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여정 “하느님 중심의 깨어 있는 삶”
2024.8.30.연중 제21주간 금요일 1코린1,17-25 마태25,1-13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시편33,5ㄴ)
시편 화답송 후렴처럼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신비가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주님의 자애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어느 사제의 묵상글을 보다가 서두의 내용에 잠시 멈췄습니다.
‘궁합이라는 말이 궁금해서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어보니 그 대답이 기가막히도록 놀라웠습니다. “한국 전통에서 두 사람의 운명이나 성격이 얼마나 잘 맞는지 판단하기 위해 주로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사주팔자를 비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 이어지는 긴 설명이었습니다. 어느 지식 스승이 이보다 더 잘 대답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제 지식 스승은 챗지피티가 대신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면 스승의 역할은, 어른의 역할은 무엇일가 하는 심각한 물음에 직면합니다. 답은 지혜입니다. 날로 지혜로워지는 스승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은 전제로하고 말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은 “지혜의 여정, 하느님 중심의 깨어 있는 삶”으로 정했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 갈수록 지혜로워지길 소망합니다. 지식을 쌓아 놓는다 하여 지혜가 되지 않습니다. 지혜가 결핍된 지식은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혜의 원천은 하느님입니다. 날로 자신을 비워가는 하느님 공부가 심화되어가면서 지혜의 선물이요 지혜로워지는 삶입니다. 지혜와 사랑, 지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 지혜의 사람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공감이 갑니다.
“어른의 도리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다산>
이 또한 자기를 아는 분별의 지혜에 속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른이 진정 현자입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관여하지 마라.”<논어>
이 또한 삶의 지혜에 속합니다. 이런 모든 지혜의 원천은 하느님입니다. 교황님의 성 요셉 봉헌회원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젊은이들은 우리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그분의 현존안에 살면 살수록,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을 만나는데 더 잘 도울수 있다.”
참으로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 현존 안에 살수록 지혜로운 삶이요 이웃을 잘 도울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 구도자들이 사막의 수도승들을 찾았던 것도 삶의 지혜를 찾아서 였습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우선적으로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여 날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우정과 함께 가는 지혜의 여정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참 명쾌하고 공감이 갑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저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힘이자 지혜이신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지혜로운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늘 나라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깨어 준비된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두 부류의 사람들의 대조가 실감이 납니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요?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등에 가지고 있었다.”
유비무환입니다. 기름 준비는 각자 고유의 몫입니다. 평상시 제자리에서 제 책임을 다하며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깨어 기다리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섬김과 선행의 삶에 항구함이 바로 슬기로운 삶이요 기름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절대 빌려오거나 탈취할 수 없는 각자 고유의 기름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도착했고, 등불을 켜들고 환히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입장했고 문은 닫힙니다. 후에 돌아온 이들이 문을 열어 달라 애걸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한결같이 냉정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평상시 주님과 사랑의 친교가 얼마나 소홀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최선을 다해 살면서 주님과 사랑의 친교를 깊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며 언제 주님이, 죽음이 오셔도 반가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뜻밖의 일이 발생해도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면서 늘 깨어 준비된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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