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밤 11시 1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11시 반에 장동 정미숙 위원을 픽업하기로 했기에 천천이 갔습니다.
11시 20분경에 정 위원 집 근처에 갔더니 초등학교쪽에서 보고 도로가에 나와있다고 연락을 해 큰 길로 나갔습니다.
정위원을 태우고 군민회관 앞으로 갔더니 벌써 많은 이들이 와 있었습니다.
5박 7일간의 연수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일정은 27일 프랑크푸르트로 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독일 항공사 노조의 파업으로 파리의 드골공항을 경유하는 일정으로 급작스럽게 변경되었습니다.
파리에서 베를린은 1, 2진으로 나눠서 가야했습니다.
문제는 촉박한 환승시간에 느려터진 입국절차로 스트레스를 좀 받고 딜레이를 계속하다 1시간 이상되어 출발했고
2진인 저희는 비교적 제시간에 출했더니 결국 베를린공항에서 1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해 곧장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었습니다.
같은 호텔에서 이틀을 묵는 유일한 경우였습니다.
다른 시설이나 서비스는 이용하지 못했지만 조식은 가장 좋았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베를린의 통일과정을 포함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녔습니다.
독일분단과 통일의 생생한 현장인 베를린장벽을 포함해서 여러곳을 다녔습니다.
베를린장벽에서 "평화를 외치다, 태극기 휘날리며"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동베를린과서베를린을 오가며 통일독일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저녁에는 독일의 평통위원들과 자매결연식을 했고 독일의 족발을 경험했습니다.
일본 전자회사 소니에서 지었다가 우리 국민연금이 사들였다 두배의 값으로 팔았다는 소니센타에서
독일교민들과 함께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부를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다음날은 우리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포츠담선언 그 회의의 현장 체칠리엔호프(체칠엔궁)에 갔습니다.
라이프찌히로 이동하여 또하나의 퍼포먼스 "평화의 바람이 분다! 평화부채 행진"을 했습니다.
준비해산 우리 국기와 독일국기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한면은 태극기 다른 한면은" I love Krea" 인쇄된 부채를 독일나눠주며
한국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동상, 멘델스존 동상 등도 보고성토마스 교회(성당이었다가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로 넘어간)를 보고 밤베르크로 이동했습니다.
밤베르그 대성당, 막시밀리안 광장을보고 레그니츠강 위에 있는 구 시청 청사를 보고 독일의 베니스라는 강변의 집과 배들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어서 방문한 주교관이라는 레지던츠 궁전을 둘러보고 중세의 보석이라 불리는 로텐부르그로 이동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시계탑의 인형들에 대한 종교전쟁 때 시장과 장군의 내기에서 이겨 그곳을 지켜낸 시장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 내기는 많은 양의 술을 원샷하는 것이었는데 시장이 원샷을 하고 3일을 잠만 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이델 성!
26년 전 여름에 노을과 같이 갔던 하이델베르그 성에서 남다른 감회를 맛보고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해서
독일의 전 교민회장이었던 이기자여사의 독일정착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온 젊은 평통위원들과 또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인식당이었는데 외국인들도 몇 팀 있었습니다.
그사람들과도 추억을 나누고 우리가 준비한 T셔츠와 부채 등을 그곳 평통위원들에게 주고 왔습니다.
다음날은 프랑크푸르트 시가지를 돌다 괴테의 동상과 생가를 보고 쇼핑을 하고 독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공항에서 구입한 면세 관련 서류 때문에 왔다갔다하다가 결국 가이드에 맡겨 처분만 바라는 상황으로 갔습니다.
또 연착된 비행기에다 타고나서도 한시간 이상의 대기 후에 기나긴 비행을 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해서 삼겹살에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장흥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습니다.
집에 와 여행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들었지만 쉬 잠이 오질않아 늦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번 독일연수는 정말 기대이상의 의미있는 연수였습니다.
준비하고 진행한 위수미 협의회장과 집행부의 노고가 컸습니다.
함께한 군의회 의장을 포함한 의원들도 좋았고 부군수와도 친교를 나눴던 좋은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