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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57회
이극은 본래 공자 중이를 받들려고 했었는데, 중이가 사양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오가 넓은 땅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뜻을 따라 이오를 군위에 받들었다. 하지만 혜공은 즉위한 후 주겠다고 약속했던 땅을 조금도 주지 않았고, 괵사·여이생·극예 같은 측근들만 기용하고 선군의 옛 신하들은 모두 멀리하였다. 그래서 이극은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있었다.
또 혜공에게 秦나라에 성을 주라고 권한 것은 분명히 도리에 맞는 말이었는데, 극예가 도리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반박하니, 너무 억울했지만 혜공의 면전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런 기분으로 조문(朝門)을 나서니, 이극의 안색은 원망하는 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정부가 秦나라에 사신으로 가겠다고 자청하자, 극예 등은 그가 이극과 함께 어떤 음모를 꾸미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염탐하게 하였다. 비정부 역시 극예 등이 사람을 시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이극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秦나라로 떠나갔다.
이극은 비정부와 얘기를 나누어 보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비정부는 이미 도성을 떠난 후였다. 이극은 친히 비정부를 뒤쫓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극을 감시하던 자가 극예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극예는 혜공에게 가서 아뢰었다.
“이극은 주군께서 자신의 권력을 빼앗고 또 분양 땅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비정부가 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수레를 타고 뒤쫓아 갔습니다. 필시 그들이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평소에 듣건대, 이극은 중이와 친한 사이였으니, 주군을 옹립한 것도 그의 본의가 아니었을 겁니다. 만일 그들이 내응하고 중이가 외합(外合)한다면,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차라리 그에게 죽음을 내려 후환을 끊는 것이 좋습니다.”
혜공이 말했다.
“이극은 과인에게 공이 있는데, 이제 무슨 핑계로 그를 죽일 수 있겠소?”
“이극은 해제를 시해하고 또 탁자도 시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군의 유명을 받은 순식도 죽였으니, 그 죄가 큽니다. 그가 주군께서 입국하시도록 도운 것은 사사로운 공로이며, 두 주군을 시해한 죄를 벌하는 것은 공의(公義)입니다. 명군(明君)은 사사로운 공로로 인해 공의를 폐하지 않는 법입니다. 신이 주군의 명을 받들어 그를 토벌하겠습니다.”
“대부가 가서 처리하시오!”
극예가 이극의 집을 찾아가, 이극에게 말했다.
“晉侯의 명으로 왔소. 晉侯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아니었으면 과인은 군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니, 과인은 그대의 공을 잊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그대는 두 주군을 시해하고 한 대부를 죽였으니, 그대의 군주가 되기 어렵도다! 과인은 선군의 유명을 받들어, 감히 사사로운 공로로 인하여 대의를 폐할 수 없노라! 그대는 자결하라!’라고 하셨소.”
이극이 말했다.
“해제와 탁자를 폐하지 않았다면, 주군이 어떻게 군위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죄를 뒤집어씌우려면, 무슨 핑계인들 대지 못할 것인가? 신은 주군의 명을 잘 들었습니다!”
극예가 다시 핍박하자, 이극은 패검을 뽑아 들고 발을 구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원통하도다! 충성하고서도 죄를 얻었으니,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면 무슨 면목으로 순식을 볼 것인가!”
마침내 이극은 검으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극예가 돌아가 보고하자, 혜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염선이 시를 읊었다.
纔入夷吾身受兵 이제 막 이오를 입국시키고 죽음을 당했으니
當初何不死申生 당초에 왜 신생을 따라 죽지 않았던가?
方知中立非完策 비로소 중립이 온전한 계책이 아님을 알았으니
不及荀家有令名 순식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였다.
[제53회에, 우시가 ‘가예’라는 노래를 불러 의중을 떠보았을 때, 이극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말했었다.]
혜공이 이극을 죽이자, 많은 신하들이 불복하였다. 기거(祁舉)·공화·가화·추천 등은 모두 원망하는 말을 내뱉었다. 혜공이 그들을 죽이려 하자, 극예가 말했다.
“비정부가 지금 외국에 가 있는데, 많은 신하들을 죽이면, 그의 모반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므로 안 됩니다. 주군께서는 잠시 참으십시오.”
혜공이 말했다.
“진부인(秦夫人)이 과인에게 가군(賈君)을 잘 돌봐주고 여러 공자들을 모두 받아들이라고 부탁했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제56회에, 진목공의 부인 목희가 이오에게 서신을 보내 부탁했었다.]
극예가 말했다.
“공자들은 누구나 군위를 다툴 마음이 있을 것이니,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가군을 잘 돌봐주는 것은 진부인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 괜찮습니다.”
혜공은 가군을 만나러 갔다가, 가군의 미색이 아직 쇠하지 않은 것을 보고 홀연 음심이 동하여 가군에게 말했다.
“진부인께서 과인에게 가군을 기쁘게 해주라고 부탁하셨으니, 거절하지 마시오.”
혜공이 가군을 끌어안자, 궁인들은 모두 웃음을 참고 자리를 피했다. 가군은 혜공의 위세가 두려워 할 수 없이 명을 따랐다. 방사(房事)를 마치고, 가군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첩이 불행히도 선군을 섬기다가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이제 또 주군께 절개를 잃었습니다. 첩이 절개를 잃은 것은 애석할 것 없지만, 다만 세자 신생의 원한을 풀어주십시오. 그러면 첩이 진부인께 복명하여 절개를 잃은 죄를 속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39회에 보면, 진부인 즉 목희는 제강의 딸인데, 제강이 일찍 죽어 가군이 길렀다. 따라서 진부인은 가군의 딸이나 마찬가지이다. 신생 역시 제강의 아들이므로, 신생은 진부인의 동복 오라버니이다.]
혜공이 말했다.
“해제와 탁자가 모두 죽음을 당했으니, 선세자의 원한은 이미 풀린 것 아니오?”
가군이 말했다.
“세자의 시신은 아직 신성에 가매장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이장하여 묘를 바로 만들어주시고 시호를 내려, 원혼이나마 편안케 해주십시오. 이는 나라 사람들 역시 주군께 바라는 바입니다.”
혜공은 허락하고, 극예의 사촌동생 극걸(郤乞)에게 명하여 곡옥에 가서 좋은 곳을 택하여 개장하게 하였다. 그리고 태사(太史)로 하여금 시호를 의논하게 하여, 그 효경(孝敬)을 기려 시호를 ‘공세자(共世子)’라고 하였다. 또 호돌로 하여금 곡옥으로 가서 신생의 묘에 제사 지내게 하였다
한편, 극걸은 곡옥으로 가서, 옷과 이부자리, 관곽, 명기(冥器), 목우(木偶) 등을 따로 깔끔하게 제작하고, 신생의 시신을 발굴하였다. 얼굴색은 생전에 다름없었는데, 악취가 너무 심해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일꾼들은 모두 코를 막았지만 구토가 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명기’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빌려고 제물을 담아 태우는 종이 그릇이고, ‘목우’는 사후세계의 봉사자로서 시신과 함께 묻는 나무인형이다.]
극걸은 향을 피우고 재배하며 말했다.
“세자께서는 생전에 깨끗하셨는데 돌아가신 후에는 어찌 이렇게 깨끗하지 못하십니까? 이 불결함이 세자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자, 악취가 사라지고 기이한 향기가 났다. 다시 시신을 염하여 입관하고, 고원(高原)에 장례 지냈다. 곡옥 사람들은 성을 비워 둔 채 모두 장례에 참석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사흘 뒤 호돌이 제수용품을 가지고 와서, 혜공의 명으로 위패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묘지명을 ‘진공세자지묘(晉共世子之墓)’라고 하였다. 제사를 끝내고 호돌이 막 환국하려고 하는데, 홀연 깃발이 두 줄로 늘어서서 펄럭이는 가운데 창을 들고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겹겹이 한 무리의 수레를 호위하고 나타났다.
호돌은 누군지 몰라서 황급히 피하려고 했는데, 행렬 가운데서 수레 한 대가 다가왔다. 머리가 반백이고 단정하게 도포를 입고 손에 홀을 든 사람이 조용히 수레에서 내려와 호돌 앞에 와서 읍을 하고 말했다.
“세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 하시니, 국구께서는 저쪽으로 가시지요.”
호돌이 보니, 그는 태부 두원관이었다.
[제54회에, 신생이 자결하고 두원관은 붙잡혀 헌공에게 끌려갔는데, 끝까지 세자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헌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호돌은 정신이 황홀하여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잊고서, 물었다.
“세자는 어디 계시오?”
두원관이 뒤편의 큰 수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세자께서 타고 계신 수레입니다.”
호돌이 두원관을 따라 수레 앞으로 가서 보니, 세자 신생은 의관을 정제하고 검을 차고 있는데 완연한 생전의 모습이었다. 신생은 어자를 시켜 호돌을 수레에 태우게 하고 말했다.
“국구께서는 신생을 잊지 않으셨습니까?”
호돌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세자의 원통함에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어찌 세자를 잊겠습니까?”
신생이 말했다.
“상제께서 나의 인효(仁孝)를 가련히 여기시어, 나를 교산(喬山)의 주인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오가 가군께 무례한 짓을 행하여, 내가 그의 불결함을 미워하여 이장을 거절하려 하였으나, 백성들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秦侯가 아주 현명하다고 하니, 나는 晉을 秦에게 주고 秦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내 제사를 받들게 하려고 하는데, 국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돌이 대답하였다.
“세자께서 비록 晉侯를 미워하시더라도 晉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으며 또 晉의 선군들께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세자께서 동성(同姓)을 버리고 이성(異姓)에게서 제사를 받으려 하시는 것은, 인효의 덕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신생이 말했다.
“국구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미 상제께 다 아뢰었으니, 이제 다시 아뢰어야겠습니다. 국구께서는 이레만 더 머물러 주십시오. 신성(新城)의 서쪽 외진 곳에 무당이 한 사람 있는데, 내가 그에게 부탁하여 국구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두원관이 수레 아래에서 호돌을 부르며 말했다.
“국구께서는 이제 작별하셔야 합니다.”
두원관이 호돌을 붙잡아 수레 아래로 끌어내렸는데, 호돌은 발을 헛디뎌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 순간 군대와 수레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호돌은 신성의 관사에 누워 있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 곁에 있는 사람에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있나?”
“국구께서 제사를 마치고 축문을 불사르며 귀신과 작별하시다가, 홀연 자리에 쓰러지셨는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수레로 이곳까지 모시고 와서 쉬시게 하였습니다. 이제 다행히 별고 없으신 듯합니다.”
호돌은 자신이 꿈을 꾼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생각하였으나,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몸이 불편한 척하면서 관사에 계속 머물렀다.
이레째 되는 날 오후에, 문지기가 와서 보고하였다.
“성의 서쪽에 사는 무당이 와서 뵙기를 청합니다.”
호돌은 불러들이라 명하고, 미리 좌우를 물리치고서 기다렸다. 무당이 들어와 인사하고 말했다.
“저는 평소 귀신과 말을 통합니다. 지금 교산의 주인이 晉나라 옛 세자 신생인데, 국구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제 상제께 복명하여, 그 자신을 욕되게 하고 자손을 참수함으로써 그 죄를 벌함을 보일 뿐, 晉나라에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호돌이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벌을 받을 자가 누구인가?”
무당이 말했다.
“세자께서 다만 이렇게만 전하라는 명을 내리셨을 뿐이니, 저는 무슨 일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호돌은 좌우에 명하여 황금과 비단을 무당에게 수고비로 주게 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무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고 떠나갔다.
호돌은 귀국하여, 은밀히 비정부의 아들 비표(丕豹)를 불러 꿈 얘기를 하였다. 비표가 말했다.
“주군의 거동이 도리에 어긋나니, 필시 올바른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晉나라를 가질 사람은 중이가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지기가 와서 보고하였다.
“비대부께서 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셔서, 지금 조정에서 복명하고 있습니다.”
비표는 호돌을 작별하고 돌아갔다.
한편, 비정부는 秦나라 대부 냉지와 함께 예물을 수레 몇 대에 싣고서 晉나라로 돌아왔다. 강성 교외에 이르러 이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정부는 의심이 들어 秦나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아들 비표가 강성에 있음을 생각했다.
“내가 달아나면, 필시 표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비정부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해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교외로 나온 대부 공화를 만났다. 비정부가 이극이 죽게 된 연유를 묻자, 공화가 자세히 얘기했다. 비정부가 말했다.
“내가 지금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공화가 말했다.
“이극과 일을 함께 도모한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저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지금 죽음을 당한 사람은 이극 한 사람뿐이며,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 여파가 미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대는 秦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었으니, 모르는 척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두려워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정부는 그 말에 따라, 수레를 몰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비정부는 먼저 혜공에게 복명하고, 냉지를 인도하여 혜공을 알현하게 하였다. 냉지는 국서와 예물을 바쳤다. 혜공이 秦나라의 국서를 펼쳐 읽어 보았다.
晉과 秦은 사위와 장인의 관계이므로, 땅이 晉에 있어도 秦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대부들 역시 각기 자기 나라에 충성하는 것인데, 과인이 어찌 감히 반드시 땅을 얻으려함으로써 대부들의 의리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과인은 국경에 관해서 여이생·극예 두 대부와 얼굴을 맞대고 의논하고자 하니, 조만간에 秦으로 와서 과인을 위로해주기를 바랍니다.
서신 말미에 ‘땅문서를 돌려드립니다.’라는 한 줄이 더 쓰여 있었다. 혜공은 작은 것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예물이 많고 또 땅문서를 돌려받자 심중으로 아주 기뻐하면서, 여이생과 극예를 秦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다.
극예가 은밀히 여이생에게 말했다.
“이번에 秦나라에서 사신이 온 것은 호의가 아닌 것 같소. 많은 예물과 달콤한 말로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이오. 우리가 가면 필시 우리를 겁박하여 땅을 취하려 할 것이오.”
여이생이 말했다.
“나 역시 秦이 晉의 환심을 사려 왔다고 생각지 않소. 이는 필시 비정부가 이극의 죽음을 듣고서, 자신도 죽음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 秦과 함께 음모를 꾸며 秦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죽이게 하고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오,”
“비정부와 이극은 공을 함께 세워 일체가 된 사람들이므로, 이극이 죽었으니 비정부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소? 자금(子金; 여이생)의 요량이 옳소. 지금 신하들의 절반이 이극과 비정부의 도당들이니, 만약 비정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필시 동모한 자들이 있을 것이오. 일단 먼저 秦의 사신을 돌려보낸 다음에 서서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좋소.”
두 사람은 혜공에게 말하여, 먼저 냉지를 秦나라로 돌려보내면서 말했다.
“晉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니, 저희 두 사람은 좀 더 있다가 여가가 생기면 秦나라로 가겠습니다.”
냉지는 별 수 없이 秦나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