)를 따내면서 승점 14점으로 본선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같은 날 이란(4승1무2패, 승점 13점)은 레바논을 홈에서 4:0으로 대파하고 한국에 패한 우즈베키스탄(3승2무2패, 승점 11점)을 제치고 조 2위로 뛰어오른다.
이란과의 마지막 홈 경기를 앞두고는 양팀 감독의 장외 설전이 치열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서로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인 두 감독의 행동은 이 경기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잘 나타냈다. 한국은 지난 이란과의 원정 경기 패배의 설욕을 준비했다.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예선에서 고비마다 서로의 발목을 잡아왔던 두 팀의 대결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경기는 줄곧 한국의 우세 속에 진행되 나갔지만 간간히 이어지는 이란의 역습이 더 매서워보였다. 전반 이명주가 골기퍼와 맞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무의에 그치고 말았다. 후반 수비수 김영권의 어이없이 실수가 결국 결승골을 헌납했다. 흐른 공을 가로 챈 이란 레자 구차네자드가 왼발로 감아차 골을 성공시켰다...후반 추가 시간 이근호의 헤딩슛은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겨나갔다. 결국 승부는 거기서 끝이였다. 0:1로 패배한 한국은 이란에서 막판 조 1위 자리를 내주면서 2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같은 날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에게 더 많은 골을 넣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은 통산 9번째이자 8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 예선 막판 보여준 한국의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이 이란전을 끝으로 최강희 감독의 임무는 모두 끝이 났다. 그는 약속대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다시 자신의 전 소속이였던 전북 현대 감독으로 돌아갔다. 이제 새로운 감독 선임을 놓고 다시 한번 축구협회의 고뇌가 시작됐다.
한국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정 및 성적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는 외국인 감독에 무게를 달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셀로 비엘사,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 등이 유력한 감독 후보로 부상했지만 정작 축구협회가 최종 선택한 인물은 2012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을 동메달로 이끈 45살의 젊은 감독 국내파 홍명보(45)였다. 그는 선수시절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불리며 지난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을 이끈 주역 중 한명이였다. 90년이탈리아월드컵부터 4회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2009년에는 U-20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8강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감독으로써의 지도력을 조금씩 인정 받아왔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계획했던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2012런던올림픽에서 조국에 사상 첫 메달을 선사한 그에게는 국가대표팀의 불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독 선발 당시 때가 이르다는 이유로 A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던 홍명보였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의 도전은 그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는 냉철하면서도 단호한 지략가다. 선수들을 잘 융화시키는 리더쉽과 함께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배워 온 축구 철학까지 그의 감독 지도 방식에 고스란히 잘 스며들어 있다. 재능 있고 실력있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면서 그가 이뤄낸 업적들이 이제 2014브라질월드컵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홍명보 한국대표팀 감독
홍명보의 지도 방식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선수가 있다. 바로 주전 미드필더 기성용(25, MF, 선더랜드)이다. 2007년 세뇰 귀네슈가 감독으로 있던 FC서울에서 18살의 나이로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기성용은 2010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 당시 처음 A대표팀에 발탁되 A매치 2번째 경기만에 골을 넣으면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 진출에 성공한 그는 2010월드컵과 2011아시안컵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어느 덧 대표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 대표팀 내 코너킥과 프리킥을 전담하는 그는 187cm의 탁월한 신체조건에 정확한 킥력과 날카로운 패싱능력, 그리고 공수를 조율하는 능력과 경기를 읽는 눈이 매우 뛰어난 미드필더다. 그는 한국 중원에서 이 모든 장점을 활용해 경기에 임하고 있으며 A매치를 치룰수록 더 성숙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하면서 병역혜택을 받은 그에게 우수한 클럽들의 영입 경쟁이 시작됐다. 2011-12시즌 셀틱에서 6골을 넣으면서 유럽 무대 적응을 마친 기성용은 아스날, 나폴리, 풀럼 등이 영입에 나섰지만 그가 최종 선택한 구단은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였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구단 역사상 최고인 600만 파운드였으며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스완지시티에서의 첫 시즌을 무사히 소화한 그는 지난 시즌부터 갑작스런 슬럼프에 빠졌다. SNS에서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에 대한 무례한 조롱 글이 결국 일파만파 국내의 큰 일로 번지고 만 것이다. 한국 정서상 감독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모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그는 한 동안 대표팀을 떠나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이 있고 나서 그는 심적으로 한결 성숙됐다. 결혼과 함께 최근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그는 다시 돌아왔고 스완지 시티에서 선더랜드로 임대된 이 후에도 2골을 넣으면서 시즌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의 부활은 소속팀은 물론으로 대표팀에게도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최근 몇 년간 큰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낼 때는 늘 기성용이 함께 있었다. 그는 현재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테크니션으로 그가 없는 한국의 중앙 미드필더 지역은 상상할 수 없다. 모든 플레이가 그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되는 만큼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기성용
국내파들로만 나섰던 지난 동아시안컵은 홍명보 감독의 첫 시험무대였다. 호주, 중국과 득점없이 비겼고 일본에게는 1:2로 패하면서 우승 달성에는 실패했다.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페루와의 평가전에서도 득점없이 비기면서 4번의 경기에서 단 1골만을 기록하는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던 홍명보호는 9월 A매치 데이에 해외파를 총 동원해 아이티와의 평가전에서 4:1의 대승을 거뒀다. 강적 크로아티아를 상대로는 1:2로 패했고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로는 2골만 허용하면서 0:2로 나름대로 선전했다. 말리와의 평가전에서는 해외파들이 맹활약을 펼쳤다. 구자철의 페널트킥 동점골과 후반 손흥민의 통렬한 오른발 슛, 그리고 김보경의 쐐기골을 더해 3:1로 역전승하면서 팀이 조금씩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있었다. 스위스와의 서울 평가전에서는 한국 축구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 경기였다. 2006독일월드컵에서의 패배를 설욕함과 동시에 전력 상승을 노린 한국은 전반 7분만에 스위스 파이팀 카사미에게 중거리슛을 허용하며 끌려나갔지만 후반 13분 기성용의 왼쪽 코너킥을 수비수 홍정호가 헤딩으로 마무리 동점을 만들었고 후반 40분 이청용이 2010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이 후 약 3년 반만에 A매치 골을 작렬시키면서 2:1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스위스전 히어로는 단연 이청용(26, MF, 볼튼)이였다. 이청용은 이 경기에서 골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경기를 지배해 나가면서 한국의 공격을 이끌어냈다. 박지성이 떠난 대표팀에서 이제 이청용의 존재는 더 중요해졌다. 그는 이제 겨우 26살이지만 수 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해왔다. 2007년 U-17월드컵과 2008베이징올림픽, 2010남아공월드컵과 2011아시안컵 등 그가 출전한 A매치는 52경기다. 유년 시절부터 뛰어난 발재간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청용은 조광래 전 감독의 권유로 지난 2004년 FC서울에 입단하면서 축구 인생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2년간 2군 무대에서 실력을 키운 그는 2007년 세뇰 귀네슈 감독이 전격적으로 1군 무대를 그를 합류시키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7년(3골), 2008년(5골), 2009년(3골) 3시즌동안 어린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침착한 플레이로 찬사를 받은 그는 마침내 2009년 7월 영국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부터 정식 입단 제의를 받게 되고 K리그에서 유럽 무대로 이적시 사상 최고의 이적료인 44억을 소속팀 FC서울에 안긴 체 연봉 15억으로 볼턴으로 전격 이적한다. 그의 나이 불과 21살이였는데 이는 한국인 최연소 프리미어리거였다. 볼턴에서의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였다. 첫 시즌 34경기에서 4골을 넣으면서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에도 3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소속팀의 강등과 정강이뼈 골절 등으로 인해 한동안 그라운드에 뛸 수 없었던 그는 최근 들어 다시 살아나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팀 내에서도 그가 맡는 비중은 매우 크다.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2골을 넣으면서 한국의 16강진출에 기여한 그는 이번 지역예선에서 부상 등으로 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은 대표팀에서는 꼭 필요하다. 올 여름 브라질에서 이청용이 지난 월드컵 때와 같은 맹활약을 펼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그는 현재 대표팀의 주장이다.
이청용
대표팀의 옥석 가리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몇몇 해외파에만 의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내파들의 활용도 역시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최근 미국 전지훈련 중인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 나설 선수들을 추려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홍명보 감독 역시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 최고의 월드컵 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 때 해외파와 국내파간의 갈등으로 인해 대표팀의 분열이 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지만 지금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집중해야 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포지션별로 어떤 선수들이 경쟁 중이며 어떤 선수가 월드컵으로 가게 될 것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가장 관심사인 원톱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과 그리고 또 다른 해외파로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로 완전 이적에 성공한 지동원(23, FW, 아우크스부르크)이 합류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에 박주영이 경기 감각을 되찾아 살아난다면 합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윙포워드로 이근호와 손흥민, 이청용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는 구자철과 김보경, 기성용 등 기존 해외파 외에 카타르리그에서 뛰고 있는 남태희(23, MF, 레퀴야)와 국내파 박종우(25, MF, 부산)와 이명주(24, MF, 포항), 한국영(24, MF, 쇼난 벨마레) 등도 중용될 확률이 높다. 하대성(29, MF, 베이징)과 윤일록(22, MF, 서울), 고요한(26, MF, 서울), 김민우(24, MF, 사간 도스), 염기훈(31, MF, 수원) 등도 경쟁 중이지만 이들 누가 브라질로 갈 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수비는 아직까지 훌륭한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다. 90년대 전설 된 수비수 현 대표팀 감독 홍명보의 뒤를 이을 만한 대목이 아직까지 절실한 상태다. 수비 진영은 예선 기간 내내 너무 많은 선수들이 교체되면서 아직까지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먼저 중앙 수비수에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의 홍정호(25, MF, 아우크스부르크), 2013AFC챔피언스리그에서 광저우를 우승으로 이끈 김영권(24, DF, 광저우), 어느덧 대표팀 최고참이 된 곽태휘(33, DF, 알 히랄, 예선 1골)와 김기희(25, DF, 전북 현대) 등이 나서고 왼쪽 풀백에 김진수(22, DF, 니가타)와 해외파 박주호(27, DF, 마인츠05), 윤석영(24, DF, 퀸즈파크레인저스)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 풀백에는 이용(28, DF, 울산)과 박진포(27, DF, 포항), 김창수(29, DF, 가시와 레이솔), 여기에 경험 많은 차두리(34, DF, 서울)의 가세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골기퍼 경쟁도 눈에 띈다. 최근 주전 골기퍼 정성룡(29, GK, 수원)이 부진한 플레이를 보이는 사이 김승규(24, GK, 울산)가 가세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홍정호
이제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은 많지 않다. 홍명보 감독의 머리 속에 어쩌면 월드컵에 나설 23인의 태극 전사들의 밑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16강 진출, 나아가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탄탄한 경기력이 뒷받침 되야한다는 것이다. 국내파로 나선 미국 전지훈련에서 최근 멕시코에 0:4 완패를 당하는 등 부진한 경기력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 월드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홍명보 감독은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시험해 본 것 뿐이니까..핑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겐 실력있는 해외파 전원이 빠진 1.5군에 불과했기 때문에 단순히 1경기 대패로 한국의 본선 무대 향방을 좌우하기엔 이르다. 시간은 많지 않지만 과거 그들이 걸어온 월드컵 역사를 되집어 본다면 결과론적이긴 하겠지만 경기 내용이야 어찌됐던 본선에서의 성적이 더 중요하게 작용될 것이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함께 H조에 편성됐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이 만나온 국가들을 생각해 본다면 최상의 조 추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벨기에와 러시아는 12년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게 됐고 알제리 역시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 24년만에 본선에 오른만큼 월드컵 경험만 놓고 본다면 H조 탑은 바로 한국이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대체적으로 어린 한국 대표팀에서 박지성과 같이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현 대표팀의 어린 선수들은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같은 조의 벨기에나 러시아의 선수들의 경험을 따진다면 한국이 이들보다는 더 낫다고 평가된다. 한국의 첫 상대는 러시아다. 지난 해 11월 두바이에서 가진 평가전에서 1:2로 역전패 당하긴 했지만 한국으로써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상대다. 첫 경기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러시아전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4년 전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16강에 오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상대 알제리 역시 만만히 볼 수는 없다. 아직 본선에서 맞붙은 적은 없지만 짜임새 있는 조직력으로 예선에서 탄탄한 전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는 것도 부담스럽다. 벨기에와는 월드컵에서 인연이 깊다. 90년이탈리아월드컵 당시 첫 경기에서 0:2로 완패했당했지만 98년프랑스월드컵에서는 유상철의 동점골로 1:1로 비긴 역사를 갖고 있다. 황금 세대의 벨기에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경험 면에도 그렇지만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2:3으로 패했고 최근 평가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전력은 다른 탑 시드 국가만 못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 최초 월드컵 4강진출..한국은 지난 2002한일월드컵을 전,후로 큰 발전을 이뤘다. 2010년남아공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진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객관적 전력이나 전술상 한국이 세계 축구 강호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명보 감독은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본선에 참가하는 32개국 모두의 입장은 동등해졌다. 어느 나라가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상대 전력을 분석하느냐에 따라 본선에서의 성적이 결정 될 것이다. 한국이 과거 실패한 월드컵 돌아본다면 그들은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진정한 승부는 지금부터다. 12년 전 한국 팬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월드컵 통해 만들어냈고 또 기억하고 있다.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처럼 상대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분명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지난 월드컵을 통해 상징이 된 한국식 압박 축구가 다시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과연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이 지역예선의 부진을 털어내고 이번 여름 브라질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을 지..그들의 포효를 지켜보자!
한국대표팀
한국 대표팀 최근 명단 (VS 미국 2014.02.02)
GK :
정성룡 (29, 수원/한국)
김승규 (24, 울산/한국)
이범영 (25. 부산/한국)
DF :
강민수 (28, 울산/한국)
이용 (28, 울산/한국)
김진수 (22, 알비렉스 니가타/일본)
김기희 (25, 전북/한국)
김대호 (26, 포항/한국)
박진포 (27, 성남/한국)
김주영 (26, 서울/한국)
이지남 (30, 대구/한국)
MF :
염기훈 (31, 수원/한국)
이호 (30, 상무/한국)
하대성 (29, 베이징 궈안/중국)
이승기 (26, 전북/한국)
고요한 (26, 서울/한국)
박종우 (25, 부산/한국)
이명주 (24, 포항/한국)
김민우 (24, 사간 도스/일본)
송진형 (27, 제주/한국)
김태환 (25. 성남/한국)
FW :
이근호 (29, 상무/한국)
김신욱 (26, 울산/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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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주전 명단 (추가)
GK :
김영광 (31, 울산/한국)
김용대 (35, 서울/한국)
DF :
곽태휘 (33, 알 히랄/사우디아라비아)
홍정호 (25, 아우크스부르크/독일)
김영권 (24,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박주호 (27, 마인츠05/독일)
신광훈 (27, 포항/한국)
장현수 (23, 광저우 R&F/중국)
황석호 (25, 산프레체 히로시마/일본)
김창수 (29, 가시와 레이솔/일본)
윤석영 (24, 퀸즈 파크 레인저스/잉글랜드)
김치우 (31, 서울/한국)
MF :
기성용 (25, 선더랜드/잉글랜드)
이청용 (26, 볼턴/잉글랜드) <C>
김보경 (25, 카디프 시티/웨일즈)
남태희 (23, 레퀴야/카타르)
윤일록 (22, 서울/한국)
구자철 (25, 마인츠05/독일)
한국영 (24, 쇼난 벨마레/일본)
FW :
손흥민 (22, 바이엘 레버쿠젠/독일)
지동원 (23, 아우크스부르크/독일)
박주영 (29, 왓포드/잉글랜드)
이동국 (35, 전북/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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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가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앞 선 2경기를 모두 승리해서 16강 진출을 확정 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1승 1패, or 1승 1무) 득실을 따져야하는데, 우리가 득점을 많이 하는 팀이 아니므로 여기서도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은 점을 봤을 때, 벨기에 전에서 진다면 진출이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됨 정말 최상의 시나리오는 1승 2무이라고 생각하네요. 홍명보 감독이 부임한지는 1년도 안되었고 바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은 기대 하기 힘들지 않을까 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