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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
이정숙 지음
출처: 북 코스모스
▣ Short Summary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과 대화가 안 된다고 속상해하고 자식은 부모와 대화가 안 통한다고 불평한다.
『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에서는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세대차에 따른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상황별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책(부모편)에서는 자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가족 구성상 강자인 부모가 약자인 자녀를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상황별로 제시한다. 『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은 부모편과 자녀편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부모 자식이 책을 서로 바꿔 읽는다면, 상대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른 자녀와의 대화 장애물 넘기
1. 공부에 관해서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모도 누군가가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막연하게 “공부 잘해야 출세하니까.”라든가 “공부 잘해야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얻어 잘살 수 있으니까.”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도 박사 실업자가 수두룩하며 의사나 변호사라고 해서 다 잘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려면 자식에게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 그 이유 정도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부모는 여전히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식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만 생각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고생 고생해 자수성가했으니 자식들은 당연히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가 왜 자기가 잠시 쉬는 꼴도 보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하라고 닦달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차가 부모 자식간 대화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다. 부모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자식이 자라는 환경 차를 인정해야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오랜 신념대로 입만 열면 자식에게 무조건 공부하라고 말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끼리 솔직히 말해서 학창 시절에 지금의 자녀들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우리 때는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사정이 못 돼서 그런 거지요. 학교 다녀오면 농사일 거들어야지, 집안일 도와야지, 공부만 하는 것은 사치였지요.” 이와 같은 변명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신의 학창 시절이 지금의 당신 자녀처럼 여유 있는 상황이었을지라도 당신 자신이 자식에게 요구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렸을 보장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보장을 할 수 없어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를 외치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가끔 우리 작은아이가 운영하는 ‘공부기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자식들이 부모와 공부 때문에 빚는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연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공부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조금만 쉬고 있으면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달려와 “지금 공부 안 하고 뭐해?” 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가 한눈팔지 않도록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아들의 공부방을 지키며 뜨개질을 했다는 어머니를 최고의 어머니로 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으면 아이는 공부하다가 잠시 음악을 듣거나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겠는가? 어머니가 곁에서 뜨개질을 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아이는 굳이 어머니가 지켜보지 않았어도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아이일 뿐 공부 못하던 아이가 단지 어머니가 지켜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항상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직장생활도 그 때문에 따분한 것이다. 그러나 여가 시간에 짬짬이 즐기는 취미생활을 보면 땀을 뻘뻘 흘리거나 힘에 부치는 일도 기꺼이 한다. 억지로 하는 일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차이다. 정말로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자식이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 자식에게는 결과에만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때로는 아이와 약속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예상을 뒤엎고 “성적이 좀 내려갔다고 죽고 사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 시간에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게 더 낫지 않겠니?”라고 말하며 어깨를 토닥여보라. 그 아이는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다.
2. 교우 관계에 관해서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귈 때
부모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길러도 자식이 나쁜 친구 꼬임에 빠지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겉모습이 초라한 아이를 친구라고 소개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아이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이지? 공부는 잘하니? 가족들은 어떻게 돼? 집이 어디야? 몇 평에 살아?” 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부모가 친구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자녀는 부모가 자기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해 친구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쉽게 정의감에 불타기 때문에 강자보다 약자 편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기 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기면 자녀는 부모를 강자로 보고 친구를 약자로 여겨 거의 본능적으로 부모를 공격하고 친구를 옹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친구 또한 부모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를 고맙게 생각해 둘 사이의 친밀감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데려온 친구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드러내놓고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는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제삼자가 비난할 때 불타는 전의가 살아나는 법이다. 자녀를 나쁜 친구와 격리시키고 싶다면 오히려 자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고도 치밀한 작전을 짜야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녀가 그 친구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령 다니는 학원을 바꾸거나 새로운 취미를 갖게 해 그 친구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고 다른 데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중학교 때 미국에 온 이후 처음에는 영어가 서툴러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목과 귀에 쇠사슬을 건 흑인 아이들과 사귀었고 걸음걸이마저 뒤뚱거리는 흑인 특유의 걸음걸이로 바뀌었다. 그때 나 역시 아이들이 친구를 잘못 사귀어 문제아가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던 흑인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갈비를 구워 먹이며 더 극진하게 대해주었다. 그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번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마미라고 부르며 따랐고, 우리 집이 이사할 때면 제일 먼저 달려와 발 벗고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영어가 익숙해지면서 고등반에 들어가게 돼 처음에 사귀던 흑인 아이들과는 저절로 간격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그때 만난 흑인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판단력이 있다. 아무리 친해도 자라온 문화가 다르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가 수선을 피우며 억지로 떼어놓으려 하면 더 오래 붙어 다닐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또래 앞에서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의 체면과 자존심 역시 부모의 것만큼 중요하다. 부모가 수선을 피우면 아이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해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따라서 당신이 진정으로 자녀가 나쁜 친구와 헤어지기를 원할수록 자녀의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녀가 다른 곳에 흥미를 갖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
3. 행동에 관해서
생활습관이 나쁠 때
“잠자리가 그게 뭐야? 일어나서 정리 좀 하면 어디가 덧나니?” “왜 그렇게 소리를 내며 먹어?” “야만스럽게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옷을 뒤집어서 던져놓으면 어떡해?” “밥을 먹었으면 빈 그릇은 개수통에 넣어야지. 엄마가 네 종이냐?” “걸을 때 살살 걸으면 좋잖아.” “왜 그렇게 문을 쾅쾅 닫아?” 등 부모가 가르쳐야 할 바른 생활습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부모인 당신이 항상 ‘이 애가 잘못하는 것은 없나?’하는 감시의 눈으로 보며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자녀의 좋은 생활 습관을 기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지적들이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려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습관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평생 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등의 책이 인기를 모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녀의 습관은 어려서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 부모가 선물을 사주면 고마워하는 일, 부모가 심부름을 시키면 싫더라도 해야 하는 것, 자기 방은 스스로 정리하는 것 등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모두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태도다. 이러한 것들을 미리부터 가르치지 않고 아이를 향해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라고.” 하며 고함을 쳐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생활습관은 잔소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섯 살 이전에 엄격하게 지키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녀가 이미 초•중•고등학생쯤 되었다면 부모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미 굳어진 나쁜 습관을 고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자란 다음에는 나쁜 습관이 눈에 거슬려도 일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 나이쯤 되면 자녀가 만약 잠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치약을 사용한 후 뚜껑도 닫지 않으며, 실내에서 쿵쾅거리며 걷고, 어른들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면 잘못된 모든 습관을 한꺼번에 고치라고 주문할 것이 아니라 한 가지씩 고치도록 권해야 한다. 한 가지씩 고치라고 해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고 일어난 자리가 그게 뭐니?” 라고 감정적으로 말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자녀의 나쁜 습관을 바로잡으려면 자녀와 마주 앉아 진지하게 “엄마가 네 대신 침대 정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그 일 하나만 하면 별것 아니지만 집안일이 많아서 네 뒤치다꺼리 하나만 더 보태도 힘겹단다. 너는 잠깐만 시간을 내어 그 일을 하면 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단다.”라고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 자녀 스스로 자신의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설득해야 한다. 자아가 굳어진 다음에는 자발적인 행동으로만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약속을 어겼을 때
아이들은 잘못을 저질렀건 그렇지 않았건 부모에게 야단을 맞으면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며 싹싹 빈다. 그러나 돌아서면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 싶게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내 입이 닳지 닳아.”하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매번 비슷하다. “양말 좀 뒤집어서 벗어놓지 마라.” “자고 일어나면 이불 좀 개라.” “옷을 제자리에 걸어라.” “가방 좀 아무 데나 두지 마라.”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라.” “공부할 때 이어폰 좀 꽂지 마라.” “그 친구 좀 그만 만나라.” 심지어 “담배 피우지 마라.” 등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 자녀에게 이와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면 당신에게는 부모의 권위가 없다는 증거다. 만약 당신이 권위를 가진 부모라면 자식이 당신과의 약속을 반복해서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와의 약속을 잘 지키게 하려면 자식의 세세한 잘못에 대해 “왜 그러니?”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 아니라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쳐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가 말로는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치며 협박을 하지만 돌아서면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아 아이들이 부모 말을 우습게 여기도록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식들은 부모와의 약속을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화가 나서 불쑥 꺼낸 말일지라도 자식에게 이러이러한 벌을 주겠다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약속대로 벌을 주어야 한다. 대신 부모도 두 번 다시 같은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고쳐지지 않으면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큰 약속도 어겨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신뢰를 잃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들이 절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무섭게 벌을 준다. 사소한 약속을 어겨도 그 정도에 따라 용돈을 줄이고 방과 후 외출을 일주일 또는 한 달간 금지시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목욕탕에 가두거나 밥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끝낸다. 그 때문에 자식들이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보다 학원에 빠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 “알았으니 지금은 학원에 가라.”라고 말함으로써 아이들이 공부만 하면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제 만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무시해버리고 학과 공부만 잘해서 성공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식이 부모와의 약속을 잘 지키게 하려면 부모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기 자신은 자식들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아이들에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벌을 주면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자기는 생전 약속을 안 지키면서.’라며 비웃게 돼 부모 말을 우습게 여기게 된다. 따라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런 후에 자식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하게 야단을 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말하는 방법에 관해서
부모에게 털어놓기 싫어할 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도 부모에게 시시콜콜 다 털어놓던 자녀들도 사춘기만 지나면 큰일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어버린다. 부모는 자식들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왜 말 안 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라고 꼬치꼬치 묻지만 아이는 간단하게 “별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그런 가정이 많으면 TV 공익 광고에서 집에 들어와 부모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아들과 대화를 트려고 어머니가 컴퓨터를 배워 컴퓨터로 대화를 청하는 내용을 방송했겠는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자식들은 머리가 커질수록 부모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의 원인 대부분은 부모에게 있다. 부모가 자녀와 대화만 시작하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훈계나 꾸지람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점을 주의하지 않는 한 자식들은 부모와 대화하기가 싫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됨으로써 큰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 그 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아들과 거의 매일 한 시간씩 국제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실 대화 내용은 국제 전화 사용료를 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 시시껄렁한 것들이어서 전화비가 아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전화를 자주 하는 이유는 그처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식들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를 알면 ‘아이들의 학과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비행을 저지르면 어떡하나?’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국에서 따로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마약을 복용할거라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나의 이러한 신념을 뒷받침하듯 얼마 전에는 이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발표되었다. 일본 베네세 교육연구소가 2004년 봄 초•중•고등학생 각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력 테스트와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위권 학생일수록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매일 부모로부터 “공부해라.”라는 말을 듣는 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자녀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며, 부모라고 해서 자식 마음을 다 헤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조차 정작 대화다운 대화는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부모들은 자식들이 부모와 말하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부모 자신이 자식에게 말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식들이 왜 그런지는 간단하게 입장을 바꿔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많은 어머니들이 친정어머니와는 티격태격해도 대화가 즐거운데 시어머니하고 말하려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난 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당신 자식이 부모와 대화하기 싫은 이유는 당신이 시어머니에게서 받는 느낌을 당신에게서 받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대화를 쉽게 나누지 못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꼬치꼬치 캐물으면 듣기 싫듯 자식도 부모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니?”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라고 취조하듯 캐물으면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와 대화하기를 피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부모가 자녀가 말할 때 중간에 끼어들면서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렇지.” 와 같은 말로 자녀의 말을 평가하거나 비난하기 때문이다. 자녀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자녀의 말이 조금 거슬려도 성급하게 대응하지 말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들어주어야 한다. 자녀가 말하는 도중에 말허리를 끊거나 말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반박하면 자녀는 절대 부모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지 않는다.
5. 언어 습관에 관해서
건방진 태도로 말할 때
아이들이 성장하면 비록 부모라 하더라도 순간순간 ‘이런 건방진 것 같으니라고.’하는 생각이 들만큼 괘씸할 때가 있다. 특히 자식이 너무 속을 썩여 한 대 때려주려고 하는데 어느새 굵은 팔뚝으로 자신의 손을 붙잡기라도 하면 괘씸하고 분할 것이다. 그 순간만은 어떤 부모라도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제까짓게 감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그런 태도를 보자마자 분하다며 “이 놈이 부모를 뭘로 보고.”라고 소리를 지르면 자식은 부모를 더 우습게 볼 수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부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면 자식은 더 기세가 등등해진다. 또한 이미 부모가 자신의 태도를 건방지다고 규정해버렸기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때리려면 억센 팔에 제지를 당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 안 된다.
나는 자식을 잘 기르는 비결은 부모의 끝없는 인내심과 냉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식이 부모에게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부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식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실망할 만한 요인들은 너무나 많다. 몇 가지 예만 들더라도 부모가 자식 앞에서 자주 부부싸움을 하며 서로간의 시시콜콜한 치부까지 다 드러냈을 때, 또는 평소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의 등 뒤에서 험담을 했을 때 등 아주 많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먼 옛날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식을 목침 위에 올라서게 한 후 회초리를 치며 엄격하게 길렀을 때는 자식들이 감히 부모를 얕보지 못했다. 그때의 부모들에게는 자식에게 매를 때리는 명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은 글공부를 게을리 하며 말만 많은 이들을 나무라며 “너는 꾀꼬리 노릇이나 하려고 입으로만 글을 외우느냐?”하며 엄하게 꾸짖어 아들이 글공부에 정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뚜렷한 명분 없이 “내가 너만 했을 때는….”이라는 말로 자식 앞에서 푸념을 늘어놓거나, 자식 앞에서 부주의한 부부싸움을 하며 치부를 드러내는 일 등을 서슴지 않아 자식이 부모 말을 우습게 여긴다. 부모가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자식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해도 자식은 부모를 무시하게 된다. 부모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자식에게 “왜 말 안해? 화났어?”라며 눈치를 보며 말하면 자식은 부모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내가 함부로 대해서 되는구나.”라고 판단하기 쉽다. 자식이 건방진 태도를 보여 ‘다른 집 애들은 부모에게 그렇게 잘하는데 이놈은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태도로 나와? 내가 널 더 이상 키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싶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꾹 참고 아주 냉정한 자세로 이 문제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러려면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는 자식의 태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밖으로 따로 불러내 정중하게 주의를 주는 것이 좋다. 밖으로 불러내야 하는 이유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면 서로 공평한 상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은 이미 부모의 권위가 고정된 장소여서 자식들에게는 불리한 장소다. 게다가 집에서 말하면 대체로 부모는 크고 높은 의자에 앉고 자식은 좁고 낮은 의자에 앉아 말할 가능성이 높다. 그 자체가 불공평하기 때문에 자식은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그런 다음 자식의 건방진 태도를 절대 나무라지 말고 자식의 태도가 부모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를 말해야 한다. “나는 요즘 네 태도를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네가 다 컸는지 나를 부모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네가 눈을 부릅뜨고 말하면 내가 너한테 얻어맞을 것 같기도 하단다.” 등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많다. 열심히 듣건 말건 부모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자식의 가슴에 여운을 남겨 시간이 좀 지나면 자녀 스스로 태도를 바꿀 것이다.
6. 부모에게 하는 도전에 관해서
부모에게 대들 때
부모는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추운데 왜 목도리를 안 해?” “비 오는데 다른 신발로 바꿔 신어라.” “머리 모양이 그게 뭐냐?” “그런 건 먹지 마라.” “아침을 왜 안 먹니?” 등 부모가 자녀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말은 끝도 없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 세대가 성장할 때와 문화 코드가 많이 다르다. 부모 세대에는 부모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해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잘 대든다. 어찌 보면 버릇없고 안하무인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랄 때는 어른 눈치 보며 컸는데, 요즘은 자식 눈치 보며 살아야 하니 뭐가 잘못된 거 아냐.”라며 한숨을 내쉬는 부모가 많다.
완고하고 권위적이었던 자신의 부모, 먹고살기에만 급급했던 그런 부모를 닮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자식들이 대화를 기피해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구세대 부모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하소연도 많이 듣는다. 그리고 공부는 뒷전에 두고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TV 앞을 지키는 애들에게 화를 낼 때 스스로 비참한 생각이 든다는 부모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미안한 말이지만 자식들이 아니라 부모 자신이다. 부모는 자식은 부모 말이 옳지 않아도 잘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기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한다며 크게 화를 낸다. 부모는 자신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버릇없이 굴 수 있니?” “누굴 닮아서 그러니?” 등 문제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말로 윽박지른다.
그러나 어린 아이도 자기 의견은 있다. 자기가 원하는 옷과 신발이 따로 있고 먹고 싶은 음식도 따로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부모의 타당성 없는 지시를 받으면 대든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타당성을 갖추면 언제든지 대화에 나서는 합리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화 코드가 다른 신세대 자식들과 ‘대화트기’에 성공해 매스컴을 타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꼬불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만화책 출간에도 성공해 매스컴을 장식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일본으로 수출까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생이 요리사 자격증을 따 일찍부터 요리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며,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시달리는 동안 중고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단편 영화를 만들어 단편영화제에 출품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을 볼 때마다 자녀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장래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면 훨씬 부모 자녀의 사이가 매끄러워질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요즘 부모들은 외형적으로는 자녀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더 자녀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녀가 부모에게 대드는 이유도 부모의 말이 비논리적이며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그러게 놀면서 언제 공부할 거니?”라고 말하면 자식의 미래보다 부모 자신의 체면 때문에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드는 이유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지시가 터무니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이 대들면 좀 억울하더라도 흥분해서 막말까지 해버릴 것이 아니라 먼저 입을 다무는 것이 좋다.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 차분하게 마주 앉아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드는 것은 습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대들었을 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조치란 자식이 부모에게 대든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면 깨끗이 사과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이 부모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다짐받는 일이다.
7. 부모의 염려 때문에 겪는 고민에 관해서
자녀와 같이 할 시간이 적은 것에 대한 염려
요즘은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다. 맞벌이를 하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하거나 이혼으로 가계를 도맡아야 하는 집도 많아졌다. 그럴 때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해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맞벌이 부부의 자녀와 편부모 자녀를 한데 묶어 결손 가정의 자녀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부모와 자녀가 떨어져 있는 것을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녀와 떨어져 지내는 부모가 많아진 데다 맞벌이나 편부모 자녀 중에도 부모가 일일이 보살피는 자녀보다 훨씬 더 잘 자란 경우가 많아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아이와 같이 할 수 없음을 지나치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너무 미안해하면 자식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게 되거나 필요 이상의 용돈을 주게 되어 아이의 버릇만 나빠지게 한다.
나 역시 당시로서는 드문 맞벌이였지만 나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당당했다. 나는 회사 가지말고 자기랑 놀자는 아들을 붙들어 앉혀놓고는 “엄마도 너희들과 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엄마가 맡은 일을 해야 한단다. 엄마는 지금 놀러 나가는 것이 아니야. 엄마도 나가서 열심히 일하니 너희들도 집에 있는 동안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을 돌보러 온 아주머니가 “저렇게 독한 엄마는 드물 거야.”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아이들을 직접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돈이 더 필요하다거나 장난감이 더 많아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나쁜 짓 하려고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일해서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아 우리 아이 둘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친하다. 아마도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기 때문에 둘이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의 믿음은 헛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 애들에 비해 자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잘 자랐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 곁을 지킬 수 없다면 아이에게 미안해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나이가 어리면 못 알아들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 경험에 의하면 어린 아이들도 어머니가 진심으로 형편을 설명해주면 잘 알아듣는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밖에 나가는 것을 미안해하면 아이들은 어머니를 다른 어머니들과 비교해 어머니의 부재를 죄악시한다. 그 때문에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려고 자주 아프거나 울기도 한다. 어린아이들도 생존의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약점을 이용하려고 드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의를 가지고 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자식 곁에 항상 같이 붙어 있는 어머니가 반드시 자식을 잘 기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이 머무는 시간이 부족한 어머니가 자녀와 같이 있는 동안만큼은 성심성의껏 놀아주어 더 잘 키울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이 자녀를 실망시킬 것에 대한 염려
부모가 자식에게 실망하듯 자식들도 부모에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조금만 실망해도 드러내놓고 화를 낼 수 있지만 자식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실망시켜놓고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 자식간에도 잘못에 대해서는 상대편이 납득할 수 있게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식들 앞에서 부주의하게 배우자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부부싸움을 했거나, 부부간에 사소한 일로 다투며 서를 헐뜯었다면 자식에게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으로는 부모를 우습게 여기고 겉으로는 표내지 않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또한 자녀에게 항상 당당하게 설명을 자해야 한다. “나는 너만할 때 공부를 잘했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라고 부르짖던 아버지가 갑자기 실직을 당했을 때도 자식은 아버지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던 아버지가 좌절하는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사실 머리가 커진 자식들뿐만 아니라 서너 살의 어린 자식들도 부모의 태도에 실망할 일은 많다. 자식들에게 “공부해라.” “책 좀 읽어라.”와 같은 성화를 부리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자식들은 부모에게 실망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부모가 자식을 실망시킬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부모는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자식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 자식이 마음으로부터 부모를 존경할 수 없게 만든다.
자식들은 부모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부모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기보다 속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기 쉽다. 그 때문에 대부분 부모의 잘못을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상상을 보태 더 나쁜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한 오해가 쌓이면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불편해진다. 따라서 부모도 잘못을 저지르면 자식에게 그 경위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식과의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다. 무엇보다 자식이 부모에게 실망하는 일을 줄이려면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는 신이 아니라 자식들과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식에게 현재의 가정 형편과 부모가 처한 상황을 자주 털어놓아야 한다. 자식이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물으면 “너는 알 거 없다. 공부나 해라.”라고 말해버리면 자식은 부모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부모에게 조금만 실망해도 더 나쁜 쪽으로 해석하기 쉽다. 따라서 자식들에게 현실 문제를 어느 정도는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점과 나쁜 기호 식품도 일단 습관이 되면 끊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기 어려워 어른도 가끔 실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등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나는 자식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가급적 즉각 사과를 한다. 그리고 자식에게 사과할 때는 말의 내용은 물론 목소리까지 신경을 쓴다.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사과할 때 말하기를 주저하는 느낌을 주며 말하거나 목에 힘을 주거나 딱딱한 어조로 말하면 힘이 약한 상대는 아무리 정중한 사과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통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자녀가 현실을 직시하고 인간의 잘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가 자녀를 실망시켰을 때 즉각 사과해야 한다.
자녀와 대화가 통하는 부모의 말하기 전략 12
- 전략 1 자식과 항상 친구처럼 말하지 말라
자식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면 자식이 부모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부모의 권위는 자식이 아무리 귀여워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할 때 생긴다. 말다툼을 벌이지 않는 범위에서 부모와 자식간에는 항상 알맞은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 전략 2 자녀에게 충고하기 전에 자녀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려라
정말로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들도 조금만 자라면 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독자적인 개성과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평소에 자식의 고민을 포용해주었다면 자식 스스로 정말로 부모의 충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당신에게 자문할 것이다.
- 전략 3 자녀에게 무조건 지시하지 말라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존재다. 타고난 능력과 살아가는 환경도 전혀 다르다. 하고 싶은 일도, 인생의 목표도 같지 않다. 아동학자 로렌스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희망을 억지로 떠맡기는 것이 자녀 교육 실패의 원인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가진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그대로 존중해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 전략 4 자녀가 원하기 전에 미리 챙기지 말라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자녀 교육에도 적용된다. 부모의 과잉 친절은 마치 잘 자라는 식물에 비료를 너무 많이 줘 식물을 시들게 하는 것과 같다. “자식에게 밧줄은 던져주되 스스로 매달리게 하라.” “자신의 주스는 자신이 젓도록 하라.”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 전략 5 부모 중 한쪽을 욕하지 말라
자식들 앞에서 함부로 배우자의 욕을 하는 부모가 많다. 최근에는 이혼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혼 그 자체보다는 부모의 헐뜯기가 더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을 명심하라. 부부끼리는 사이가 나빠도 자식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고 자식들 앞에서는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자식들에게 확대시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자식은 모든 사람을 불신하는 불안한 성인으로 자랄 것이다.
- 전략 6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말해라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말투와 태도, 행동거지를 그대로 따라한다. 부모가 부정적으로 말하면 자식도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모가 긍정적으로 말하면 자식도 긍정적으로 말한다. 당신이 정말로 자식을 훌륭하게 기르고 싶다면 부모인 당신이 먼저 긍정적이어야 한다.
- 전략 7 자식 때문에 희생한다고 공치사하지 말라
자식 때문에 희생한다는 사실을 생색낼 만큼 인색한 부모라면 차라리 자식을 위한 희생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너에게 해준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그 보상 심리 때문에 자녀가 갖고 있는 개성이나 관심, 좋아하는 일에 대한 배려에 인색해진다. 자신의 능력을 초과해 뒷바라지하는 것은 부모 자신의 선택일 뿐 자식에게 공치사할 일은 아니다.
- 전략 8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말해라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기를 때 어떤 사람으로 기르겠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지 않고 그저 남들이 좋다면 쫓아다니며 갈팡질팡한다. 부모가 변덕이 심하면 자식들은 사람 눈치 보는 것만 발달해 야비한 성인으로 자라기 쉽다. 또한 가치관에 혼란을 일으켜 선악의 구분도 불분명해진다.
- 전략 9 공평하게 말해라
같은 손가락을 깨물어도 유난히 아픈 손가락은 분명히 있다. 즉 정이 더 가는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약간의 편애는 별 문제 없지만 심한 편애를 지닌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항상 누군가와 비교당한 상처 때문에 나보다 나은 사람은 기어이 짓밟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갖게 된다. 또한 남이 칭찬을 해줘도 못 믿고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경향이 생긴다.
- 전략 10 자녀의 입을 봉하지 말고 들어주라
대부분의 부모는 무조건 자식과 대화를 나누면 잘 통할 거라고 착각한다. 부모가 자식과 대화를 나누며 자식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을 정말로 잘 기르고 싶다면 자식 걱정을 핑계로 자식을 윽박지르거나 부담을 줄 것이 아니라 자식의 생각을 열심히 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심어줘서 더 좋은 방향으로, 더 빨리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언자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 전략 11 사랑은 절제해라
부모의 지나친 사랑은 자식은 물론 출가한 자녀의 배우자까지 힘들게 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지나치면 자식을 부모 마음대로 재단해 자식의 잠재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며, 자식이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가로막아 타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이 우러나올 때 마음껏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그 사랑을 절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잘 기르셨어요?”하고 묻는 어머니들에게 “사랑을 절제하면 됩니다.”라고 답해준다.
- 전략 12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라
자식의 벤치마킹 제1의 대상은 부모다. 자식은 부모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주시한다. 그래서 부모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으면 금세 실망한다. 그러니 자식에게 정말 가르치고 싶은 일은 말보다는 실천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